00477 제 120 장 -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
도망가고 싶어도 이미 뱀파이어들이 동굴 안팎에 가득해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도망을 갔다가는 당장 마틴이 위험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본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본을 소환하면 까뮤가 소환해제 되니 당장 카렌과 알렉스가 위험해진다.
자신이야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지만 카렌과 알렉스는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목숨이다.
난감한 표정으로 마틴을 힐끗 쳐다봤다.
마틴과 마블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동굴 입구에서 정신없이 서로 어울려 돌아가고 있다.
마치 필생의 호적수라도 만난 듯,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투기를 뿜어내며 혈전을 벌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속에서 한줄기 호기(浩氣)가 치밀어 오른다.
“시팔, 네들 오늘 다 죽었어.”
이렇게 된 이상, 그도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의 이런 마음의 변화는 곧바로 그의 검에 반영됐다.
“이야앗!”
파츠츠츠츠츠츳!
콰콰콰콰콰아아!
소울의 기합성과 함께 엄청난 검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있는 힘을 다 끌어 모아 ‘배틀파워크러쉬’ 스킬을 펼친 것이다.
클레이모어에서 새파란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와 원형으로 돌아가며 동굴의 한쪽 방향을 휩쓸었다.
“피해라!”
“위험해!”
“이 새끼가 미쳤나?”
카카카캉 캉캉캉!
서걱서걱 촤아악!
“크아악!”
“아악!”
“커억!”
강력한 배틀파워크러쉬로 인해 뱀파이어 몇 마리가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고 제3요새의 5강(强) 중 재칼, 니체, 하이들러 세 명도 작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조금만 위력이 더 강했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뱀파이어들 뒤로 몸을 피하는 바람에 히어로 셋은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프로이드와 오마하를 시작으로 뱀파이어들의 분노의 반격이 시작됐다.
“끼요오옷!”
“히야아아앗!”
뱀파이어들이 두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거의 육탄공세에 가까운, ‘너 죽고 나 죽자!’하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뱀파이어들의 파상공세가 시작되자 소울은 흔들리는 일엽편주처럼 이리저리 피하기에 급급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들 뱀파이어들 사이로 귀신같이 숨어서 날아 들어오는 프로이드의 마나 크레센트였다.
쐐애액 쐑쐑!
파파팟 파팍!
서걱!
“크윽!”
이리저리 잘도 도망 다니며 뱀파이어들을 주살하던 소울의 허벅지로 남색의 마나 크레센트가 스쳐지나갔다.
소울은 급히 순간이동으로 옆으로 이동해서 다리가 잘리는 것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부상자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자 바이오 갑주가 갈라져있고 안에서 살이 벌어져 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바이오 갑주야 천천히 다시 회복이 되겠지만 마나 크레센트에 스친 허벅지는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제길!’
속으로 욕을 해대며 소울은 거칠게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뱀파이어 두 마리의 목이 잘려나가며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소울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급히 몸을 옆으로 던졌다.
“허억!”
이번에는 뱀파이어의 뒤에서 차가운 얼음창이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땀 위로 동굴 바닥의 먼지가 잔뜩 묻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빠드득!
소울은 다시 한 번 이를 뽀드득 갈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뱀파이어들이 기회라 생각하고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쉐도우 스텝을 사용해서 뒤로 물러서며 클레이모어를 빙글빙글 돌렸다.
뒤쪽에서도 뱀파이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띄워서 한 번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몸을 띄우는 것은 프로이드를 비롯한 히어로들에게 제발 나를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유투술이었다.
스스슷 스스슷!
일단 뱀파이어들을 담이나 병풍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였다.
극상의 쉐도우 스텝을 펼치며 뱀파이어들 사이로 교묘히 움직여 빠져나갔다.
카카카카칵!
날카로운 뱀파이어의 손톱이 여지없이 바이오 전신갑주를 길게 긁어놓았다.
하지만 정타로 맞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공격에 갑주가 뚫리지는 않는다.
이 사실을 확인하자 오히려 소울의 움직임이 더욱 대담해졌다.
스스슷 서걱!
스스슷 사각!
“크악, 케엑!”
뱀파이어 둘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며 참혹한 비명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난 뱀파이어라고 해도 팔다리가 잘려지는 고통을 면할 수는 없었다.
쐐애액 쐑쐑!
파파팟 파팍!
“캬아악, 커어억, 크윽!”
아군의 사격(Friendly Fire)으로 인해 소울을 향해 공격 중이던 뱀파이어들의 머리와 심장이 잘려나갔다.
“나이스 샷!”
소울은 프로이드의 마나 크레센트가 오히려 뱀파이어들을 재로 만들어 버리자 크게 소리를 지르며 엄지손가락을 하늘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프로이드를 쳐다봤다.
“시, 실수일 뿐이다.”
프로이드는 냉정하게 한 마디 하고는 다시 검을 휘둘러 초승달 같은 마나 크레센트를 날려 보냈다.
소울은 얼른 사선으로 물러서며 뱀파이어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쐐애액!
파팍!
“크악!”
이번에는 마나 크레센트가 뱀파이어 한 놈의 다리 한 짝을 통째로 잘라버렸다.
이렇게 되자 뱀파이어들의 눈에 의혹의 빛이 강하게 서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로 제3요새의 히어로들과 뱀파이어들이 함께 손을 잡고 소울과 마틴을 공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의심할 정도라면 확실히 동맹이나 혈맹 관계는 아닌 게 분명했다.
소울은 뱀파이어들 사이로 끼어들면서 그냥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주먹으로 머리통을 부셔버리고, 심장을 칼로 쪼개고, 목을 쳐버리면서 꾸준히 뱀파이어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어느새 그의 몸은 뱀파이어들의 피와 뇌수로 붉게 변해있었다.
프로이드의 마나 크레센트가 날아오면 뱀파이어들 사이로 뛰어 들어 그들을 주살했고, 오마하의 전격공격이 날아들면 뱀파이어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재칼의 화염구, 니체의 얼음창, 하이들러의 바람의 칼날이 날아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수십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뱀파이어들의 살기가 조금씩 히어로들에게도 쏟아지자 프로이드를 비롯한 히어로들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전면에 나섰다.
소울에게 당한 상처를 붕대와 포션으로 응급처리 한 재칼, 니체, 하이들러의 눈에 끈적끈적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오호, 이제야 앞으로 나서시네?”
“죽어라!”
소울이 이죽거리자 제일 먼저 공격을 해온 것은 금발의 푸른 눈의 신사 프로이드였다.
그는 샴쉬르처럼 생긴 검으로 소울의 몸을 대각선으로 그었다.
전혀 그의 신사 같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검의 모습이었다.
창!
소울은 클레이모어를 들어 정면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생각보다 들어오는 충격이 적었다.
리콜아바타의 클래스는 프로이드가 더 높을지 모르지만 힘으로는 전혀 꿀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 검술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차창 차차창!
자신 있게 달려든 프로이드가 소울의 클레이모어에 연신 밀리기 시작하자 오마하가 그를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검은 피부에 키가 큰 오마하의 한 손에는 자신의 살결보다 더 검은 메이스가 들려 있었는데 끝의 검은 쇠공 같은 곳에서는 파란 스파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마하는 소울의 머리통을 부셔버릴 것처럼 검은 메이스를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차차창 창창창!
서걱!
“큭!”
하지만 오마하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소울은 프로이드의 옆구리를 길게 갈라놓았다.
유투술과 쉐도우 스텝을 이용해서 오마하와 자신의 사이에 프로이드를 놓고 교묘하게 움직이다 기회가 오자 번개같이 프로이드를 공격해버린 것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 할 것 같지 않던 금발의 신사, 프로이드도 자신의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자 참담한 표정을 흘리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저런 병신을 따라 여기까지 뭐 주어먹으러 왔냐?”
“너 죽이러 왔다.”
소울은 자꾸 말을 시켜서 이들에게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오마하는 대답대신 검은 메이스를 무서운 속도로 휘둘렀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오마하의 메이스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강하고 빠른 공격도 맞아야 효과가 난다.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울은 프로이드를 바로 끝장내고 싶었지만 재칼, 니체, 하이들러가 화염구, 얼음창, 바람의 칼날을 광적으로 뿌려대는 바람에 대상을 오마하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오마하의 팔다리가 대번에 어지러워졌다.
강하고 빠르지만 대신 단순하고 궤적이 큰 오마하의 공격을 마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소울은 병기를 부딪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붕 부웅 붕붕!
촤악!
“크악!”
오마하가 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한손으로 감싸고 잔뜩 인상을 썼다.
허벅지에 뼈가 보이도록 깊은 검상을 입은 것이다.
소울은 바로 오마하를 따라붙었다.
프로이드를 놓친 것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한 놈이라도 끝장을 내기 위해서다.
“안 돼!”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서걱!
치이이이익!
목이 잘린 오마하의 머리통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프로이드를 비롯한 히어로 네 명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마하는 사실 뒤에서 전격 공격이나 하는 것이 더 좋았다. 괜히 프로이드를 돕는다고 나섰다가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것이 히어로인 오마하의 진짜 목숨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끼요오옷!”
“히야아앗!”
그때, 뱀파이어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오마하의 피를 보고 광분한 것인지, 아니면 히어로들의 위기를 보고 도와주러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막 히어로들 사이로 파고들어 도륙을 하려는 순간, 자신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두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육탄공격을 가해오는 뱀파이어들의 기세에 소울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또다시 유투술을 펼쳐 이들과 숨바꼭질을 해가며 숫자를 줄여나가야 했다.
그 덕에 정신을 차린 프로이드와 나머지 히어로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를 갈았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좋아. 혼신의 힘을 다해 저놈을 죽이자.”
프로이드는 자신의 옆구리를 붕대로 대충 감싸놓고 다시 검을 들었다.
그는 뱀파이어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여기서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너희나 우리나 두고두고 피를 볼 것이다. 지금 총공격을 해라.”
“알았다. 그렇게 하지.”
프로이드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뱀파이어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프로이드, 재칼, 니체, 하이들러, 이렇게 네 명은 전신의 능력을 모조리 끌어 모아 강력한 한방을 준비했다.
히어로의 공격에 맞춰 뱀파이어들의 움직임도 크게 변했다.
동굴의 안쪽과 바깥쪽, 양쪽으로 뱀파이어들이 밀집대형을 취한 것이다.
“죽어라!”
“이놈!”
“받아봐라.”
“이얏!”
프로이드를 비롯한 히어로들이 한마디씩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비전절기를 차례로 쏟아냈다.
거대한 초승달이 동굴 위로 떠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소울을 향해 날아갔다.
지글지글 대기를 끓게 만드는 자동차만한 커다란 화염구가 그 뒤를 이어 쏜살처럼 폭사했다.
새파란 빛을 내는 수백 개의 얼음창이 동굴 벽을 타고 날아갔고 동굴 천장을 타고 거대한 바람의 칼날이 날아가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쏟아져 내렸다.
뱀파이어들을 하나씩 재로 만들며 요리조리 움직이던 소울은 즉시 이상을 감지했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히어로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가만히 있으면 히어로들의 공격에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히어로들 가까이 붙어야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앞에는 밀집대형으로 촘촘히 서 있는 뱀파이어의 방어막이 그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늦었다.’
소울은 지금이 자신에게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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