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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건물이 아님. (2) (54/250)

이 세상 건물이 아님. (2)2022.01.24.

[텐트 454가 폭발합니다.] 지이이잉! 직접 폭발과 맞닿아서일까. 폭발음보단 먹먹한 소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몸이 날려졌기 때문이다. “와.” 주민성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것의 원리는 텐트포 발사와 같았다. 건물 폭발로 생기는 충격을 추진력 삼아 날아오르는 방식이었다. “아아.” 타격 면역은 폭발로 인한 타격만 막아 주는 게 아니었다. 공기의 저항감까지 막아 줬다. 걱정했던 호흡도 쉽게 가능했고, 혼잣말까지 가능했다. “방향은 얼추 맞네.” 주민성이 날아가는 방향은 괴성이 들렸던 언덕 너머. 정확하진 않았지만, 예상 낙하 지점은 괴성이 들렸던 위치와 멀지 않았다. “곧 언덕을 넘어가겠군.” 체공 시간이 길어지니 여유도 제법 생겼다. 주민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지형을 눈에 익혔다. “조금 덥긴 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인데.” 그렇게 둘러보던 중, 놀라운 걸 발견했다. “대박.” 주민성이 포착한 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움집이었다. “건물!” 크기가 너무 작아 움집의 상태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화려한 느낌은 없어 보인다. “괜찮은데?” 주민성에겐 건물이 허름할수록 유리하게 작용한다. 중급 이상의 건물은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향부터 틀자.”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천을 끄집어내 펼쳤다. “낙하산 수준은 아니겠지만 어떻게든…….”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 텐트천은 공기의 저항을 받기 때문이었다. 신체강화 능력자였다면 모를까. FFF급 능력자로선 텐트를 쥘 힘이 부족했다. 펄럭! “아오.”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은 텐트를 허공에 기부한 주민성은 허탈함을 느꼈다. “저 비싼 걸 갖다 버렸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없진 않았다. 좀 더 무식한 방법이 있었다. “내려가서 조금 걷지 뭐. 낙하 지점은……. 지금 바로 떨어지는 게 낫겠군.” 쿵! 주민성이 꺼낸 것은 건물 잔해였다. 허공에 꺼내진 잔해는 오로지 중력만을 받는 상태. 잔해에 직접 충돌해 운동력을 상쇄하는 방법이었다. 후우우웅! 주민성은 그대로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살다 살다 별 희한한 비행도 다 해 보는군.”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하늘을 날고 있음에도 무섭다는 감정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뭔 짓을 해도 죽지 않는 타격 면역인데 그깟 추락이 두려우랴. 후우우웅! 쿵! “후우. 움집은 저쪽이었던가.” 주민성은 바닥에서 주춤주춤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아! 괴성 역시 좀 더 크게 들렸다. “오. 확실히 근처네.” 괴성의 정체는 몬스터, 그것도 보스급일 가능성이 컸다. 이젠 거의 확신에 가깝다. 임시 권한만 있다면 놈을 제압할 수도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위 차원에 대한 의문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그리고 게이트에서 일어나는 상황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순위를 먼저 생각할 때. 투혼 갑옷의 부작용인 광증은 당장의 문제였다. “더럽게 막막하군. 서두르자.” 주민성은 서둘러 움집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적지에 도달했다. “와. 이게 다 뭐야.” 움집은 상당히 조악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단순하게 나무를 쌓아 올리고 질겨 보이는 마른 풀로 묶은 방식이다. 주민성은 움집으로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아무도 없나?” 빈집이라면 나쁠 게 없다. 맘 편히 점령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주민성의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부가효과를 받지 않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취……. 취……!” 익숙한 파찰음이었다. 심지어 소리의 근원지는 지상이 아닌 지하. 주민성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취익……!” 주민성은 바로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오크!’ 흩어진 퍼즐이 조금씩 맞아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챙겼던 영혼석도 오크의 영혼석이었지.’ 하위 차원과 오크라는 종족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부 지하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오크는 평범하게 지상에서 생활하는 몬스터니까. 심지어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멀쩡한 움집을 놔두고 지하에 숨어 있는 이유…….’ 키아아아아아! 또 한 차례 괴성이 울려 퍼졌다. 오크들 역시 괴성에 반응했다. “취잇! 취이잇!” 오크의 다급한 목소리에선 공포가 느껴졌다. 이로써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피식자는 오크였군. 그보다 집을 짓는 오크는 처음이네.’ 오크가 인간의 마을을 빼앗았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이 마을의 분위기에선 인간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집기들부터 농기구까지. 하나같이 투박하고 사이즈가 상당히 컸다. 전부 오크에게 맞춰진 것 마냥. 이 마을이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는 증거였다. ‘오크는 둘째 치고, 일단 건물부터 먹고 보자.’ 주민성은 조심스레 움집에 입장했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자: 스취 (상속받음) [소유권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미취겠네.” 움집은 소유할 수 있는 건물이 맞았다. 기존의 건물 소유자가 없었다는 전제하에.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이 문제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건물주 능력을 보유한 오크가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가능성부터, 오랜 기간 같은 건물에서 살아오면 자연스레 소유권을 얻는다는 그럴듯한 가능성까지. “어떻게 할까.” 이 문제의 확실한 해결 방법은 명확하다. 스취라는 오크를 찾아서 죽이면, 이 건물은 자연스레 소유권이 없는 건물이 될 테니까. 하지만 주민성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위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오크 때문에 찝찝한데 또 죽이는 건 좀 그렇지…….” 저주받은 유물이 영혼석과 연동되었다는 건 나름의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메시지는 이동 사실만을 알려 줄 뿐.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오크의 지휘권과 관련된 메시지는 있었지만, 상대가 통제가 어려운 몬스터인 이상 추가적인 변수는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일단 오크는 건들지 말고 조용히.” 움집 안 구석, 아래로 향하는 허름한 나무문이 보였다. 이 문을 열고 나아가면 스취라는 오크도 있으리라. “움집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니까.” 주민성은 빠르게 다른 움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래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취이…….” “꽝이군.” 소리가 들리는 움집에선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움집 점검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결국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움집 발견에 성공했다. “……좋아. 여기다.” 확신을 얻은 주민성은 곧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 유독 허름한 움집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했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명상소가 추가됩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다음 메시지. [처음으로 고대 건물 소유에 성공합니다.] [건물 탐색 능력이 부여됩니다.] [원하는 조건의 건물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검색 내용이 복잡할수록 소요 시간이 길어집니다.] “고대 건물! 새로운 능력!” 놀랍게도 하위 차원에서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건물은 고대 등급의 건물이었다. “고대 등급은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예상했는데. 하긴, 이 건물이 오크한테는 상징적일지도 모르지. 그보다 중요한 건…….” 건물은 반파 상태가 아니었다. 이 말은 즉, 건물의 부가 능력도 있다는 소리. 주민성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고대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주변을 떠도는 고대의 영혼이 건물에 깃듭니다.] [건물의 부가 능력이 발현됩니다.] [명상을 통해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희박한 확률로 깨달음을 얻습니다.] 명상소가 선물한 건 부가 능력뿐만이 아니었다. 고대 등급 건물의 고유 효과까지 함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깨달음이었다. “깨달음이라. 뭔가 고행자가 떠오르네. 후후.” 주민성의 입가엔 어느새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당장의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능력부터 써 보자.” 건물 탐색. 이 능력은 주민성의 입맛에 맞는 건물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면 반파가 되지 않은 하급 건물 같은. “건물 탐색.” [건물을 탐색합니다.] [조건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주변 건물 중에.” [반경 500미터 이내의 건물을 탐색합니다.] “유물의 부작용을 없애 주는.” [유물의 정확한 명칭이 필요합니다.] “……투혼 갑옷의 부작용을 없애 주는.” [정확한 부작용을 지정해야 합니다.] “아오.” [해석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 주민성은 화를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투혼 갑옷의 광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투혼 갑옷의 광증을 억제하는 건물을 검색합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 [소유자가 없는 건물을 탐색합니다.] “끝.” [탐색을 시작합니다.] 지이잉! 능력을 사용한 순간. 주민성의 손에서 회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 빛이 사방에 퍼져나가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색 완료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휴우.” 검색이 시작되고, 온몸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털썩. “이걸로 생존 문제는 해결인가.” 주민성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넋이 나갔다. “…….” 하늘이 새까맣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안 돼.” 순식간에 새하얀 보름달 두 개가 떠오르고, 불길한 달빛이 주민성을 감쌌다. 지금의 현상은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내리쬐던 건 두 개의 태양이었으니까. “……이게 광증의 전조인가.” 하위 차원으로 이동하고, 명상소까지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광증의 전조현상이 발생했다. 능력자 등급이 낮을수록 저항력이 떨어진다는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너무하네.” 10분이 지났는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색이 완료되었습니다.] [투혼 갑옷의 광증을 억제하는 소유자가 없는 건물.] [검색 내용에 해당하는 건물은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탐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 뭐야.”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건물주 능력은 언제나 주민성에게 활로를 보장하니까. 몰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까지 건네줬는데 가만히 있는 건 바보짓이나 다름없었다. “있는 건물이라도 활용해야겠지.” 주민성은 곧장 일어나 명상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깨달음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보다 나은 상황이면 충분했다. “아직까진 보이는 것만 이상하니까 괜찮을 거야…….” 주민성은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미치면 안 돼……. 아직 할 일 많아…….” “취췻……. 취이잇…….” 이젠 오크의 속삭임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 보이진 않지만, 이 또한 광증의 영향이리라. “탐색아……. 빨리 완료되라…….” 주민성의 명상을 위한 노력은 1분을 넘기지 못했다. 귓가를 때리는 고함이 사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어로. “일족의 망신이구나!”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원통하다! 죽어서도 고통받는구나!” “…….” 주변 소음은 정말 사람이 미칠 만한 수준이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댔으니까. “제르취! 뭐라 말이라도 해 보아라!” “왜 대답이 없느냐!” “헉.” 주민성의 명상은 순식간에 깨졌다. 제르취라는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다.” “제르취!” “네놈이 결국!” 급히 눈을 떠보니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명상소에 고대의 영혼이 깃들었습니다.] [고대 영혼의 언어가 연동됩니다.] “…….”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새까만 오크가 주민성을 향해 도끼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샌가 주변엔 수많은 늙은 오크들이 모여 있었다. “…….” 전부 처음 보는 오크였다. 눈이 마주친 늙은 오크 하나가 주민성에게 말했다. “뭐, 뭐냐! 네놈은!” 주민성은 고개를 돌려 새까만 오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너……. 제르취니?” “이 악마 놈……. 이번엔 또 무슨 사술이냐……! 오크어를 사용하다니!” 놀랍게도 제르취는 한국어로 답했다. 고대 등급 건물의 부가 능력이 제대로 발현된 모양. 지금의 현상이 능력의 결과물임을 알아챈 주민성은 크게 안도하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아오. 놀랬잖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쐐액! 제르취의 도끼가 주민성의 미간을 향했다. 통! “어, 어째서? 어째서어어!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는데 어째서!” 주민성은 이마를 잠시 매만지며 말했다. “……다 던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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