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여기 난리야.]
“그거 큰일이네. 알이 사라지다니.”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튼 당분간 또 야근해야 할 것 같아.]
스피커 너머에서 이한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응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미안, 오빠.
그 알 지금 여기 있어.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등에 달린 날개를 파닥거리는 정령을 째려보았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정령은 동화 속에 나오는 팅커 벨 같았다. 크기도 작은 것이 꼭 인형처럼 귀여웠지만 이나에게는 그저 귀찮은 존재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지 못한 정령은 그저 이나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신나 했다.
[꺄하하! 계약자다! 내 계약자!]
“누가 네 계약자야?”
정령은 정령사와 계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힘을 쓸 수 있다. 반대로 정령사는 계약한 정령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이룬다.
하지만 이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이나가 단호하게 말하자 정령이 코앞으로 다가와 칭얼거렸다.
[왜? 왜애? 나랑 계약하기 싫어?]
“응. 싫어.”
[왜! 왜애!]
“귀찮거든.”
이나는 침대에 풀썩 누우며 말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정령은 고민하다가 외쳤다.
[나랑 계약하면 좋을 거야!]
“뭐가?”
[……심심하지 않게 옆에서 떠들어 줄게!]
“와. 엄청 싫은데.”
이나는 정령을 무시하고 이불을 덮었다. 그 와중에도 정령은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그, 그럼 너랑 같이 있게라도 해 줘! 이 세계에서 나한텐 너밖에 없단 말이야!]
“그거 참 로맨틱한 말이네. 근데 자꾸 내 잠 방해하면 쫓아낸다?”
[그치만……!]
“조용.”
그제야 정령이 입을 다물었다. 이나는 잠이 오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내일 저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같이 지내는 것은 무리였다. 저 시끄러운 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협회에 넘기면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머지 정령을 부화시키는 일을 해낼지도 몰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령의 희생이 있을 것도 같지만.
‘젠장. 돌아 버리겠네.’
이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하암…….”
[일어났어?]
거실로 나오자마자 정령이 물었다. 이나는 떨떠름하게 정령을 바라보다가 대충 대답해 줬다.
“어.”
[근데 있잖아, 정말 나랑 계약 안 할 거야?]
“자꾸 똑같은 말 하게 할래?”
짜증스럽다는 듯 말하자 정령이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이나는 그런 정령을 무시한 채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그런데 정령이 쪼르르 따라오더니 수도꼭지를 보며 신기해했다.
[우와! 이거 뭐야? 물이 자동으로 나와!]
“수도꼭지. 물이 나오게 해 주는 도구.”
[그렇구나! 근데 이거 나도 할 수 있는데!]
“네가?”
[응! 봐 봐!]
정령은 손바닥을 위로 펼쳤다. 그러자 이내 자그마한 물방울이 정령의 손바닥 위에 맺혔다.
이제 보니 물의 정령이었나.
새끼손톱만큼 작던 물방울은 점점 커지더니 세면대를 채울 정도로 커졌다.
[이거 봐! 신기하지!]
“딱히.”
미안하지만 진심이었다. 이런 건 전생에서 질리도록 봐 왔고, 이 세계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으면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정령이 충격받은 얼굴로 물방울을 손에서 놓쳤다. 세면대 위로 떨어진 물방울은 배수관을 타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나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잘하면 쓸모가 있겠는데.”
잠시 후 씻고 출근 준비를 마친 이나가 나가기 전에 정령에게 말했다.
“저거 접시들 보이지?”
[응! 보여.]
“내가 올 때까지 깨끗이 씻어 놓을 수 있어?”
[그거야 쉽지!]
“깨뜨리면 안 돼. 깨지거나 손상되면 너 쫓아낼 거야. 알았어?”
정령이 긴장되는 듯 침을 꿀꺽 삼키더니 물었다.
[그, 그럼 잘 해내면 나 안 쫓아낼 거야……?]
“잘 해내면 우리 집에서 살게 해 줄게.”
일꾼으로라도 좋다면.
뒷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령이 환해진 얼굴로 외쳤다.
[응! 알겠어! 나 열심히 할게!]
“그래, 그래. 다 끝내면 놀고 있어.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말고. 알았지?”
[응! 잘 다녀와!]
오랜만에 누군가가 배웅해 주는 인사를 들으며 집을 나왔다.
이나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
이나는 평범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나의 직무는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해 만들 도구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전생에서 마도구를 많이 접해 본 덕에 그 기억을 이용해 선택한 직업이었다.
월급도 적당하고 일도 나쁘지 않았다. 이나는 자신의 일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이나 씨, 회의 준비 끝났어요?”
“네, 팀장님.”
“좋아요. 그럼 회의실로 가죠.”
오늘도 평범하게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때마침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들어왔다.
회의실로 들어가던 팀원들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멈춰 섰다. 이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사무실에 쳐들어온 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들어와 죄송합니다.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헌터 협회요……?”
“유이나 씨 계십니까.”
사무실 안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꽂혔다. 그러자 헌터 협회 사람들도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유이나 씨, 맞습니까?”
“네. 제가 유이나이긴 한데……. 무슨 일이시죠?”
“어제 정체불명의 알 도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나는 뜨끔했지만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헌터 협회 사람이 말을 이었다.
“CCTV를 돌려 본 결과, 유이나 씨가 알에 손을 댄 기록이 있더군요.”
“아. 어제 그 알 말이군요.”
“네. 관련하여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이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회의실은 이나와 헌터 협회 사람들이 잠시 사용해야 했다.
이나와 협회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마치 취조받는 듯한 기분에 이나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러든 말든 협회 사람들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제 헌터 협회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가족이 그곳에서 일해요. 뭐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 잠시 다녀왔어요.”
“가족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유이한이요.”
그녀가 대답하자 협회 사람이 노트북을 두드렸다. 한 명이 질문하고 한 명이 기록을 전담하는 듯했다.
이나가 기록하는 모습을 힐끔거리는 사이 질문이 이어졌다.
“알을 만지고 나서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급한 일이 떠올랐거든요.”
“급한 일이라면?”
“……집에 가스 불을 켜 놓고 온 것 같아서요.”
급하게 말을 지어내 답하자 협회 사람들이 의심스러워하는 얼굴을 했다. 그에 이나는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다행히 꺼 놓고 왔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혹시 알을 만졌을 때,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있었다. 알이 그녀의 힘을 빨아들여 부화한 거.
하지만 사실대로 대답할 순 없었기에 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요.”
“그렇군요.”
대답과 동시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남자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각성 판별 장치. 이나가 각성자인지 확인시켜 주는 장치였다.
이나는 조금 긴장했다. 각성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기 손을 올려 주십시오.”
“……네.”
이나는 긴장해 땀이 배어 나온 손바닥을 옷에 벅벅 문지른 뒤 손을 장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장치의 빛이 그녀의 손을 훑었다.
잠시 후, 장치에서 글자가 튀어나왔다.
[각성자가 아닙니다.]
이나는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려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마찬가지로 결과를 확인한 헌터 협회 사람들이 짐을 챙겼다.
“확인했습니다. 추가로 여쭤볼 게 생긴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이나는 회의실을 나가는 헌터 협회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던 직장 동료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나 씨, 무슨 일이에요?”
“별일 아니었어요.”
이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이 놀랐겠네.]
“그냥 조금. 오빠는 안 놀랐어? 그쪽에서 전화 왔을 텐데.”
[당연히 놀랐지!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호들갑 떠는 이한의 목소리에 이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에게 말했다.
“나 집에 도착했어. 오빠, 그럼 들어가 쉬어.”
[그래. 너도 오늘 고생했어. 푹 쉬어.]
“응.”
이나는 통화를 끊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쩐지 피곤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정령이 설거지는 다 해 놨겠지?’
일은 줄어서 좋네.
이나는 조금 들뜬 기분으로 집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정령이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설거지만 해 놓은 게 아니었다.
“이, 이게 뭐야?”
[왔어?]
정령이 해맑게 물었다. 반면 이나는 가방을 툭 떨어뜨리며 외쳤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소파 앞 탁자 위에 또 다른 정령의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나가 경악하며 쳐다보자 정령이 어깨를 쫙 펴고 대답했다.
[내가 데려왔어! 내가 있던 곳에 가득 있더라고! 내 친구!]
“이런 미친……!”
이나는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