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49)

[흐에에엥…….]

“팔 똑바로 들어!”

이나의 호통에 정령이 양팔을 위로 더 뻗어 올렸다. 아이 같은 얼굴로 훌쩍였지만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알을 맘대로 가져오면 어떡해! 이건 도둑질이라고!”

[도둑질 아냐! 친구 데려온 거야!]

“쓰읍!”

[……그래도 마음대로 데려온 건 미안해.]

정령이 결국 사죄했다.

이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실 이래도 달라질 건 없었다. 협회에 있어야 할 알은 이미 그녀에게 있으니까.

“대체 알은 어떻게 가져온 거야?”

[들키는 거 싫어하는 것 같길래 몸을 투명화해서 몰래 가져왔지롱.]

“……하아.”

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이나는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다.”

이나가 알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걸 본 정령이 불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뭘 하려고?]

“부화시킬 거야.”

[정말?]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을 깨는 건 정령을 소멸시키는 일이나 다름없으니 양심상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대신 부화시켜서 증거를 인멸할 수밖에.

괜히 알을 가지고 있다가 협회에 들키는 것은 절대 사절이었다.

이나는 전생에 이어 오랜만에 몸에서 정령의 힘을 끌어냈다. 그녀 옆의 정령이 인지시켜 준 덕분에 쉽게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알 속으로 스며들게 하자.

파앗-

알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에 이나와 정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확실히 보였다.

알이 둥근 모양에서 벗어나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이내 빛이 사그라들고, 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악! 드디어 태어났다!]

[와아! 친구다, 친구!]

[친구? 꺄아악! 친구다!]

두 정령이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이나는 고막을 찌르는 높은 톤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때 이나를 발견한 두 번째 정령이 그녀의 눈앞으로 쪼르르 날아왔다. 녹빛을 띠는 새 모습의 정령이었다.

[네가 날 깨워 준 거구나! 내 계약자!]

“아냐.”

[응?]

“난 네 계약자가 아냐.”

멍한 얼굴의 새 정령이 첫 번째로 태어난 정령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계약 못 했어…….]

“난 아무하고도 계약하지 않을 거야.”

새 정령이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그래 봤자 새 얼굴이었지만.

[그, 그럼 난 어떡해! 나한텐 너밖에 없단 말이야!]

이 말 전에도 들어 봤는데.

이나는 정령들의 똑같은 레퍼토리에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브이 자로 펴 보였다.

“자, 선택해. 지금 너한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어.”

[뭔데?]

“내 집에서 자기 몫의 일을 하며 지낼 것이냐, 아님 이 집을 나갈 것이냐. 선택해.”

당연하게도 새 정령은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그렇게 이나의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

“하암…….”

[일어났다!]

[늦잠꾸러기!]

이나가 방에서 나오자 두 정령이 주변을 배회하며 외쳤다.

아침부터 떠들썩하자 이나는 귀를 막으며 말했다.

“목소리 좀 줄여, 이 말썽꾸러기들아.”

[말썽꾸러기 아닌데!]

[우리 정령인데!]

“어휴.”

이나는 소파 위에 풀썩 앉았다. 잠을 좀 깨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두 정령이 그녀 앞 탁자 위에 내려서며 물었다.

[근데 있잖아. 우리 이름 안 붙여 줄 거야?]

“이름?”

[응! 계속 정령이나 말썽꾸러기로 부를 거야?]

질문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자신들에게 이름을 붙여 달라는 간절함.

이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정령이 두…… 마리? 가 되었으니 부르기 힘들긴 하겠네.”

[그치?]

“그럼 넌 1호, 넌 2호로 할까?”

단순명쾌하게 먼저 태어난 순서대로 가리키며 묻자 정령들이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거 말고 이름으로 지어 줘!]

[맞아! 1호, 2호는 싫어!]

“귀찮네.”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생각에 잠겼다.

“……이즈, 리카.”

[이즈?]

[리카?]

“그래. 물의 정령 넌 이즈, 그리고 새 정령 넌 리카. 됐지?”

두 정령이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외쳤다.

[……이즈! 마음에 들어!]

[응! 나도! 리카라는 이름 좋아!]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에 이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띠링!

핸드폰이 울렸나 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유이나’ 님은 각성하셨습니다!⌟

“……뭐?”

[왜 그래?]

창을 보지 못하는 정령이 그녀에게 물었지만 이나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다른 창이 떠오른 탓이었다.

⌜상태 창

이름: 유이나

나이: 23세

특성: 정령사(L)

스킬: <정령의 보호자(S)>⌟

“……이런 미친.”

이나가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해 버렸다. 각성.

그것도 세계 유일의 정령사로.

***

각성한 건 한 거고 출근은 해야 했다.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한국식 교육 덕분이었다.

다만 어제 그 헌터 협회 사람들이 또 찾아올까 봐 걱정되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 이나는 각성한 상태였다. 만약 그들이 또 찾아와서 각성 판별 장치를 들이밀면 그녀가 각성자라는 게 꼼짝없이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정령사라는 게 밝혀질 테고, 그럼 알을 부화시킨 것도 들통날 테고.

무엇보다 정령사라는 특성 옆에 붙어 있던 등급이 L이었다. S급도 아닌 L급.

지금껏 나온 적 없는 등급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이 세계엔 나올 수 없는 특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분명 S급보다 높거나 희귀한 등급일 터였다.

그 말은 즉.

‘들키면 끝장이다.’

그렇게 걱정에 휩싸여 이나는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헌터 협회에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퇴근하고 그녀의 오빠 이한한테서 전화가 왔다.

“알이 또 사라졌다고?”

[응.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한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이나는 난감해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모른 척 질문했다.

“협회에서 이번에도 나를 찾아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네.”

[알이 사라진 시간이 이나 네가 회사에서 협회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을 때니까. 각성자도 아닌 사람이 같은 시간에 알을 훔쳤을 리는 없을 테니 다들 의심을 푼 모양이야.]

이나는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그렇구나, 대답했다.

‘미안, 오빠. 그거 범인 나야.’

각성했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한이라면 분명 걱정할 테니까. 어쩌면 일을 관두고 시골로 내려가자고 할 수도 있었다. 그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이나는 지금의 이 평범하고 소중한 생활을 잃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얼마나 편한데!’

처음에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는 낯설었지만, 이나는 도시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이나 마트가 있고, 심지어는 배달을 시킬 수도 있었다. 또 간단히 버튼만 누르면 전자 기기들이 환경을 쾌적하게 바꿔 준다.

이 얼마나 편한 삶인가!

‘들키지만 않으면 돼. 들키지만 않으면.’

이나는 같은 말을 계속 되뇌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두 정령이 그녀를 맞이했다.

[이나 왔다!]

[이나다, 이나!]

아침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려 주었더니 정령들은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러 댔다.

이나는 혹시나 오늘도 두 정령이 사고를 치진 않았을까 싶어 집 안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별일 없었지?”

[응! 없었어.]

“설마 또 정령의 알을 가져오진 않았겠지?”

[안 가져왔어! 이나가 가져오지 말랬잖아.]

이나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통한 모양이었다.

“청소랑 빨래는?”

[다 했지!]

“수고했어.”

이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소파에 풀썩 앉았다.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정령이 그녀의 양어깨에 내려앉아 뺨을 비벼 댔다.

물과 바람의 정령이라 그런가, 시원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꼬르륵-

“……아. 배고파.”

그러고 보니 저녁을 아직 못 먹었다. 점심때 먹은 도시락은 긴장한 채 먹었더니 먹었는지도 모르겠고.

‘차려 먹긴 귀찮은데.’

고민하던 이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정령들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이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나, 어디 가?]

“요 앞에 밥 먹으러.”

[또 나가? 나도 같이 갈래! 이나랑 같이 있고 싶어!]

[나도, 나도!]

정령들이 자기들도 데려가라고 성화였다. 무시하고 갈까 하던 이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승낙했다.

“좋아. 대신 밖에서 실체화하면 안 돼.”

[응!]

[알았어!]

정령은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었다. 그때는 정령사가 아니면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반면 실체화를 하게 되면 정령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이나는 그녀가 신신당부하자 투명화한 정령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으로 정령들을 데리고 하는 외출이었다.

***

한편 헌터 협회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총괄하는 팀장 유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바쁜 이한은 요 며칠 더 바빴다. 그의 팀원들 또한 집에도 못 들어가고 그를 따라 일하고 있었다.

자신이 헌터 협회 직원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이지만, 가끔은 힘들기도 했다.

한참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팀원 하나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으아. 이러다 과로로 죽겠어요.”

“피곤하면 잠시 쉬다 와.”

그 와중에도 이한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팀원은 독종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이한의 시선이 책상 한편에 닿는 게 보였다.

그곳엔 탁상 액자가 있었다. 이한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것이었다.

액자엔 그의 동생 이나의 어릴 적 사진이 들어 있었다. 팀원들은 그걸 볼 때마다 이한이 동생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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