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49)

“설마 지금 동생 사진 보고 기 충전이라도 하신 거예요?”

“그럼 안 되나?”

“와. 저는 제 동생 얼굴만 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피식 웃음을 흘린 이한이 서류를 내려놓고 액자를 집어 들었다. 무척이나 애틋한 그 시선에 팀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팀장님도 참 팔불출이시라니까.”

“당연하지. 내 사랑스러운 동생인걸.”

“오우. 안 들은 귀 삽니다.”

손발이 오글거려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데 얼마 전 입사한 막내 사원이 끼어들었다.

“팀장님이 사랑스럽다 하실 정도면 진짜 예쁘신가 봐요!”

“예쁘지.”

“와. 한번 소개라도 받아 보고 싶네요.”

저 눈치 없는 놈이!

선배들이 모두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젓자 막내 사원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귀에 이한의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소개시켜 달라고?”

“네, 네?”

“지금 내 동생한테 관심이라도 가지는 건가, 김우림 씨?”

이한은 웃고 있었지만 모두가 저게 가짜 미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막내 사원 김우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그제야 제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전 그냥……!”

“팀장님!”

타이밍 좋게도 마침 옆 팀의 사원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그는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뭐? 어디!”

“신촌 쪽입니다!”

제 팀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던 이한이 멈칫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옆 팀으로 달려갔다.

“신촌이라고요? 정확히 어느 위치입니까?”

“그, 그게…… 주소가…….”

신입인지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답답했다. 이한은 결국 그에게서 서류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주소를 본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유 팀장?”

“……저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뭐? 유 팀장? 유 팀장!”

이한은 서둘러 겉옷을 챙기고 협회를 나섰다. 아무 택시나 잡은 그는 기사에게 외쳤다.

“신촌 쪽으로 가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이한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는 곳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은 이나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

[이나, 죽으려고 했어?]

“말이 그렇단 거지, 말이.”

식당에서 집어 온 사탕을 우물거리며 이나가 말했다.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두 정령이 난데없이 외쳤다.

[나도 먹고 싶어!]

“응? 사탕을?”

[뭐든 좋아! 먹는다는 행위를 하고 싶어!]

[나도, 나도!]

이나는 난감해졌다. 호기심 많은 녀석들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물론 아무거나 던져 주고 먹어 보라고 할 수는 있었다. 어차피 맛도 포만감도 못 느낄 녀석들이니까.

다만 실망하면 투덜거릴 게 분명했기에 그게 조금 걸렸다.

‘마정석이라도 있음 좋을 텐데.’

마정석은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마나 에너지가 가득 담긴 돌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걸 이용해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곤 했다.

정령이 힘을 쓰려면 마나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령은 몸 안에 마나를 저장하는 ‘코어’가 없기 때문에 제힘의 반의반도 쓰지 못했다.

그러니 마정석이라도 쥐여 주면 그걸 먹고 힘을 쓸 수 있을 텐데.

‘아니지. 괜히 힘이 넘쳐서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면 어떡해?’

소름이 돋았다. 이나는 침음을 삼키곤 사탕을 입에서 빼며 말했다.

“집에 초콜릿 있으니까 그거라도 먹든지.”

암. 집이 쑥대밭이 되느니 귀가 조금 아프고 말지.

이나의 말에 이즈와 리카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악! 이나 최고!]

[우리도 먹는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기분에 귀를 틀어막는데, 갑자기 땅이 진동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뭐야?”

“지진인가?”

그녀만 느낀 게 아닌지 주변 사람들도 의아해하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나가 이상한 존재를 본 것은 그때였다.

“끼욱?”

“……원숭이?”

원숭이를 닮았지만 원숭이는 아니었다.

어떤 원숭이도 저렇게 크고, 여우처럼 큰 귀와 기다란 손톱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렇다면.

“몬스터!”

“꺄아악! 몬스터다! 던전 브레이크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나도 도망치는 사람들을 따라 달렸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래.’

당황스러웠다. 설마 근처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건가?

난 그저 밥 먹으러 나왔을 뿐인데?

상황이야 어찌 됐든 일단 지금은 도망쳐야 했다. 죽기는 싫으니까.

이나가 사람들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함께 달리는데 이즈가 물어 왔다.

[이나야, 저게 뭐야?]

“몬스터.”

[몬스터?]

“한마디로 괴물이야. 사람들을 해치는.”

[무서워!]

물의 정령 이즈가 이나의 셔츠 앞주머니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리카는 도망치는 그녀를 따라 힘차게 날갯짓했다.

“끼아악! 끼아악!”

“꺄아악! 살려 줘!”

그때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나는 달리다 말고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게이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상 저 안에 들어가면 끝이었다.

“젠장! 헌터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나가 이를 갈며 다시 도망치는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가 달려들더니 이나의 몸을 넘어뜨렸다.

“윽!”

“끼아아악!”

마치 사냥감을 잡은 짐승의 포효처럼 원숭이 몬스터가 울부짖었다.

몬스터는 이나의 몸을 들어 올리더니 한쪽 어깨에 매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거 놔! 안 놔?”

반항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기엔 몬스터의 힘이 너무 셌다.

이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망할!’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코앞이었다. 이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설마 이번 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해 봐서 그런지 다가올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아 놓은 돈으로 휴양지나 갈걸.

[우리 이나 데리고 가지 마, 이 나쁜 녀석아!]

그때 옷깃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어 이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정령이 각각 몬스터의 누더기 옷과 이나의 옷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나는 그들을 멍하니 보다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각성자잖아?’

헌터 딱지는 붙지 않았지만 이나 또한 각성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무기가 바로 곁에 있었다.

“이즈.”

[응?]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물의 정령 이즈가 이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물 다룰 수 있지?”

[응? 그야…….]

“그럼 물을 모아.”

이나가 씨익 웃었다. 사냥감에서 사냥꾼이 된 자의 사악한 미소였다.

“이 새끼 익사시켜 버려.”

[응! 알았어!]

이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전에 보았던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물방울은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자 이나를 들고 가는 몬스터의 얼굴로 향했다.

“우끼?”

몬스터는 물방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별로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물방울은 순식간에 몬스터의 숨 구멍을 막아 버렸다.

“꾸루롹?”

물방울이 숨통을 조이자 몬스터는 물방울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물.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손만 젖어 갔고, 결국 한계에 다다른 몬스터가 몸부림을 쳤다.

그 반동으로 이나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이거 좀 아프겠는데……!’

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퍽, 소리가 나며 그녀의 몸이 어딘가에 부딪쳤다.

‘어라? 생각보다 안 아픈…….’

단단하긴 했지만 아프진 않았다. 그에 이나는 의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그녀에게 내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이나는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러자 어디선가 본 듯한 잘생긴 얼굴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뒤로 물러서십시오. 아직 몬스터가 날뛰고 있습니다.”

아니, 저 몬스터는 이미 죽어 가고 있는데.

이나는 이즈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녀의 뜻을 잘 알아들은 이즈가 물방울을 순식간에 와해시켰다.

그사이에 숨이 막혀 죽은 건지 몬스터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려 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그녀를 구해 준 남자의 검에 베였다.

“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남자가 죽은 몬스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초조해진 이나가 잽싸게 그를 불렀다.

“헌터님! 저기, 저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끌고 가고 있어요!”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자가 머쓱한해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더니 잽싸게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나는 그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즈, 저 몬스터 시체의 폐에서 물을 빼낼 수 있어?”

[응! 맡겨만 줘!]

투명화한 이즈가 몬스터 시체를 향해 쪼르르 날아갔다. 몬스터의 폐에서 물을 빼도록 시킨 건 혹시나 싶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었다.

‘그나저나.’

이나는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분명 이시현 헌터였지.’

그 얼굴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툭하면 TV에 나온 덕분이었다.

오러를 쓰는 한국의 최고 검사, 전생의 세계였다면 소드 마스터라 불렸을 그는 다름 아닌 S급 헌터이자 한국의 3대 길드 중 하나인 천조 길드의 길드장, 이시현이었다.

“설마 실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리는 이나에게 때마침 천조 길드의 헌터가 다가왔다.

“절 따라오시죠.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나는 그를 따라가며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연예인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에 계속 힐끔거리게 되었다.

‘뭐, 이젠 볼 일 없겠지.’

볼 일이 없어야만 하기도 하고.

이나는 그제야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

“제발 들어가게 해 주세요!”

“안 됩니다. 아무리 헌터 협회 분이어도 헌터도 아닌 일반인을 던전 브레이크 현장에 들여보낼 순 없습니다.”

“제 동생이 저 안에 있단 말입니다!”

이한답지 않게 감정에 호소했지만 현장을 지키고 서 있는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한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하나뿐인 가족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구해 주러 가지도 못한다.

‘이렇게 무능력한 오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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