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49)

그때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며 그녀의 몸이 두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리카의 바람의 힘이었다.

이나는 혹시나 밑의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리카에게 말했다.

“리카, 빨리 가자.”

[알았어!]

휘익-

빨리하라고 했더니 정말로 빨리 갔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나의 발이 제집 건물 옥상에 닿았다.

“수고했어.”

[응! 헤헤.]

리카의 날갯짓이 빨라졌다. 그녀의 칭찬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나가 허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스탯 창.”

띠링!

⌜스탯 창

근력: 15

체력: 18

민첩: 16

마력: 80

※잔여 SP: 0⌟

“……역시.”

자신의 스탯을 보던 이나가 중얼거렸다.

근력, 체력, 민첩은 다 평균 성인의 것이었다. 그런데 마력이 홀로 저 꼭대기 위에 있었다.

“어쩐지 마나를 나눠 줘도 힘들지가 않더라니…….”

마력은 마나의 양과 마나를 다루는 능력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물론 건물 하나 건너오는 데 마나가 크게 소모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이상했다.

다 마력 수치가 높아서 그런 거였다.

‘전생의 힘이 넘어오기라도 한 건가?’

이 세계 사람이 가지지 못할 정령의 힘이며, 높은 마력 수치까지. 전생의 힘이 넘어온 게 아니고서야 얻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스탯 창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스탯 등급은 끽해야 B급 정도 되겠는데?’

아무리 지니고 있는 특성과 스킬 등급이 높다 한들, 스탯 등급이 낮으면 전체 등급이 높게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각성자임을 들키게 되더라도 귀찮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조금 줄어든 셈이었다.

‘내가 L급 특성을 얻은 이유가 혹시 정령사라는 특성 때문인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원래대로라면 지구에는 정령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이나로 인해 정령이 깨어났다.

지구에서의 유일무이한 능력. 그 탓에 L급이라는 등급이 달린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시스템 창을 가만히 보던 이나는 대수롭지 않게 창을 꺼 버렸다. 전생의 힘이 넘어온 것이든 아니든 그녀에게야 나쁠 것이 없으니까.

이나는 곧바로 옥상 문을 열고 그녀의 집이 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어젯밤 일 탓에 건물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녀의 발걸음 소리만이 복도에 울릴 뿐이었다.

‘조용한 게 기분이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자 두 정령이 그녀보다 빨리 집 안으로 들어섰다.

[와! 집이다!]

[우리 집!]

“언제부터 너희 집이 된 거냐.”

이나는 한숨을 삼키고 에어컨 쪽으로 걸어가 전원 버튼을 눌렀다.

에어컨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 외 켜 놓은 것은 없는지 확인한 이나가 초콜릿 몇 개를 챙겨 정령들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응? 벌써?]

“여긴 아직 들어오면 안 돼.”

[우리 집인데?]

“그렇긴 한데…… 지금은 안 돼. 들키면 곤란해져.”

그러면서 이나는 초콜릿을 까서 두 정령들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기대감 어린 얼굴로 각자 입과 부리를 오물거리던 두 정령이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상해.]

[삼키긴 했는데 이상해. 아무 맛도 안 나고 속에서 사라졌어.]

정령은 자연 그 자체였다. 아마 초콜릿은 이즈의 몸속에서는 녹아 사라지고 리카의 몸속에서는 공중에 흩어지듯 사라졌을 것이었다.

이나는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웃어 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

[히잉……. 실망이야…….]

[나두…….]

이나는 실망한 두 정령을 적당히 위로해 준 뒤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었다.

“실망은 그만하고, 얼른 돌아가자.”

이나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이러다 오빠가 먼저 오겠…….”

이나는 말을 멈추고 문을 연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상대방이 싱긋 웃었다.

“여긴 맘대로 들어오면 안 될 텐데요?”

“아, 그게…… 여기가 저희 집인데요…….”

이나는 뒤를 힐끗 보았다. 다행히 두 정령은 낯선 상대를 보고 투명화한 상태였다.

안도하는 사이 상대방 또한 그녀의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 정령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한 이나는 문을 그대로 쾅 닫아 버렸다.

“남의 집을 엿보는 건 실례 아닌가요?”

“아. 실례했습니다. 누가 있는 것처럼 보시기에.”

“보셨다시피 아무도 없어요.”

“그렇군요. 이상하네요. 분명 말소리가 들렸는데.”

“……혼잣말이에요.”

미간을 좁힌 이나가 웃는 상의 남자를 째려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누구시죠?”

“그 전에 제 질문에 먼저 답해 주셔야겠습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그냥 들어왔어요. 몰래.”

“몰래?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는 곳을, 당신 혼자 말입니까?”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나는 침을 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마 날아 들어온 걸 본 건 아니겠지?’

입 안이 바싹 말라 왔지만 이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경비가 허술하더라고요.”

“흐음. 그렇군요.”

“이제 그쪽이 제 질문에 답할 차례예요. 그쪽은 누구고, 왜 여기 있는 거예요? 그쪽 말에 따르면 그쪽도 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될 텐데?”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이나는 그것을 거칠게 받아 들고는 이름 옆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헌터 협회 본부장?”

“최서준이라고 합니다.”

그가 씨익 웃었다.

***

이나는 서준을 따라 얌전히 건물을 나왔다.

맘 같아선 그냥 아무 일 없으면 됐지 않냐고 가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헌터 협회 본부장이라는 건, 그가 이한의 윗사람이라는 뜻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지셨네요?”

“곤란해지는 건 사양이라서요.”

이나가 대답하며 따라오자 서준이 그녀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본부장님? 여긴 어떻게…….”

“잠시 들렀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일 마저 하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서준에게 향하던 시선들이 뒤에 선 이나에게 닿았다. 이나는 쓰고 있는 모자를 더욱 눌러썼다.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서준의 화려한 외모 때문인지 시선이 쏠렸다.

불편해하는 얼굴의 이나와 달리 서준은 여유롭게 웃으며 펜과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뭐예요?”

“경위서 작성해야죠.”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제가 좀 철저한 편이라.”

한숨을 내쉰 이나가 펜을 집었다. 그리고 종이에 대문짝만하게 ‘경위서’라고 적은 뒤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그녀가 쓰는 것을 물끄러미 보던 서준이 말했다.

“유이나 씨라고 하는군요.”

“네.”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와 왜 들어갔는지 사유도 함께 적으세요.”

“전기세 많이 나올까 봐 에어컨 끄러 왔을 뿐입니다.”

대답하기도 민망한 사유였다.

이나가 제가 말한 것을 그대로 경위서에 끄적이자 서준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군요.”

‘웃어? 누군 심각하구만.’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이나는 정령들의 재잘거림도 함께 들어야 했다.

[저 인간은 왜 이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

‘나도 마음에 안 들어.’

차마 서준이 보는 앞에서 정령들의 말에 대답해 줄 수는 없었기에 이나는 서둘러 경위서를 적어 내렸다.

겨우 다 쓴 경위서를 내밀자 서준이 찬찬히 읽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군요.”

“그럼 이제 가 봐도 되죠?”

“네.”

이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서준이 그녀를 따라왔다.

“왜 따라와요?”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어디로요? 경찰서?”

“이런. 들켰나요?”

서준이 싱긋 웃었다. 그 잘생긴 얼굴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유이나 씨.”

“아, 또 왜요?”

“혹시 각성자입니까?”

심장이 덜컹거렸다. 하지만 이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각성자였으면 당당하게 들어가지, 몰래 들어갔겠어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다행히 납득했는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진짜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야아아아! 최서주우우운!”

그때 엄청나게 큰 목소리가 이나의 고막을 울렸다.

그 소리는 위에서 들려왔다.

이나가 고개를 드는 순간 땅에 무언가가 쾅, 하고 내려왔다. 꽂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 반동으로 이나가 비틀거리자 서준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바로 세워 주었다.

이나가 그를 돌아보는 순간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서준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자식! 이거 뭐야!”

“뭐가 말입니까?”

“이거 말이야, 이거! 몬스터랑 싸우느라 부서진 건물들 배상을 우리보고 하라니! 몬스터랑 싸우다 보면 건물 몇 개 좀 부서지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이런 건 협회의 일이잖아!”

이나는 눈앞의 남자를 빤히 보았다. 흥분했는지 그는 서준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비록 옆모습이었지만 이나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청호 길드장 백도하잖아?’

언월도를 주 무기로 다루는 유명한 헌터였다. 지금은 무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상태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크르르릉…….”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파트너, 백호 아란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뽐내는 두 인간과 호랑이 탓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리를 벌렸다. 반면 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 때문에 부서진 것은 당연히 협회 쪽 몫입니다만, 지금 청호 길드장께서 내민 서류의 건물은 그 탓에 부서진 게 아닙니다.”

“뭐?”

“당시 현장을 정리하던 청호 길드원들이 몰래 술을 마시다 흥분해서 부쉈더군요.”

“…….”

“답이 되셨습니까?”

“우, 우리 애들이 그랬다고?”

“네.”

단호한 대답에 백도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잠시 후, 그가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이 망할 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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