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49)

[뭐어?]

하지만 이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눈으로 이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 그치만 저렇게 귀여운데……!]

“저거 몬스터야.”

[……몬스터라고? 저 토끼가?]

“그래. 애초에 여긴 던전 안이라고. 몬스터밖에 더 있겠어?”

그렇게까지 말했지만 이즈는 끝까지 망설였다. 결국 이나가 재촉을 했다.

“이즈.”

[……알았어.]

이즈가 토끼만 한 크기의 물방울을 만들어 날렸다. 순식간에 물방울 안에 갇히게 된 토끼가 버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크롸앙!”

토끼가 입을 벌리더니 상어 이빨처럼 뾰족한 이빨들을 드러냈다.

물방울을 찢어발길 것처럼 이빨질 하는 토끼 몬스터를 보며 이즈가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토끼가 저랬다니…….]

“그야 몬스터니까. 그보다 이즈, 온다.”

이나가 흔들리는 수풀을 보며 말했다.

잠시 후 수풀 사이에서 이를 드러낸 토끼들이 뛰쳐나왔고, 이나가 두 정령에게 명령했다.

“리카, 바람으로 몬스터들이 가까이 못 오게 막아. 이즈는 날려 버린 몬스터들을 익사시켜 버려.”

[네에!]

처음 맞춰 보는 호흡임에도 두 정령은 그녀의 명령에 맞춰 잘 행동했다.

리카가 바람으로 몬스터를 날려 버리면 주춤한 몬스터에게 이즈가 물방울을 날리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주위에는 널브러진 몬스터들이 가득 쌓이게 되었다.

띠링!

⌜F급 던전 ‘방심은 금물’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해당 던전을 단신으로 공략한 최초의 각성자입니다! ‘방심하지 않는 자(D)’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노움의 지팡이(D)’를 획득하셨습니다.⌟

⌜2SP를 획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보상이 빵빵한데? 혼자서 공략해서 그런가?”

F급 던전은 보통 초보 헌터 교육용으로 이용되곤 했다.

그래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사수 헌터와 함께 두 사람 이상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상급 헌터의 경우엔 보상이 적은 F급 던전에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기에 이 던전을 혼자서 공략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인 듯했다.

이나는 칭호 창을 열어 보았다.

“칭호 창.”

띠링!

⌜칭호 창

1. <방심하지 않는 자(D)>⌟

얻은 칭호가 하나뿐이라 그것밖에 뜨지 않았다.

이나는 망설임 없이 칭호를 클릭했다. 그러자 설명이 나타났다.

“집중력 10% 상승, 그리고 두려움을 20% 억제시키는 능력인가.”

지금으로선 별로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이나는 따분하다는 눈으로 칭호 설명을 읽다가 이번엔 스탯 창을 띄웠다.

“스탯 창.”

띠링!

⌜스탯 창

근력: 15

체력: 18

민첩: 16

마력: 80

※잔여 SP: 2⌟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잔여 SP의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SP는 ‘스탯 포인트’의 약자였다. SP를 이용해 네 가지 스탯을 상향시킬 수 있었다.

물론 모두 뉴스에서 헌터들이 떠드는 것을 주워들어 아는 사실이었다.

“흠.”

하지만 이나는 스탯을 올리지 않고 창을 꺼 버렸다.

‘굳이 지금 올릴 필요는 없지.’

겨우 2밖에 없는 포인트였다. 지금 올리기보단 나중에 상황을 고려해서 올리는 편이 훨씬 이득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의 평범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씁쓸해진 이나는 죽은 몬스터들을 쿡쿡 찔러 보고 있는 두 정령에게 말했다.

“이즈, 리카, 몬스터 시체에서 나온 마정석 있지? 모두 수거해.”

[알았어!]

잠시 후 이나가 가져온 주머니는 F급 마정석들로 가득 찼다.

F급 마정석이라 그런지 크기도 작고 색도 무척이나 탁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이나는 주머니 안에서 마정석 두 개를 꺼내 이즈와 리카에게 내밀었다.

“수고했어. 하나씩 먹어.”

[와아!]

두 정령이 마정석을 각자 입과 부리에 물었다. 마정석을 꿀꺽 삼킨 정령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건 별로 안 배불러.]

“애초에 너흰 포만감을 못 느끼잖아.”

[그렇긴 한데…… 이걸 먹으면 막 힘이 넘치고 그렇단 말이야! 이것도 힘이 조금 생기긴 했는데 정말 조금이야.]

“그야 F급이니까. 그리고 그때 너희가 먹은 마정석이 한두 개였어야 말이지.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게 당연하잖아.”

주머니를 챙긴 이나가 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아니. 다음 던전으로 갈 거야.”

[다음 던전?]

“어. 다음은 C급 던전이야.”

무려 두 등급이나 뛰었지만 잘 모르는 정령들은 그렇구나, 하며 이나를 뒤따랐다.

이나도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린 결과였다.

‘생각보다 F급 던전 난이도가 높지 않아.’

게다가 던전 하나를 공략했는데도 그녀의 정령들은 쌩쌩했다. 마정석을 잔뜩 먹어서 생긴 마나를 얼마 쓰지 않은 것이었다. 크기가 줄어들지 않은 몸이 그 증거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차하면 정령들의 힘에 더해 내 마나까지 쓰면 되고.

이나는 자신감에 차서 C급 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두 정령은 C급 던전을 무난하게 공략했다.

***

“푸우…….”

“이나야.”

“헙……!”

단잠을 깨우는 노크 소리에 이나는 눈을 떴다.

눈을 비비고 있는데 이한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이나야, 아직 자?”

“아냐, 오빠. 일어났어.”

조금 정신이 돌아온 이나가 하품을 하며 문을 열었다.

“하암……. 무슨 일이야?”

“잠 많은 건 여전하구나.”

이한이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출근하러 가는지 그는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흘긋 보며 말했다.

“나 지금 출근할 거야. 반찬 준비해 놨으니까 꺼내 먹어.”

“응……. 알았어.”

“내일 주말이니까 오랜만에 같이 놀러나 갈까? 물론 내가 일이 없어야겠지만.”

“좋지. 잘 다녀와.”

이나가 손을 흔들며 이한을 배웅했다. 마찬가지로 손을 흔든 이한이 문을 닫자 이나가 중얼거렸다.

“불쌍한 협회 사람 같으니…….”

헌터 협회는 타 직장들과 달리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었다. 그냥 한가할 때 쉬는 편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언제 어디서 던전이 터질지 모르니까.

대신 헌터 협회 직원들은 높은 연봉과 추가 수당이 보장되어 있었다.

잠이 덜 깬 이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그녀 곁으로 여느 때처럼 정령들이 다가왔다.

[이나야, 일어나!]

[맞아! 자지 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잠이 왔다. 어젯밤 두 개의 던전을 공략한 탓이었다.

무난히 공략하긴 했지만 그에 들인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나는 어제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고, 어딜 다녀왔냐는 이한의 물음에 잠시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대답해야 했다.

가족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나야, 오늘도 던전에 들어갈 거야?]

“그래야지. 너희가 저지른 일을 무마하려면 낮부터 빠릿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와아!]

정령들이 양팔을 벌리며 신나 했다. 던전에서 능력을 쓰는 데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이나는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스팸 문자겠거니 하고 보던 이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래도 오늘 던전은 좀 늦게 들어가야겠다.”

[응? 왜?]

이나는 대답 대신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를 눈으로 읽었다.

[안녕하세요. 이시현입니다. 어제 청호 길드에서 뵀었죠.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실까요?]

***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누구 좀 만나러.”

[누구?]

“전에 몬스터에게 끌려갈 때 나 구해 준 사람.”

[그때 내가 구해 줬는데!]

[맞아! 이즈가 구해 줬는데!]

“알았다, 알았어. 그럼 그때 만난 사람.”

이나가 대충 대답하자 이즈가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폈다.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은 이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가 있었다.

“저 사람 이시현 헌터 아냐?”

“그 S급 헌터?”

“여긴 웬일이지?”

이나는 짜증스럽게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아니, 왜 저렇게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시현이 앉아 있는 곳은 구석의 창가 자리였다.

사실 눈에 띄는 것은 자리가 아니라 시현 본인이었지만 이나는 작게 투덜거리며 그쪽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그녀를 본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네, 뭐.”

안정 휴가 탓에 그다지 바쁘진 않았지만 이나는 대충 대답했다. 그러곤 모자를 더욱 눌러썼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이어 그녀에게 닿은 탓이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시현이 멋쩍어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시선이 신경 쓰이신다면 다른 곳으로…….”

“아뇨. 그냥 빨리 끝내 주세요.”

이나가 주변을 힐끗 보며 말을 끊었다. 그러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나 씨에게 뭐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요?”

“혹시 각성자십니까?”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시현이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죠.”

“그날 이나 씨를 게이트로 끌고 가던 몬스터에게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나는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끼며 시현을 응시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제가 그 몬스터를 베었지만, 몬스터는 이미 그 전에 질식사한 상태였더군요.”

“그런가요.”

“네. 혹시 이와 관련하여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십니까?”

“알 리가요. 전 일반인인걸요.”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시현의 눈빛에 새겨진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각성자 테스트를 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각성자 테스트요?”

“간단합니다. 각성자 판별 장치에 손만 올려 주시면 됩니다.”

젠장.

이나는 초조한 마음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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