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챙! 채챙!
보스 몬스터를 해치운 탓인지 이나의 몸을 덮다시피 한 작은 골렘들도 얼음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이나는 가죽을 더 끌어당겼다.
“으으……. 추워…….”
[이나야! 우리가 해냈어!]
“그래, 그래. 잘했어.”
원래 크기로 돌아온 리카가 여전히 커다란 몸의 이즈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그 모습을 픽 웃으며 보고 있던 이나가 동굴 중심으로 걸어갔다.
“흠.”
바닥에 푸른빛을 띠는 구 모양의 커다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이나가 그것을 집어 들자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몰려왔다.
⌜‘얼음 골렘의 핵’을 획득하셨습니다.⌟
⌜B급 던전 ‘설원 속에서 태어난 괴물’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냉기가 흐르는 검(C)’을 획득하셨습니다.⌟
⌜‘냉기환(D)’을 획득하셨습니다.⌟
⌜3SP를 획득하셨습니다.⌟
온갖 보상이 다 주어진 뒤에야 시스템 메시지가 멈추었다. 이나는 그것들을 대충 훑어본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골렘은 마정석이 안 나오나?”
그녀의 얼굴에 잔뜩 실망한 기색이 어렸다.
그 고생을 하며 겨우 공략했는데 얻은 게 겨우 골렘의 핵과 쓰지도 못하는 검, 그리고 환이라니.
“내 팔자야…….”
이 와중에도 정령들은 골렘을 해치운 게 신나서 춤을 추고 있었다.
이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손뼉을 짝 쳤다.
“그만! 이제 돌아가자. 주변에 뭐 챙길 거 없지?”
[응!]
[없어!]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나였다.
이나는 한숨이 푹푹 나오는 것을 꾹 참고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갔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가야겠다. 아니지. 밖은 더우니까 시원한 물을 틀어야 하나?’
이나가 고민에 빠진 사이 더운 기운이 피부에 닿았다. 던전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유이나 씨?”
그런데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굳어 버린 이나는 반사적으로 모자를 꾹 눌러썼다.
‘이시현 헌터? 왜 여기에!’
“유이나 씨, 맞나요?”
시현이 계속해서 물어 왔다.
이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목소리로 들킬 게 뻔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그녀는 모자를 쓰고 있었고 곰 가죽을 둘둘 둘러매고 있어 얼굴과 옷차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탓에 시현도 긴가민가한 듯했다.
“그 모자는 유이나 씨의 것인데……. 하지만 각성자가 아니라고…….”
중얼거리던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뒷걸음질을 치던 이나가 리카에게 눈짓했다.
‘리카!’
그녀의 눈짓을 알아들은 리카가 바람의 힘을 펼쳤다.
“윽……! 웬 바람이……. 아!”
이나는 리카의 능력을 이용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멀어졌다.
아무리 시현이라도 이미 저만치 멀어진, 그것도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을 잡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그녀도 B급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고 나온 사람이 아니던가.
‘S급.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 A급이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시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연락해 봐야겠군.”
***
잘근잘근.
이나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왼손에 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핸드폰은 꺼 놓은 상태였다. 혹시나 어젯밤 일로 시현에게서 연락이 올까 봐 미리 연락 수단을 차단해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나는 불안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젠장. 그 인간은 왜 하필 거기서 나타나서……!’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그때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오늘따라 노는 데 집중 못 하네.”
“아, 오빠.”
이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이한이 내민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았다. 남매는 어제 말했던 대로 근처에 놀러 나온 상황이었다.
이한은 그녀의 주머니를 힐끗 보며 물었다.
“연락 올 곳이라도 있어?”
“아니. 꺼 둔 상태야.”
“그럼 연락을 피하고 있는 거야?”
“뭐…… 그렇지.”
“누구길래?”
이한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이시현 헌터가 날 찾고 있어!’라고 대답할 순 없었기에 이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으음……. 있어, 그런 사람.”
“대답을 피하는 걸 보면 내가 알면 곤란한 사람인가 보지?”
“뭐어…….”
이나가 대답 대신 아이스크림을 한 입 와앙 물자 이한이 그 모습을 빤히 보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이래 봬도 나 꽤 능력 있으니까.”
“갑자기 웬 능력 타령?”
“상대가 누군진 몰라도 널 귀찮게 하는 잔챙이를 묻어 버릴 정도는 된단 뜻이지.”
오빠가? 이시현 헌터를?
입이 근질거렸지만 이나는 꾹 참고 웃으며 말했다.
“그거 엄청 든든하네.”
“그치?”
빙긋 웃은 이한이 그녀처럼 아이스크림을 한 입 삼켰다.
이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생각했다.
‘미안, 오빠. 마음은 고맙지만 이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아.’
다름 아닌 ‘헌터’ 유이나로서의 일이었으니까.
……물론 헌터 딱지 달 생각은 요만큼도 없지만.
‘일단 이 일은 잠시 접어 두고, 지금은 노는 데 집중하자.’
그녀를 위해 시간을 뺀 이한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시현이라도 그녀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오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나의 착각이었다.
“유이나 씨?”
실컷 놀고 이한의 집으로 돌아오자 시현이 기다렸다는 듯 건물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저 미친 집착남이!’
경악한 이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도망갔다간 어젯밤 그와 마주친 사람이 그녀라는 걸 들킬 테니까.
여기선 최대한 태연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시현이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나가 침을 꿀꺽 삼키는 그때였다.
“제 동생한텐 무슨 볼일이시죠?”
이한이 이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현의 걸음도 멈추었다.
“누구……?”
“이나의 오빠, 유이한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시현 헌터, 맞죠?”
계속되는 날카로운 말투에도 시현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함께 계신데 죄송합니다만, 잠깐 여동생분과 대화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왜!’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거절하면 더욱 의심을 살 터였다.
결국 이나는 이한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시선이 저에게 향하는 것을 본 이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되겠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럼 저한테 먼저 말씀하시죠. 아까도 물었습니다만, 제 동생한텐 무슨 볼일이신지?”
시현이 이나 쪽을 힐끔 보았다. 그러나 이한이 절대 보여 주지 않겠다는 듯 막아서자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유이나 씨가 각성자인지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제 동생이…… 각성이요?”
“네.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잠깐이면 되니 확인을…….”
“제 동생은 각성 안 했습니다. 그건 곁에서 지켜본 제가 더 잘 압니다.”
이한이 한층 더 벼려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시현이 입을 열려고 하자 이한이 이나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연락을 피하려고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야?”
“연락을 피하려고 했다고요?”
시현의 의심스러워하는 시선도 그녀에게 닿았다.
이나는 뜨끔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그럼 누구의 연락을 피하려고 했습니까?”
시현이 물었다. 말문이 막힌 이나는 잠시 대답을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전남친……이요.”
“…….”
이나는 보지 못했지만 시현은 똑똑히 보았다.
이한의 두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이한은 누군가를 향한 화를 꾹꾹 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제 동생이 이시현 헌터와 대화할 이유는 없으니 이만 가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계속 이러시면 신고하겠습니다.”
망설이던 시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같은 이유로 제 동생을 귀찮게 한다면 협회를 통해 길드에 민원을 넣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시현이 미련이 남은 눈으로 이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나는 이한의 손에 끌려가 건물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이한은 곧바로 뒤로 돌아 이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나야, 너 혹시 각성했어?”
이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숨겨야 할까 갈등이 되었다.
망설임 끝에 입을 여는 순간, 이한이 중얼거렸다.
“아니, 사실 그건 중요치 않아.”
“오빠.”
“난 너를 헌터로 만들 생각 없다.”
이나가 입을 다물었다. 이한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던전에 들어간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야. 난 너를 그런 곳에 들여보내고 싶지 않아.”
“응.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이나도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한의 굳은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그럼 된 거야.”
이한이 이나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평소와 같이 가볍게 말했다.
“너 먼저 씻을래? 난 저녁 준비나 해야겠다.”
“그럼 먼저 씻을게.”
이나가 이한에게서 떨어져 욕실로 들어가자 내내 말없이 지켜보던 정령들이 입을 열었다.
[오빠 바보! 이나 각성했는데!]
[이미 던전에도 여러 번 들어갔는데!]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삼키며 이나는 욕실 벽에 이마를 툭 기대었다.
“진짜 미치겠네.”
***
일요일 아침, 이한은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다. 이나는 여느 때와 같이 밥을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집 앞에 나왔다.
“…….”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제 그녀를 찾아왔던 시현이 이번에도 건물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