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물었다.
“대체 왜 여기 서 계시는 거예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만.”
“퍽이나 그렇겠네요.”
이나는 다소 거칠게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버렸다. 그 후 손을 탁탁 털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어제 저희 오빠 보셨죠? 헌터님이 같은 이유로 또 저를 찾아왔다는 걸 알면 분명 신고할 거예요. 그러니 오빠 오기 전에 어서 가세요.”
“그럼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그저께 저와 헤어지고,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던전 브레이크의 후유증이 남아서. 됐죠?”
시현이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이나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뒤를 힐끗 돌아보자 건물에서 멀어지는 시현이 보였다.
“후우……. 간 떨어질 뻔했네.”
[이나는 새가슴이네!]
“뭐래, 새 모습을 한 정령이.”
리카를 흘겨보던 이나는 이한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한이 없는 틈을 타 인벤토리에서 그동안 얻은 아이템들을 모조리 다 꺼내 보았다.
“흠.”
그동안 이나는 총 세 번의 던전 공략을 했다. 그렇게 얻은 아이템은 총 여섯 가지였다.
F급 던전에서 얻은 ‘노움의 지팡이’, C급 던전에서 얻은 곰 가죽과 도끼, 그리고 B급 던전에서 얻은 ‘얼음 골렘의 핵’과 검, 마지막으로 ‘냉기환’.
하나같이 그녀에게는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다.
“이걸 다 어쩐다…….”
물론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들킬 일도 없고 보관도 용이했다. 하지만 던전을 공략하다 보면 아이템은 점점 쌓이는 법.
미리미리 정리해 두는 편이 그녀에게도 편했다.
[이나야, 이건 왜 다 꺼냈어?]
“처리하려고.”
[어떻게?]
“그걸 고민 중이야.”
마음 같아선 아는 헌터에게 싹 넘기고 싶었지만 이나에게는 아는 헌터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이게 다 어디서 났냐는 질문에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팔자니 헌터도 아닌 일반인이 큰돈을 쥐어 세무 조사가 들어올까 봐 걱정이었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은 고가에 판매되는 법이니까.
“골치 아프네.”
이나가 뒷머리를 문지르고 있는데 아이템을 툭툭 건드리던 이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것들 모두 마정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마정석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좀 좋…….”
별생각 없이 말하던 이나가 말끝을 흐렸다. 멈칫한 그녀는 씨익 웃었다.
“왜 그 방법을 생각 못 했지?”
[무슨 방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값을 마정석으로 받으면 되잖아?”
그렇게 하면 현금을 가지고 있다 걸릴 일도 없고, 불법이 아니니 그녀의 마음도 편했다.
이나는 거침없이 이한의 노트북을 열다가 멈칫했다.
“……괜히 오빠 노트북 사용했다가 의심 사면 안 되니까.”
이한이 혹시라도 중간에 들어오거나 해서 곤란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이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쓴 뒤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리카에게 말했다.
“리카, 근처에 아까 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와.”
[알았어!]
리카가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없어! 돌아간 것 같아.]
“좋아.”
이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가장 구석 자리로 가서 컴퓨터 전원을 켠 그녀는 검색창에 네 글자를 입력했다.
헌터 나라. 헌터는 물론 일반인들 또한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 거래 사이트였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헌터 이용자 수가 더 많았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은 일반인이 사용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비쌌으니까.
일반인이 헌터 나라를 이용하는 경우는 대개 아이템을 소장용으로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재벌이었다.
간단하게 가입 절차를 마친 이나는 곧바로 아이템들의 물가를 조사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가격에 아이템을 팔아야 할지 대충 감을 잡은 뒤 판매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쓸모없는 도끼와 지팡이부터.
[C급 이하 던전에서 획득한 튼튼한 도끼와 지팡이 팝니다. 각각 10만 원, 5만 원에 팝니다.]
아무리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이라지만 도끼와 지팡이는 평범했다. 시중의 것보다 조금 더 튼튼한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현금으로 받을 생각이었다.
“문제는 다음 것들이지.”
이나는 손을 빠르게 움직여 타자를 쳤다.
[빙(氷) 속성 아이템 팝니다. 얼음 골렘의 핵, C급 무기인 냉기가 흐르는 검. 검에는 불 속성 몬스터에게 5%의 추가 대미지를 주는 옵션이 달려 있습니다. 각각 3억, 7억 상당의 ‘마정석’과 교환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챗 주세요.]
곰 가죽과 냉기환은 올리지 않았다. 곰 가죽은 나중에 장비로 만들 생각이었고, 먹으면 몸의 열을 낮춰 주는 냉기환은 더운 여름날 잘 이용해 먹을 예정이었다.
이나는 하나둘 채팅이 도착하는 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어디 마정석 좀 벌어 볼까.”
***
“좀 더 있다 가지.”
“부서진 건물도 복구하고 막아 놓은 것도 풀렸겠다, 이제 돌아가야지. 그리고 내일부터 출근할 생각이야.”
“벌써? 사흘밖에 안 쉬었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이나는 이제 자신의 집으로,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한이 그런 이나를 아쉬워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반찬 챙겨 줄까?”
“됐어. 전에 준 것도 아직 남아 있어.”
“새 반찬인데.”
“나중에 와서 받을게. 그럼 간다.”
“조심히 가.”
이한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와 배웅했다. 밖까지 따라 나올 기세였기에 이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하여간에 걱정만 늘어선.”
[그래도 난 오빠 좋아!]
[나도 오빠 좋은데!]
드디어 이나 혼자 남게 되자 떠들 수 있게 된 정령들이 외쳤다. 이나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택시를 잡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령들은 신나게 허공을 날아다녔다.
[집이다!]
[우리 집!]
“어휴. 정신없어.”
정령들을 거실에 내버려 두고 이나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다시 나온 그녀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그것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인.
[이나야, 어디 나가?]
“던전. 너희가 먹은 마정석 갚으러 가야지.”
[던전! 외출이다!]
리카가 신나게 외치며 이나에게 날아왔다. 그런데 이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하지만 오늘 찾아온 그 사람이 또 찾아오면 어떡해?]
“음.”
예상외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시현이 그녀를 각성자라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들키지 않으면 모를까, 만약 혹시라도 또 게이트 앞에서 마주친다면 그땐 회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그것도 그러네. 그럼 당분간은 쉬자.”
[에엑……. 쉬는 거야?]
리카의 날개가 추욱 늘어졌다. 어느새 던전에 들어가는 데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이나는 가볍게 리카를 무시하고 TV를 틀었다. 마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속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기엔 조금 이른 시기인데요.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산불의 원인이 얼마 전 속초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몬스터라도 탈출한 건가?”
이나가 간식 바구니에서 간식을 까먹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며 불로 뒤덮인 산의 녹화 영상이 중계되었다. 꽤 심각한 상황에 이나가 미간을 좁혔다.
“이즈, 리카, 저 불 몬스터가 낸 것 같아?”
[으음. 난 잘 모르겠어.]
[나도.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직접 가 보다니 그런 무서운 말을.
이나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협회에서 처리해 줄 거야.”
그러니 난 잘 해결되기만을 기도해야지.
간식 바구니를 내려놓은 이나가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자취방을 울렸다.
***
‘분명 그저께까진 그랬는데.’
이나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그저께 뉴스에서 본 그곳, 속초였다.
일의 발단은 어제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에서 시작되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마정석이 사라지다니?”
소름 끼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의 회사 대표가 누군가와 통화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일단 알았어.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거칠게 전화를 끊은 대표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김 팀장, 미안한데 속초에 잠깐 가 줘야겠어.”
“네?”
“속초에서 오기로 되어 있던 마도구 샘플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김 팀장이 가서 확인을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리고 이 마도구 아이디어 낸 사람이 누구지?”
“이나 씨입니다.”
“그럼 이나 씨도 같이 데리고 가는 편이 좋겠어. 김 팀장 혼자 가기도 뭐하니까 둘이 같이 다녀와.”
……그렇게 해서 이나가 그녀의 팀장과 함께 속초에 오게 된 것이었다.
‘환장하겠네.’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캔 커피가 불쑥 내밀어졌다.
“여기까지 같이 오게 해서 미안해요, 이나 씨.”
“……아니에요. 괜찮아요, 팀장님.”
이나와 팀장이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나는 캔 커피를 마시며 어쩐지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나저나 다들 바빠 보이네요. 저희만 한가한 것 같아요.”
“공장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더라고요. 내가 가서 한번 상황을 물어볼게요.”
팀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정령들이 쪼르르 다가왔다.
[이나야, 여기가 TV에 나온 그 속초야?]
“맞아.”
보는 사람도 없었기에 이나도 눈치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령들이 들떠서 말했다.
[살던 곳에서 멀리 오면 여행이랬어!]
[그럼 우리 이나랑 여행 온 거야?]
“여행은 무슨. 일 때문에 온 거니까 출장이지.”
이나가 투덜거렸다. 그러든 말든 정령들은 자기들끼리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전부 사라졌다고요?”
그때 멀리서 팀장의 놀란 외침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