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49)

이나는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다가갔다. 팀장이 공장의 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아, 이나 씨.”

팀장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이나를 향해 팀장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저희만 난리인 게 아닌 모양이에요.”

“네?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이나를 향해 공장장이 미안함이 잔뜩 담긴 얼굴로 설명했다.

“실은 며칠 전에 공장에서 만들고 있던 마도구들을 몽땅 도난당했습니다.”

“네에?”

이나가 눈을 치켜뜨며 캐물었다.

“아니,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신 거예요?”

“관리도 문단속도 철저히 했습니다! 아무래도 헌터가 한 짓 같아요.”

“헌터가요?”

“마도구를 보관하는 창고의 문에 스킬을 쓴 흔적이 발견된 모양이에요.”

팀장이 골치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대신 말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공장장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여러분이 맡기셨던 샘플 마도구를 포함해 몇 개는 무사합니다. 비록 안에 있던 마정석은 사라졌지만…….”

“전혀 다행이 아니잖아요.”

이나가 지적하자 공장장이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깔끔하게 무시한 이나가 팀장에게 물었다.

“어떡하죠, 팀장님?”

“으음. 그래도 샘플은 무사하니까요. 대충 이상 없는지만 확인 후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제작이 미뤄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물건부터 확인해 보죠.”

“샘플은 이쪽에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팀장은 D급 제작계 헌터였다. 마도구를 확인해 보는 데 그만큼 탁월한 사람은 없었다.

이나가 공장장과 함께 걸어가는 그를 따라가려는데 팀장이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나 씨는 여기 있어요. 나 혼자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네.”

그래 주시면 저야 땡큐죠.

이나는 팀장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플라스틱 상자 위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이상 없으면 오늘이나 내일 갈 수 있겠네.”

그건 참 다행이었다.

이나는 하품을 크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 리카가 어딘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그래?”

[던전에서 느꼈던 기운이 느껴져.]

“뭐?”

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리카가 바라보는 쪽을 보며 물었다.

“던전에서 느꼈던 기운이 뭔데?”

[그게…….]

리카가 긴가민가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이나는 풀숲에서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 리카의 외침이 들렸다.

[몬스터!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져!]

리카의 말을 듣자마자 이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말로 몬스터가 탈출했나 보네.”

리카의 말대로라면 속초에서 산불이 일어난 원인도, 공장을 털어 간 범인도 던전에서 탈출한 몬스터일 확률이 높았다.

이나는 방금 무언가를 본 수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유이나 씨?”

그 순간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당연히 팀장인 줄 알았는데.

“……헌터 협회 본부장님?”

“기억하시는군요.”

서준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그는 웃었지만 이나는 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쪽이 여긴 어쩐 일로?”

“뉴스 못 보셨나요? 속초에 원인 모를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던전과 관련된 일인가 싶어 조사차 와 봤습니다.”

“이런 일에 본부장님이 직접이요? 전부터 느낀 거지만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시나 봐요.”

“혹시 본부장이 참 할 일도 없다고 비꼬는 말을 돌려서 하시는 건가요?”

들켰다. 하여간에 눈치만 빨라선.

이나가 미간을 좁히자 서준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마음 같아선 저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일하고 싶습니다만.”

“그러신 분이 여긴 무슨 일로?”

“안타깝게도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직접 발로 뛰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게 좋거든요.”

“낙하산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뭐, 굳이 아버지의 힘이 아니었더라도 제 힘으로 올라올 수 있었을 자리였겠지만요.”

“아버지?”

“아. 모르시는군요. 제 아버지께서 헌터 협회의 회장 되십니다.”

“…….”

괜히 물어봤다. 마음만 더 불편해졌다.

이나의 얼굴이 뭐 씹은 표정이 되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서준이 웃으며 물었다.

“혹시 저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은 마음이라도 드는 건가요?”

“그런 걸 원해요?”

“딱히 원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궁금하기는 하군요.”

서준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나의 시선은 그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

이나가 계속 수풀 쪽을 힐끔거리자 서준이 그쪽을 쳐다보았다.

“혹시 저쪽에 뭐가 있습니까?”

이나는 잠시 고민했다. 리카가 말했던 대로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하면 당장 각성자 판별 장치를 가져올 것 같았다.

그건 사양이었지만 몬스터의 존재는 알려야 했기에 이나는 대충 뭉뚱그려서 말했다.

“그냥 이상한 걸 본 것 같아서요.”

“이상한 거요?”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서준이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깜짝 놀란 이나가 그를 붙잡았다.

“아니, 몬스터라도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성큼성큼 가요? 그것도 일반인이!”

“보신 게 몬스터였습니까?”

“……그냥 예를 든 거죠!”

이나는 뜨끔했지만 잘 갈무리했다.

수풀 쪽을 힐끔 본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군요.”

“그러게요.”

이나도 투명화한 정령들을 힐끗 보면서 맞장구를 쳤다. 정령들이 몬스터가 없다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나는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저걸 놓치면 또 산불이 일어날 텐데.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는지 서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협회의 헌터들을 시켜 조사해 볼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네.”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헌터가 직접 나선다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나저나 유이나 씨는 왜 여기에 오셨습니까?”

“일 때문에요. 마침 저기 오시네요.”

이나와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팀장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나 씨, 아무래도 일정 조율 때문에 내일 서울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결국 그렇게 됐군요.”

“네. 그런데 이쪽은 누구……?”

팀장의 시선이 서준에게 닿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했는데 그런 것치곤 정장을 입은 모습이 멀끔했다.

시선을 느낀 서준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속초 산불 건으로 조사할 게 있어서요.”

“아아. 그러시군요.”

“내일 서울로 가신다면 일 외에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조심해 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산불의 원인이 던전에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팀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이나를 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또 보죠, 이나 씨.”

이나는 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옆에 상사가 있어서 참았다.

서준이 싱긋 웃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팀장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나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이나 씨?”

“알기는요.”

모르는 사람이고 싶네요, 저는.

이나는 한숨과 함께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팀장과 함께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

샤워를 하고 나오자 정령들이 TV를 보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였다.

[우와! 저 사람 만두 다섯 개를 한 번에 먹고 있어!]

[신기해! 마법인가?]

이나는 눈을 빛내며 TV 화면을 응시하는 정령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옆에 있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으아앙! 왜 바꿔!]

이나는 정령들의 원망을 뒤로한 채 리모컨 버튼을 꾹꾹 눌렀다.

하지만 어떤 채널에서도 속초 산불에 관한 뉴스를 하고 있진 않았다.

‘아직 몬스터를 잡지 못한 모양이네.’

잡았다면 지금쯤 그와 관련해 떠들썩했을 테니까.

이나는 정령들이 보던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바꿔 준 뒤 창가로 걸어갔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속초의 밤 풍경이 보였다.

이나의 시선은 정확하게 낮에 갔던 공장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헌터 협회에서 나섰으니 금방 잡겠지.’

이나는 창가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마침 보던 프로그램이 끝났는지 정령들이 쪼르르 날아왔다.

[이나야, 그 몬스터 때문에 걱정돼?]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협회 사람들이 알아서 잡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못 잡았는데?]

이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서준에게 슬쩍 귀띔해 주었음에도 여태 감감무소식이니까.

‘능력 있는 척하더니, 사실은 능력 없는 거 아냐?’

그런 의심이 스멀스멀 들었다. 그 순간 정령들이 자신 있게 외쳤다.

[우리가 잡는 게 더 빠를 텐데!]

[맞아! 우리는 몬스터의 기운도 느낄 수 있으니까!]

순간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귀찮은 일은 사양이야.”

그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걸어갔다. 정령들은 아쉬워하는 눈치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TV 앞으로 날아갔다.

***

[귀찮다고 했으면서.]

[안 나갈 것처럼 굴었으면서.]

“조용히 해.”

이나가 째려보자 정령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입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이나는 그런 정령들에게서 시선을 홱 돌리며 말했다.

“난 그냥 밤 산책 나온 거야. 겸사겸사 몬스터도 잡으면 좋고.”

[응! 알았어.]

[그렇다고 해 줄게.]

이나가 다시 째려보았지만 정령들은 딴청을 피웠다.

‘하여간에.’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도착하자 걸음을 뚝 멈추었다.

“……으스스하네.”

밤 산책이랍시고 산길로 향했더니 생각보다 꽤 어두웠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고민이 되었지만, 때마침 들리는 이즈의 말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이나야,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져.]

이나의 표정이 냉철하게 변했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서준을 부르느냐, 그녀가 직접 처리하느냐.

‘그 사람을 부르는 건 의심을 사는 짓이야.’

눈치는 더럽게 좋은 사람이니 말이다.

결국 선택지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안내해.”

[응!]

이즈는 곁에 있고 리카가 쪼르르 날아갔다. 이나는 녹빛으로 빛나는 리카를 어둠 속에서 따라갔다.

“헉, 허억……. 힘들어.”

리카가 향하는 곳은 산속이었다. 이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열심히 등산했다.

‘젠장. 그냥 그 인간을 부를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이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내디뎠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어?]

“왜 그래?”

[이나야! 저기……!]

이나는 리카가 날개를 퍼덕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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