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49)

시선 끝에는 으스스하게 빛나는 보랏빛 불덩어리가 있었다. 이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도깨비불이야, 뭐야?”

[몬스터야!]

“뭐?”

그때 인기척을 느낀 도깨비불이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자 불 밑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눈?”

어두워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숯 검댕처럼 검은 몸을 한 몬스터였다. 몬스터의 배 부근에는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머리는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이나를 본 몬스터가 냅다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이나는 얼른 리카에게 명령했다.

“리카, 가서 잡아 와!”

[알았어!]

바람의 정령답게 리카가 잽싸게 날아갔다. 반면 이나의 속도는 더디기 짝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력 좀 길러 놓을걸!’

이나는 헉헉거리며 리카와 몬스터를 쫓아갔다. 그 순간 뒤를 힐끔 본 몬스터가 제 몸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뭐야, 저건?”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이나가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 뒤로 돈 몬스터가 그녀를 향해 무언가를 날렸다.

“……마도구?”

[이나야, 피해!]

이즈의 외침에 이나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슈우우- 펑!

그리고 그녀가 방금 있던 자리는 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저, 저 미친놈이!”

이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금만 더 느렸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가 올라왔다.

“리카! 저놈 꼭 잡아!”

[알았어!]

몬스터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리카가 슈웅 날아갔다. 몬스터가 이번엔 리카를 향해 마도구로 공격을 했지만 리카는 잽싸게 피했다.

그리고 마침내 몬스터의 앞에 당도한 리카가 몬스터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잡았다!]

“잘했어!”

이나가 씩씩거리며 리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명령했다.

“리카, 저놈을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털어.”

[알았어!]

리카가 그녀의 말대로 몬스터를 거꾸로 뒤집었다. 위아래로 흔들자 주머니에서 몬스터가 훔친 마도구들을 비롯해 마정석 등이 모두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을 모두 챙겨 인벤토리에 넣은 이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 없애.”

리카가 바람으로 창을 만들었다. 창은 몬스터의 몸을 그대로 꿰뚫었다.

추욱 늘어진 몬스터의 몸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죽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머리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도 꺼진 채였다.

“후우. 이제야 끝났네.”

산불의 원인을 없애고 마도구도 되찾았겠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될 터였다.

이나가 그렇게 만족의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을 때였다.

[어? 이나야, 저기!]

이즈가 가리킨 곳을 본 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한 마리 더 있었어?”

죽은 몬스터와 똑같이 생긴 몬스터가 이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시선이 이나 앞의 죽은 동료를 향하는 순간.

화르르륵-

몬스터 머리의 불이 커지며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

속초의 5성급 호텔 스위트룸.

남들은 구경하기도 바쁠 그곳에서 서준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흠.”

서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읽던 그는 문득 눈이 피곤한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가볍게 눈 마사지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자 속초의 야경과 함께 밤바다가 보였다.

누구는 아름답다고 감탄했겠지만 서준의 눈동자는 진지하게 풍경을, 특히 산 쪽을 빤히 보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에다가 마도구 도난 사건까지.’

그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 그는 석연치가 않았다. 게다가 얼마 전 이곳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진짜로 몬스터의 소행인가?’

가능성이 있었다. 낮에 이나가 한 말도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그냥 이상한 걸 본 것 같아서요.”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나가 무언가를 보았다는 그곳을 협회 소속 헌터를 시켜 샅샅이 수색하게 할 생각이었다.

“음?”

그때 시야의 한편이 밝아졌다. 서준이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불?”

서준의 눈이 커졌다. 자그마하던 불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잉크를 쏟은 것처럼 번져 갔다.

서준은 서둘러 겉옷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만 본 것이 아닌 듯 주변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서서 산불이 일어난 곳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또 불이 났네!”

“이러다 남아나는 산이 없겠어.”

서준은 서둘러 주차장에 있는 차를 몰고 불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길을 막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서준은 차를 세우고 나와 그들에게 자신의 협회증을 보여 주었다.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아! 서울 본부에서 오셨다는 그분이시군요.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준은 경찰들을 뒤로하고 산불이 일어난 곳 모퉁이로 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소방관들과 협회 소속 헌터들이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를 발견한 헌터 하나가 새까매진 얼굴로 달려왔다.

“본부장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호텔로 돌아가시죠.”

“이 또한 제 일입니다.”

담백하게 거절한 서준이 셔츠 옷깃을 풀어 헤쳤다.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보다 헌터 입장에서 볼 때 어때 보입니까? 평범한 자연 현상 같진 않은데요.”

“자연 현상이라기엔 불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럼 헌터, 혹은 몬스터의 소행이겠군요.”

“그럴 확률이 크겠죠.”

두 사람은 심각하게 불이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익어 버릴 것 같은 열기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이 큰불을 어떻게 꺼야 하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낸 불을.

머리를 굴리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일단 불을 끌 수 있도록 최대한 인력을 동원하고 협회에 연락해서 물 능력을 다루는 헌터들을…….”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누군가가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 비구름이……!”

그 말에 서준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깜깜한 밤이었지만 보였다. 아까까지 잘만 보이던 달이 사라지고, 대신 구름이 하늘에 짙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서준의 콧잔등에 무언가가 톡, 떨어진 순간.

쏴아아아-

엄청난 양의 빗방울이 속초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콜록, 콜록! 젠장. 그 자식, 쓸데없이 불이나 내고 말이야.”

활활 타오르는 주변을 보며 이나가 중얼거렸다.

불을 낸 몬스터는 해치운 상태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동료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몬스터가 낸 이 산불 말이다.

“콜록, 콜록!”

[이나야, 괜찮아?]

이즈와 리카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나에게는 그들에게 쓸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말만 들었지……. 콜록! 이렇게까지 연기가 숨통을 조일 줄은 몰랐는데.”

기침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얼른 이 산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불부터 꺼야 해.”

어찌 보면 불이 일어난 원인엔 그녀의 책임도 있었다. 설마 몬스터가 두 마리였을 줄이야.

마침 이즈가 그녀의 주변에 물의 장막을 펼쳤다. 덕분에 기침이 조금 가라앉았다.

목을 가다듬은 이나는 물의 정령 이즈를 보며 물었다.

“이즈, 네 힘으로 이 불 다 끌 수 있겠어?”

[으음……. 힘이 조금 모자랄 것 같은데…….]

“네가 먹은 마정석이 몇 개인데 힘이 부족해?”

이나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즈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미안해……. 그치만 범위가 너무 넓은걸…….]

“후우. 어쩔 수 없지.”

이나가 이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즈가 그것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자 이나가 뭐 하냐는 듯이 손을 까딱였다.

“뭐 해? 잡아.”

[응?]

“힘이 부족하다며. 내 마나 가져다 써.”

이즈는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냥 물을 산에 끼얹으면 분명 의심을 살 거야.”

[그럼 어떡해?]

“기적을 일으키자.”

[기적?]

이해를 못 한 듯 이즈와 리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비를 내리는 거야.”

[아!]

“할 수 있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묻자 이즈가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이나가 말했다.

“그럼 이즈, 시작해.”

이나의 얼굴에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네 힘을 마음껏 발휘해 봐.”

[알았어!]

이나의 손을 꼭 잡으며 웃던 이즈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들이 보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이나는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느꼈다.

‘이즈 이 녀석, 힘을 마음껏 쓰랬다고 진짜 마음껏 쓰네.’

몸 안의 마나가 절반 가까이 사라지자 다리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엄청난 양의 마나가 갑자기 쑥 빠져나간 탓이었다.

이제 슬슬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였다.

쿠르릉-

고개를 들어 올리자 활활 타오르는 나무들 너머로 하늘에 구름이 짙게 깔리는 것이 보였다.

이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건 이즈가 끌어온 비구름이었다.

[이나야.]

몸이 한층 작아진 이즈가 그녀를 쳐다보자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이즈가 비를 내렸다.

쏴아아아-

엄청난 양의 빗방울이 산을 적셨다. 붉게 타오르던 불은 치익, 소리를 내며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온통 붉기만 하던 시야에 어둠이 찾아왔다.

불이 모두 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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