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49)

“……그럼 다시 여기로 데려다주는 거예요.”

“그래.”

이나는 망설이다가 아란의 등에 올라탔다. 안전장치가 없어서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이거 괜찮은 거예요? 떨어질 것 같은데.”

“안 떨어져.”

“아니, 백도하 씨야 많이 타 봤겠지만 저는…… 우와악!”

이나는 한껏 비명을 내지른 뒤 입을 다물었다. 자칫했다간 혀를 씹을 것 같았다.

그녀는 대신 앞에 있는 도하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도하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이나에게는 그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당연하지! 아란의 스피드는 최고라고!”

“진작에 말해 줬어야지!”

흥분해서 반말이 죽죽 튀어나왔다.

도하는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고, 이나는 아란의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도하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마침내 협회 앞에 도착하자 이나는 비틀거리며 아란의 등에서 내려왔다.

“우와……. 죽는 줄 알았네.”

“안 죽는다니까. 그보다 너.”

“뭐요.”

이나가 샐쭉한 눈빛으로 도하를 쳐다보았다. 입을 달싹이던 도하는 어쩐지 붉은 기가 감도는 얼굴로 시선을 홱 피했다.

“……담력 좀 길러.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다.”

“허. 두 번 다시 탈 일 없으니 걱정 마세요.”

이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나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한과 그의 팀원들이 서 있었다.

굳어 있는 이한의 발치에선 그가 떨어뜨린 커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어? 오빠.”

“이, 이나야.”

이한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이나와 도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도하를 쏘아보았다.

“오빠?”

“대체 왜 청호 길드장이랑 함께 온 거야?”

부드러운 투였지만 은은하게 경계심이 깔려 있었다. 이나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도하가 그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쪽은?”

“저희 오빠예요. 협회 직원이고요.”

“아, 그래? 마침 잘됐네.”

“뭐가 잘됐다는 겁니까?”

이한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그에 이나는 전에도 같은 상황에 처했던 것 같은 데자뷔를 느꼈다.

도하는 허공을 휘적거리더니 인벤토리에서 정령의 알을 꺼내 이한에게 내밀었다.

“여기.”

“……이건?”

“협회에 넘기기로 한 정체불명의 알이야.”

얼떨결에 알을 받아 든 이한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하는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이나에게 말했다.

“자, 다시 가자.”

“가, 가다니 어딜 말입니까?”

“있던 곳에 데려다주기로 했거든.”

“뭐라고요?”

이한이 눈을 치뜨며 이나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반면 이나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얼굴로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 됐어요. 저 혼자 갈래요.”

“왜? 데려다줄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한이 크게 외치며 끼어들었다. 도하와 이나가 동시에 쳐다보자 이한이 제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제가 데려다줄 겁니다. 그러니 청호 길드장께선 이만 돌아가시죠.”

“뭐? 하지만…….”

“제가 데려다줄 겁니다. 이나의 오빠인 제가요.”

몇 번이나 강조하자 도하는 별 해괴한 걸 본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든가.”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어, 어어…….”

도하가 몸을 돌리자 이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아란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

“이나야?”

“크릉!”

이한이 어쩐지 초조한 얼굴로 이나와 도하를 번갈아 보았다. 반면 아란은 기쁜 듯이 울음소리를 내곤 도하를 태우고 사라졌다.

마침내 둘만 남게 되자 이한이 이나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이나야, 청호 길드장과는 무슨 사이야?”

“응?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정말? 정말이지?”

“응. 아란이 날 잘 따라서 한 번 길드에 놀러 간 것 외엔 아무것도 없어.”

“아란? 청호 길드장의 백호 파트너?”

“응.”

이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사이 뒤에 멀찍이 서 있는 이한의 직장 동료들을 발견한 이나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유 팀장님의 여동생, 유이나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팀원들이 슬금슬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팀원 한 명이 이한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 놀랐습니다. 설마 청호 길드장과 함께 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나가 삐질 웃으며 말했다. 이한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은 팀원이 움찔하는 사이 팀의 막내로 보이는 사람이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 팀장님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김우림이라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가워요.”

“네! 저도 반갑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네?”

“아, 팀장님께서 여동생을 엄청 아끼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팀장님께서 아끼실 만하네요!”

그의 얼굴이 헤벌쭉 풀어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이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그때 살벌한 느낌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김우림 씨,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지?”

고개를 돌린 막내 사원이 몸을 움찔 떨었다. 반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이나는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뭐야. 오빠가 나를 아낀다는 게 쓸데없는 얘기야?”

“이, 이나야, 그게 아니라…….”

장난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한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본 팀원들은 오호라, 하며 이나에게 제안했다.

“이나 씨, 이렇게 얘기할 게 아니라 협회 안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잠깐 시간 보내다 가시죠.”

“네? 하지만 제가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방해라뇨! 오신 김에 저희의 휴식 시간이 되어 주세요.”

이나는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휴식 시간을 줄 상대가 반가웠을 것이었다.

이나는 흔쾌히 그들을 따라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이야 오늘 안에만 들어가면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이나는 문득 이한을 돌아보았다. 이한은 뾰로통한 얼굴로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던전에 들락거린다는 건 오빠한텐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

“그래서 내가 그랬지. 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찍소리도 못 하더라고.”

“그야 대리님 얼굴이 워낙에 험악하니까 그러죠.”

“뭐야? 아니,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투닥거리는 팀원들을 보며 이나는 미소를 지었다. 대화가 유쾌하기도 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이한의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오빠지만, 이한은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까칠한 구석이 있으니까.

피식 웃는 이나를 본 이한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을 발견한 팀원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팀장님 좀 봐. 저 오빠 미소 어쩔 거야?”

“저게 남매끼리 가능한 미소예요?”

“나도 궁금하다.”

그때 이나의 앞으로 커피가 불쑥 내밀어졌다. 고개를 돌리자 팀의 막내 사원이 커피를 들고 헤헤 웃고 있었다.

“여기 바닐라라테예요.”

“감사해요.”

이나가 감사히 받아 들자 그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한은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김우림 씨, 거기 말고 여기 앉지?”

“어디 앉으면 어때서?”

이나가 반박하자 이한의 입이 다물어졌다. 눈치를 보고 있던 막내 사원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팀원들이 다시 속삭였다.

“김우림 씨, 이나 씨에게 호감을 가진 모양이네.”

“무운을 빌어요, 우림 씨…….”

이한이 그들에게로 고개를 홱 돌리자 팀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사이 막내 사원이 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참, 그러고 보니 이나 씨, 얼마 전에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리셨죠?”

“그걸 어떻게…….”

“팀장님이 놀라서 뛰쳐나가셨거든요. 저희도 그래서 알았어요.”

“아아. 그러시구나.”

이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괜찮았어요. 천조 길드에서 발 빠르게 나서 줬거든요.”

“다친 곳은 없으세요?”

“네. 없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팀원들이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고, 이한에게서는 이를 으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얌전히 음료를 마시며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한 팀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다들 그거 들으셨어요?”

“어떤 거요?”

“최근에 한국의 던전 브레이크 발생률이 훅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이나와 눈이 마주친 팀원이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건 밖에서는 비밀로 해 주세요, 이나 씨.”

“물론이죠.”

“한국의……라는 건 다른 나라들은 괜찮은 거야?”

다른 팀원이 진지하게 묻자 그녀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다른 나라들이라고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발생률에 비하면…… 안전한 편에 속하죠.”

“그 정도라고?”

다들 토끼 눈이 되어 놀라움을 표출했다. 이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근 한국에 던전 브레이크가 자주 발생하긴 했지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한국만 그런 것일 줄이야.

‘터가 안 좋나?’

원인을 모르니 그런 엉뚱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잠시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모두를 상념에서 깨게 만든 것은 이한이 손뼉을 치는 소리였다.

“다들 우울한 생각은 하지 말고. 그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우리가 있는 거잖아.”

“하긴.”

“그건 그렇죠.”

팀원들의 굳은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이한이 그런 팀원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니 오늘도 다들 열심히 일해야겠지?”

“……팀장님, 쉬고 있는데 꼭 그런 얘길 하셔야겠어요?”

“그야 우린 바람 잘 날 없는 헌터 협회 사람들이니까.”

팀원들이 시무룩해졌다. 이나는 축 처진 그 모습들을 보며 풋, 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한이 융통성을 발휘한 덕에 음료는 모두 마시고 일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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