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새로운 공간이다!]
정령들이 흥분하며 외쳤다. 이나도 당황한 얼굴로 새롭게 드러난 공간을 바라보았다.
‘설마 얼음의 벽 뒤에 다른 공간이 있었을 줄이야.’
어딘가로 향하듯 동굴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여길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이나에게 정령들이 외쳤다.
[이나야! 가 보자!]
[모험이다!]
“잠깐.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함부로 들어가는 건…….”
이나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즈와 리카는 안쪽으로 슈웅 날아갔다.
멍하니 서 있던 이나도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두 정령과 마찬가지로 심장이 두근거리긴 했다.
‘이 안쪽에 ‘얼음 여왕의 눈물’이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게 있다는 소리니까.
‘물론 그게 아이템일지, 몬스터일지는 모르지만.’
이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사이 그녀의 발끝이 동굴 안쪽 공간을 밟았다.
이나는 ‘진짜’ 동굴의 끝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중앙에 있는 정령들이 그런 그녀를 불렀다.
[이나야! 여기야, 여기!]
“간다, 가.”
이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동굴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즈가 중앙의 단상에 올려져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나야, 이거……!]
“이건…….”
이나가 눈을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
“아이템 정보.”
띠링!
⌜얼음 여왕의 목걸이(A)
내용: 과거 얼음 여왕이 평범한 인간이던 시절, 그녀가 늘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이 된 이것은 그녀가 현재 가장 아끼는 물건입니다.
효과: 마력 8 증가 / 상대방의 불 속성 위력 20% 감소 / 빙 속성 위력 30% 증가⌟
“얼음 여왕…….”
이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진짜로 이 던전에 있었다. 그 얼음 여왕이.
‘근데 왜 목걸이밖에 남지 않았지?’
그리고 목걸이는 왜 이 넓은 공동 중앙에 놓여 있을까.
문득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혀로 입술을 축인 이나가 파인에게 물었다.
“파인, 얼음 골렘에게 했던 공격, 지금 내 마나로 얼마나 더 할 수 있겠어?”
[응? 어디 보자……. 한 세 번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 번이란 말이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나야?]
“자, 다들 긴장해. 곧 새로운 몬스터가 올 테니까.”
[응?]
정령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든 말든 이나는 단상 위의 목걸이에 손을 댔다.
그리고 목걸이가 단상에서 떨어지는 순간.
쿠구구구-
[뭐지?]
[지진?]
땅이 흔들리며 얼음으로 된 바닥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고드름처럼 뾰족한 얼음 창이었다.
목걸이를 집자마자 단상에서 떨어진 이나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다만 소름이 끼쳤다.
‘별생각 없이 집었다면 저 창에 꿰뚫릴 뻔했네.’
이나는 최대한 단상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이 공동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갇혔네.”
그들이 들어온 입구는 얼음으로 막혀 있었다.
[이나야, 내가 녹여 버릴까?]
“아니. 이걸 녹여 봤자 저놈이 다시 막아 버릴 거야.”
이나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의 얼음이 뭉쳐 만들어진 여인 형상의 얼음 조각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녹여야 할 건 저 얼음 여왕이야.”
이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B급 던전 ‘설원 속에서 태어난 괴물’의 하드 모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보니 던전의 이름은 저 녀석을 뜻하는 거였네.”
이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얼음 여왕이 그녀에게 얼음으로 된 창을 날렸다.
리카의 도움을 받아 옆으로 피한 이나가 얼음 여왕에게 물었다.
“밖에 있던 골렘은 여기를 지키고 있는 거였나?”
얼음 여왕은 대답 없이 그저 공격하기만 했다. 이나가 요리조리 피할수록 공격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 슬슬 이나가 공격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파인!”
[알았어!]
파인이 얼음 골렘에게 썼던 불 회오리를 얼음 여왕에게 일으켰다.
조금 타격이 있는지 얼음 여왕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닥에서 얼음을 가득 끌어 올려 불을 막고 본인은 회오리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공격했다.
혀를 쯧 찬 이나가 리카의 바람을 타고 공격을 피했다.
“파인, 회오리로는 안 돼. 저 녀석처럼 불을 창으로 만들어서 꿰뚫을 수 있겠어?”
[해 볼게!]
파인이 이나가 말한 대로 거대한 불의 창을 만들어 얼음 여왕에게 날렸다. 하지만 얼음 여왕이 만들어 낸 창과 부딪치자 파인의 창은 파쇄되어 사라져 버렸다.
[히잉……. 실패했어.]
“귀찮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얼음 여왕은 바닥이 얼음으로 되어 있는 점을 이용해 바닥 속에 몸을 숨겨 공격을 피하거나 공격했다.
그것이 이나의 심기에 굉장히 거슬렸다.
“내가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이나야?]
“파인.”
이나가 발밑의 얼음 바닥을 툭툭 건드리며 명령했다.
“이 바닥, 전부 녹여 버려.”
[하, 하지만 이나야, 마나가 부족할 거야.]
파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힘이니 그녀가 모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끝이 없었다.
“괜찮아. 마음껏 사용해.”
이나가 단호하게 말하자 파인이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나와야지.”
이나는 씩 웃으며 리카의 바람을 이용해 다시 한번 공격을 피했다.
그사이 파인이 그녀의 마나를 가져갔다.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처럼 엄청난 속도였다.
‘조금 버겁긴 하네.’
이나의 이마에 식은땀이 조금 맺혔지만 리카의 바람 덕에 증발되었다.
이나는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허공에 있는 편이 얼음 여왕의 공격을 피하는 데 유리했다.
그리고.
화르르륵-
파인의 불을 피하기에도.
갑자기 바닥에서 불이 일자 얼음 여왕이 당황한 듯 제 주위에 얼음의 방패를 펼쳤다. 그사이 이나는 허공에서 숨을 돌렸다.
“허억……. 죽겠다.”
[이나야, 괜찮아?]
“안 괜찮아.”
힘이란 힘은 모두 빠진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마나를 거의 다 소진한 탓이었다.
하지만 아직 얼음 바닥은 다 녹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이럴 때를 대비해 모아 놨지.”
이나의 얼굴에서 긴장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스탯 창.”
띠링!
⌜스탯 창
근력: 15
체력: 18
민첩: 16
마력: 80
※잔여 SP: 10⌟
스탯 창을 연 이나는 망설임 없이 스탯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투자했다.
그러자 몸 안의 마력이 조금 늘어남과 동시에 몸에 활력이 돌아왔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
[이나야! 마나가 늘었어!]
“그래. 그러니 마음껏 써. 정 뭣하면 마정석의 마나도 쓰지, 뭐.”
[알았어!]
걱정이 사라진 듯 파인의 불길이 거세졌다.
그리고 마침내 불이 얼음 바닥을 전부 녹여 냈다.
이나는 얼음 바닥이 흙으로 변한 것을 보고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얼음 여왕 쪽을 보자 반쯤 흘러내린 얼음의 방패가 보였다.
그 사이로 얼음 여왕이 이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뭐.”
이나가 띠껍게 쳐다보자 얼음 여왕이 방패를 거두고 창을 날렸다. 바닥에서 얼음을 세우는 공격은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이런 공격이 최선일 터였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느려졌는걸.”
이나가 얼음 창을 가뿐히 피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분노를 산 듯 계속해서 공격이 퍼부어졌다.
하지만 역시 확연히 느려진 속도였다.
“바닥을 녹인 게 신의 한 수였네.”
중얼거린 이나가 파인을 쳐다보았다.
“파인, 이만 끝내자.”
[응!]
파인이 얼음 여왕 쪽을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얼음 여왕의 밑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
얼음 여왕은 다시 방패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힘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방패는 손쉽게 녹아내렸고, 불이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불에 녹는 얼음 조각상처럼, 얼음 여왕의 몸도 그렇게 서서히 녹아내렸다.
“파인, 스톱.”
[응?]
이나의 말에 파인이 공격을 멈추었다. 이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머리만 남은 얼음 여왕의 앞에 섰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얼음 결정의 모양을 띤 채로.
“이거다.”
이나는 바닥에 떨어진 눈물 결정을 주웠다. 그와 동시에 얼음 여왕의 머리가 녹으며 그녀가 끝을 맞이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엔 푸른빛의 마정석이 곱게 놓여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나는 손안의 얼음 결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템 정보.”
띠링!
⌜얼음 여왕의 눈물
내용: 얼음 여왕이 흘린 눈물. 얼음의 힘이 담겨 있어 한기가 느껴집니다. 먹으면 모든 열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후우…….”
이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내쉰 한숨이었다.
그것을 느낀 정령들이 신나서 떠들었다.
[이나야, 이걸로 그 아저씨를 도울 수 있는 거야?]
“아마도.”
[신난다! 우리가 사람을 구했어!]
정령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픽 웃으며 그 모습을 보던 이나는 곧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B급 던전 ‘설원 속에서 태어난 괴물’ 하드 모드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4SP를 획득하셨습니다.⌟
그 외에 보상 창은 따로 뜨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얼음 여왕의 눈물에,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까지 획득했으니.”
사실 처음에 얻은 이 목걸이가 보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지쳤다.”
이나는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마나는 마나대로 소진하고, 무엇보다 긴장이 탁 풀려 버린 탓이었다.
잠시 그대로 있자 정령들이 그녀의 배 위에 올라탔다.
[이나, 자니?]
“쿠울…….”
[자네.]
정령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를 모르는 이나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편안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며 정령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피곤했나 봐. 좀 있다 깨워 주자.]
[그래!]
[내가 이나 따뜻하게 해 줘야지!]
정령들이 배려해 주었다는 사실을, 이나는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