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49)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지금 난리인 것 같거든요.”

난리라는 말에 이나의 마음도 요동쳤다. 이나는 서둘러 그가 말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화면을 채운 수많은 헤드 카피들이 보였다. 이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중 한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3년 전 몬스터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위협하는 열병을 앓던 이 모 씨가 금일 완치되었다.

이 모 씨의 열병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템, ‘얼음 여왕의 눈물’로만 치료할 수 있었다.

이 모 씨의 친부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템을 의뢰했던, 어떤 여성 헌터분이 도와주셨다”며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해 이 모 씨를 도와준 헌터의 정체에 관해 시민들의 관심이 쏠린 상태이다.]

마우스를 쥔 이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직원들이 저들끼리 떠들었다.

“뭐지? 여자인 거 빼고는 어떤 정보도 없는 거야?”

“신비주의 콘셉트인가?”

“SNS상에서도 이 일로 시끌벅적해요. 대체 그 헌터가 누구냐면서.”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나의 가슴에 푹푹 꽂혔다. 남들이 떠들 때 이나는 홀로 생각했다.

‘집 가고 싶다.’

***

이나는 근무 시간 내내 불편함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자 얼른 짐을 싸서 나왔다.

그녀가 퇴근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이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오빠.”

[퇴근했어?]

“응. 지금 했어.”

[부럽다. 칼퇴라니. 난 지금도 협회에서 썩고 있는데.]

“그야 협회랑 일반 회사는 다르니까.”

[그야 그렇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던 이한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이나야, 너도 그거 봤어?]

“어떤 거?”

대충 짐작이 되었지만 이나는 모른 척했다. 그러자 이한이 친절하게 이나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일을 짚어 주었다.

[그 왜, 엄청난 아이템을 들고 나타나 사람을 구했다는 정체불명의 헌터.]

‘역시나.’

이나는 처음 그런 기사를 쓴 기자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걸 기사로 써서는!’

하지만 분노하는 감정과는 달리 머리로는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고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병을 고쳐줬으니 아저씨도 꼭 이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이나는 혹여나 한숨 소리가 수화기 너머의 이한에게 들리지 않게 꾹 참으며 말했다.

“응. 봤어.”

[대체 누구일까? 듣자 하니 여자라고 하던데.]

쪽지 내용이 기사에 올라왔음에도 이한이 헌터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왼손으로 쓰길 잘했네.’

혹여나 정체가 발각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나가 왼손으로 쓴 글씨였다. 그래서 악필로 보여 이한도 그 쪽지를 이나가 썼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난 절대 악필이 아니라고!’

그녀의 글씨체를 비웃던 기사 댓글들이 떠오르자 열불이 올라왔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이한이 이어서 말했다.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아이템은 당산역에 있는 B급 던전에서 딱 한 번 나왔다고 하던데, 대체 어떻게 얻은 걸까? 그리고 B급 던전을 클리어할 정도면 엄청난 헌터겠지?]

이한의 말을 들으며 이나는 대답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던전의 하드 모드. 그런 게 있다는 것은 그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즉, 지구의 누구도 하드 모드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하드 모드의 몬스터는 강했어.’

B급 던전 하드 모드에서 나타난 얼음 여왕만 해도 그녀의 아이템이 무려 A급이었다. 그 말은 얼음 여왕이 최소 A급의 몬스터였다는 말이 된다.

B급 던전에 나타난 A급 몬스터. 이것이 알려지면 큰 파장이 일 게 뻔했다.

‘그래서 ‘얼음 여왕의 눈물’을 처음 발견했던 그 헌터도 이 사실을 숨긴 거겠지.’

하드 모드란 게 알려지면 아이템을 노리는 헌터들이 도전할 테고, 그렇게 되면 분명 사망하는 헌터가 늘어날 테니까.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된바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하드 모드가 열리는 듯했다. 파인이 동굴 안쪽의 얼음벽을 녹여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처럼.

지금까지 하드 모드 없이 일반 던전만 공략하면서도 잘 살아왔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불필요한 희생을 만들어야 할까? 그 점에 대해서 이나는 부정적이었다.

이나는 참지 못하고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러자 이한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늘 많이 피곤했나 보네. 얼른 들어가 쉬어.]

“응. 오빠도 수고해.”

전화를 끊은 이나는 그제야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늘 하루 동안 기사에 관해 신경 쓰느라 몰랐던 피로감이 뒤늦게 이나의 몸을 짓눌렀다.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가자 집을 지키고 있던 이즈와 리카가 날아왔다.

[이나야!]

“어. 다녀왔어.”

[그게 아니라 우리……!]

“그래, 그래. 설거지랑 청소 해 놨다고? 잘했어.”

[그게 아니라 우리 파……!]

“나 피곤해서 좀 잘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

이나는 방으로 직행해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가 들렸다.

이즈와 리카는 문 앞에서 돌처럼 굳어 있었다.

***

같은 시각, 이나의 회사에서 이슈였던 기사를 읽는 세 사람이 있었다.

먼저 헌터 협회.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템을 가져온 정체불명의 헌터라…….”

“현재 세간에서 가장 이슈인 내용입니다.”

내용을 보고한 헌터 협회 직원이 서준을 가만히 응시했다. 서준은 턱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확실히, 수상하긴 하군요.”

“그럼…….”

“하지만 은밀히 조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괜히 영웅 취급을 받는 헌터를 건드렸다간 협회의 평판만 나빠질 테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서준이 나가려는 직원을 붙잡고 말을 덧붙였다.

“헌터들을 풀어 당산의 그 B급 던전을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청호 길드.

“와. 이놈은 뭐지? 아주 영웅 납셨네.”

도하가 기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가 뭔가에 흥미를 가질 때만 나오는 미소였다.

그것을 본 김 비서가 슬쩍 물었다.

“조사해 볼까요?”

“어. 조사해 봐.”

미소를 띠고 있는 입술과 달리 도하의 눈빛은 냉철하게 빛났다.

“어디 얼마나 강한 놈일지 한번 보자고.”

마지막으로 천조 길드.

“…….”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는 시현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왤까.’

시현은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그리며 생각했다.

‘왜 그 사람이 떠오르는 걸까.’

각성자는 아닐까 하는 그의 의심을 받던 사람, 그리고 끝까지 각성자가 아니라 주장하던 사람.

하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그 사람.

유이나.

그녀를 떠올리던 시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신경 쓰지 말자.”

각성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니는 게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딱히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시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에 집중했다.

***

삐비비빅-

“으음…….”

이나는 탁자 위를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았다. 시끄럽게 알람을 울리던 핸드폰이 이나의 손에 쥐어지자 조용해졌다.

“흐아아암…….”

[이나야, 깼어?]

“어. 근데 웬일로 너 혼자 있냐.”

이나가 방 안에 홀로 있는 파인을 보며 물었다. 파인은 난감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잠깐만. 방금 알람 소리, 내가 세 번째로 맞춰 놓은 알람 같은데.”

핸드폰을 켠 이나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 아슬아슬하겠는데.”

[늦었어?]

“더 지체하면 늦을지도 모르겠다. 얼른 준비하고 가자.”

파인이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순식간에 출근 복장이 된 이나는 신발을 신고 파인을 어깨에 태웠다.

“갔다 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나가기 전 집 안을 향해 외쳤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한 이나가 문을 잠그고 중얼거렸다.

“삐치기라도 했나.”

[그게…….]

“아, 늦었다! 얼른 가자!”

시간을 확인한 이나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그 탓에 이나는 보지 못했다.

파인의 불안한 시선이 계속 집으로 향하는 것을.

***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했다. 이나는 어제처럼 파인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일에 집중했다.

“아이고야. 늦었네, 늦었어.”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대표가 들어왔다. 그는 허둥지둥 자리로 가서 무언가를 챙기더니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꽤나 부산스러워 직원들 모두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시지?”

“중요한 손님이라도 오는 걸까요?”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때마침 대표가 이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나 씨, 미안한데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 좀 사 와 줘.”

“네. 얼마나 사 올까요?”

“어디 보자……. 한 세 잔이면 될 것 같은데?”

이나는 그에게서 법인 카드를 받은 뒤 파인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근무 시간 도중에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한결 더 상쾌했다.

손님들과 대표에게 줄 커피는 물론 자신의 몫까지 산 이나는 커피를 쪼로록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이대로 튀었으면 좋겠네.”

그러나 회사의 노예인 지금으로서는 튈 방도가 없었다.

이나는 우울한 마음을 커피로 달래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회사 건물 앞에서 의외의 인물을 맞닥뜨렸다.

“……어?”

이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상대방은 이나를 보지 못한 듯 위로 올라갔다.

당황한 이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이나야?]

파인의 부름에 이나는 정신을 차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니겠지. 다른 일 때문에 온 걸 거야.’

애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 회로를 돌리며 이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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