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49)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불길이 한층 더 거세게 타올랐다. 순식간에 커진 불은 몬스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한 놈 처치. 다음은…….”

[이나야!]

파인의 당황한 외침에 이나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불이 꿈틀거리더니 그 안에서 새까매진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이런……! 이즈! 공격해!”

몬스터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즈가 물방울을 만들어 쏘았다. 그 탓에 몬스터가 주춤한 틈을 타 이나는 얼른 뒤로 물러섰다.

“파인, 잿더미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릴 수 있겠어?”

[할 수는 있는데…… 태워지는 중에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 고통을 못 느끼나?]

“그런가 보네. 그럼 완전히 태워지기 전까지는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나.”

정령사로서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근접전에 유리한 검사였다. 그리고 눈앞의 몬스터는 검을 사용하는 인간형 몬스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가 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파인.”

[응?]

“더 높은 온도의 열기로 단숨에 태워 버릴 수 있겠어?”

파인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곧 시무룩해졌다.

[할 수는 있지만…… 전처럼 마나를 꽤 소비해야 할 거야.]

“내가 마나 걱정은 하지 말랬지?”

[……알았어. 그럼 해 볼게!]

파인이 힘을 쓰는 사이 이나는 스탯 창을 열어 보았다.

‘스탯 창.’

띠링!

⌜스탯 창

근력: 15

체력: 18

민첩: 16

마력: 90

※잔여 SP: 4⌟

지난번 전투에서 스탯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소진한 덕에 마력의 수치는 90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나는 같은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정령사는 마력 몰빵이지.’

이나는 망설임 없이 4의 스탯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투자했다.

그러자 마력 수치가 94가 되었고, 이나는 조금 더 늘어난 자신의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나야! 마나가 늘어났어!]

“나도 알아. 신경 쓰지 말고 공격에 집중해.”

[알았어!]

파인은 그녀가 말한 대로 마나를 아낌없이 소진했다. 덕분에 한층 더 순도 높고 뜨거운 불이 타올랐고.

챙- 툭-

몬스터의 팔다리가 불에 타 하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어…….”

그녀의 몸집 두 배만 하던 몬스터가 무너져 내렸다. 불이 꺼진 뒤에도 꿈틀거리긴 했으나 떨어진 팔다리까지 움직이진 않았다.

“흠.”

이나는 팔다리가 떨어져 몸통만 남은 몬스터에게 걸어갔다. 그러고는 발끝으로 꿈틀거리는 몸을 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움직이는 걸 보면 이놈도 골렘처럼 몸 안에 핵 같은 게 있나 보네.”

이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냉기가 흐르는 검’을 꺼냈다. 아직 거래되지 않아 그녀가 지니고 있었다.

이나는 그것으로 몬스터 몸통의 이곳저곳을 찔러 보기 시작했다.

[히익……!]

[이나 잔인해!]

“몬스터에게 자비 따위.”

이나의 검이 몬스터의 심장 부근에 닿았을 때였다.

“그극…….”

한차례 발작하던 몸뚱이가 추욱 늘어졌다. 드디어 죽은 것이었다.

“심장이네.”

몬스터의 약점을 알아낸 이나가 툭 내뱉었다.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귀찮게 됐네. 물이나 불로는 심장을 꿰뚫지는 못할 텐데. 지금처럼 몸을 태운 다음에 검으로 찌르는 방법밖에 없잖아.”

[리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이즈에 이어 리카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는 날이었다.

‘지금 내 마나로 견딜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높은 열기의 불을 만들어 내려면 꽤 많은 마나가 소비되니까.

앞으로 몬스터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데 그 마나를 허투루 쓸 순 없었다.

“조금 위기일지도.”

이래서 S급 헌터들이 A급 던전부터는 팀을 꾸려서 가는구나.

원치 않는 방법으로 궁금했던 것을 알아 버렸다. 이나는 혀를 쯧 차며 몬스터 시체를 퍽 차 버렸다.

“그래 봤자 이나 씨의 발만 아플 겁니다.”

이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놀랍군요. A급 몬스터인 듀라한을 처치하다니. 최소 A급 각성자겠군요, 이나 씨는.”

“당신……!”

이나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환청이라 치부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맞은편에 사람이 서 있었다.

천조 길드장이자 S급 헌터 이시현, 그였다.

이나는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것을 말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런 이나를 보며 시현이 특유의 냉철한 눈으로 물었다.

“혹시 마법 계열 능력자입니까?”

“……답해 줄 마음 없네요.”

이나는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귓가로 정령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언제 온 거지?]

[이나야, 저 사람도 태워 버릴까?]

이나는 정령들의 말에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이 더 복잡해진 탓이었다.

‘인기척이라도 내고 다니든가.’

정령들이 눈치 못 챌 만도 했다. S급 헌터가 작정하고 인기척을 죽였을 테니.

한숨을 살짝 내쉰 이나는 그를 째려보며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이나 씨가 자리를 비우는 소리가 들려서 따라와 봤습니다.”

“그러니까 왜요?”

“아프지도 않아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조퇴한다니까 수상해서 말입니다.”

“아직도 저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하셨군요.”

“네. 덕분에 지금 이 광경을 보았고요.”

시현이 이나 뒤의 듀라한 시체를 눈짓하며 말했다. 이나가 끄응 신음을 흘렸다.

“그래서, 저를 헌터 협회에 넘길 생각인가요?”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시현이 돌연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은 이 던전을 나가는 게 우선일 것 같군요.”

시현의 날카로운 눈빛이 이나를, 정확히는 그녀의 뒤쪽을 향했다.

동시에 이나도 고개를 돌렸다. 정령들이 긴박하게 외쳐 댔기 때문이었다.

[이나야! 몬스터!]

뒤를 돌아보니 듀라한 두 마리가 나타난 상태였다. 죽은 놈처럼 각자 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시현이 이나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뒤쪽으로 물러나십시오. 마법 계열 각성자라면 서포트만 해 주시면 됩니다.”

이나는 복잡한 눈으로 시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검사였다. 듀라한의 심장을 단번에 찌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런 그가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들켜서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알겠어요.”

우선 이나는 뒤로 물러서서 시현을 서포트하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멀찍이 떨어진 걸 확인한 시현이 다시 몬스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어……!”

두 마리가 동시에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두 검이 동시에 저를 향해 찔러 오자 시현은 그 자리에서 높게 점프했다.

시현을 향하던 검들은 저들끼리 부딪쳤고, 주춤한 틈을 타 시현이 공중에서 한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극…….”

깊숙이 들어간 검이 심장을 찔렀는지 놈의 몸이 기울어졌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다른 한 놈이 곧장 시현에게 달려든 탓이었다.

몬스터의 몸통에서 아직 검을 뽑지 못한 시현이 체술로 놈의 몸을 차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펑!

때마침 물 폭탄이 날아와 듀라한을 명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물 폭탄이 날아온 곳을 힐끗 보았다. 그 끝엔 이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서포트가 처음이 아닌가?’

시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던전에 처음 들어오는 신인 헌터나 개인플레이를 하는 헌터는 다른 헌터와 손발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능숙하지 않아서. 그게 이유였다.

대개 그런 헌터들은 처음엔 타이밍을 못 맞춰 어버버거리거나 같은 편을 공격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이나는 지금 시현이 위험했을지도 모를 정확한 타이밍에 듀라한을 공격했다.

‘보면 볼수록 수상하군.’

시현은 몬스터 시체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시 저에게 달려오는 듀라한의 검을 쳐 내고, 심장을 찔렀다.

“그극…….”

심장을 잃은 듀라한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무심하게 검을 털어 내고 검집에 집어넣은 시현이 이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이전에도 서포트를 해 본 적 있으십니까?”

뜨끔.

이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이나가 서포트를 해 본 것은 전생에서였다. 전생의 세계에서도 정령사는 드물었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정령사는 특히나 더 드물었다.

그래서 정령사는 대개 뒤쪽에서 전방의 기사들을 서포트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전생의 이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도 서포트 경험이 충만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순 없으니.’

이나는 뚱한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각성자인 걸 숨기는 사람한테 그런 경험이 있겠어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런데 왠지 능숙…….”

“타고났나 보죠.”

시현의 눈빛이 의심스럽다는 듯 변했다. 이나는 시선을 홱 피하며 물었다.

“그보다 그쪽은 S급 헌터니까 잘 아시겠죠. 이 던전을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 알고 있습니다.”

시현의 시선이 한 방향을 향했다. 이나 또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진 곳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붕이 있었다. 그것을 본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곳에 건물이?’

그녀의 의문을 눈치챈 듯 시현이 말을 이었다.

“저 건물 안에 보스 몬스터가 있습니다. 저희가 해치운 이 듀라한이 말이죠.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됩니다.”

시현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놈은 다른 놈들보다 몸이 월등히 더 큽니다. 그리고 대검을 쓰고, 힘도 어마어마하죠. 방어구를 두르고 있어 처치하기도 까다롭습니다. 등급은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A급이지만, 위력으로 따지면 준S급은 될 겁니다.”

“A급 던전답네요.”

가벼운 어투로 말했지만 이나도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런 몬스터를 시현과 단둘이 해치울 수 있을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겠어.’

보스 몬스터를 맞닥뜨리기 전까진 말이다.

자신의 마나양을 체크한 이나가 말했다.

“바로 저쪽으로 이동하죠. 이러다 잡몬스터들만 상대하다 뻗겠어요.”

“잡몬스터…….”

시현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나는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앞장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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