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49)

한편 헌터 협회는 비상이었다. 연구실에 있던 정체불명의 알이 사라진 탓이었다.

그 탓에 협회 직원들 모두 각성자 검사와 몸수색을 해야 했다. 이한도 예외는 없었다.

“아니이……. 제가 협회에 몸담은 지가 몇 년인데 범인으로 의심받아 몸수색이라니……. 진짜 기분 팍 상하네요.”

“협회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몸수색을 받은 이한의 팀원들이 저마다 투덜거렸다. 이한은 그런 팀원들을 위로하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누군가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한의 팀은 저들끼리 떠드느라 미처 그를 보지 못했다.

그대로 지나치나 싶었는데.

“유이나 씨?”

“네?”

그 남자에게서 여동생의 이름이 들리자 이한이 고개를 홱 돌렸다.

처음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금발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이한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 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사과가 전해졌다.

“미안해요. 사람을 착각한 모양이에요. 아는 사람하고 많이 닮아서.”

멋쩍은 듯 웃던 그가 다시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런데 이한이 그를 붙잡았다.

“제 여동생을 아시나요?”

“여동생?”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군요. 유이나 씨의 오빠가 협회 사람이라…….”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픽 웃었다. 이한은 왠지 불쾌해져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그러든 말든 남자는 이한의 사원증을 힐끗 보며 말했다.

“또 보죠, 유이한 씨.”

그러곤 제 갈 길을 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이한이 불쾌한 듯이 중얼거렸다.

“뭐야, 저 사람은……?”

“팀장님, 동생분이 본부장님이랑 아는 사이세요?”

“본부장?”

이한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제 팀원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팀원은 되레 모르냐는 듯이 말했다.

“저분, 최근에 우리 협회에 새로 부임하신 본부장님이시잖아요. 협회장님 아들이라 낙하산이라고 말이 많아요.”

“그 사람이 저 사람이었어?”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에요. 전에 멀리서 본 적이 있어서 알았어요. 혼혈이라 그런지 가까이서 보니 진짜 잘생겼네요.”

팀원이 감탄을 담아 말했다. 반면 이한은 서준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잘생기긴 무슨.”

***

헌터 협회 대회의실에는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이번 정체불명의 알 도난 사건 탓에 모인 것이었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정체불명의 알들이 사라졌다는 겁니까?”

누군가의 지적에 중심에 있는 연구소장이 침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허 참…….”

“자 자, 진정하세요. 연구소의 보안 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한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유한 얼굴의 남자가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람 좋은 어투로 말했다.

그에 회의실이 조용해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대체 누가 그 보안을 뚫고 알을 훔쳐 갔냐는 거죠.”

협회의 연구소는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건 물론,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던전의 게이트 앞처럼 결계가 몇 중이나 펼쳐져 있었다.

즉, 승인된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리카는 정령이었기에 아무런 반발 없이 결계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이를 모르는 협회의 간부들은 심각했다.

“CCTV는 확인해 보았습니까?”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연구소장이 머뭇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CCTV 영상 하나를 회의실 화면에 재생시켰다.

“……저게 뭡니까?”

“알이 둥둥 떠다니는데요?”

“바로 그겁니다.”

연구소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알들이 스스로 사라졌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헌터가 한 짓이 아니고요?”

“사건 당시 연구소를 방문한 헌터는 없었습니다. 알들이 스스로 사라진 게 맞습니다.”

“허 참!”

다들 기가 찬 얼굴로 멈춘 영상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또한 리카의 소행이었다. 리카가 투명화한 채로 바람의 힘을 이용해 알들을 가져간 것이었다.

CCTV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이건 묵과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전부터 누군가가 정체불명의 알을 훔쳐 가고 있어요.”

“맞습니다. 당장 수배령을 내려야 합니다.”

모두 흥분한 얼굴로 저마다 의견을 내비쳤다.

그때 한 사람이 쓰고 있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수배령까지 내릴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이 일이 알려지면 협회의 이미지에 금이 갈 겁니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해도 부화하지 않던 정체불명의 알 아닙니까. 가져가 봤자 소용없을 테니 조용히 수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알인지 몰라서 더 위험한 겁니다! 몬스터의 알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의견이 수배령을 내려야 한다, 조용히 수사해야 한다로 나뉘었다.

그 순간 가만히 앉아 모두의 의견을 듣고 있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모두 진정하세요.”

그 한마디에 열띤 분위기이던 회의실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협회장의 아들이자 헌터 협회의 본부장, 최서준. 지금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이곳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지만 서준은 태연한 얼굴로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연구소 연구원들과 이 자리에 계신 분들뿐입니다. 헌터 협회 직원들도 몸수색을 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사라져서 그런 건지는 모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 일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용히 수사하도록 하죠.”

“본부장님!”

누군가가 대항하듯이 외쳤다. 하지만 서준의 눈길이 닿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수배령을 내려서라도 범인을 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지금은 조용히 수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헌터 협회는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의 침입으로 물건을 빼앗겼다고 하면 시민들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일단 헌터 협회 주변 건물들의 CCTV를 확인하도록 하죠. 분명 알이 찍힌 흔적이 있을 겁니다.”

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협회를 우습게 본 그자를 반드시 잡도록 하죠.”

***

‘젠장. 헌터 협회를 상대하는 건 좀 무서운데.’

이나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했다.

그녀의 주위로 이즈와 리카가 날아다녔다.

[꺄아! 여기가 이나의 회사구나!]

[모두 TV 같은 걸 들여다보고 있어!]

이즈도 리카도 이미 저들이 한 짓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새로운 친구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들뜬 듯했다.

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네.’

정령들이 하도 사고를 터뜨리니 이젠 만사가 귀찮은 지경이었다.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옆자리에 앉은 직장 동료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나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해서.”

“어제 아프다고 조퇴하더니, 아직 덜 나았나 보네요.”

이나는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차마 사실대로 답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진동으로 바꾼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이나는 흠칫하며 도착한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헌터 협회에 있던 알들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이나 씨가 한 일입니까?]

시현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그녀를 감시라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나는 애써 한숨을 삼키고 답장을 보냈다.

[정령들이 한 일이에요. 제가 한 게 아니라고요. 전 그때 그쪽하고 던전에 있었거든요?]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다. 그에 핸드폰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다시 한번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두고 보겠습니다.]

“허.”

이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옆자리 동료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지만 이나는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내팽개치듯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두고 본다고? 그러든가.’

어디 얼마나 갈지 두고 봅시다, 우리 둘 다.

이나는 뚱한 얼굴로 일에 집중하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온 대표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약속 있는 사람 없지?”

이나는 어쩐지 불안하여 손을 들어 있다고 하려 했다. 그런데 대표가 빨랐다.

“모두 시간 비워 둬. 오늘 회식이다!”

“에엑…….”

“이렇게 갑자기요?”

다들 원치 않는지 애매한 반응을 보였지만 대표는 신경 쓰지 않고 자리로 갔다.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정령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이나야, 회식이 뭐야?]

[나 TV에서 본 적 있어! 일하는 사람들끼리 파티 하는 거야!]

[파티? 와! 파티다!]

갑자기 분위기가 파티가 되었다.

귀를 찌르는 정령들의 환호 소리에 이나는 귀를 막으며 생각했다.

‘시골집은 얼마나 하려나.’

***

“자! 2차 가자고! 2차로 노래방 어때?”

“어휴. 2차는 무슨 2차예요! 저희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요! 어서 들어가기나 하세요!”

기분 좋은 대표의 외침에 직원들이 진저리를 쳤다. 결국 2차는 무산되고 대표는 직원들이 얼른 잡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남은 직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모두 고생했어요. 다들 내일 봐요.”

“내일 뵙겠습니다!”

회식이 마무리되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집이 같은 방향인 사람들과 남아서 몰래 2차를 가려는 사람들이 중간에 뭉치기도 했다.

반면 이나는 홀로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끝났네.”

[에엥. 파티 끝난 거야?]

“파티는 무슨. 이런 파티 필요 없어.”

정령들이 아쉬워하자 이나가 투덜거렸다. 시간을 슬쩍 확인하자 벌써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얼른 들어가기나 하자. 늦었어.”

[네에!]

“대답은 잘해요.”

픽 웃은 이나가 걸음을 옮겼다. 택시라도 잡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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