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49)

이나와 그 사이에 긴장된 기류가 흘렀다. 아란도 그걸 느낀 건지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나는 혹시라도 아란이 그를 향해 달려들까 봐 아란의 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란이 울음소리를 멈추었다.

대신 이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애꿎은 사람을 노렸으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과?”

강철호가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야말로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 아닌가?”

“뭐?”

“그렇잖아. 너 때문에 그 망신을 당했는데.”

아직도 그 일을 잊지 않은 건지 그가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이나는 황당할 뿐이었다.

‘애초에 지가 먼저 잘못해 놓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이나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입이 더 빨랐다.

“네가 먼저 사과하면 나도 사과해 주지.”

“……저런 녀석한테 사과를 받으려고 한 내가 잘못이지.”

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강철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나 무시하는……!”

“크아앙!”

이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멀리서 에덴 길드원들이 짐승형 몬스터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나는 눈앞의 에덴 길드원을 힐끗 보며 물었다.

“넌 안 가냐? 지금 네 동료들이 고전하고 있잖아.”

“알 게 뭐야? 저런 놈들 따위.”

“뭐?”

강철호는 뚱한 얼굴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저러기 위해 우리 길드에 들어온 거잖아.”

“허.”

이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너 같은 놈을 길드원으로 둔 저 사람들이 불쌍하다.”

“이게 아까부터……!”

“크르르…….”

아란이 낮게 울자 그가 가까이 다가오다 말고 주춤했다. 이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무섭나 봐?”

“크윽……!”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진 못했다.

이나는 그를 한껏 비웃어 준 뒤 아란과 함께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에게서 흘러나온 음산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그 백호, 청호 길드의 아란이지?”

“그렇다면?”

“내가 말이야. 전부터 늘 궁금한 게 있었어.”

이나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저 미친놈이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할지 걱정도 되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강철호가 씨익 웃었다.

“짐승형 몬스터에게 쓰는 포박 아이템이 청호 길드의 아란에게도 통할까?”

“뭐?”

불길한 기분을 느낀 이나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강철호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리카가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켰지만 소용없었다.

“크와아앙!”

“아란! 윽……!”

반투명한 그물 형태의 포박 아이템은 이나를 통과해 아란을 포박했다. 그 탓에 아란이 발버둥을 쳐 이나가 튕겨져 나왔다.

정령들이 받쳐 준 덕에 다치진 않았지만 이나는 화가 났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게 어디서 큰소리야?”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강철호가 이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나가 한껏 노려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씩 웃었다.

“그래, 그 눈빛.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말이야.”

“내가 전에도 말했지.”

이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이 손 당장 안 놓으면 잘라 버린다고.”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강철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게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네. 감히 나라를 위해 힘쓰는 이 강철호 헌터님한테 말이야.”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겠지.’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가 이나의 멱살을 쥐고 어딘가로 향하는 탓에 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가 어딘가에 멈춰 섰다. 쎄한 기분에 이나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등 뒤에 게이트가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려고…….”

이나가 눈을 치켜뜬 채 물었다. 강철호는 기분 나쁘게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헌터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몸소 체험해 봐야 하지 않겠어? 마침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결계도 허물어졌고 말이야.”

“너……!”

그 순간 그가 이나의 멱살을 쥔 손을 놓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나는 그대로 혼자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내가 혼자 죽을 줄 알고!”

이나의 외침과 동시에 등 뒤에서 무언가가 그의 등을 밀쳤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강철호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흙……?”

솟아오른 땅이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렇게 그의 몸과 욕설은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어엉!”

포박되어 홀로 남은 아란만이 그 광경을 보며 괴롭게 울부짖었다.

***

“잘했어, 네움.”

이나는 씩씩거리는 와중에도 땅의 정령 네움을 향한 칭찬은 잊지 않았다. 네움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강철호가 경악했다.

“이, 이게 무슨……! 이건 말도 안 돼! 나 혼자 던전 안에 들어오다니!”

강철호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정작 이나는 담담한 채였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그제야 이나를 발견한 그가 분노의 화살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죽여 버리겠어!”

“어휴.”

이나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강철호가 단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이건 또 뭐야!”

단검이 어느새 솟아오른 흙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네움의 능력이었다.

그는 끙끙대며 흙에 박힌 단검을 뽑으려 했다. 이나가 눈짓하자 네움이 흙덩어리를 그대로 밀어 버렸다.

“으악!”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강철호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나는 그의 옆으로 가 그녀가 멱살을 잡혔던 부분을 발로 눌렀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없애 버리고 싶지만.”

순간 그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잠시 갈등이 일었지만 이나는 그의 목에서 발을 치웠다.

“참아야겠지. 똑같은 사람이 될 순 없으니까.”

“크윽……!”

그가 눌렸던 목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이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툭 내뱉었다.

“여기서부턴 개인플레이.”

“뭐?”

“죽든 살든 너 알아서 하라고. 나도 그럴 테니까.”

그의 눈빛이 황당하다는 듯 변했다. 비각성자인 그녀가 여기서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이나는 굳이 거기에 대고 ‘나 사실 각성자야’라고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에게서 몸을 돌려 정글 안쪽으로 걸어갔다.

어느 정도 그와 거리가 벌어지자 정령들이 쪼르르 다가왔다.

[이나야, 저 녀석 안 죽여도 돼?]

이즈가 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귀여운 얼굴로 살벌한 질문을 내뱉었지만 이나도 같은 마음이라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냅둬. 혼자 두면 알아서 죽거나 어떻게든 빠져나가거나 하겠지.”

그녀의 목숨을 위협했던 사람인 만큼 이나는 그를 도와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직접 처리하지 않은 것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은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야.”

[무슨 뜻이야?]

“너희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정령들이 의아해하며 쳐다보았지만 이나는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에게 전생의 경험으로 인해 깨달은 것을 얘기해 줘 봤자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까.

“지금은 그것보다 이 던전을 어떻게 빠져나갈지나 생각해 보자.”

중소 길드가 나섰다는 것은 이 던전의 급이 별로 높지 않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나는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던전을 공략해 그녀 혼자 나갔다가는 분명 어떻게 나온 것이냐며 질문 세례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가장 좋은 건 그 녀석이 이 던전을 공략해 주는 건데.’

그런 걸 바라느니 그냥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주러 오는 걸 바라는 게 더 믿음직스러웠다.

“일단 누군가 올 때까지 어디 숨어 있자.”

[던전 공략은 안 하고?]

“누군가 와서 해 주겠지.”

이나는 수풀을 헤치며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 전에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건…….”

이나는 짓밟힌 바닥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거대한 발바닥 모양이 땅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보스 몬스터인가 보네.”

[고양이 발바닥 같아!]

정령들이 발바닥 모양으로 찍힌 땅 위에 올라섰다. 이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서두르자. 아직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

[우리가 해치우자!]

“글쎄, 그러면 곤란해진다니까.”

이나는 정령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던전 안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몬스터들을 마주쳤지만 모두 정령들의 능력을 이용해 해치웠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나는 나무 없이 넓게 펼쳐진 공간에 다다랐다.

“꼭 몬스터와 싸우라고 만든 공간 같네.”

그러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지.

이나는 서둘러 발끝을 다시 수풀 안쪽으로 돌렸다.

“크르르…….”

“……늦었나.”

이나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역시나 보스로 보이는 거대한 사자 몬스터가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나는 착잡한 얼굴로 저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사자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억울하게 들어온 건 나인데 공략도 내가 해야 하냐고.”

이나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보스 몬스터는 기다리지 않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크어엉!”

“리카!”

이나는 리카의 바람을 이용해 잽싸게 옆으로 피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옆으로 홱 꺾였지만 때마침 네움이 흙으로 방어해 다치진 않았다.

발톱이 흙에 막힌 틈에 멀찍이 떨어진 이나가 사자 몬스터, 라이어트를 노려보았다.

“덩치는 산만 한 게 빠르긴 더럽게 빠르네.”

[하지만 빠르기로는 이 볼트 님을 따라올 수 없지!]

전기의 정령 볼트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번엔 네가 해 봐.”

이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디 신입 테스트 좀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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