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던 도하의 도움을 받아 이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아란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지만 이동하는 그녀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도착한 곳은 헌터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었다. 이나는 곧장 이한이 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오빠!”
“이나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한은 깨어 있는 상태로 이나를 맞이했다.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다가오는 이나를 향해 이한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어딜 다친 건데?”
“별거 아니야. 그냥 팔을 좀 긁혔어.”
이한이 오른쪽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긁힌 정도는 아니었다. 이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맞은편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김우림을 쳐다보았다.
이한을 힐끗 보던 김우림이 대신 설명해 주었다.
“저희 관할 지역에 새 던전이 생겨서 조사차 갔었는데요…….”
“김우림 씨.”
이한이 그만하라는 듯 째려보자 김우림이 움찔하며 말을 멈추었다.
결국 이나가 나섰다.
“오빠는 가만히 있어.”
“이나야.”
“말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나가 이한을 눌렀다. 이한은 곤란해하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고, 눈치를 보던 김우림이 말을 이었다.
“그게…… 던전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붉은색으로 변해 버렸어요.”
“그 말은…….”
“네. 몬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던전을 조사하려고 게이트 근처에 있던 팀장님을 공격했습니다.”
이나가 이한을 째려보았다. 이한은 차마 이나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우림이 마저 설명을 끝마쳤다.
“다행히 경호차 따라온 헌터가 있어서 던전 브레이크는 막았습니다만, 대신 팀장님이 이렇게…….”
“이래도 별거 아니야?”
“크흠……. 하지만 이나야, 보다시피 난 멀쩡…….”
“조용히 해.”
“……네.”
이한이 입을 다물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막내 사원 김우림이 그런 팀장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반면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럴 땐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고 화를 내야 하는 거야?”
“기왕이면 다행이라고 하는 편이…….”
“조용히 하라니까?”
“……죄송합니다.”
평소엔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었지만 이렇게 화가 났을 때는 이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죄를 할 수밖에.
게다가 이나가 화를 낼 때는 꼭 자신보다 어른 같아서 어쩐지 따질 수가 없었다.
“찾았다. 여기 있었네.”
그때 뒤늦게 이나를 따라온 도하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란과 함께.
이한이 눈을 부릅떴지만 이나는 도하를 보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란을 데리고 들어와도 돼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한참 실랑이하다가 겨우 들어왔다.”
도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사이 아란이 이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런데 아란이 멈칫하더니 이한이 앉아 있는 침대 위로 얼굴을 올렸다. 그리고 이한의 붕대 위에 코를 올려 킁킁 냄새를 맡았다.
“왜, 왜 이러는 겁니까, 청호 길드장?”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도하도 의아하다는 얼굴로 아란을 쳐다보았다. 냄새를 맡은 아란은 낮은 소리로 울었다.
[오빠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대!]
이상한 냄새?
이즈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이나가 이한에게 물었다.
“오빠, 요즘 안 씻었어?”
“……내가 아무리 협회에서 썩어 가고 있다지만 매일매일 씻는단다, 이나야.”
이한이 상처받은 얼굴로 대답했다. 김우림이 옆에서 풉, 하고 웃음을 흘리다가 이한의 눈초리를 받았다.
더욱 의아해진 이나가 이즈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즈는 아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나쁜 냄새……라는데?]
더욱 아리송해졌다.
혹시 몬스터에게 당한 탓에 몬스터의 냄새라도 남아 있는 건가?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팀장님! 팀장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한의 팀 대리가 병실에 들어왔다. 그는 오자마자 멀쩡해 보이는 이한을 요리조리 훑어보며 물었다.
“괜찮으신 거죠?”
“보다시피.”
이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 대리는 안도하면서도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그렇다니까.”
“혹시 어지럽다거나 상처 부위가 아프다거나 하진 않고요?”
“강 대리, 왜 이리 꼬치꼬치 캐물어? 멀쩡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그 말에 이나도 강 대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끄응 신음을 흘리더니 이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게…… 아까 팀장님이 조사하러 가셨던 그 던전의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병실에 있는 모두가 얌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강 대리의 시선이 재차 이나에게 닿자 이나는 불길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그녀의 의문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강 대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팀장님을 공격했던 그 식물형 몬스터가 몸에 독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독이요?”
놀란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강 대리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지금 괜찮은데?”
이한이 붕대 감은 팔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도 미처 숨기지 못한 당혹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강 대리는 평소와 달리 진지함을 한껏 머금고 말했다.
“그래도 일단 검사를 해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퍼지는 게 더딘 독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나를 맞이했을 때와 달리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나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녀의 어깨 위에 커다란 손이 텁 얹어졌다.
“괜찮을 거야.”
도하였다. 이런 위로에 서툰지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어색했다.
조금 마음이 놓이게 된 이나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누구 몸에 손을 올리는 겁니까?”
그것을 본 이한이 도하를 째려보았다.
도하는 서둘러 이나의 몸에서 손을 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니, 난 위로해 준 건데?”
“필요 없습니다! 전 멀쩡하니까요!”
갑자기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한이 도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평소라면 지지 않았을 도하가 오늘은 왜인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나는 제 파트너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아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을 흘렸다.
***
이한은 협회에서 평소라면 받지 못했을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주 3회 출근인 이나도 오늘만큼은 당당하게 이한의 옆에 있었다.
“난 괜찮은데.”
“독에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긴 무슨.”
괜찮다고 말하는 이한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나가 곁에서 간호해 주는 것이 기꺼운 모양이었다.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쉰 이나가 이한의 팀원들이 사 온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과도로 열심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흐뭇해하는 얼굴로 그 모습을 보던 이한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나야.”
“왜?”
“과일 잘 안 먹는 거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야?”
뜨끔.
이나는 껍질을 벗기던 것을 멈추고 사과를 노려보았다. 사과 아랫부분과 달리 속살을 드러낸 윗부분의 크기가 현저히 줄어 있었다.
[사과는 원래 이렇게 작은 거야?]
파인이 순수하게 묻는 말에 이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한차례 웃음을 터뜨린 이한이 손을 뻗었다.
“이리 줘. 내가 할게.”
“팔 다친 사람이 무슨! 내가 할게. 기다려 봐.”
오기가 생긴 이나는 결국 사과의 껍질을 끝까지 깎았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멍 든 사과를 먹어야 했다.
“…….”
“맛있네.”
이한이 아무 투덜거림 없이 먹으며 맛있다고 해 주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푹 숙였다.
“유이한 환자분?”
사과를 다 먹어 갈 때쯤 의사들이 병실에 들어왔다. 그중 한 사람이 이한을 보며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괜찮습니다. 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질문하는 이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나도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의 표정은 오묘했다. 심각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밝은 얼굴도 아니었다.
근데 오히려 그것이 묘한 불안감을 자극해 이나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일단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의사가 뜸을 들이며 말을 꺼냈다.
“몬스터의 독에 당하신 것은 맞습니다.”
이나와 이한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그러자 의사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독이 묘한 게…… 몸에 해를 끼치는 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요?”
“저희도 처음 보는 독이라 자세한 것은 연구소에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몸에 지장은 없으니 오늘 바로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해독은요? 무슨 독일지 모르는데 해독은 해 주셔야죠!”
이나가 따졌지만 의사는 곤란해하는 얼굴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처음 보는 독이라 당장 해독은 불가합니다.”
“힐러는요? 힐러가 치료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해당 독을 가진 몬스터가 나온 던전이 A급입니다. 그렇게 되면 A급 힐러를 불러야 할 텐데…….”
의사가 말끝을 흐리며 이나와 이한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불쾌해 이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히 신체에 상해를 입은 경우 A급이든 C급이든 상관없이 치료가 가능했다. 치료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독이나 마비 같은 상태 이상은 달랐다.
이 경우 추출한 독을 이용해 만든 해독 포션을 사용하거나 독을 지닌 몬스터의 등급에 맞는 힐러가 치료해 주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힐러가 일반인을 치료하러 찾아오는 일에는 꽤나 큰 금액이 소모되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더.
의사가 그들을 훑어본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금액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나에게는 지금껏 모아온 마정석이 있었다. 원랜 도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함이었지만 가족인 이한에게 쓰는 것이 더 시급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한에게 정체를 밝혀야 했다. 평범한 삶은 둘째 치고 그렇게 되면 이한이 이나가 던전에 들어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나는 이한을 속였다. 그로 인해 이한이 상처 입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이나야, 그만해.”
이한이 이나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무슨 독일지 모를 것을 당장 치료할 수 없다는 말에도 그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어쩌면 체념한 걸지도 몰랐다. 이한은 헌터 협회 직원이니 오히려 이런 일에 더 익숙할 테니까.
“오늘 바로 퇴원하겠습니다. 퇴원 수속 처리해 주세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형식적인 사과에도 이한은 아무 말 없었다. 이나는 복잡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