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한은 그날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나는 출근 준비를 하며 이한에게 전화를 했다.
“모처럼의 휴가니까 푹 쉬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웃지 말고! 오빠 몸은 지금 시한폭탄이거든? 웃음이 나와?”
[그렇다고 우울하게 있을 순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지. 몸에 해는 없다니. 마음 같아선 팀원들이 불안해서라도 출근하고 싶긴 한데…….]
“절대 안 돼. 협회가 허락해도 내가 허락 안 해.”
이쯤 되니 정말 독에 당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신발을 꺼내 신었다.
“나 이제 나가야 돼. 그럼 쉬어.”
[그래. 퇴근하고 전화해.]
“당연하지.”
두 사람은 평소처럼 정답게 인사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끊긴 뒤에야 차마 티 내지 못한 걱정이 이나의 얼굴에 드러났다.
“진짜 괜찮으려나.”
[괜찮을 거야!]
[오빠는 이나의 오빠니까!]
정령들이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들이밀며 이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게 도움이 되었다.
이나가 걱정이 사라진 얼굴로 픽 웃었다.
“그래. 다름 아닌 내 오빠니까.”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연 이나가 사뭇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생긴 가족이자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다.
아무리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지만 이한의 몸에 그런 위험한 요소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어젯밤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
주의 마지막 출근 날인 금요일답게 이나는 칼같이 퇴근했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이라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나는 집으로 가지도, 그렇다고 이한에게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여긴가.”
이나가 멈춰 선 곳은 한 낡은 아파트였다.
이나의 눈빛이 의심스럽다는 듯 변했다. 정말 ‘그 사람’이 이런 곳에 산다고?
[이나야, 여긴 어디야?]
[여긴 우리 집이 아니지 않은가!]
정령들도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이나는 대충 답하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이나는 계단으로 4층까지 올라갔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그래도 7월이라고 날씨가 꽤나 더웠다. 4층까지 올라오자 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이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복도 구석에 위치한 문으로 쭉 걸어갔다. 호수를 확인한 이나는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열고 나오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없나?”
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러 보았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이나는 포기하고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다.
그 순간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오는군.]
볼트의 말처럼 문이 열리며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세요?”
눈을 게슴츠레 뜬 그는 무척이나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머리는 새가 둥지를 튼 것처럼 뻗쳐 있었고, 면도도 안 했는지 턱에 손을 대면 긁힐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방금까지 자고 있었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이나는 애써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B급 힐러, 천해진 씨 맞죠?”
꾀죄죄한 겉모습과 달리 그는 꽤 유명 인사였다.
천해진은 천재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독 관련 연구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지 못하는 해독 포션은 없었다.
그러다 B급 힐러로 각성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어떤 포션이든 만들어 내는 그의 뛰어난 머리와 능력을 두고 S급에 견줄 정도라고 말하곤 했다.
그 탓에 그에게는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하고 갑자기 은퇴했다.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두고 이렇더라 하는 소문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 유명 인사 천해진이 이나를 대놓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문을 닫으려 했다.
“개인 의뢰 안 받아요.”
“그러지 말고!”
이나가 문 틈새로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
“좀 도와주세요.”
“다른 헌터 찾아보시죠. 꼭 저일 필요는 없잖아요.”
“아뇨. 천해진 씨여야 해요.”
“왜요?”
“독에 관해선 천해진 씨만 한 사람이 없고, 의뢰 비용도 받지 않는다고 들어서요.”
“그야 의뢰를 받지 않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천해진은 이나의 손을 떼어 내고 문을 닫았다. 다시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이나는 결국 그곳을 나와야 했다.
“뭐야. 얘기나 좀 들어 줄 것이지.”
[계약자, 그러지 말고 문을 부숴 버리는 건 어떤가!]
“시끄러.”
제안을 무시하자 볼트가 시무룩해졌다. 이나는 그런 볼트를 깔끔히 무시하고 이한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몇 차례 들리고 이한이 전화를 받았다.
[응, 이나야.]
“오빠, 몸은 좀 어때? 무슨 일 없었지?”
[몸은 괜찮아. ……어?]
“왜 그래?”
[아, 그게……. 어라? 내가 왜 여기 있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얼떨떨한 목소리를 듣자 불길한 기분이 이나를 덮쳐 왔다.
“왜 그래? 지금 어딘데?”
[집 앞 공원. 내가 언제 여기로 왔더라……?]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갈 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
이나는 통화를 끊고 리카를 쳐다보았다.
“리카, 오빠에게 가자.”
[알았어!]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리카가 곧장 바람의 힘을 펼쳤다.
이나는 아란을 탔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한에게 도착했다.
***
“아무래도 독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이나는 이한을 곧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들은 것은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나는 눈을 치켜뜬 채 물었다.
“독의 영향이요? 분명 신체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의사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이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애초에 이 의사는 일반인이고, 이한의 몸에 퍼져 있는 독은 한국에 처음 출현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증상을 모를 만도 했다.
이나가 화를 꾹 참는 사이 의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일단 다시 입원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환자분을 집에 혼자 둔다면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해 주세요.”
이한이 이나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이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온 이한이 이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 이나야.”
“오빠가 왜 미안해.”
“그냥…….”
이나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이나는 됐다고, 얼른 낫기나 하라는 말을 남기고 이한의 병실을 나왔다.
[이나야…….]
정령들이 이나의 눈치를 보았다. 이나는 멍한 얼굴로 병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리카, 아까 그 집 기억하지?”
[응? 으응…….]
“다시 가 보자.”
다시 천해진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꽤 어두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나는 망설임 없이 천해진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천해진이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찾는 사람이 왜 이렇게…….”
“안녕하세요.”
이나를 본 천해진이 멈칫하더니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이나가 순발력 좋게 문을 덥석 잡았다.
“그러지 말고 얘기나 좀 나눠 보시죠.”
“안 사요, 안 사.”
“사 달라는 게 아니라, 능력 좀 팔아 달라니까요?”
천해진이 짧은 한숨과 함께 문고리를 잡은 손을 놓았다. 겨우 그와 마주하게 된 이나가 대뜸 말했다.
“저희 오빠 좀 도와주세요. 독에 당했는데, 처음 나온 독이라서 해독 포션이 아직 없어요.”
“난 은퇴했어요. 더 이상 의뢰를 받지 않아요.”
“하려면 하실 수 있잖아요. 원하는 건 뭐든지 맞춰 드릴 테니까…….”
“안 한다니까요.”
짧게 한숨을 내쉰 천해진이 말했다.
“제발 가세요.”
어쩐지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가득 느껴져 이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뭐요?”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 것 같으니까 내일 다시 오겠다고요.”
그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 변했다. 이나는 내일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
다음 날.
“안녕하세요, 천해진 씨.”
쾅!
해진은 이나를 보자마자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안녕하세요.”
쾅!
역시나 문전 박대 당했다.
그럼에도 이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한의 상태가 걱정되어 오기가 생겼다.
거듭된 문전 박대에도 이나는 굴하지 않고 문에 기대어 섰다. 해진이 나올 때까지 그대로 기다릴 셈이었다.
해의 위치가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더웠지만 이나는 리카와 윈티의 도움을 받아 체온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나가 슬쩍 등을 문에서 떼자 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그는 새 둥지가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럽다는 듯 물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절 도와주실 때까지요.”
“하아. 뭐 이런 막무가내가…….”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오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
순간 머리를 헤집던 해진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복잡한 눈길로 이나를 빤히 보았다.
짜증, 피곤 외에 그에게서 처음 보는 감정이었기에 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그때 해진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나와 해진이 동시에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를 본 해진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수, 수아야.”
‘수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이었다.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또한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이나가 기억을 뒤적이고 있는데, 이즈가 옆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우리가 구해 준 그 인간이다!]
‘아.’
이나는 그제야 그녀가 누군지 떠올렸다.
이나가 구해 준 ‘얼음 여왕의 눈물’을 먹어 목숨을 구한 첫 의뢰자의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