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49)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자 이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왜 그 아저씨 딸이 여기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오빠라고?

홀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삼키고 있는데 이수아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이나 쪽을 힐끔 보더니 해진에게 물었다.

“손님이야?”

“그게…….”

해진이 난감해하는 눈초리로 이나를 힐끔 보았다. 이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얌전히 있었다.

그때 해진을 빤히 보던 이수아가 대뜸 질색했다.

“오빠! 꼴이 그게 뭐야!”

“내 꼴이 왜?”

“창피하게 씻지도 않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거야?”

“아니, 이 사람은…….”

“얼른 들어가서 세수랑 면도라도 하고 나와!”

이수아가 등을 떠밀자 해진은 별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멀뚱멀뚱 서 있는 이나에게 이수아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 좀 간단하게 치우고…….”

“아, 네.”

얼떨결에 대답해 버린 이나는 닫힌 문 앞에서 대기했다. 그러는 동안 잠시 가출했던 이성이 돌아왔다.

“가족……인가?”

하지만 성이 달랐다. 그럼 연인 사이라도 되는 건가?

생각에 잠긴 이나에게 리카가 다가와 말했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치, 이나야?]

“……그러게.”

병원에 있을 당시 ‘얼음 여왕의 눈물’을 먹고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와 세 정령만 아는 얘기를 나누고 있자 잠자코 있던 다른 정령들이 보채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상황인 건가? 자세히 좀 설명해 주게!]

[저, 저도 궁금해요, 이나 님.]

[…….]

[어떻게 된 거냐면…….]

파인이 나서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즈와 리카도 말을 보태며 설명에 동참했다.

이나는 옆에서 듣기만 했다. 그때 마침 문이 열리며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오세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별로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어요.”

해진의 집 안으로 들어선 이나는 이수아의 안내에 따라 소파에 앉았다. 잠깐 부엌으로 들어간 이수아가 해진의 것까지 세 잔의 아이스커피를 타 왔다.

이나는 컵을 건네받고 안에 들어 있는 커피를 마셨다. 그런 이나를 향해 이수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오빠 여자 친구분이세요?”

“픕……!”

“절대 아냐!”

때마침 간단하게 씻고 나온 해진이 대신 소리쳤다.

그는 짜게 식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이나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내 취향 아니라고.”

“마찬가지네요.”

이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이걸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해진과 이수아는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이나와 해진이 서로를 째려보고 있는데 눈치를 보던 이수아가 이나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까진 어쩐 일로…….”

“B급 힐러이자 독 전문가인 천해진 씨에게 의뢰를 맡기고 싶어서요.”

해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나의 대답에 해진을 힐끗 본 이수아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어…… 그건…….”

“그거 다 마시면 그만 가 줬으면 좋겠네요.”

해진이 끼어들었다. 몇 번인지 모를 거절이었기에 이나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그러든 말든 해진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이나와 이수아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죄송해요. 해진 오빠 성격이 살가운 편은 아니라서…….”

“이미 처음 만났을 때 알았어요. 그리고 수아 씨가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컵을 돌리던 이나가 커피를 홀짝 마셨다. 그 모습을 보던 이수아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빠도 처음부터 저러진 않았어요. 예전엔 그래도 의뢰도 받고, 지금보다는 살가운 편이었는데…….”

“그런데 왜 저렇게 된 거래요?”

“다 저 때문이죠.”

“수아 씨요?”

이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수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설명해 주었다.

“혹시 지난번에 기사로 뜬 정체불명의 헌터 아시나요?”

갑자기 저를 지칭하는 말이 들리자 이나가 몸을 흠칫 떨었다.

“……어쩌다 본 것 같긴 하네요.”

“그분이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저예요. 고칠 수 없던 열병에서 깨어난 기적의 환자.”

“그랬군요.”

“네. 오빠가 저렇게 된 건 제가 열병을 얻은 뒤부터예요.”

이수아의 시선이 해진이 들어간 방으로 향했다. 눈빛에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고모와 고모부, 그러니까 오빠의 부모님이 어릴 때 돌아가시고 저희 아빠가 오빠를 길러 주셨어요. 그 덕에 저와 오빠는 사촌이지만 진짜 남매처럼 자랐죠. 비상한 머리 덕에 오빠는 성인이 돼서 연구원이 되고 B급 힐러로도 각성했지만 저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내려왔어요.”

“그게 왜 수아 씨 때문이에요?”

“오빠도 제 병만큼은 치료할 수 없었거든요.”

이나가 눈을 깜빡였다. 쓰게 웃은 이수아가 설명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아무리 힐러라도 지병이나 자연적으로 생긴 병은 치료할 수 없어요. 제 열병도 몬스터 탓에 생긴 것이긴 하지만 몸이 원체 약했던 탓도 있어요. 두 이유가 합쳐진 거죠. 그래서 힐러들도 치료할 수 없었어요.”

이수아가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오빠는 어떻게든 저를 낫게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그래서 그 모든 자리에서 내려온 거예요. 가족도 살리지 못하는 능력 따위, 쓸모없다고 생각한 거겠죠.”

이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제야 알게 된 해진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해가 되진 않았다.

“쓸모가 없었다면 애초에 능력이 부여되질 않았겠죠.”

“네?”

“사람들이 왜 천해진 씨의 능력을 높이 사겠어요? 그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이나의 시선이 해진이 들어간 방 문에 닿았다. 아마 그도 지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터였다.

이나는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크게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힐러라고 해도 모든 사람을 살릴 순 없어요. 그게 가능하면 신이죠. 물론 천해진 씨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천해진 씨의 입장이었다면 저희 오빠를 살리지 못한 것에 괴로워하고, 또 자책했을 거예요.”

“…….”

“하지만요, 언제까지고 그런 데 얽매여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이나를 이수아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붉어진 눈으로 이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구하지 못했으면 그것을 발판 삼아 구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구하지 못한 과거에 매이는 것 따위, 수아 씨도 바라지 않지 않나요?”

“오빠…….”

수아가 바라봐 오자 해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당장은 그에게 이한을 봐 달라고 부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내일 또…….”

벌컥-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으로 걸어가던 이나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나를 본 상대방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손님이 있었구나. 해진아, 혹시 여자 친구니?”

“아니에요, 삼촌.”

“그냥 손님이야, 아빠.”

해진과 이수아가 차례로 말했다. 이나는 서둘러 팔로 얼굴을 가리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내 얼굴 모르잖아?’

거래를 할 당시에 정체를 숨기려고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그러니 눈앞의 의뢰인 아저씨는 이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이나는 당당하게, 하지만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그를 지나치기 직전 짧게 시선이 마주쳤다. 이나를 본 아저씨의 눈이 커졌다.

“자, 잠시만요!”

‘젠장.’

이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으시죠?”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수아를 구해 주신 헌터님, 맞으시죠?”

제대로 걸렸다.

그 생각에 이나의 몸에서 힘이 쫙 빠져 버렸다.

반면 상황을 지켜보던 해진과 이수아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삼촌?”

그사이 상황 판단을 끝낸 이나가 문을 닫아 잠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으세요.”

이제부터는 싹싹 빌어야 할 때였다.

***

“그러니까…… 헌터가 아니시라고요?”

아저씨가 눈을 끔뻑이며 묻는 말에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각성자는 맞지만 헌터는 아니에요.”

“그 말씀은…….”

“헌터 등록을 안 했다는 뜻이죠.”

아저씨와 그의 딸 이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해진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지금 우리한테 나 불법 헌터다, 자랑하기라도 하는 거예요?”

“제가 그런 걸로 자랑하겠어요?”

이나야말로 억울했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 마음을 알 리 없는 눈앞의 세 사람에게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아무튼, 저는 지금 모종의 이유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시군요.”

아저씨는 생각 외로 담담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 사실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겠습니다.”

“삼촌!”

“해진아, 우리 수아를 살려 주신 분이다. 난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단다.”

이나는 솔직히 놀랐다. 어느 정도 호의적일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순순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시현 헌터 그 사람이 유난인 거라니까.’

이나가 속으로 시현을 은근히 까 내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대뜸 물어 왔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찾아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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