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49)

“이시현 헌터다.”

“여기서 이시현 헌터를 볼 줄이야……!”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잘생겼다.”

카페에 들어오고부터 세 사람에게 시선이 쏠렸다. 인지도 있고 잘생긴 사람이 두 명이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최대한 얌전히 아이스초코나 마시고 나가려는 이나도 자연스레 눈길을 받았다. 특히 모자를 푹 눌러 써 수상해 보이는 탓에 오히려 더 눈에 띄는 듯했다.

‘내 팔자야.’

빨대로 음료를 빨아들이던 이나가 빈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사이 두 사람은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는 참이었다.

“그렇군요. 공유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천조 길드장님. 자세한 것은 저희 쪽 탐사대 일원에게서 듣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현이 이나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그것을 본 서준의 시선도 그녀를 향했다.

“이런. 많이 지루했나요?”

“네.”

이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부루퉁한 표정도 대놓고 드러내자 서준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사과의 의미로 아이스초코 더 사다 줄게요.”

“내가 무슨 어린애인 줄 알아요?”

이나가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을 주시하던 시현이 입을 열었다.

“저어…… 근데 두 분은 무슨 사이십니까?”

“네?”

“서로 친해 보여서 말입니다.”

이나와 서준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준을 본 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을 보고 피식 웃던 서준이 대답했다.

“뭐…… 따지자면 지금은 제가 이나 씨의 상사겠군요.”

“상사 말입니까? 하지만 이나 씨는 다른 회사에…….”

“저 퇴사했어요.”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나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삶을 원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어 하던 이나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퇴사라뇨? 갑자기 왜…….”

“그렇게 됐어요. 아무튼 그래서 새 직장을 찾을 때까지만 협회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어요.”

골치 아프다는 듯한 이나의 표정에 시현도 할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때마침 끼어드는 서준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저도 묻고 싶군요. 천조 길드장과 이나 씨야말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요?”

“그건…….”

시현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이나의 능력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나는 능력에 관한 것은 전부 생략하고 단순명료하게 대답했다.

“저희 동네에 던전 브레이크 일어났던 거 기억하죠? 그때 알게 됐어요. 이시현 헌터가 몬스터에게 끌려가는 절 구해 줬거든요. 그 뒤로도 몇 번 마주쳐서…….”

이나의 가늘어진 시선이 시현에게 닿았다. 시현이 애써 시선을 외면하자 이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보시다시피.”

“사귀는 겁니까?”

“아뇨? 그냥 조금 친해진 거거든요?”

“맞습니다.”

서준의 물음에 이나도 시현도 즉시 대답했다.

그 모습을 서준이 재밌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그렇게 된 거군요. 다행입니다.”

‘다행?’

이질감을 느낀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도 같은 기분을 느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뭐가 다행이란 거예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듣고 싶습니까?”

“갑자기 듣고 싶지 않아졌네요.”

이나가 벌써부터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서준이 재차 웃음을 흘렸다.

띠리리리-

때마침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렸다. 세 사람 모두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울리고 있는 것은 서준의 것이었다. 그는 액정 위로 뜬 이름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받고 올 테니 대화 나누고 계세요.”

서준이 급히 사라지고 이나와 시현만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시현이 가끔 힐끗 이나를 쳐다보았지만 이나는 그가 그러든 말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나 쪽이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예요?”

“네?”

“아까 저를 찾았잖아요. 무슨 일인데요?”

시현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씩이나 돼서 저렇게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이나는 아무 말 없이 시현을 지켜보았다.

입을 달싹이던 시현이 마침내 말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뭔데요?”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저를 똑바로 마주 봐 오는 이나를 보며 그도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즐거웠다고요? A급 던전에서 그 고생을 한 게?”

예상대로 이나는 황당하다는 듯 쳐다봐 왔지만 시현은 그저 잔잔하게 웃었다.

“이나 씨, 이 세계에서 S급 헌터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어떤 의미인데요?”

“모두의 동경을 받는 헌터. 그리고…… 모두의 생명을 짊어진 헌터.”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를 보지 못한 시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S급 헌터는 강하죠. 그 강함으로 인해 늘 누구보다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있지만, 또 함께 싸울 수 없는 것이 바로 S급 헌터입니다.”

“그게 그쪽이 즐거운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던전에서 이나 씨와 보스 몬스터를 해치울 때, 함께 싸우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나는 시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시현은 멋쩍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말을 덧붙였다.

“책임감을 같이 짊어지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렇게 함께 싸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즐거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제 보니 꽤 오만하시네요.”

“네?”

당황한 시현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나는 뚱한 얼굴로 턱을 괴다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그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요약하자면 그쪽이 너무 강해서 혼자 싸우느라 외로웠다는 말 아니에요.”

“……그게 그렇게 됩니까?”

“그럼 아니에요? 그리고 그쪽이 한 말에는 두 가지 틀린 점이 있어요.”

이나가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이고는 하나를 접었다.

“첫째, 난 그쪽이 느끼는 책임감을 짊어진 적 없어요. 난 오직 나와 내 사람만 생각하고 던전에 들어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신경 써요?”

시현이 눈을 깜빡였다. 이나는 그 앞에서 두 번째 손가락을 접어 보였다.

“그리고 둘째, 당신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에요. 대체 왜 그렇게 멍청한 생각을 한 거예요?”

“…….”

“당신이 강한 건 맞아요. 강해서 당신 혼자 강한 놈을 처치하느라 외롭게 느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우리가 보스 몬스터를 잡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놀았을 것 같아요?”

그제야 시현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들이 보스 몬스터 라플레인을 잡고 있을 때 뒤에 남아서 다른 몬스터들이 흙벽을 타고 올라오지 않게 막던 헌터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의 마음을 느낀 이나가 혀를 쯧쯧 찼다.

“함께 싸웠던 다른 헌터들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리고 고맙다고 하라고요.”

“……명심하겠습니다.”

시현이 사뭇 비장하게 대답하자 이나도 결국 픽 웃었다.

타이밍 좋게도 마침 통화를 끝낸 서준이 돌아왔다.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훈계요.”

“네?”

서준이 되물었지만 이나도 시현도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빈 잔의 얼음만 와그작 씹어 먹을 뿐이었다.

***

“아무리 저라도 해독 포션을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그동안 오빠 옆에서 얌전히 기다리세요.”

해진은 그 말을 남기고 연구소에 틀어박혔다. 그동안 이나는 그의 말대로 이한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퇴근하고 병원으로 가고, 주말 동안엔 하루 종일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다시 출근 날이 되었다.

“오빠.”

“……어?”

한 박자 늦게 이한이 대답했다. 그녀를 보는 이한의 눈빛이 몽롱했지만 이나는 걱정을 티 내지 않고 말했다.

“다녀올게. 그동안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어……. 알았어.”

그 말을 남기고 이한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누르고 병실을 나왔다.

“하아……. 천해진 씨한테서 연락도 없고. 답답하네.”

[이나야…….]

[이나 님…….]

정령들도 더 이상 위로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는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나도 그게 편했기에 아무 말 없이 협회로 출근했다.

“네, 한국 헌터 협회 홍보 팀입니다.”

“이나 씨, 이것도 좀 부탁해요.”

현실은 그녀의 마음과 달리 바쁘게 돌아갔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일하는 동안엔 걱정도, 다른 잡생각도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나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누군가 다가와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고개를 돌리자 홍보 팀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나 씨, 이것 좀 위층 각성자 관리 팀의 김 과장님께 전달해 줄래요?”

“아, 네.”

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가벼운 심부름을 끝내고 난 뒤 다시 내려가려는데, 무언가가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던전 관리 3팀.

이한이 있어야 할 부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한이 없고, 남은 팀원들이 열심히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중이었다.

이나는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팀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기서 땡땡이쳐도 되는 겁니까, 유이나 씨?”

뒤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 이나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서준이 빙긋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본…….”

“쉿.”

서준은 자신을 부르는 이나의 말을 막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직원들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앞으로 그를 끌고 가서 물었다.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전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요. 이나 씨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죠?”

“심부름 때문에요.”

서준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대뜸 물었다.

“유이한 씨는 잘 있나요?”

이나는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오빠가 다쳤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예요? 제 뒷조사라도 하고 다니세요?”

“두 사람이 협회에 속해 있는 한 제가 모르는 건 있을 수 없죠.”

“오빠는 무사해요. 겉보기엔 말이죠.”

“속은 안 괜찮다는 말이군요.”

이나가 입을 꾹 다물자 서준이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분명 괜찮아질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나가 이한의 팀 쪽을 힐끗 보았다. 늘 당차던 이나에게서 처음 보는 불안한 눈빛이라 서준의 마음도 괜히 무거워졌다.

“이나 씨…….”

지이잉-

그때 진동으로 바꿔 놓았던 이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준이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꺼낸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병원?”

“병원이요?”

서준과 시선을 마주하던 이나가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유이한 환자 보호자분 맞으시죠?]

“그런데요?”

[그게…… 유이한 환자가……!]

다급한 말을 전해 들은 이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급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이나가 서준에게 말했다.

“저 오늘 일찍 퇴근합니다.”

“데려다주겠습니다.”

“네?”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서준을 이나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마침 저도 오늘 반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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