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49)

이나는 서준과 함께 그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이한이 없는 빈 병실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나가 옆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되레 억울하다는 듯 호소했다.

“상태 체크차 들어왔더니 갑자기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 저희 잘못이…….”

“CCTV는 확인해 봤어요?”

“확인해 봤습니다만…… 병원 밖으로 나간 것 외엔 아무것도…….”

이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당장 저 사람들의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달되기라도 한 것인지 정령들도 분노해 기운을 내뿜었다. 그 탓에 병원 관계자들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이나 씨, 진정하세요.”

서준이 이나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덕분에 뜨겁던 이나의 머리가 조금 식어 내렸다.

“……이럴 시간에 오빠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이나는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서준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병원 관계자들을 쳐다보았다.

“헌터 전문 병원의 일 처리가 이렇게 허술한지 미처 몰랐군요. 실망입니다.”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울컥한 의사가 따지려 했지만 그는 이어진 서준의 말에 경악했다.

“헌터 협회 본부장, 최서준이라고 합니다.”

“허, 헌터 협회 본부장님이요?”

헌터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인 만큼 이곳은 헌터 협회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즉, 서준은 그들의 위에 있는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의사를 보며 서준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본부장님! 본부장님!”

탁-

뒤늦게 이성이 돌아온 의사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서준은 그들을 떠난 뒤였다.

***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오빠……!”

병원을 나온 이나는 곧바로 정령들을 뿔뿔이 흩어 이한을 찾게 했다. 물론 이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이나도 리카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한을 찾았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알바 관두고 쭉 붙어 있을걸.”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빨리 이한을 찾는 것뿐이었다.

띠리리리-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병원에서 이한을 찾은 건가 싶었지만 액정 위로 뜬 이름은 안타깝게도 해진이었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전화였기에 이나는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천해진 씨,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바빠서…….”

[이나 씨, 오빠분 증세가 어떻다고 했었죠?]

바쁘다고 끊으려 했지만 해진 또한 다급하게 질문부터 꺼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나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제가 말을 걸어도 못 듣는 경우가 많았고…….”

[과연. 그래서 그런 거였구만.]

“뭔가 알아낸 거예요?”

이나가 다급히 물었다. 말을 정리하는 듯 잠시 대답이 없던 해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건 독이라기보다는 꽃가루에 가까워요.]

“무슨 뜻이에요?”

[요약하자면 그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에게는 보스 몬스터의 꽃가루가 심어져 있는데, 이게 신기해요. 보스 몬스터를 따르게 하는 힘이 담겨 있거든요.]

이나가 멈칫했다. 이를 못 느낀 해진이 말을 이었다.

[전에 오빠가 의식 없이 혼자서 어딘가로 가려고 했다고 했죠? 아마 그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을 거예요. 아직 예상이긴 한데, 이것에 당하게 되면 보스 몬스터가 끌어 들여 자신의 양분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닐지…….]

“좀 있다 전화할게요.”

[네? 이나 씨? 잠시……!]

뚝-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이나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있는 곳을 찾았어. 다른 애들 불러와.”

[알았어!]

곁에 있던 이즈가 다른 정령들을 부르기 위해 날아갔다. 그사이 이나는 리카에게 명령했다.

“리카, 전에 갔던 그 A급 던전으로 가자.”

[오빠가 거기 있어?]

“아마도.”

[알겠어!]

이나는 리카의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덕분에 순식간에 라플레인이 나왔던 A급 던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이트로 향하는 결계 앞에 안착한 이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딨지? 대체 어디에……!’

이한을 찾던 이나의 시선이 한 곳에 딱 닿았다. 그곳은 결계 안쪽이었다.

결계 안, 정확히는 게이트 앞이 무언가로 젖어 있었다.

“……피?”

오싹한 기분이 이나의 전신을 덮쳤다. 피로 젖은 땅을 본 이나는 곧바로 결계를 넘어 게이트로 달려갔다.

[이나야! 잠깐……!]

리카가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이나는 던전으로 넘어간 뒤였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리카는 뒤를 힐끗 보다가 게이트로 날아갔다.

[에라, 모르겠다!]

공간을 이동하는 느낌과 함께 리카도 던전 안으로 이동했다.

이제야 눈을 뜨려는데 이나의 외침이 벼락처럼 내려쳤다.

“오빠!”

번쩍 뜬 리카의 눈에 비척비척 어딘가로 걸어가는 이한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를 쫓아가는 이나도.

얼른 날아오는 리카를 향해 이나가 명령했다.

“리카! 이것들 몸통 다 날려 버려!”

식물형 몬스터들이 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나의 곁으로 온 리카가 바람의 날을 주변으로 퍼뜨렸다.

촤아아악-

몸통을 잃은 몬스터들이 재생하는 사이 이나는 이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붙잡았다.

“오빠!”

“…….”

그래도 이나의 목소리는 알아듣던 이한이 이번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를 보며 빨갛게 물든 발로 걸어갈 뿐이었다.

이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를 뒤로 잡아끌었다.

“오빠, 정신 차려!”

“가야 해……. 나를 찾고 있어.”

“오빠를 찾는 건 나고!”

이나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지만 이한은 들은 체도 안 했다. 그사이 재생을 완료한 몬스터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젠장. 다른 애들은 어디쯤 온 거야?”

이나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기다림을 안다는 듯 때마침 게이트가 빛났다. 누군가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이나가 그쪽을 보며 외쳤다.

“왜 이렇게 늦었……!”

[이나야!]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이즈가 이나에게 쪼르르 날아왔다. 이즈가 데려온 다른 정령들도 함께였다.

그리고.

“이나 씨!”

“……엥?”

이나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엉뚱한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눈치를 보고 있던 이즈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처음 A급 던전 들어갔을 때도 이나 혼자선 힘들어 보여서…… 그래서 내가 데리고 왔어. 마침 돌아오는 길에 보이더라구!]

이나는 화를 내야 할지 생각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사이 몬스터들을 몽땅 해치우고 그녀에게 다가온 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사하십니까?”

“네, 뭐…….”

“대체 여길 왜 혼자서 들어오신…….”

말을 잇던 그가 이나가 붙잡고 있는 이한을 보더니 멈칫했다.

“이분은 왜 이곳에 있습니까?”

“그 전에…… 이시현 헌터.”

“네?”

그녀를 따라 이곳에 들어온 시현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이나를 쳐다보았다. 이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 공범입니다?”

“네에?”

이나는 그에게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경위와 던전을 공략하고 난 뒤의 계획을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끝났을 때 그의 표정은 아주 볼만했다.

***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음.”

질문을 던진 시현도 받은 이나도 떨떠름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이한이 멍한 얼굴로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채로.

그리고 연결된 밧줄의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시현이었다.

이한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쓴 방법이긴 했지만, 이한을 마치 강아지 산책시키듯 꽁꽁 묶어 놓자 기분이 오묘해졌다.

“역시 저보단 이나 씨가 줄을 잡고 있는 편이…….”

“가족끼리 어떻게 그래요?”

이나가 질색하며 거절하자 별수 없이 시현이 계속 줄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이나가 중얼거렸다.

“대체 오빠는 결계를 어떻게 통과한 건지…….”

“헌터 협회 직원이기 때문입니다. 헌터 협회의 몇몇 팀은 던전 조사를 위해 결계를 통과할 수 있도록 등록을 해놓거든요. 그보다 이나 씨,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요. 보스 몬스터 잡고 얼른 이곳을 나가야죠. 짜증 나긴 하지만…… 오빠가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요. 하필 다른 곳으로 워프할 게 뭐람.”

이나는 멍하니 걸어가는 이한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몬스터들은 보스 몬스터의 독에 당한 이한을 동족으로 취급해 공격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의 보스에게 바칠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자 불쾌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여기까지 오느라 이한의 발에 상처까지 났다.

감히 자신의 오빠를 이렇게 만든 몬스터 놈을 이나는 도저히 가만둘 수 없었다.

이나의 눈빛이 험악해지자 시현이 이나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때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져 눈을 치켜뜬 시현이 이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나 씨!”

시현은 얼른 이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검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촤악- 콰릉-

[꺄하하! 내가 무찔렀다!]

[내 번개가 먼저였소만!]

갑자기 눈앞에서 바람과 천둥이 몰아치더니 튀어나온 몬스터가 갈기갈기 찢겨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멍하니 그것을 보던 시현은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이나가 심드렁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괜한 기우였군요.”

시현이 멋쩍어하는 얼굴로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즈가 가져온 밧줄을 다시 잡았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이나가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요.”

“네?”

“저와 오빠를 위해 여기까지 와 주고, 이번에도 저를 지켜 주려 했잖아요. 저도 염치는 아는 사람이니 감사 인사는 해야죠.”

시현이 멍한 얼굴로 이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나에게서 감사 인사를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무언가를 떠올린 이나가 아, 하고 탄성을 흘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가 하라고 한 건 잘 시행했어요?”

“아, 그건…….”

[이나야! 저기!]

때마침 들리는 이즈의 외침에 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구면인 꽃밭이 다시 한번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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