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후 이즈와 리카가 돌아왔지만 이나는 그 자리에서 내용을 듣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도 끝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대신 이나는 빠르게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두 정령을 채근했다.
“자. 이제 말해 봐. 가서 무슨 일이 있었어?”
이나와 다른 네 정령이 탁자 위에 올라선 이즈와 리카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준을 따라갔던 두 정령은 흥분한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게 있지, 본부장님을 따라갔거든? 근데 어어엄청 넓은 방에 들어간 거야!]
[우리 집보다 훠얼씬 넓었어!]
왠지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이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이즈가 이어서 말했다.
[거기에 막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본부장님이 들어가니까 다들 본부장님을 쳐다보는 거 있지?]
“협회 임원들인가 보네. 그래서?”
[회의라는 걸 시작했는데, 거기서 우리 친구들 얘기가 나왔어!]
정령의 알 얘기였다.
이나가 더 말해 보라는 듯이 쳐다보자 두 정령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전에 나와 리카가 친구들을 데려온 걸로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났나 봐.]
[그치만 우리 친구들인데!]
[맞아! 아무튼 그래서 우리를 잡겠다고 공식적으로 수배……령? 그런 걸 내리겠대!]
“……골치 아프네.”
이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물론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알을 모조리 부화시켜 증거를 없애면 되니까.
하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일은 점점 더 커질 터였다. 어쩌면 보다 못한 시현이 나설지도 몰랐다.
“어쩐다…….”
이나가 탁자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볼트가 외쳤다.
[뭐가 문제인가! 이 세계에 정령사는 그대밖에 없네. 즉, 이 세계의 정령은 모두 그대의 정령이지! 당당하게 알을 더 내놓으라고 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 난 내가 정령사라는 걸 숨기고 있다고.”
[나는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네. 그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정령사인데 왜 정체를 숨기는 건가? 혹시…… 우리가 부끄러운 건가?]
볼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다른 정령들도 모두 이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딘가 불안한 모습들에 이나가 픽 웃으며 어깨에 앉은 파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럴 리가 있어? 너희가 부끄러웠으면 함께 다니지도 않았겠지.”
그제야 정령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나는 숨겨 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잠시 꺼내며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내 문제야. 난 평범하게 살고 싶어. 이 세계의 유일하고도 특별한 정령사가 아닌, 그냥 유이나로서.”
[으음……! 어려운 말이로군. 우리에겐 그대가 말한 특별한 정령사도, 유이나도 모두 그대이니 말일세.]
볼트가 짤막한 팔로 팔짱을 끼며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다른 정령들도 의아하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령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인 모양이었다.
이나는 말없이 쓴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생각을 마친 볼트가 음, 하고 소리를 내었다.
[아무튼 정체를 숨기고 싶다는 그대의 뜻은 잘 알겠네.]
“잘 아는 거 맞아?”
[물론! 그런 의미에서 의견을 내겠네. 알들을 다시 돌려놓는 건 어떤가!]
“뭐?”
이나가 놀라서 되물었다. 다른 정령들도 마찬가지인지 소란스러워졌다.
[난 싫어! 어떻게 데려온 친구들인데!]
[마, 맞아요……!]
이즈와 리카, 윈티는 반대되는 의견을 표출했다. 파인과 네움은 중립으로 침묵을 택했다.
중립을 제외하면 일 대 삼. 그 불리한 상황에서도 볼트는 당황하지 않고 세 정령을 설득했다.
[이보게, 친구들. 잘 생각해 보게. 정령과 계약자는 서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관계네. 그러니 우리도 계약자의 뜻을 존중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우……. 그건 그렇지만…….]
[친구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데려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나는 어른스럽게 말하는 볼트를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렇게도 말할 줄 아는 애였나?’
조금 신기한 마음이 들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 볼트가 이번엔 이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계약자, 알들은 다시 돌려놓지. 멋대로 가져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남기면 분명 그들도 화를 풀 걸세.]
하지만 여전히 세상 물정은 모르는 정령이었다.
이나는 피식 웃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령 알들을 돌려놓는다고 해도 그걸로 수배령을 풀지는 않을 거야.”
[왜, 왜인가! 사과까지 하겠다는데!]
“이 세상은 생각보다 범죄에 민감하거든. 사과를 남긴다고 해도 이미 알 몇 개는 사라진 상태이고, 범인이 잡힌 것도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배령을 내리긴 할 거야.”
[거참 각박한 세상이군.]
볼트가 끄응,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볼트의 제안이 아예 쓸데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알들은 돌려놓자.”
[어차피 화를 풀어 주지도 않을 거라면서 굳이 왜?]
알을 가져온 장본인인 리카가 툴툴거렸다. 이나는 리카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알들을 돌려놓으면서 문제도 해결해 줄 사람이 있더라고.”
[그게 누군데?]
정령들이 단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귀여운 광경에 이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
헌터 협회 본부장실. 자신을 위한 방에서 서준은 책상 위에 있는 두 개의 미제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나는 한 달 전쯤에 이슈였던,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템으로 시민의 목숨을 구한 정체불명의 헌터 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번에 수배령을 내릴 예정인 정체불명의 알 도난 사건.
정체불명의 헌터와 알. 그 이름답게 사건의 당사자들은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아니지. 사실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서준은 핸드폰을 켜고 기사를 하나 검색했다. 기사의 사진을 보는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똑, 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 서준은 급히 핸드폰을 껐다. 그가 들어오라고 말하자 본부장실 앞을 지키고 있던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본부장님, 천조 길드장님께서 본부장님을 뵙고 싶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천조 길드장이요?”
예기치 못한 시현의 방문에 서준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시현이 그를 직접 찾아올 정도면 무슨 일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서준이 비서에게 말했다.
“들여보내세요.”
“네.”
잠시 후 비서가 나가고 대신 시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들은 몰래 한 번쯤 둘러보는 널찍한 본부장실임에도 시현은 무덤덤하게 서준만을 응시했다.
서준은 그런 시현을 본부장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시현이 그에게 사과부터 전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최서준 본부장님.”
“아닙니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죠. 어쩐 일인가요?”
머뭇거리던 시현이 갑자기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팔을 뻗어 허공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비록 일반인이지만 서준에게도 그 광경은 익숙했다. 협회의 헌터들이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낼 때 저랬기 때문이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저 주머니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시현이 서준의 앞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정체불명의 알입니다.”
“네? 이번에 새로 발견된 것인가요?”
“아뇨.”
시현이 재차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지 싶어 서준이 쳐다보자 그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협회에서 도난당한 정체불명의 알들입니다.”
“……뭐라고요?”
서준이 눈을 치켜떴다. 급히 주머니를 열어 확인해 보자 여러 개의 정체불명의 알이 들어 있었다. 몇 개는 사라진 상태였지만 모두 협회에서 사라진 것들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현을 응시했다.
“이걸 왜 천조 길드장님께서 가지고 계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며칠 전 일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현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서준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하지만 잠자코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것을 보며 시현이 말을 이었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수상한 자를 발견해서 쫓았습니다. 그자가 도망가더군요. 그런데 그 도망친 방향이…… 하필이면 A급 던전이 있는 쪽이었습니다.”
“도망친 자가 헌터였습니까?”
“네. 저를 피해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결계를 넘어 던전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시현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제가 뒤늦게 달려갔지만, 이미 그자는 몬스터에게 먹힌 상태였습니다.”
“이런…….”
“이 알들은 던전을 공략하고 난 뒤에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아마 그자의 소지품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출처를 조사하느라 늦어지게 된 점 죄송합니다.”
시현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서준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럼 그자가 협회에서 알을 훔친 범인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흠.”
서준이 주머니에 담긴 알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현은 어쩐지 긴장이 되어 들리지 않게 침을 삼켰다.
잠시 후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 사건 때문에 수배령을 내릴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그럴 필요는 없어졌군요.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이만 가 보셔도 좋습니다. 다른 일이 생긴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서준이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대뜸 물었다.
“그런데 용케 알의 출처가 협회라는 걸 아셨군요.”
그의 말에 시현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건…….”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3대 길드 중 하나인 천조 길드의 길드장이시니, 그 정도는 쉽게 찾아내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시현이 서준에게 들리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못 챈 서준이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발길을 붙잡아서 죄송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