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49)

“일? 무슨 일?”

도하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전혀 모르는 듯한 그 얼굴에 이나가 이어서 말했다.

“이시현 헌터가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본인이나 도하 씨한테 말하라고 해서요.”

“이시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도하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숟가락도 내려놓고 잠시 침묵하던 도하가 중얼거렸다.

“이시현 그 자식, 왜 일반인인 너한테 그런 말을…….”

그 말을 듣고 이나는 괜히 찔렸다. 그리고 시현이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나도 각성자니까 뭔가 수상한 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구나.’

도하는 그녀가 각성자라는 걸 모르니 속으로 시현을 욕하는 듯했다. 저 이글거리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도하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어. 무슨 일이 없는 건 아닌데,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든든하네요.”

도하는 일반인인 그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 걸 보면.

하긴. 생각해 보면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도 그녀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걸 알아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지 않았을 터였다.

‘음. 조금 고마울지도.’

이나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도하가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이시현하고는 어떻게 알아?”

‘다들 내가 누구랑 알든 무슨 상관인지.’

이나는 데자뷔가 느껴져 짜게 식었지만 대답은 해 주었다.

“전에 도움받은 적이 있어서 그 뒤로 조금 아는 사이예요.”

“흐음. 조금 아는 사이? 그럼 친한 건 아니지?”

“그렇게 친하진…….”

“그래. 그놈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왜요?”

“응? 왜냐니…….”

도하는 조금 당황한 듯 어버버거렸다. 잠시 대답을 생각하던 그가 띄엄띄엄 말을 내뱉었다.

“그야 이시현 그 녀석은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는 재수 없고, 무뚝뚝하고, 또…… 그래! 내 라이벌이잖아!”

“이시현 헌터가 도하 씨랑 라이벌인 게 제가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요?”

“그야 친한 사람 둘이 싸우면 네가 한쪽 편을 들기 곤란할 거 아냐. 그럴 바엔 그놈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고 내 편을 들어.”

억지 논리에 이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 아직도 싸우는 겁니까?”

“뭐야, 너!”

“왜 여기 계세요?”

도하와 이나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서준은 태연히 같은 테이블 자리에 앉으며 안쪽을 향해 외쳤다.

“여기 물회 하나 추가해 주시죠!”

“어머! 잘생긴 총각이 왔네. 잠시만 기다려요!”

식당 사장님이 호호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도하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우리 따라온 거냐?”

“그럴 리가 있나요. 지나가다 아는 얼굴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분명 아침엔 본부장실에 있었는데…….”

이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것을 들은 서준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침엔 그랬습니다만, 점심 먹고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싶었거든요.”

“행동력이 빠르시네요.”

“그야 협회에서 일하려면 행동이 빨라야 하는걸요. 그런데 제가 본부장실에 있었는지는 어떻게 아셨나요?”

뜨끔한 이나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이시현 헌터가 그쪽을 만나고 나오는 걸 봤거든요.”

“흐음. 그렇군요.”

서준이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때마침 사장님이 나타나 서준 앞에 물회를 내려놓고 갔다.

서준은 태연하게 숟가락을 들고는 물회를 호로록 먹었다. 그러더니 이나와 도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두 분 다 안 드시나요?”

“……먹을 거예요.”

이나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뒤이어 도하도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저녁 식사가 끝났다.

***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세 사람은 함께 속초의 해변을 걸었다. 그냥 가긴 아쉽다는 이나의 제안 탓이었다.

어차피 내일은 출근도 안 하고,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두 사람 덕에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나가 말했다.

“바다 보니 좋네요.”

“그러게.”

도하가 동조하며 아란을 쳐다보았다. 아란은 모래사장을 파헤치고 뒹굴며 노는 중이었다.

“야, 아란! 너무 파헤치면 이 동네 사람들한테 민폐니까 적당히 해야 한다!”

“크앙!”

아란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도하의 말을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사이좋은 두 파트너를 바라보던 이나가 서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본부장님은 아무 말씀 없으시네요. 별로예요?”

“아뇨. 그냥 낮에도 봤던 곳을 또 보려니 조금 지루해서요.”

“거 분위기 잘도 깨시네.”

이나가 작게 투덜거리자 그가 피식 웃었다. 다시 앞을 본 이나가 멀리 우뚝 서 있는 호텔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날 저런 곳에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자고 갈래요?”

“네?”

이나가 서준을 홱 돌아보았다. 서준이 그녀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마침 저 호텔 스위트룸을 잡을 수 있거든요.”

“……스위트룸이요?”

이나는 눈을 부릅떴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곧 현실이 들이닥쳤다.

“저 스위트룸에서 묵을 돈은 없는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인맥은 이럴 때 써야죠.”

이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 볼까, 하는 쪽으로 결심의 추가 살짝 기울어졌다.

도하와 아란이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오. 그거 좋네. 나도 스위트룸 잡아 줘.”

“크릉!”

이나는 짜게 식은 얼굴로 말했다.

“뭐야. 다 같이 자는 거면 사양할래요.”

“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큰 성인 남녀가 어떻게 한방에서 자요?”

도하의 얼굴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 난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제 알았으니 더 안 되겠네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서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유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무슨 뜻이에요?”

“저 호텔 스위트룸은 꽤 넓거든요. 한방이라고 칭하기엔 웬만한 집 부럽지 않을 정도의 넓이죠. 이나 씨 혼자 쓸 방은 충분합니다.”

스위트‘룸’이라길래 방도 하나인 줄 알았는데.

미처 몰랐던 이나는 조금 민망해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렸다. 솔직히 말하면, 좀 가 보고 싶었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긴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 벌어져도 내 안전은 정령들이 책임져 줄 테고.’

허공의 정령들을 힐끗 본 이나가 고민하던 기색을 지우고 말했다.

“그렇다면야 뭐…… 한번 가 보죠.”

“네. 모시겠습니다.”

서준이 장난스럽게 웨이터처럼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워낙에 품격 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고급 레스토랑의 웨이터처럼 보였다.

그렇게 서준의 안내에 따라 가 본 스위트룸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와. 우와……!”

새침하게 거절할 때는 언제고 이나는 눈을 빛내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말이 방이지, 사실 서준의 말대로 웬만한 집 부럽지 않은 넓은 공간이었다.

“욕조도 엄청 넓네요! 세상에. 커피 머신까지! 있을 거 다 있잖아? 이 방에 있는 것만 다 얼마야?”

“듣고 싶어요?”

“아뇨. 안 듣고 싶네요.”

칼같이 거절한 이나가 문을 닫을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 모서리에 털썩 앉았다.

“여긴 제 방이에요. 들어오면 안 돼요. 알았죠?”

“물론이죠.”

“하. 너무 좋다. 잘 쓸게요.”

숙박 비용을 대신 내 준 서준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가 픽 웃으며 스위트룸의 넓은 공간에 멍해져있는 도하를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정령들이 실체화했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흥분한 얼굴로 이나에게 말했다.

[이나야! 여기 엄청 넓어!]

“누릴 수 있을 때 누려. 내일이면 다시 집에 가야 하니까.”

[힝.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은 여기에 비하면 코딱지만 한데.]

“그 정도는 아니거든?”

이나가 울컥해서 말했지만 정령들은 들은 체도 안 했다. 그저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며 방 안을 구경할 뿐이었다.

[와! 여기서 바다가 보여!]

[건물들도 반짝반짝 예쁘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정령들을 보던 이나는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래. 누릴 수 있을 때 누려라.’

나도 그럴 테니.

이나는 하품을 크게 내뱉고 잠시 눈을 붙였다. 곧 새근새근 이나가 잠을 자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

“핫……!”

[어? 이나 일어났다!]

이나가 다시 눈을 뜨자 정령들이 그녀의 배 위에서 회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정령들이 꺄아,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상체를 일으킨 이나는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두 시 반이네.”

모처럼 스위트룸에서 묵게 됐는데 이렇게 자기만 하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나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경치 좋다.”

[이나야, 우리 밖으로 나가자!]

방 안에만 있기 답답한지 정령들이 나가자고 졸랐다. 그래서 이나는 방문에 귀를 대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밖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하자 문을 열었다.

“쿠울…….”

나가 보니 도하가 소파 위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이나는 살금살금 걸어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바닷바람이 문틀을 타고 들어왔다.

“흠냐…….”

도하가 뒤척거리자 이나가 멈칫했다. 그리고 서둘러 바깥으로 넘어가 문을 닫았다.

“새벽 바다도 괜찮네.”

날씨도 시원해서 꽤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에 걸렸다. 정령들도 마찬가지인지 신나게 날아다녔다.

[이나야, 우리 바닷가 갔다 와도 돼?]

“그래. 전처럼 사고 치진 말고.”

[알았어!]

날 수 있는 네 정령이 날지 못하는 네움을 데리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발코니에는 이나와 파인만 남게 되었다.

“너는 같이 안 가도 돼?”

[으응. 저긴 물의 기운이 넘쳐서 별로…….]

“하긴. 넌 불이니까.”

픽 웃은 이나는 파인과 함께 멀리서 반짝이는 정령들을 구경했다. 그때 뒤쪽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서준이 문을 살짝 열고서 물었다.

“안 자고 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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