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49)

“잠깐만요, 이나 씨.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벼락으로 저놈들을 일일이 다 떨어뜨린다고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들이라 피하는 몬스터도 있을 겁니다. 이나 씨의 힘도 크게 소모될 거고요. 보스 몬스터도 해치워야 하는데 큰 힘을 낭비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서준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볼트가 시무룩해졌지만 이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 팔짱을 꼈다.

“걱정 마세요. 일일이 다 떨어뜨릴 생각 없으니까.”

“네? 하지만 방금 다 떨어뜨려 버리겠다고…….”

“뭐 하러 귀찮게 일일이 떨어뜨려요? 한 번에 떨어뜨리면 되지.”

“네에?”

서준이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나는 씩 웃으며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지켜보시라고요. 이즈.”

[응?]

물의 정령 이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구름 좀 몰고 와. 전에 해 본 적 있지?”

[아!]

무언가 눈치챈 듯 이즈가 눈을 빛냈다.

[알겠어!]

“비구름……?”

서준은 더욱 의아해하는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이나는 여전히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잠시 후, 이즈가 끌어온 비구름이 그들이 있는 곳의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이나가 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슬슬 가죠.”

“네? 어디를요?”

갑작스러운 접촉에 흠칫하던 서준이 물었다. 이나는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는 듯한 어조로 바위산을 가리켰다.

“둥지가 있는 곳으로 가야죠.”

“저도요?”

“아무리 저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까지 지키는 재주는 없어요. 가까이 붙어 있는 편이 더 안전할 거예요.”

맞는 말이었기에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보스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는 둥지로 간다는 사실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맞잡은 손을 통해 그의 긴장을 읽은 이나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지켜 줄게요.”

평소의 뚱한 얼굴이 아닌 처음 보는 믿음직하고도 따스한 미소였다. 서준은 그것을 멍하니 보다 웃음을 흘렸다.

“믿음직하군요.”

“그럼 갑니다.”

이나가 눈짓하자 리카가 두 사람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쏜살같이 바위산 위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키익?”

“끼에엑!”

그들을 발견한 새 몬스터들이 뒤늦게 그들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사이 이나와 함께 둥지에 안착한 서준이 몬스터들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몬스터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알아요.”

이나는 대충 대답하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스탯 창.’

띠링!

⌜스탯 창

근력: 15

체력: 18

민첩: 16

마력: 94

※잔여 SP: 8⌟

지금까지 등급이 높은 던전을 꽤 공략해서 그런지 잔여 스탯 포인트가 8이나 쌓여 있었다.

이나는 늘 그랬듯 그걸 모두 마력에 투자했다. 지난번 속초에서 비를 내릴 때 마력이 꽤 소모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력 수치가 102가 되는 순간, 다른 시스템 창이 이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세계 최초로 마력 스탯 수치를 100을 넘기셨습니다!⌟

⌜위대한 업적으로 인한 칭호가 수여됩니다!⌟

‘응?’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나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서준이 그녀를 다그쳤다.

“이나 씨!”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나가 스탯 창을 끄고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나는 추가로 마력을 증진시켜 주는 ‘얼음 여왕의 목걸이’까지 착용한 뒤에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칭호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지.’

지금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저 몬스터들이 우선이었다.

먹구름은 하늘에 진하게 깔려 있었다. 이나는 두 정령, 볼트와 이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볼트, 먹구름 전체에 전기를 깔아.”

[알았네!]

전기의 정령 볼트가 이나의 명령을 수행했다. 먹구름 사이로 진하게 깔린 전기가 파지직 튀자 이나는 이번엔 이즈에게 명령했다.

“이즈, 뭘 해야 할지 알지?”

[응!]

이즈는 신난 아이처럼 먹구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끼익!”

“끼에엑!”

그것도 전기를 가득 머금은 비가.

빗방울에 맞은 새 몬스터들이 하나둘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볼트의 전기 탓에 충격과 함께 몸이 마비가 된 것이었다.

물론 이즈의 세밀한 컨트롤 덕에 둥지에 있는 그들에게는 빗방울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서준이 우수수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보며 감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단하군요. 설마 전기 비를 내릴 줄은…….”

“아직 감탄하긴 일러요.”

“네?”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이즈와 정령들이 어딘가를 빤히 보고 있었다.

특히 이나의 얼굴은 꽤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옵니다.”

“키이이익!”

빗방울을 뚫고 커다란 무언가가 둥지를 향해 다가왔다. 그것을 본 서준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이 몬스터가…….”

“네. 보스인 것 같네요.”

이나도 서준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는 다른 새 몬스터들과는 모습부터가 달랐다.

인간을 닮긴 했으나 새 모습에 가까운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보스 몬스터는 거의 인간의 모습이었다.

붉고 커다란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감히 내 둥지에 침입하고 내 아이들을 공격한 너희는 누구냐!”

“말을……!”

서준이 놀란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이나도 꽤 놀랐다.

“어쭈. 지능이 있는 놈인가 보네?”

지금껏 말을 할 줄 알았던 몬스터는 없었기에 이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서준을 제 등 뒤에 두었다.

“이나 씨.”

“제 곁에서 떨어지면 안 돼요.”

서준은 이나의 뒷모습에서 긴장을 읽어 냈다. 그래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는 보스 몬스터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물었다.

“네가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가?”

“이 구역에서 가장 강한 자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맞는다.”

놈은 찌푸린 눈으로 바위산 밑으로 떨어진 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이어서 말했다.

“내 이름은 하르피아.”

보스 몬스터, 하르피아는 제 둥지에 침입한 이나와 서준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아이들을 건드린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그와 동시에 이나를 향해 퍼덕인 날개에서 깃털이 날아왔다. 빳빳한 깃털은 이나와 서준이 피한 자리에 파바박 꽂혔다.

“키에에엑!”

두 사람이 공격을 피한 것이 분하다는 듯 하르피아가 거친 목소리로 울어 젖혔다. 그리고 이번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나는 이번에도 바람의 힘을 빌려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그걸 예상이라도 했는지 하르피아가 곧바로 그녀를 향해 날개를 휘둘렀다.

땅에 꽂힐 정도로 날카로운 깃털을 가진 날개였다. 저것에 맞으면 꽤 치명상일 터였다.

그렇게 판단한 이나는 네움에게 명령했다.

“네움, 방패!”

이미 준비하고 있던 네움이 기다렸다는 듯이 흙의 방패를 펼쳤다. 하르피아의 날개는 퍽, 소리를 내며 방패에 부딪쳤다.

“흥! 잔꾀를 쓰는 놈이로구나!”

코웃음을 터뜨린 하르피아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잔꾀는 나도 쓸 수 있다!”

“뭐?”

수상함이 물씬 풍기는 말에 이나가 멈칫했다.

히죽 웃은 하르피아가 양 날개를 쫙 펼쳤다. 그러자 그 앞에 진이 생겼다.

어디서 많이 본 형태에 이나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어디 내 잔꾀도 피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하르피아의 말과 함께 진 안에서 구 형태의 불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나는 서둘러 이즈에게 명령했다.

“이즈! 물의 막!”

[알았어!]

이즈가 서둘러 이나의 눈앞에 물로 이루어진 두꺼운 막을 펼쳤다. 날아온 불의 공은 물의 막에 부딪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수증기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하르피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빳빳한 깃털이 수증기를 뚫고 이나에게 날아왔다.

핏- 핏-

“윽……!”

“이나 씨!”

리카가 순간 바람을 일으켜 살짝 빗겨 가긴 했지만 깃털은 이나의 오른쪽 팔과 왼쪽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이나의 뒤에 있어 다치지 않은 서준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피가……!”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나는 서준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서준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더 괜찮지 않은 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에요.”

이나는 공중에 뜬 채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하르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능이 높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마법을 쓸 수 있을 줄이야.”

“마법? 설마 아까 그게 마법이었습니까?”

“네.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예요. 공중에 떠 있어서 공격을 맞히기도 쉽지 않고, 마법도 쓸 줄 아니까요.”

서준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나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차라리 저 녀석처럼 공중에서 싸우면 할 만할 것 같은데…….”

문제는 서준이었다. 그녀와 떨어지게 된 서준을 하르피아가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몬스터들이 언제 마비가 풀려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정령을 두고 가자니 나와 떨어지면 정령들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게 걸리고.’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고민하는 그녀를 지켜보던 서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나 씨, 저를 두고 가세요.”

“네?”

이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서준을 쳐다보았다.

그사이 하르피아는 거대한 공격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서준이 다급히 말했다.

“저는 알아서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이 이상 이나 씨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어요.”

이나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하지만 서준은 진지했다.

“이나 씨, 어서……!”

“진짜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

“뭐라고요?”

예상한 답과 다른 말이 나오자 서준이 눈을 치켜떴다. 이나는 짜증스러워하는 얼굴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렇게 할 거였으면 본부장님을 따라 이 던전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

“제가 말했죠? 지켜 준다고.”

이나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말고, 저 한 번만 믿어 보세요.”

서준은 멍한 얼굴로 이나의 눈부신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르피아가 코웃음을 쳤다.

“일개 인간에 불과한 것들이 말이 많구나.”

하르피아는 준비하고 있던 거대한 공격 마법을 시전하며 외쳤다.

“이제 그만 사라지거라!”

그녀의 앞에 수많은 마법진이 펼쳐지며 그 안에서 운석들이 튀어나왔다.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콰과광!

운석이 둥지에 내리꽂히며 바위산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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