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49)

운석의 비는 바위산을 반쯤 파괴해 버렸다. 그 위에는 파괴의 영향으로 먼지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하르피아는 날개를 가볍게 휘저었다. 날개가 큰 탓에 순식간에 바람이 일어나 바위산을 덮은 먼지를 모두 날려 버렸다.

“음?”

먼지가 날아간 자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하르피아가 허, 하고 헛숨을 내뱉었다.

“정말 끈질긴 놈이로구나.”

“누가 할 소릴.”

먼지 탓에 가볍게 기침을 한 이나가 하르피아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주위엔 커다란 얼음 조각이 가득했다. 운석이 떨어지기 직전에 흙과 얼음으로 두 겹의 보호막을 만들어 몸을 보호한 것이었다.

설마 바위산 전체를 파괴할 줄은 몰랐기에 보호막째로 조금 구르긴 했지만 이 정도면 무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나를 노려보던 하르피아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다 곧 이나의 옆에 있던 서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네 친구는 어디 갔느냐?”

“아, 본부장님? 먼지가 짙게 깔려 있을 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지.”

“그래? 그럼 내 아이들을 풀어 찾도록 시켜야겠구나.”

“소용없어. 본부장님 곁엔 내 동료가 붙어 있거든.”

“그 쪼끄만 아이들 말이냐? 웃기는구나. 그 작은 아이들이 무얼 할 줄 안다고.”

“네 말대로 얘네들은 나랑 떨어지면 약해지지. 하지만.”

이나는 하르피아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젠 아니야.”

“뭐라?”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하르피아를 덮쳤다. 그러는 동안 이나는 서준을 데리고 대피한 네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안전한 곳에 도착.]

“좋아.”

“뭐가 좋다는 거지?”

네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하르피아의 눈에는 이나가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비쳤다. 이나는 굳이 설명해 주지 않고 하르피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널 해치울 수 있게 돼서 좋다고.”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하르피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마법을 펼쳤다. 아까의 그 거대한 마법으로 인해 마력 소모량이 커 그리 엄청난 마법은 아니었지만 같은 공격 마법이었다.

처음에 보았던 불의 공이 이나를 향해 날아왔다.

“내 너를 내 아이들의 먹이로 만들어 주겠다!”

이나는 굳이 물의 막을 펼칠 것 없이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하늘은 하르피아의 영역. 새도 아닌 그녀가 공중으로 온 것이 하르피아는 우습고도 기꺼웠다.

“하늘에서 나를 상대하겠다니 웃기는구나.”

이나는 말없이 허공에 얼음 송곳을 띄워 하르피아에게 날렸다. 얼음 송곳이 꽤 빠른 속도로 날아왔지만 하늘이 주 영역인 하르피아는 거뜬히 피했다.

“이깟 잔재주쯤은……!”

챙-

“응?”

그때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하르피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지나친 얼음 송곳이 잘게 부서지더니 파편이 여러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부는 하르피아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이런……!”

작은 파편이지만 꽤 날카로웠다. 하르피아는 서둘러 날개를 휘저어 얼음 파편들을 날려 버렸다.

쿠르릉- 콰앙!

그러나 그 짧은 틈을 이용해 이나가 그녀에게 벼락을 내렸다.

다행히도 벼락이 내리꽂히기 직전에 천둥소리를 들은 하르피아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했다. 하지만 날개 끝이 까맣게 그을리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이……! 내 아름다운 날개가!”

“아쉽네. 맞힐 수 있었는데.”

“네 이놈!”

분노한 하르피아가 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눈앞을 향해 날아오는 발톱이 위협적이었지만 이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어차피 하르피아를 해치워야 하는데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눈앞에 얇은 물의 막을 여러 겹 만들어 하르피아의 속도를 줄였다. 막을 통과할수록 제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 하르피아는 마지막 물의 막을 통과하는 순간 날개를 앞으로 휘저었다.

“몸에 구멍을 내 주마!”

빳빳한 깃털이 이나의 코앞에서 날아왔다. 이번엔 파인이 나섰다.

화르륵-

깃털은 이나에게 닿기 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거의 동시에 벼락이 다시 한번 하르피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앙!

“키에에엑!”

벼락은 정확히 하르피아의 오른쪽 어깨에 명중했다. 하르피아가 주춤하는 틈을 타 또다시 얼음으로 된 송곳이 날아왔지만 정신을 차린 하르피아가 물러선 탓에 맞지는 않았다.

‘뭔가 이상해.’

하르피아는 뒤로 물러서며 이나를 힐끗 보았다.

‘분명 내 공격을 막지도 못했는데!’

반응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 사실에 하르피아는 혼란을 느꼈다.

한편 이나는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들에 정신이 없었다.

[아깝다! 맞힐 수 있었는데!]

[강한 몬스터는 다르네요……!]

[더욱 노력하게, 윈티. 그럼 다음엔 이 몸처럼 맞힐 수 있을 것이네!]

이나는 결국 참다못해 속으로 말했다.

‘조용히 좀 해.’

[미안해, 이나야. 조금만 이해해 줘. 우리 모두 신나서 그래.]

[맞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을 맞이했는걸!]

[옳소!]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그만두라 말할 수 없었다. 정령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 탓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원하던 것, 계약을 맺었으니까.

운석이 떨어지기 전, 이나는 처음으로 계약의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그녀와 정령들의 호흡이 좋아 딱히 계약이 필요치 않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보다 더 빠른 반응 속도가 필요했다.

그 방법이 바로 계약이었다. 계약을 하게 되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정령들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굳이 접촉을 하지 않아도 마나를 공유할 수 있어 더욱 안전하게 서준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

‘사실 계약은 얘네들을 만나고 난 뒤부터 정해진 운명이었고.’

그렇게 이나는 계약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잠겨 있던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아래 정령과 계약이 가능합니다. 계약을 요청하시겠습니까?

계약 가능 정령: 이즈, 리카, 파인, 볼트, 윈티, 네움⌟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나는 시스템 창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요청한다.”

⌜계약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러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정령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응?]

[이건…….]

시스템 창을 가만히 보던 정령들이 흥분한 얼굴로 외쳐 대기 시작했다.

[수락! 수라아아악!]

[이나야, 정말 우리랑 계약하는 거야?]

[신난다!]

당연하게도 정령들은 계약을 받아들였다.

그 뒤 하르피아가 마법을 펼쳤고, 그렇게 이어진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생각을 공유하는 덕에 이나의 반응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졌다. 하르피아가 당황할 만도 했다.

그리고 이나는 지금 이 흐름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윈티.”

[네!]

계약의 효과로 한층 밝아진 윈티가 이나의 생각을 읽고 능력을 썼다. 그러자 물의 막을 통과하느라 젖어 있던 하르피아의 날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뭣……!”

당황한 하르피아가 날개에 엉겨 붙은 얼음을 떼어 내려 했다. 날개가 얼었다고 추락하지는 않았으나 꽤 거슬렸다.

“불편한가 보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하르피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이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난 이제 살 것 같은데.”

“네 이놈……!”

하르피아가 발톱을 휘둘렀다. 이나가 뒤로 훌쩍 피하며 하르피아에게 물었다.

“그 얼음 조각들 떼어 내고 싶지?”

“무슨 짓을 하려고……!”

“내가 해 줄게.”

하르피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나는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어디 네가 했던 공격 맛 좀 봐.”

이나의 손등에 앉아 있던 파인이 주변에 불의 공을 만들어 냈다.

하르피아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자신이 펼쳤던 마법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하르피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이나가 웃으며 불의 공을 날렸다. 하르피아는 같은 마법으로 대항했다.

퍼엉!

두 불의 공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터져 나갔다. 그 탓에 농축되어 있던 어마어마한 열기가 주변으로 퍼졌다.

하르피아는 열기로 날개의 얼음이 녹은 틈을 타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런데 가느스름하게 뜬 시야에 제 쪽으로 날아오는 불의 공이 보였다.

“어떻게……?”

하르피아의 물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불의 공은 정확히 하르피아를 명중시켰다.

“키에에엑!”

몸을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하르피아가 몸부림을 쳤다. 이나는 추락하는 하르피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야 당연하지. 파인의 불은 네까짓 게 만들어 낸 불보다 더욱 강력하니까.”

[파인 대단해!]

[헤헤.]

친구들의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파인을 보며 이나는 픽 웃었다. 그리고 하르피아가 추락한 반쯤 남은 바위산으로 내려갔다.

하르피아를 처치했나 하는 의문은 굳이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마침 떠오른 시스템 창 덕분이었다.

띠링!

⌜S급 임시 던전 ‘하르피아의 둥지’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하르피아의 깃털’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르피아의 발톱’을 획득하셨습니다.⌟

⌜‘열풍(A)’을 획득하셨습니다.⌟

⌜5SP를 획득하셨습니다.⌟

***

갑작스레 생긴 거대한 싱크홀 탓에 던전 밖은 난리였다.

싱크홀 주변을 바리케이드로 막아 기자 등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몇몇 협회 직원들과 헌터들만이 싱크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닫힌 게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도하에게.

“청호 길드장님 저대로 놔둬도 되는 거야? 벌써 이틀째잖아.”

“내버려 둬.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아.”

주변 사람들이 걱정스레 그를 보았지만 도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흉흉한 기세는 더욱 강해져만 갔다.

“……!”

그때 오늘 처음으로 도하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부릅뜬 눈으로 게이트를 응시했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사람들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게이트가 빛나기 시작했다. 던전과 연결, 즉 게이트가 다시 열린 것이었다.

혹시 던전 브레이크인가 싶어 주변 헌터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게이트 바로 앞에 있던 도하는 커다래진 눈으로 빛나는 게이트를 응시했다.

“너……!”

“어?”

서준과 함께 게이트에서 나온 이나가 반가워하는 얼굴로 도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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