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49)

반갑게 인사했으나 돌아온 것은 멍한 눈빛의 시선들이었다. 도하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도.

뻘쭘해진 이나는 흔들었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사이 도하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옆에 있던 서준이 움찔했지만 도하는 개의치 않고 이나의 얼굴을 양옆으로 홱홱 돌려 보았다. 그러더니 물었다.

“너…… 정말 유이나야?”

이나는 순간 황당해져서 되물었다.

“그럼 누구로 보이는데요? 그새 시력에 문제 생겼어요?”

“태연한 소리 하는 걸 보니까 유이나 맞네.”

도하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깜짝 놀란 이나가 그를 일으키려 하자 도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진짜…… 네가 잘못된 줄 알고…….”

“……그런 일 없으니까 어서 일어나요. 사람들 쳐다보잖아요.”

이나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도하를 다시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복잡한 얼굴로 이나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고 있자니 어쩐지 쑥스러워져서 이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벌써 밤이네요.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예요?”

“너희가 던전에 들어간 지 하루 정도 지났어.”

“비슷하네요. 저희도 저 안에서 하룻밤 노숙했거든요.”

“하룻밤 사이에 스위트룸에서 자다가 밖에서 노숙하는 처지가 됐네.”

“그러게요.”

쓰게 웃은 이나가 오른손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하가 갑자기 치켜뜬 눈으로 이나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이건 뭐야? 다쳤어?”

도하가 가리킨 것은 하르피아의 깃털에 당해 생긴 상처였다.

그의 시선은 곧 이나의 왼쪽 옆구리에도 향했다. 눈빛이 흉흉해지자 이나가 서둘러 말했다.

“큰 상처는 아니에요.”

“큰 상처가 아니라뇨. 몬스터에게 당한 상처니 반드시 치료해야 합니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서준이 끼어들었다. 그가 꺼낸 말 탓에 도하는 곧 이성이 끊어질 듯했다.

양옆에서 그러자 이나는 난감하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때 도하의 입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그 자식…… 절대 가만 안 둬.”

“그 자식?”

도하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도하는 대답해 주지 않고 대신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치료가 먼저야. 설명은 그다음에.”

***

뚜르르르-

그림자가 구석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음습한 모습을 보며 에덴 길드장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자신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에게서 풍기는 무겁고도 비릿한 기운은 일반인인 그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

달칵-

그때 그림자의 핸드폰 스피커 너머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의뢰 완료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내가 준 건 써 봤어?]

“네.”

[효과는 어땠어? 네가 말한 걸 토대로 사무엘 그 자식한테 전해야 하니까 자세히 좀 말해 봐.]

“보스께서 주신 마도구를 작동시킨 결과 폭발과 함께 약 80에서 100m가량의 싱크홀 발생. 그리고 S급의 임시 던전이 생겨났습니다.”

[S급? 생각보다 강력한데. 역시 …… 서 그런가.]

뒷말은 작아서 들리지 않았지만 그림자는 그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얌전히 다음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 후, 생각을 끝마친 그의 보스가 말했다.

[알았다. 의뢰비 챙겨서 이만 돌아와.]

“네.”

통화를 끊은 그림자가 에덴 길드장 앞으로 돌아왔다. 쭈뼛거리는 그를 향해 그림자가 물었다.

“의뢰비는 어디 있지?”

“……동생 녀석이라면 지금쯤 헌터 전문 병동에 있을 겁니다. 자세한 위치는 여기에 적혀 있습니다.”

에덴 길드장이 동생이 있는 곳이 적힌 쪽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림자는 그것을 확인한 뒤 품에 집어넣었다.

용건을 끝냈다는 듯이 뒤도는 그를 에덴 길드장이 붙잡았다.

“잠시만요. 그 여자는 정말 죽은 게 맞습니까?”

“S급 던전에 들어갔다. 일반인이라면 살아 돌아올 수 없어.”

“그, 그렇군요.”

그를 붙잡은 손에서 힘이 주욱 빠졌다. 복수가 끝났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허탈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림자는 에덴 길드장을 두고 사무실을 나오려 했다. 때마침 에덴 길드장이 헛헛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기 위해 TV를 켜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고속 도로 한복판에 갑작스러운 싱크홀 발생과 함께 생긴 던전. 사고로 던전 안에 들어갔던 두 사람이 드디어 구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림자가 멈칫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에덴 길드장도 뉴스가 전하는 바를 눈치채고 눈을 부릅뜬 채 그를 쳐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운 상태였다.

그림자는 TV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에 비친 것은 그가 만들어 낸 싱크홀이 맞았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가 알기로 유이나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같이 있던 헌터 협회 본부장이라는 남자도 각성자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혹시 던전 안에서 각성하기라도 한 건가?’

가능성이 있었다. 간혹 위기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각성하는 자가 나오기도 하니까.

그림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직접 처리할 것을.’

그의 보스가 마도구를 한번 실험해 보라고 던져 준 탓에 일을 같이 끝내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침 타깃이 주변에 사람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공간에 있어 겸사겸사 마도구를 사용했을 뿐인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림자가 TV 화면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가 뭐라도 변명하기를 기다리던 에덴 길드장이 결국 기다리다 못해 외쳤다.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

“이보세요!”

“시끄럽군.”

“컥!”

짜증스럽다는 듯 중얼거린 그림자가 에덴 길드장의 목을 움켜쥐었다.

길드장이 발버둥을 쳤지만 일반인이 각성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림자는 그를 살벌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스께선 의뢰비를 챙기라고 했지, 의뢰자를 가만히 두란 말은 하지 않으셨다.”

“무, 무슨……!”

우둑!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에덴 길드장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그림자는 길드장을 소파 위에 던져두고 몸을 홱 돌렸다.

“유이나. 아니면 헌터 협회 본부장인가.”

머릿속에 기록해 두었던 것을 다시 꺼내며 그림자가 중얼거렸다.

의뢰를 제대로 끝마치지도 않고 돌아가는 것은 보스의 명예에 큰 훼손을 입히는 일이었다. 비록 의뢰자는 죽었어도 타깃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무실에는 공허한 TV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다행히 상처 부위에서 독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처가 벌어질 수 있으니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나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의사가 고개를 살짝 까딱인 후 병실을 나갔다.

이나는 신기해하는 눈으로 병실을 둘러보았다. 팔과 허리를 살짝 베인 정도로 1인실 병실을 사용하고 있자니 양심이 살짝 아파 왔다.

‘하지만 뭐, 이것도 인맥 덕이니까.’

서준이라는 인맥을 얻은 이나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확실히 단독으로 쓰는 병실이라 그런지 침대도 더 좋은 걸 쓰는 것 같았다.

똑, 똑.

의사가 나가기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괜히 찔려 이나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오세요.”

문이 드르륵 열리며 서준과 도하가 함께 들어왔다. 그녀와 달리 둘 다 표정이 우중충했다.

두 사람은 그녀를 보자마자 동시에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좀 어때?”

그러더니 흠칫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괜히 우스운 기분이 들어 이나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두 분은요?”

“저야 이나 씨가 지켜 줬으니까요.”

“나도 뭐 딱히 한 것도 없고.”

서준은 머쓱해하는 미소를 지었고, 도하도 시선을 회피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도하가 갑자기 발끈하며 외쳤다.

“그보다 남 걱정할 때냐? 여기서 다친 건 너뿐이라고.”

“맞습니다. 상처는 좀 어떻다고 합니까?”

서준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로 물어 왔다. 이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괜찮아요. 보여 줘요?”

“보여 주긴 뭘 보여 줍니까!”

서준이 얼굴을 확 붉히며 이나를 말렸다. 이나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팔을 들어 올렸다.

“팔에 있는 상처 보여 준다는 뜻이었는데.”

“…….”

“옆구리라도 까 줘요?”

“그런 거 바란 적 없습니다.”

서준이 여전히 홧홧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도하가 옆에서 그런 서준을 경멸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이나는 팔에 돌돌 감긴 붕대를 손으로 쓸며 의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검출된 독도 없고, 상처 벌어지지 않게 조심만 하래요.”

“S급 던전에 들어간 것치고 이만하면 정말 다행이군요.”

서준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나도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더 다행인 것은 그 S급 던전이 두 사람이 나오자마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간혹 이런 던전이 있었다. 갑자기 출현했다가 공략이 끝나면 다시 사라지는.

사람들은 이런 던전을 두고 ‘임시 던전’이라 칭했다.

물론 공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골치 아픈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나 이만하면 많이 기다렸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도하가 끼어들었다. 그는 이나와 서준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난 너희한테 들어야 할 게 있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나 또한 그에게 들어야 할 게 있었다.

도하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대체 S급 던전을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어제 말한 그 자식이란 게 대체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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