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149)

질문이 겹치자 두 사람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도하가 입을 열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야.”

“좋아요. 인정.”

도하의 질문이 0.1초 정도 빨랐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듣게 될 대답인데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나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공략했어요.”

물론 그 대답이 친절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도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공략했다는 거야? 그것도 일반인인 두 사람이. 설마 각성한 거야?”

이나는 대답 대신 서준을 힐끗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눈빛으로 대신 대답했다.

‘어차피 그냥 넘어갈 사람도 아닌데, 그냥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게다가 도하에게는 들어야 할 것이 있었다.

괜히 숨기려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나았다.

“뭐야? 왜 둘이 시선을 주고받는데?”

도하가 수상하다는 눈으로 이나와 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서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설마 네가 각성한 거냐?”

“전 일반인이니 이거 놓으시죠.”

“그 말은…….”

“네. 제가 각성했어요. 안에서 각성한 것은 아니지만.”

이나가 태연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도하는 순간 놀란 빛을 띠더니 그녀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이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꽤 말이 길어졌다.

도하는 물론 서준도 옆에서 얌전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대화 내용이 어제 일까지 다다르자 그제야 도하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 거구만. 그럼 그 정령이란 것들은 어디 있어?”

[여깄지롱!]

“우왁!”

눈앞에서 갑자기 이즈가 튀어나오자 도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주춤했다. 서준은 그래도 한 번 봤다고 놀라진 않았다.

이즈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에헴! 난 이나의 계약자이자 물의 정령 이즈 님이시다!]

계약자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걸 보니 그녀와 계약한 게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었다.

이나는 픽 웃으며 정령들이 자기소개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하는 얼떨떨한 얼굴로 정령들의 소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얘네가 정령?”

[응! 맞아!]

“허 참. 신기하네.”

그때 뒤에서 얌전히 있던 아란이 슬금슬금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크릉.”

[앗! 아란이다! 안녕!]

“크릉!”

정령들이 아란의 등 위에 올라타며 꺄르륵 웃었다. 아란과 정령들이 함께 노는 모습을 도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나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그리고…… 도하 씨에게 할 말이 있는데요.”

“뭔데?”

“그게……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닌지라…….”

이나가 뺨을 긁적이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왠지 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도하가 그녀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뭔진 몰라도 말해 봐. 들어 줄 테니까.”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는데.”

“화 안 낼게.”

“……정말요?”

“응. 네 말엔 화 안 내.”

마치 자기가 한 말은 지킨다는 듯 단호한 어투였다.

도하에게 이런 면모도 있구나 싶어 서준이 그를 신기해하며 바라보는 사이 이나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나의 허벅지까지 오는 커다란 주머니였다.

이게 뭐지 싶어 두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자 이나가 대답했다.

“마정석이에요.”

“마정석?”

“전에 청호 길드에서 사라진 마정석에 대한 값이에요. 500억 상당의…….”

“그거 네가 한 거였어?”

도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나랑 내 길드원들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나는 괜히 찔리는 기분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요. 정령들이 제가 말릴 새도 없이 저지른 일이라……. 혹시 많이 화났어요?”

“흐 은 느쓰.”

“화내는 것 같은데.”

“으느르그.”

도하는 올라오는 화를 삼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탓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도하가 매우 무시무시한 얼굴이 되어 버려서 이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서준이 끼어들었다.

“이젠 청호 길드장께서 대답해 주시죠.”

“므를?(뭐를?)”

“어제 말한 그 자식이 대체 누구입니까? 듣자 하니 이 일과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요.”

“맞아요. 이제 도하 씨가 대답해 줄 차례예요.”

이나까지 합세하자 도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전에, 이 일을 같이 들어야 할 사람이 있어.”

“누구요?”

“마침 오네.”

도하와 아란이 동시에 문 쪽을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닿음과 동시에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시현 헌터?”

“……정말이지.”

시현은 들어오자마자 복잡한 눈빛으로 이나를 훑었다.

“사건 사고엔 빠지지 않는군요.”

“제가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이나가 작게 투덜거렸지만 시현은 모른 체하며 실체화한 정령을 힐끗 보았다.

“두 분도 이나 씨의 정체를 알게 된 겁니까?”

“네.”

“저한텐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그렇게 모른 척해 달라고 하시더니.”

“사람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이나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녀와 시현을 번갈아 보던 도하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지금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

“안 그래도 지금 말하려고 했다.”

시현이 도하를 째려보았다. 도하가 발끈하려 했지만 그 전에 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 한국에서 살인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습니다.”

“살인 사건이요?”

“네. 외부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범인은 아마도 헌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나는 물론 서준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특히 헌터나 던전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서준의 심정은 더욱 무거웠다.

“그 사건들이 결국 헌터가 벌인 사건으로 판정이 난 겁니까.”

“아직 예상입니다만, 저와 청호 길드장의 소견으론 그렇습니다.”

“하아.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서준이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에덴 길드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망했습니다.”

“네?”

익숙한 칭호에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도하 또한 시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설명을 바라는 세 시선에 시현이 설명을 이었다.

“발버둥 치거나 물건이 부서진 흔적 없이 깔끔하게 목이 비틀린 것으로 보아 이 또한 헌터의 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범인은 에덴 길드장의 지인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이나가 급하게 시현의 입을 막았다. 세 사람의 시선이 꽂히자 이나는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 얘기를 왜 제 앞에서 하시는 거예요? 전 외부인인데요.”

“그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해 줄 참이었어.”

도하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해 주었다.

“나와 이시현은 그 사건들의 범인이 너와 최서준을 던전으로 끌어 들인 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무슨 말이에요, 그게? 저와 본부장님을 던전으로 끌어 들이다뇨? 그거 그냥 사고가 아니었어요?”

“아냐. 싱크홀이 생기기 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놈이 있었어.”

아직도 생각만 하면 분한지 도하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내 감이 말하기를, 그놈이 싱크홀과 함께 던전을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해. 갑자기 싱크홀이 생겼는데 전혀 당황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를 노리고 있었어.”

이나와 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현 또한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또한 예상이긴 합니다만, 에덴 길드장이 연루된 것으로 보아 이나 씨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닐지…….”

“하아. 진짜…….”

이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을 삼키는 사이 시현이 도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놈과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 맞아.”

“어땠지?”

“등급은 최소 B급. 무기는 단검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사용했어.”

얌전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나가 문득 드는 의문에 고개를 들었다.

“등급이 B급 이상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예요?”

“일부러 봐주면서 싸웠지. 등급을 가늠해 보려고.”

이나는 조금 감탄했다. 전투광으로 유명한 도하가 그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해 파악하려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깨를 으쓱하던 도하는 무언가 또 생각난 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외국인인 것 같았어. 이상한 로브를 걸치고 있어서 외양은 보지 못했지만.”

“외국인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날 보고 그러더라고. 한국의 청호 길드장은 힘이 세다더니 정말이라고. 한국인이면 굳이 ‘한국의’라는 단어는 붙이지 않잖아?”

“확실히. 대충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되는군.”

시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에덴 길드장이 이나 씨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외국의 뒷세계 헌터를 고용한 건가.”

무거운 침묵이 병실 안 분위기를 내리눌렀다. 특히 당사자인 이나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도하는 이나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 그 자식이 너한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가 지켜 줄…….”

“개×끼…….”

“응?”

무언가를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도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아주 ××해서 ××해 버릴 놈. 감히 나는 물론이고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건드려? 에덴 길드장 그놈만 죽일 것이지! 만나기만 해 봐. ××해서 ××해 버릴 테니까! 아오!”

분노를 못 참은 이나가 침대에서 벗어나 벽을 발로 찼다. 물론 등급에 비해서 근력이 일반인 수준이라 벽에는 흠집조차도 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씩씩거리는 이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나가 고개를 홱 돌리자 동시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자식 반드시 잡죠. 그리고 발견하면 무조건 저한테 말해 주세요. 알았죠?”

“아, 알겠습니다.”

기세에 눌려 시현이 얼떨결에 대답해 버렸다.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이나의 굳은 표정이 순간 풀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병실을 나가며 말했다.

“전 밥이나 먹고 와야겠어요. 가자.”

[와아! 밥이다!]

아란과 놀던 정령들이 이나를 따라 나갔다. 아란도 눈치를 보다 이나를 따라 나갔지만 세 사람은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와씨.”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도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개멋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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