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49)

이나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전히 한 사람이 병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시현 헌터, 여기서 뭐 해요?”

그녀를 발견한 시현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식사하고 돌아오는 길입니까?”

“네. 근데 왜 수상하게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다른 두 사람은요?”

“수상하다니……. 이래 봬도 나름 병실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시현이 쓰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최 본부장님은 협회에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청호 길드장이 혹시 몰라 호위차 따라갔고요.”

“그렇구나.”

이나는 별생각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현은 누가 이나의 곁에 남을 것인가로 도하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다는 것은 꼭꼭 숨겼다.

서준을 따라가는 도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는 사실도.

이 사실을 모르는 이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 혼자 있어도 안 죽을 자신은 있는데요.”

“이나 씨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범인을 잡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하긴. 그러네요.”

이나는 창문 앞에 섰다. 깜깜해진 밖을 보며 그녀가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이나 씨는 무섭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이나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현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군가가 이나 씨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이 무섭지는 않습니까? 이나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지 않습니까.”

“음.”

이나는 침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너무 태연하게 행동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전생에서도 있었다.

전생에 이나는 지금처럼 꽤 뛰어난 정령사였다. 그 탓에 여러 이유로 그녀를 암살하려 시도하는 자들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이나가 지금처럼 태연하게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믿기 때문이죠.”

“네?”

“제 능력을요.”

그 말과 함께 주변에 있던 정령들이 꺄르륵 웃으며 실체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만 믿어, 이나야!]

[널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우리가 나설 거야!]

“그래, 그래.”

이나는 미소를 띠며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정령들에게 둘러싸인 채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꽤 부드러웠다. 시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서운한 기분을 느꼈다.

“……조금 부럽습니다.”

“네?”

“정령들이 이나 씨의 신뢰를 가득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나를 만난 뒤로 그는 늘 뒤에 있었다.

듀라한을 처치할 때도, 라플레인을 처치할 때도. 늘 이나의 도움을 받고 한 걸음 뒤에 떨어져 있었다.

반면 정령들은 언제나 이나의 옆에 있었다. 그 사실이 시현은 못내 부러웠다.

그에 반해 그는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또, 또 이런다.”

그의 마음을 느낀 이나가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꾹 밀어냈다.

“제가 한 말 그새 잊었어요?”

“무슨……?”

“전 이시현 헌터가 뒤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생각을 들킨 사람처럼 시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동시에 과거에 이나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당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요.”

거기에 시현도 포함된다는 듯 이나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전 이시현 헌터를 믿어요. 강한 사람이잖아요, 당신.”

“…….”

“아. 그리고 본부장님과 도하 씨도 믿어요. 도하 씨 능력이야 뭐 출중하고, 본부장님도…… 이걸로 생각하면 강하고 말이죠.”

이나가 서준을 언급하며 슬쩍 엄지와 검지 끝을 둥글게 말아 붙였다. 그 뜻이 너무도 명백해서 시현은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네. 두 사람이 강한 건 사실입니다. 신뢰받을 만하죠.”

“그쵸?”

킥킥 웃던 이나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시현에게 물었다.

“그보다 생각해 봤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발뺌하기는. 이시현 헌터라면 병실 앞에서 얌전히 서 있기만 하진 않았을 텐데요.”

시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나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를 응시했다.

“어떻게 잡을 생각이에요? 그놈.”

“정말 이나 씨는 당해 낼 수가 없군요.”

시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생각해 봤습니다만, 사실 실현시키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일단 들어나 보죠.”

“청호 길드장의 파트너인 아란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청호 길드장과 함께 놈을 맞닥뜨렸으니 냄새를 기억할 테고, 그 점을 이용해서 놈을 추적하는 방법입니다.”

“확실히 어려운 작전이네요.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상대방을 냄새만으로 찾아내야 한다니.”

“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이나는 고민하는 시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시현이 고개를 들자 이나가 얼른 물었다.

“왜 그 방법은 이용 안 해요?”

“네?”

“제가 있잖아요.”

이나가 자신의 가슴 위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저를 미끼로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했을 거 아니에요. 왜 그 쉬운 방법은 얘기 안 해요?”

시현의 낯이 곤란해졌다. 물론 그 방법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었지만.

“위험하잖습니까. 이나 씨는 그놈의 표적이니 말입니다.”

“그새 잊었어요? 전 강해요.”

“강한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현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네?”

“무, 물론 이나 씨도 이나 씨지만, 그보다는 이나 씨의 평범한 생활을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허둥지둥 말을 덧붙이는 시현을 이나가 묘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픽 웃으며 말했다.

“마음은 고마워요. 하지만 이번엔 거절할게요.”

“이나 씨.”

“전 그놈을 잡아야겠어요.”

이나가 눈을 깜빡이자 서늘한 눈빛이 드러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새벽과 아침의 사이를 가리키는 시간.

그림자는 한 건물의 옥상 위에서 병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꽤 멀리 떨어진 거리임에도 그의 눈에는 훤히 잘 보였다. 그의 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의 눈(B)’ 덕분이었다.

이 스킬은 그림자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가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설령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해도.

그리고 이것이 그가 ‘그림자’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드디어 납시었군.”

그림자가 감았던 눈을 떴다. 타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엔 타깃 유이나의 곁에 백도하가 없었다. 내내 붙어 있길래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돌아간 모양이었다.

‘하긴. 길드를 놔두고 언제고 붙어 있을 순 없을 테니.’

대신 그녀의 곁에는 처음 보는 다른 헌터들이 붙어 있었다. 경호할 사람은 남겨 둔 모양이었다.

유이나는 안이 보이지 않게 선팅된 차에 올라탔다. 그 옆을 다른 헌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경호하며 따라갔다.

“어딜 가는 거지?”

그림자는 일단 건물 아래로 내려가 아무 오토바이를 훔쳐 탔다. 숙련된 암살자인 그에게 키 없는 차나 오토바이를 작동시키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앞의 차가 그를 보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채 일행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자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건지.”

그렇게 한참 이동한 곳은 강원도에 있는 한 마을이었다. 그것도 산기슭에 있는 낡은 집.

유이나는 차에서 내려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과연. 여기 숨어 있을 생각인가.”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얌전히 숨어 있는 건 그녀 입장에서 옳은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상대가 그였으니까.

그림자는 일단 이것이 함정은 아닌가를 파악하기 위해 상황을 주시하기로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타깃을 경호하는 헌터들이 교대했다. 그림자는 그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을 때, 그림자는 슬슬 움직이기로 했다.

“함정은 아닌 것 같군.”

유이나가 각성했다면 S급일 게 분명했다. 임시 던전이긴 해도 S급 던전을 공략하고 나왔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꽁꽁 싸매는 것을 보면 각성한 것은 그녀가 아닌 같이 있던 다른 사람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청호 길드장과 인맥이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오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왔군.”

시간을 확인하던 그는 타깃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네 사람을 발견했다.

그림자는 곧바로 작전을 시행했다. 그는 옆에 있는 으슥한 곳에 무언가를 던져 인기척을 냈다.

파삭-

“응?”

“무슨 소리야?”

역시나 헌터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그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그가 던진 것이 폭발하며 가루를 휘날렸다.

“큭……!”

“무슨……!”

가루를 들이마신 헌터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목숨에 영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간 벌이로는 딱 좋았다.

헌터들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그림자는 곧바로 타깃이 있는 집으로 가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습격입니다!”

“뭐?”

집 앞을 지키고 있던 다른 헌터들이 당황한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걸 보고 그림자가 다시 한번 말했다.

“수상한 자가 마을 바깥으로 도망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젠장. 두 명은 남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 습격자를 쫓는다!”

“네!”

듣고 있던 그림자가 냉큼 끼어들었다.

“저는 경호에 좋은 스킬이 있으니 남겠습니다.”

“그래.”

그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마을 바깥으로 달려갔다.

그림자는 홀로 남은 경호 헌터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빙긋 웃었다.

“경호에 좋은 스킬이 있다니, 든든하군요.”

“그런가?”

연기를 마친 그림자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당황한 경호 헌터를 베어 버렸다.

“무슨……?”

털썩-

검에 베인 경호 헌터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림자는 망설일 것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어요?”

안쪽에서 타깃 유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는 이제 앞에 문 하나만을 남겨 두었다.

“일은 곧 생길 거다.”

드르륵-

그 말과 함께 그림자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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