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해야 할 거?]
정령들이 단체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빨대로 커피를 쪼로록 마시며 상태 창을 열었다.
“상태 창.”
띠링-
⌜상태 창
이름: 유이나
나이: 23세
특성: 정령사(L)
스킬: <정령의 보호자(S)>, <영혼의 약속(A)>, <일체화(L)>
칭호: <방심하지 않는 자(D)>, <마나의 지배자(S)>⌟
오랜만에 열어 본 상태 창은 두 가지가 바뀌어 있었다. 늘어난 스킬과 전엔 지니고 있는 칭호가 없어 비어 있던 칭호 창이 그것이었다.
이나는 일단 위에 있는 스킬부터 차례대로 보았다.
‘<정령의 보호자(S)>가 알 부화 스킬이었으니 <영혼의 약속(A)>은 계약하는 스킬일 거고…….’
마지막으로 <일체화(L)>를 보는 이나의 낯이 어두워졌다. 계약하면서 그녀의 상태 창을 볼 수 있게 된 정령들이 물었다.
[이나야, 일체화가 뭐야?]
“음.”
이나는 드물게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몰라서는 아니었다. 전생의 경험으로 <일체화(L)>가 어떤 스킬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답하기 망설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런 게 있어.”
[뭐야! 우리도 알려 줘!]
“이 스킬은 쓰지 않을 거야.”
쓸 일도 없어야 하고.
뒷말을 삼킨 이나는 정령들의 불만을 뒤로하고 <일체화(L)> 스킬 이름을 건드렸다. 그녀가 아는 그 스킬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스킬 이름을 건드리자 설명 대신 다른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현재 <일체화(L)>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정령이 없습니다.⌟
⌜정령과의 감응도가 부족합니다.⌟
‘감응도?’
스킬을 받아 놓고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물론 쓸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나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그 옆에 있는 <영혼의 약속(A)> 스킬 이름을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계약 정령: 이즈, 리카, 파인, 볼트, 윈티, 네움⌟
이나는 고민하다가 그중에서 이즈의 이름을 클릭했다. 허공에 떠 있던 이즈가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함께 시스템 창을 보았다.
⌜정령 상태 창
이름: 이즈
나이: 2개월
속성: 물
감응도: 46/100⌟
이즈의 상태 창을 보던 이나가 중얼거렸다.
“대충 알겠네.”
[뭐를?]
“감응도는 우리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를 수치로 표현한 건가 봐.”
가장 오래 지낸 이즈의 감응도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함께한 지 2개월밖에 안 된 것치곤 높은 수치일지도 모르나, 스킬을 사용하기엔 낮은 수치였다.
이즈가 이러니 그 뒤에 태어난 다른 정령들의 감응도는 더 낮을 터였다. 그러니 이 스킬은 당분간 봉인이었다.
뚱하게 앉아 있던 이즈가 자신과 이나의 감응도를 가만히 노려보더니 대뜸 외쳤다.
[이건 말도 안 돼!]
“뭐가?”
[이나를 향한 내 마음이 100이 안 될 리 없다구!]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정령들도 하나둘씩 외치기 시작했다.
[옳소!]
[이나 님을 향한 우리 마음은 이미 100이라고요! 아니, 1,000이라고요……!]
[이거 고장 난 게 분명해!]
심지어 리카는 고장 난 TV를 고치려는 것처럼 시스템 창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이나는 항의하는 정령들을 황당해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흘리며 리카를 시스템 창에서 떼어 놓았다.
“너희 아직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됐어. 감응도 수치가 낮은 게 정상이지.”
[그래도!]
“그래도 3개월도 안 된 것치곤 높은 수치야. 너희 은근 나랑 잘 맞나 본데?”
이나가 위로해 줄 겸 말하자 정령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어깨를 으쓱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당연하지! 우린 이나의 정령인걸!]
[두고 봐! 곧 100을 찍을 테다!]
이나는 픽 웃으며 자신의 상태 창으로 다시 돌아왔다. 슬슬 휴식 시간이 끝나 가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마나의 지배자(S)>라…….”
이름만 보면 마력 스탯을 높여 주는 칭호인 것 같았다. 다만 S급이나 되는 칭호이니 얼마나 높여 줄지가 관건이었다.
이나는 커피를 입에 머금고 칭호를 눌러 보았다.
⌜마나의 지배자(S)
효과: 마력 30 증가 / 스킬 사용 시 마나 소모량 40% 감소⌟
“푸읍!”
[꺄아! 까만 비가 내린다!]
이나는 참지 못하고 커피를 살짝 내뿜었다. 정령들이 환호하는 사이 이나는 다시 한번 칭호 내용을 살폈다.
‘마력 30 증가에, 능력을 쓸 때 마나 소모량이 40% 감소된다고?’
효과는 A급 아이템인 ‘얼음 여왕의 목걸이’보다도 적었지만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보다 더했다. 과연 S급 칭호다웠다.
이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정도면 마나가 부족해 허덕일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거의 무한대급으로 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건…… 테스트를 좀 해 봐야겠는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의 능력 한계치 정도는 알아 두고 있는 편이 좋았다.
이나는 슬슬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누군가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본부장님, 일하고 계셨어요?”
이나가 드물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무언가를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나름 기분이 괜찮아 보이던 서준이 왠지 모르게 피곤한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나 씨, 혹시 유이한 씨에게 절 팔았나요?]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찾아와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서준이 피곤한 기색은 지우고 부드럽게 물었다. 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본론을 꺼냈다.
“혹시 한국의 S급 던전 기록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S급 던전이요?]
스피커 너머에서 서준의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사람이 지나가자 이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왕이면 보스 몬스터가 아주 단단한 놈이 있는 곳들로 부탁드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서준이 낮은 한숨 소리와 함께 물었다.
[S급 던전에 들어가려는 건가요? 설마 혼자서 들어갈 건 아니죠?]
“그럴려고 했는데.”
[위험합니다.]
“지금은 안 위험해요. 알잖아요.”
함께 S급 던전에 들어가 공략하고 나온 사이였다. 서준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서준이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알겠습니다. 기록을 보낼 테니 원하는 곳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그 던전의 공략권을 다른 길드에 넘기지 않을 테니.]
“역시 일 처리 하시는 게 빠릿하고 좋다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
“……제가 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요.”
“네.”
이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뚱한 그녀와 달리 담담한 얼굴의 그를 보며 이나가 물었다.
“왜 이시현 헌터가 함께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그러자 시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초에 혼자서 S급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충분히 혼자서 공략 가능하니까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죠!”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다른 등급도 아닌 S급 던전이니까요.”
“어휴. 이제 보니 똑같은 사람들이었네.”
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준이 내건 조건이 바로 이것이었다. 시현과 도하 중 한 사람을 대동하고 들어갈 것.
그로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겠지만, 이나는 그저 귀찮기만 했다.
혼자서 후딱 공략하고 나오면 되는데 짐이 하나가 추가된 것이니 말이다.
물론 짐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이나는 그래서 오히려 불만이었다. 이번 공략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니까.
시현이 있으면 제대로 능력을 펼쳐 보지도 못할 터였다.
‘다음엔 그냥 혼자서 몰래 들어가야겠어.’
몰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현이 눈치채고 얼른 말했다.
“만약 다음에 몰래 들어가시면 감시원을 붙일 겁니다.”
“……치사하게 정말.”
“모두 이나 씨를 위한 일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러시겠죠.”
이나가 툴툴거리며 오늘 들어갈 던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현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나 씨, 왜 저였습니까?”
“뭐가요?”
“저와 청호 길드장 사이에서 저를 골랐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시현은 나름 진지하게 물었다. 반면 이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거요? 도하 씨랑 가면 여러 가지로 부산스러울 거 아니에요. 이시현 헌터한테 그러는 것처럼 둘만 있을 때 자기랑 싸워 달라고 하면 어떡해요?”
“……그것도 그렇군요.”
어쩐지 실망한 듯한 음색에 이나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처럼 실망한 얼굴의 시현에게서 귀가 축 처진 강아지의 모습이 엿보였다.
‘왜 저래?’
물론 이나에게 그의 마음을 이해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저러고 있으니 괜히 신경이 쓰여서 따로 말을 덧붙였다.
“뭐, 달리 말하면 이시현 헌터가 도하 씨와는 달리 듬직한 면이 있다는 뜻이겠죠.”
시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번엔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환상마저 보였다.
왠지 자신의 눈이 이상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이나는 눈을 비볐다. 그사이 시현이 그녀가 손에 든 서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나 씨, 왜 하필 이 던전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