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요?”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상대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강하기도 강하지만, 방어력이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정말 월등합니다.”
“알고 있어요.”
“알면서…… 이 던전을 골랐다는 말입니까?”
“네. 튼튼할수록 좋거든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시현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음. 테스트라고나 할까요.”
“무슨 테스트 말입니까?”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한 테스트요.”
시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나는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사실대로 말해 주기로 했다.
“그냥 제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해 보기 위한 거예요.”
“그걸 꼭 S급 던전에서 해야 합니까?”
“네. 등급이 높을수록 좋을 것 같거든요.”
시현은 슬슬 궁금해졌다. 그렇게 말하는 이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면 그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S급 던전을 단신으로, 아니, 일반인이라는 짐을 안고서 공략하고 나온 사람이 아니던가.
그는 고민하다가 이나를 슬쩍 찔러보았다.
“이나 씨, S급 맞습니까?”
“비밀이에요. 그보다 슬슬 들어가죠.”
공략 기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이나가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현이 한 발짝 늦게 이나를 따라갔다.
두 사람을 삼킨 게이트가 빛을 발하며 눈앞의 시야가 바뀌기 시작했다.
“와. 서류에도 크다곤 쓰여 있었지만 진짜 크네요.”
이나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거대한 호수였다. 맞은편 수변이 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를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류에 따르면 이 호수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보스 몬스터가 살고 있었다.
시현이 긴장감에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본 이나가 말했다.
“끼어들지 말아요.”
“하지만 이나 씨, 놈은 강합니다.”
“강한 거 알고 들어온 거예요. 그보다 다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요.”
“네?”
시현이 저도 모르게 황당함을 내비쳤다.
나름 한국 대표 길드인 천조 길드를 이끄는 S급 헌터로서 강하다는 자부심은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칠 수 있으니 피하라는 말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시현이 피할 생각은 않고 쭈뼛거리기만 하고 있자 이나가 혀를 쯧 찼다.
“다쳐도 난 몰라요.”
“아니, 그…….”
시현이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거렸다.
그때 호수의 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떨리던 물은 이내 파도가 치듯 크게 출렁거렸다.
“오네요.”
이나의 말처럼 ‘놈’이 오고 있었다. 시현은 검날을 살짝 드러내 경계심을 표했다.
잠시 후, 거대한 무언가가 호수에서 튀어나왔다. 어찌나 큰지 놈이 모습을 전부 드러내자 놈의 몸에서 호수의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즈의 능력으로 떨어지는 물을 모두 걷어 낸 이나가 눈앞의 몬스터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거북이네?”
모습을 드러낸 보스 몬스터는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거북이와는 달리 무척이나 포악해 보였다. 물고기 몸통처럼 꼬리를 덮은 날카로운 비늘과 그들을 향해 드러내는 뾰족한 이빨이 그 증거였다.
녀석이 바로 이 S급 던전 ‘호수를 지키는 바위’의 보스 몬스터, 라쿠틀라였다.
다른 헌터였다면 덤벼들기를 망설일 그 위압감 속에서 이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음. 좋아. 마음에 들어. 역시 본부장님이 일 처리는 확실하다니까.”
“이나 씨, 정말 괜찮은 겁니까?”
시현이 뒤에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어쩔 수 없는 걱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나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대충 휘저어 주었다.
“네. 때리는 맛 제대로겠는데요.”
“저건 샌드백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놈입니다.”
“알아요. 그보다 아까 한 말 기억하죠?”
이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시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도와 달라는 사인을 보낼 때까지는 끼어들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반드시 사인을 보내는 겁니다.”
“물론이죠.”
씨익 웃은 이나가 간단하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나가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라쿠틀라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보스 몬스터가 보는 앞에서 스트레칭을 마친 이나가 마침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럼 가 볼까?”
[가즈아!]
[고고!]
정령들도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것이었다.
시현은 라쿠틀라를 향해 날아가는 이나를 바라보다가 슬쩍 숲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혹시라도 라쿠틀라의 눈에 띄어 이나의 테스트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콰앙!
거친 폭파음과 함께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
쾅! 콰광!
퍼엉!
무언가가 부딪치고 터지는 소리가 필드 전방을 울렸다. 모두 호수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소리였다.
시현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대충 가늠해 보았다. 체감상 두 시간은 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나는 전혀 지치지 않은 기색이었다.
‘여기까진 나도 버틸 수 있어. 하지만 그 이후는?’
시현은 자신이 공략 팀원들과 함께 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를 상기하며 이나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라쿠틀라는 거대한 몸집에 이어 단단한 등껍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방어력이 엄청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그 탓에 이 던전은 공략 시간이 꽤 길어지곤 했다. 그것도 다른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시간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혼자서 라쿠틀라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뿐일까. 라쿠틀라를 샌드백 취급 해 봐주면서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한계치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
‘사람인가.’
시현은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이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도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이나가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라쿠틀라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두 존재의 싸움은 점점 더 격해졌고, 시현은 이나의 능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다.
‘S급 헌터 체면이 말이 아니군.’
헛웃음을 흘린 시현이 나무 위에 안착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 끝에서 이나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시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여차하면 바로 달려 나가기 위해 검 손잡이를 손에 쥐었다.
그때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지던 이나가 시현을 발견했다. 그에게 곧바로 내려온 그녀가 시현의 이름을 불렀다.
“이시현 헌터.”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역시 조금 무리였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힘이 부치는 것…… 아니었습니까?”
“전혀요. 그보다 시간 괜찮으세요?”
“제 시간은 왜…….”
“생각보다 테스트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시현은 멍한 얼굴로 이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인 이나가 뺨을 긁적였다.
“음. 역시 좀 곤란하려나요? 던전의 시간은 바깥 시간과 다르게 흐르니……. 게다가 저 거북이도 조금 지친 것 같고.”
“……밀린 일이 있어 이왕이면 빨리 끝내 주시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쯧. 역시 혼자 들어왔어야 했는데.”
“거듭 말씀드리지만 혼자는 절대…….”
“알았어요, 알았어. 거참 귀에 딱지 앉겠네.”
귀를 막던 이나가 시현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던 시현이 그 위로 자신의 손을 올리자 이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강아지라도 돼요? 손 말고 검 줘 봐요.”
시현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숙인 그가 검을 검집째로 이나에게 건넸다.
이나는 무심하게 그것을 받아 들고 검날을 살짝 드러냈다. 잘 벼려진 날을 보며 그녀가 물었다.
“이거 내구도 좋아요?”
“네. S급 무기니까요.”
“오.”
검을 보는 이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나는 슬쩍 검의 정보를 띄웠다.
‘아이템 정보.’
띠링!
⌜불굴의 용기(S)
내용: 꺾이지 않는 용기와 신념으로 벼려진 검입니다. 이 검을 지니고 있는 한 어떤 두려움도 적이 되지 못합니다.
효과: 근력 15 증가 / 민첩 8 증가 / 피해량 20% 증가 / 스킬 혼합 시 피해량 20% 추가 증가 / 두려움 30% 감소⌟
“와.”
이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과연 S급 무기답게 효과가 여러 가지 붙어 있었다.
게다가 검 이름이 ‘불굴의 용기’라니. 왠지 시현과 찰떡인 무기였다.
이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검을 보자 조금 불안했는지 시현이 물었다.
“그런데 검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쓸데가 있어서요. 잘 쓰고 돌려줄 테니까 걱정 마요.”
“부탁드립니다.”
이나는 시현의 검을 들고 다시 라쿠틀라에게로 향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라쿠틀라가 마침내 이나를 발견하고 울어 젖혔다.
“구워어어어!”
“그래, 그래. 노릇노릇하게 구워 줄 테니까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이나는 라쿠틀라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검을 꽂을 타이밍을 엿보았다.
S급 몬스터의 등껍질을 단번에 부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작은 틈 하나만 만들 수 있다면.
“꽂아 버려!”
얼음 골렘을 처음 처치할 때처럼 리카가 바람의 힘을 이용해 검을 라쿠틀라의 등껍질 한가운데에 박아 넣었다.
등껍질에 박힌 탓에 라쿠틀라에게 별다른 피해가 없고 곧 빠질 것처럼 위태로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공격을 노리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진짜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자, 그럼 볼트.”
[음! 이 몸이 나설 차례인가!]
볼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나에게 다가왔다. 이나는 공격을 준비하는 라쿠틀라를 내려다보며 볼트에게 명령했다.
“하늘을 밝게 물들일 정도로 큰 벼락을 꽂아 봐.”
[맡겨 주시게!]
볼트의 대답을 들은 이나가 귀를 막았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시현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콰과과광!
말 그대로 벼락같은 울림이 맵 전체에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