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는 원래 부하 하나가 사라진 일로 이렇게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특별했다.
그의 사라진 그림자가 조직 내 기밀 사항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동시키면 던전을 만들어 내는 마도구. 바로 그것이었다.
실험이 필요해서 맡기긴 했지만 외부로 퍼져선 안 될 물건이었다. 그래서 가장 믿음직한 부하에게 맡겼건만.
“하필 그놈이 연락이 끊어질 줄이야.”
앤드류가 혀를 쯧 찼다.
그림자가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배신할 생각조차 못 하게 길들여 놨으니까.
문제는 혹시라도 정신계 마법이나 고문이라도 당해 사실을 누설했을 경우였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다 없애 버려야겠지?”
앤드류는 벌써부터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른 일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갈 때는 쌍둥이에게 부탁해서 이동 마법 시켜 달라고 할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비행기를 열두 시간이나 타고 싶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그 쌍둥이가 무엇을 요구할지인데.
“하여간에 도움 되는 녀석이 하나도 없어.”
앤드류는 툴툴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어떤 덩치 큰 남자와 앤드류의 어깨가 부딪쳤다. 그는 특이한 복장의 앤드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눈 똑바로 안 달고 다녀? 별 이상한 놈이.”
“지금 뭐라고 했냐.”
앤드류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것이 몸을 옥죄자 남자가 눈을 홉떴다.
가뜩이나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앤드류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히죽 웃었다.
“마침 잘됐네. 온 김에 기념품이나 챙겨 갈까 했는데.”
“무, 무슨……! 헌터가 일반인에게 손대다니!”
“알 게 뭐야. 너희 나라 법 따위.”
“컥!”
검은 기운이 남자의 입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그 무서운 광경에 이미 주변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 앤드류는 홀로 입꼬리를 올렸다.
“너를 내 첫 번째 기념품으로 삼아 주마.”
***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이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옆자리 대리가 그녀에게 물어 왔다.
“팀장님과 무슨 얘기 했어요?”
“별건 아니고, 출근 날짜를 조금 조정했어요.”
“아아.”
정말 별거 아니어서 대리는 금방 흥미를 잃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이나도 일하는 척 모니터를 응시하며 채팅 창을 켰다. 채팅 창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이한이었다.
이나는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렸다.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출근 날짜 조정했어.]
잠시 기다리자 이한에게서 금방 답장이 돌아왔다.
[잘했어.]
[오빠는?]
[나도 아까 실장님께 말씀드린 참이야.]
[그럼 이제 가는 일만 남았네.]
이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 있자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나 보죠?”
“아, 깜짝이야.”
이나는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서준이 싱긋 웃는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다.
이나는 불만 어린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기척 좀 내고 다녀요.”
“정…….”
말을 잇던 서준이 멈칫하더니 그녀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정령들이 안 알려 주던가요? 제가 왔다고.”
“지루하다고 잠깐 놀러 나갔어요. 지금은 네움만 옆에 있고. 아, 마침 오네요.”
이나가 허공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을 찌푸리는 이나를 보니 정령들이 또 밖에서 있었던 일을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 봐도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기에 서준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시간 괜찮으면 잠깐 저랑 얘기 가능할까요?”
“그건 제가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이나가 홍보 팀 팀장을 힐끗 보았다. 그녀와 서준을 지켜보고 있던 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본부장님과 잘 얘기하다 와요, 이나 씨.”
“그럼 가시죠.”
서준이 빙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를 따라나섰다.
‘어째 권력 남용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이나가 걱정하든 말든 1층으로 내려온 서준은 커피를 두 잔 사서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나는 감사히 받아 들고 커피를 쪼로록 마셨다.
“하아. 시원하다.”
이나의 얼굴에 만족감이 짙게 묻어 나오자 서준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나 씨는 참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행복 뭐 별거 있나요. 그나저나 얘기할 게 뭐예요? 설마 같이 놀아 달라고 부른 건 아니겠죠?”
이나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서준을 째려보았다. 그는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지난번 이나 씨를 공격한 암살자 일로 찾아왔습니다.”
표정을 진지하게 바꾼 서준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말했다.
이나는 입가가 굳는 것을 느끼며 슬쩍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두 사람 주변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서준에게로 슬쩍 몸을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나왔어요?”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서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입을 열지 않더군요.”
“무슨 짓을 했는데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이나가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서준은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아무것도 못 알아낸 주제에 참 태평했다.
이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하긴. 그렇게 쉽게 입을 열 거였으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겠죠.”
“그렇죠.”
“근데 그런 소득 없는 보고를 하려고 절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은근히 흘겨보자 서준이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물론 아니죠.”
“뭘 하려는 거예요?”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할까 합니다.”
“정신 계열 마법이라면…….”
“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이죠.”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쉬운 방법을 왜 지금까지 사용 안 하고 있었던 거예요?”
“최후의 수단이었거든요. 정신 계열 마법을 쓰면 부작용으로 그 사람의 정신이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무서운 마법이네요.”
“그리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서준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 씨가 암살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왜……. 아.”
질문을 잇던 이나가 탄성을 터뜨렸다.
서준은 분명 암살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마법 시전자일 터.
즉, 그녀의 정체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된다는 소리였다.
이나는 끄응 신음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곤란하게 됐네요.”
“그래서 이나 씨의 허락을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입막음은 확실히 해 둘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으음.”
고민하던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놈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니까요. 입막음도 해 준다고 하고.”
“옳은 판단입니다.”
서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다. 볼일도 끝났겠다, 서준은 슬쩍 치대 볼 겸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어딜 가려고 출근 날짜까지 조정한 거예요?”
“그 짧은 새에 채팅 내용을 보셨구만.”
이나가 대놓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준은 상처 하나 받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얼굴을 보니 뭐라 할 생각도 사라져서 이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해 주었다.
“부모님 뵈러 가요.”
“그러고 보니 이나 씨도 이한 씨도 따로 살고 있었죠. 부모님께서 섭섭해하시진 않던가요? 저라면 예쁜 딸이 집 밖에 나가 사는 게 영 불안할 것 같은데 말이죠.”
서준이 진심을 반, 농담을 반 담아 말했다. 하지만 이나는 뚱한 얼굴로 툭 말을 내뱉었다.
“글쎄요. 저야 두 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죠.”
“무뚝뚝하신가 보죠?”
“그보다는 헤어진 지 오래돼서요.”
“네?”
“저희가 어릴 때 돌아가셨거든요. 두 분 다.”
그제야 서준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우물쭈물하던 그는 확연히 낮아진 목소리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됐어요. 그런 의도 아니었던 거 알아요.”
손을 휘휘 내젓는 이나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태연해 보여서 서준은 결국 묻고 말았다.
“이나 씨는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음.”
이나는 대답하는 대신 커피를 빨아들였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던 어릴 적의 이나는 자신의 부모님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세상에 떨어져 갑작스럽게 맞이한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이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에서 혼자였던 이나는 그 사랑이 낯설었다.
그리고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부모님은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쩌면 이나도 이한처럼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기에 이번처럼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게 이나는 영 껄끄러웠다.
물론 이한의 앞에서도, 지금도 티 낼 수 없는 속마음이었다.
빨대에서 입을 뗀 이나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헤어진 지 오래돼서 감흥이 없는 것뿐이에요.”
“그렇군요.”
서준의 눈빛에 순간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어렸다 사라졌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슬쩍 핸드폰에 뜬 내용을 확인한 서준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어차피 일하러 가야 돼요.”
이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서준을 보며 당부했다.
“결과 나오면 말해 줘요. 나도 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알아는 둬야 할 것 같으니까.”
“물론입니다.”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는 서준을 응시하다 이나도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앞서 나누었던 대화 탓일까. 암살자의 무기에 새겨져 있던 ‘K’라는 글자가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다.
“K……. K라…….”
그냥 장식용인지, 혹은 놈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뜻하는 건지는 몰라도 괜히 꺼림칙했다.
이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털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찝찝함은 더욱 진득하게 이나의 뇌리에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