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이야?”
“응. 협회에서 사건 관리 팀 팀장을 맡고 계신 분이야. 전에 도움받은 적도 있고.”
이한이 머뭇거렸다. 그 속내를 파악한 이나가 픽 웃으며 말했다.
“인사드리고 싶으면 잠깐 들렀다 가자.”
“그래도 될까?”
“물론이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미소 짓던 이한이 택시 기사에게 잠시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곧장 봉쇄되어 있는 사건 현장으로 다가갔다.
“김 팀장님!”
“유 팀장?”
헌터 협회 김지훈 팀장이 이한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지나가는 길에 팀장님이 계시길래 와 봤습니다.”
“이쪽은?”
“제 동생입니다. 같이 어디 좀 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이나가 인사하자 그도 고개를 까딱하며 마주 인사했다. 이한이 굳이 인사하러 온 사람답게 사람이 좋아 보였다.
이한은 사건 현장을 주욱 둘러보더니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어. 근데 좀 특이해.”
“특이하다뇨?”
“그게…….”
김지훈의 시선이 이나에게 닿았다. 시선의 의미를 읽은 이나가 멋쩍은 듯 웃으며 물었다.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일이라면 택시에 가 있을게요.”
“음. 아니에요. 어차피 뉴스 타고 번질 텐데요, 뭐. 게다가 유 팀장의 동생이고.”
가벼운 투로 얘기하던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착 깔더니 속삭이듯이 말했다.
“유골이 사라졌어.”
“네? 유골이요?”
“그래. 이 근방 땅에 묻혀 있던 유골들이 전부 사라졌어. 땅을 파헤친 흔적을 보니 누가 훔쳐 간 것 같아.”
이한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왜 하필 훔쳐도 그런 것을…….”
“내 말이 그 말이야. 게다가 새벽에 이 많은 묘지를 파헤치고 훔쳐 갔어. 보통 빠른 속도가 아니란 거지. 게다가 일반인이라면 시체를 훔칠 생각은 안 하잖아? 그래서 헌터랑 연관돼 있는 건가 싶어서 지금 무명 길드랑 같이 수색 중이야.”
이나는 그제야 한주원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의문이었다.
‘이런 일에 길드장이 직접?’
단순히 수색을 하는 것뿐이라면 부하 길드원을 시켜도 될 일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이나가 의문을 품는 사이 이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무명이 나섰다면 헌터의 짓일 가능성이 꽤 커지네요.”
“그렇지. 뭐, 내가 볼 땐 어떤 미친 헌터 놈이 저지른 단순 도난 사건인 것 같지만 말이야.”
김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건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이나와 이한의 굳은 표정도 조금 누그러지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왜 이렇게 사건이 자주 일어나나 몰라. 얼마 전에는 웬 미친 외국 헌터가 인천 공항에서 날뛰었다던데.”
“아, 그 사건 말이군요. 그러고 보니 범인은 잡았다고 하던가요?”
“아니. 그래서 지금 수배도 걸렸어.”
이한의 얼굴에 다시 걱정이 비쳤다. 그것을 본 김지훈이 이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런 놈들 잡으라고 우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 봐. 모처럼 동생이랑 놀러 나온 모양인데.”
그가 부러 밝게 말하자 이한도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수사가 빨리 끝나길 바라겠습니다.”
“그래, 그래.”
김지훈이 손을 휘휘 저으며 사건 현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한과 함께 택시로 돌아온 이나가 말했다.
“세상 무섭네. 이젠 하다 하다 유골까지 훔쳐 가는구나.”
“그러게.”
이한의 표정도 무거웠다. 그의 시선이 김지훈이 있는 사건 현장을 힐끗 향했다.
이나도 그를 따라 그쪽을 바라보다가 누군가 옷깃을 잡아당기는 힘에 고개를 돌렸다.
땅의 정령 네움이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이나가 의문을 담고 바라보자 네움이 어쩐지 머뭇거렸다.
말도 잘 하지 않는 녀석이 무슨 일일까 싶은 그때였다.
“오. 여기에 많네.”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나의 머릿속에 울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동시에 한 광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자, 그럼 기념품을 챙겨 보실까?”
어떤 사람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다. 키가 큰 남자 한 명은 그들의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채였다.
이나의 머릿속에 재생된 그것은 그들이 유골을 훔치고 사라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멍하니 있던 이나는 놀란 눈으로 네움을 바라보았다.
‘땅이 알려 준 거야?’
네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것은 네움의 기억이 아니었다. 아까 그 사건 현장의 땅이 네움에게 알려 준 것을 네움이 그녀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즉 그것은 땅의 기억,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이나야, 왜 그래?]
“이나야?”
다른 정령들과 이한이 의아해하며 놀란 표정의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린 이나는 네움을 힐끗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나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어두워서 그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는 확실히 기억했다.
물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방법은 없었기에 수사가 원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골치 아프긴 하지만, 무명이 나섰다면 알아서 해결하겠지.’
대한민국 3대 길드라는 말이 괜히 붙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찝찝하긴 해도 마음은 편해졌다.
그녀가 앞으로 생각해야 할 건 이한과 어떤 치킨을 먹어야 하는가였다.
***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음! 꽤 채웠네.”
앤드류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보며 흡족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의 무덤에서 파낸 시체, 혹은 유골들이었다. 모두 그의 능력을 쓰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만족스럽게 다시 한번 물건의 개수를 세던 앤드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 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자 익숙한 이름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그것을 본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쳇. 역시 들켰나.”
고민하던 그는 전화를 끊었다. 받을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는 핸드폰 전원을 끄고 이번엔 다른 스킬을 펼쳤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들켰으니 슬슬 움직여야 했다.
“기념품도 챙겼겠다, 이제 슬슬 부하 녀석을 찾으러 가 볼까?”
시스템 창 위로 지도가 떠오르며 한 곳에 좌표가 찍혔다. 좌표의 위치를 본 앤드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헌터 수용소라……. 제대로 잡혔구만.”
그의 입에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이 귀찮게 흘러갔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었기에 그는 걸음을 옮겼다.
물론 조용히 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동하는 내내 툴툴거렸다.
“아아. 귀찮아. 나쁜 놈.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혼쭐을 내 주마.”
***
“쿠울…….”
“이나야.”
“흐업……!”
이한의 부름에 이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돌리자 멀끔한 모습의 이한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어제 같이 치킨을 먹고 이한이 자고 가라 해서 놀다가 저녁에 뻗었던가?
기억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이나는 눈을 비비다가 이한에게 물었다.
“출근해?”
“응. 넌 오늘 일 없지?”
“응. 주말이니까 푹 쉴 생각이야.”
“그래.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꺼내 먹어.”
“알겠어. 잘 다녀와.”
“그래.”
빙긋 웃은 이한이 집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한참을 뒤척거리다 몸을 일으킨 이나는 비척비척 주방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자취하다 본가로 내려간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이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냉장고에서 반찬을 하나둘 꺼냈다. 밥도 따끈따끈한 게 갓 지은 모양이었다.
감동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이나는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집밥을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식탁 위에 앉아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정령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나도 먹어 보고 싶다.]
“어차피 맛도 못 느끼면서.”
[그, 그건 그렇지만……!]
시무룩해진 정령들을 무시하고 이나는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밥을 반 공기 정도 비웠을 때쯤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뭐지?”
확인해 보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별생각 없이 열어 본 문자는 서준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늘 정신 계열 마법사가 헌터 수용소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저도 갈 거고요.]
“아.”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온 문자를 노려보았다.
하필 이 시간에……. 아니, 물론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한숨을 삼킨 이나는 원망을 담아 서준에게 답장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뒤 남은 밥을 우걱우걱 입에 쑤셔 넣고 빠르게 식탁을 정리했다.
이나가 이즈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소파에 앉자 파인이 물었다.
[안 가 봐도 괜찮아?]
“뭐 하러. 어차피 난 일반인을 위장하고 있어서 거기 들어가지도 못해.”
납득한 파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이즈가 설거지를 마치고 이나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럼 오늘 쉬는 거야?]
“응.”
[와! 그럼 TV 보자, TV!]
이나는 리모컨을 꾹꾹 눌러 정령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 주었다.
정령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이나의 불편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뭘까, 이 불안한 기분은.’
***
“푸흡……!”
“본부장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좀 재밌는 걸 봐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운전기사가 서준의 말에 더 의아해했다.
저 사람을 웃게 만들 정도로 재밌는 게 과연 뭘까?
운전기사가 의문을 품는 것도 모른 채 서준은 그저 핸드폰 화면만 가만히 응시했다.
[ㅇ]
그가 보낸 문자에 답장으로 온 것은 달랑 이 ‘ㅇ’ 하나뿐이었다. 이 한 자음이 그녀의 귀찮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이나다워서 서준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역시 재밌는 사람이야.”
중얼거림을 들은 운전기사만 더욱 혼란스러워졌을 뿐이었다. 때마침 차가 인적이 드문 숲길로 들어섰다.
동시에 서준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지워졌다. 목적지에 다다른 것을 그도 깨달은 탓이었다.
이내 차가 멈춰 섰고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그가 탄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본부장님, 도착했습니다.”
“네.”
차에서 내린 서준은 경비가 삼엄한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헌터 수용소.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을 가둬 놓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