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49)

이나를 암살하려 했던 그놈이 갇혀 있는 곳.

서준의 얼굴이 더욱 딱딱해졌다. 그가 그 얼굴로 다가서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경비 헌터가 그에게 경례를 했다.

“헌터 협회 최서준 본부장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들어가시기에 앞서 몸수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양팔을 벌리자 한 헌터가 몸수색에 들어갔다. 서준에게서는 호신용 마도구 총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물건을 발견할 수 없었다.

“네. 됐습니다. 총은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어서 저희 쪽에서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함께 들어갈 수 없어서 서준 혼자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 마침내 소장실 앞에 서자 그를 안내해 준 헌터가 입을 열었다.

“소장님, 헌터 협회 최서준 본부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헌터가 서준에게 눈짓했다. 들어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서준은 여전히 미소 없는 얼굴로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오십시오, 최 본부장님. 헌터 수용소장 전대일이라고 합니다.”

“헌터 협회 본부장 최서준입니다.”

서준은 전대일 소장이 내민 손을 붙잡고 인사했다. 이어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의아했지만 서준은 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의 소개가 돌아왔다.

“오늘 수용소 헌터에게 정신 계열 마법을 쓰기로 한 정재원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왜……?”

서준이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출하자 그가 빙긋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제 스킬 특성상 누구와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어서요. 밖에선 조심하고자 늘 특수 제작한 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오늘이 초면이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서준은 경계심이 조금 풀렸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전대일이 타이밍 맞춰 끼어들었다.

“놈은 지금 취조실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놈을 감시하는 헌터 외엔 아무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본부장님도 같이 가십니까?”

전대일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반면 서준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갈 겁니다.”

“위험합니다. 물론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긴 하나, 그래도 이곳에서 대기하시는 편이…….”

“아뇨.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감히 자신이 지키는 한국에서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이가 누구인지.

서준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전대일도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얌전히 수긍했다.

헌터 수용소장인 전대일의 안내에 따라 서준과 정재원은 취조실로 향했다.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전대일이 나타나자 경례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서 슬쩍 자리를 비키자 서준은 그림자와 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게 되었다.

서준이 내심 긴장하고 있는데 전대일이 슬쩍 고개를 돌려 그와 정재원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문을 열었다.

끼익-

취조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인 광경에 서준은 흠칫했다.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다. 눈도, 입도, 온몸을 꽁꽁 묶인 채로.

그나마 숨 쉴 구멍은 뚫려 있었지만, 묶인 곳 이외에 드러난 피부의 상처들이 꽤나 아파 보였다.

하지만 서준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저놈은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이나마저 살해하려던 놈이었다. 편의를 봐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서준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다시 안정을 찾는 것을 확인한 전대일이 입을 열었다.

“놈을 취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방법이다 보니, 이 방엔 CCTV도 녹음기도 없습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계열 마법이 최후의 수단인 이유가 있었다. 피사용자의 정신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위험한 마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신 계열 마법을 껄끄러워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람의 인권을 위해 불법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헌터 협회 본부장이 그런 마법을 사용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분명 말이 나올 터였다.

그래서 서준은 미리 전대일에게 부탁했다. 녹화는 하지 말아 달라고.

물론 정재원의 입을 막는 장면을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도 살포시 끼어 있었다.

서준은 정재원을 힐끗 보며 물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언제든 마법 시전이 가능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이번엔 전대일에게 부탁했다.

“눈을 가린 천을 풀어 주세요.”

입이라면 좀 고민했을 테지만 눈은 괜찮았다. 전대일은 그의 말대로 그림자의 눈을 가린 천을 풀어 주었다.

자유를 되찾은 그림자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전대일, 정재원, 마지막으로 서준을 향하는 눈빛이 꽤나 매서웠다.

서준은 저를 향하는 암살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면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오히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그림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의 기억을 헤집을 겁니다.”

평소와 같은 어조로, 그것도 존댓말을 했지만 그가 꺼내는 말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온다고 하더군요. 정신이 파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입을 열지 않을 겁니까?”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그럴 생각 없다고.

서준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남아 있던 그의 마지막 양심이 사라졌다.

그는 정재원에게 명령했다.

“시작하시죠.”

정재원이 선글라스를 벗고 그림자의 머리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마법을 시전했다.

정재원의 손가락 끝에서 얇은 줄이 나와 그림자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동시에 정재원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재원이 질문을 하면 그가 떠올리는 기억이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기억으로 보이는 빛이 그림자의 머리에서부터 줄을 타고 정재원의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정재원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뉴욕 빈민가 출신인가 보군요. 부모는 없고…… 어렸을 때부터 도둑질로 연명한 모양입니다.”

정재원이 태연하게 기억의 내용을 읊조렸다.

반면 그림자는 달랐다.

“읍……. 으읍……!”

유일하게 드러난 눈이 붉게 충혈되며 그림자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든 정재원의 스킬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의 머리에 달라붙은 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정재원이 서준을 힐끔 보았다. 서준은 계속하라는 듯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에 정재원이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당신의 보스는 누구죠?”

다음 기억이 그림자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왔다. 그것이 몸에 스며들었을 때, 정재원은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

“왜 그러죠? 뭔가 이상이 생겼나요?”

“아, 아뇨.”

정재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기억에 집중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입니다. 머리부터 옷까지 온통 검은색인. 머리는 어깨에 닿을 것 같은 곱슬머리고, 무척 음침해 보입니다. 이름은…… 앤드류?”

“뭐 하는 사람입니까?”

“수하에 이 사람과 같은 암살자를 여럿 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블랙 길드와 비슷한 조직인 것 같습니다.”

블랙 길드. 나라의 눈을 피해 뒷세계에서 조용히 불법을 저지르는 헌터 집단들을 뜻했다.

여러모로 좋지 못한 소식이었기에 서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정보도 알 수 있을까요?”

“……그 이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재원이 곤란해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조금 실망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소득이 있었기에 서준은 그냥 넘어갔다.

“그럼 본거지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라도 한번 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정재원의 푸른 눈이 더욱 빛나며 그가 그림자의 기억에 집중했다. 그림자는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쾅!

“무슨……!”

전대일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었다. 서준도, 굉음에 놀라 스킬을 멈춘 정재원도 소리가 들린 천장을 응시했다.

쾅! 콰앙!

굉음이 이어지며 천장에 금이 갔다. 형광등이 깜빡거리다가 결국 깨지고 말았다.

서준이 팔을 들어 형광등 파편을 막으려는 순간, 전대일이 외쳤다.

“위험합니다!”

서준이 놀라서 고개를 들자 전대일이 자신의 스킬을 펼치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천장이 무너졌다.

쿵! 쿠웅!

방금까지만 해도 천장이었던 돌덩이들이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그들을 덮치는 흙먼지 속에서 콜록거리면서도 서준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방패 모양의 얇은 막이 있었다. 전대일의 스킬이었다.

그리고 반투명한 막 위로 그들에게 떨어질 뻔했던 돌덩이들이 얹혀 있었다.

붕괴가 멈춘 듯하자 전대일이 방패 모양의 막을 기울여 위에 쌓인 돌덩이들을 옆으로 와르르 치웠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서준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취조실은 건물 끝에 위치한 구석진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무언가에 먹힌 것처럼 건물 한 귀퉁이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하늘을 보며 서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전대일이 다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서준은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파드득-

거대한 날개가 햇빛을 가리며 나타났다. 서준도 그 거대한 새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날아온 새는 정확히 그들의 앞에 내려앉았다. 세 사람이 경계하는 사이 거대한 부리가 열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부하를 데려간 놈들이 너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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