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말을……?”
서준이 당혹스러워하자 전대일이 옆에서 말했다.
“몬스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처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전대일도 갑작스러운 상황과 적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수용소를 이끄는 소장답게 그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말을 하는 걸 보면 지능이 있는 놈인 것 같은데…… 설마 A급 이상의 몬스터인가.”
전대일의 등급은 A였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영역. 부하들도 근처에 있었다.
놈이 A급 몬스터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몬스터가 침묵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몬스터? A급? 살다 살다 A급 몬스터로 오해받긴 또 처음이네.”
“무슨 말이지?”
“네 눈엔 이 새가 살아 있는 몬스터처럼 보이냐?”
전대일은 그제야 새 몬스터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몬스터인 건 분명한데 어쩐지 이상했다. 색을 잃은 깃털은 푸석푸석했고, 무엇보다 눈빛에서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체처럼.
순간 오싹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의 마음을 느낀 몬스터가 킬킬 웃었다.
“쫄았냐?”
“헛소리를……!”
전대일이 서준과 정재원을 지켰던 방패를 다시 한번 펼쳤다.
그때 그처럼 몬스터를 유심히 살피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저 몬스터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스킬 때문인 것 같군요.”
“오. 정답. 각성자도 아닌 놈이 뭘 좀 아네.”
몬스터가 감탄을 흘리며 박수를 치듯이 날개를 모았다. 하지만 서준은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자를 부하라고 칭하는 걸 보면 몬스터를 조종하는 이가 저자의 보스인 것 같고요.”
서준의 시선이 기절한 그림자에게 닿았다. 몬스터가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것도 정답.”
“대체 수용소를 습격한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내 부하 놈을 데려가려고 그랬지. 저항 없이 내어 준다면 얌전히 돌아갈 생각도 조금은 있어.”
“헛소리 마라! 감히 수용소를 습격하고 얌전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전대일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수용소 헌터들이 하나둘 달려왔다.
어느새 주변엔 수용소 헌터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몇몇은 서준과 정재원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가까이 붙어 섰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 속에서 전대일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황금빛 방패를 땅에 텅 부딪치며 말했다.
“너도 저 암살자 놈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 참. 부하 놈만 데리고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더니.”
귀찮다는 듯이 하는 말과 달리 몬스터의 목소리에선 웃음기가 가득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 싸워 줄 수밖에 없잖아?”
“전방 부대, 공격!”
전대일이 외치자 전방에 서 있던 전투계 헌터들이 일제히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헌터 수용소는 질 나쁜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을 수용하는 곳인 만큼 그곳을 수호하는 헌터들도 실력이 좋았다.
뒤에서 누가 조종하고 있든 일개 몬스터에게 당할 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느낀 것인지 몬스터가 혀를 찼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일 대 다수는 너무한 거 아니냐?”
“몬스터에게 자비 따위!”
전대일이 단호하게 말하자 몬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뭐, 상관없어. 이럴 거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이 몬스터를 골랐거든.”
“무슨……?”
서준이 의문을 표출했다. 그는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몬스터가 동그란 눈을 접으며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격할 대상이 하늘로 사라지자 달려들던 헌터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어떻게 하냐는 물음을 담아 전대일을 바라보았다.
전대일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명령했다.
“새 몬스터니 당연히 날 수 있겠지. 비행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은 모두 전방의 헌터들을 보조해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나섰다. 몇몇 마법사들이 전방의 헌터들에게 비행 마법을 걸어 주었다.
하늘을 달릴 수 있게 된 헌터들이 곧장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정작 몬스터는 당황하지 않았다.
몬스터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좋았어. 그럼 슬슬 이 몬스터의 능력을 보여 줄까?”
“무슨 짓을 하려는진 몰라도 그 전에 넌 죽는다!”
가장 앞서 나가던 헌터가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는 그런 그를 맞이하듯 날개를 양쪽으로 좌악 펼쳤다.
그러자 원형의 진이 나타났다.
“마법진?”
서준의 옆에 있던 한 마법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검을 휘두른 헌터 또한 그것을 눈치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퍽-
“크윽!”
마법진에서 거대한 돌덩이들이 튀어나와 헌터들을 향해 쏟아졌다.
맨 앞에 있던 헌터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돌에 맞아 추락했다. 그나마 뒤에 있던 헌터들은 돌덩이들을 막거나 피하며 간신히 추락을 면했다.
땅에 있는 마법사들이 수용소 건물을 지키기 위해 방어 막을 펼쳐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막았다. 전대일도 거기에 합세했다.
마치 작은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그 광경을 보며 서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몬스터를 조종하면서 마법도 쓸 수 있다니.”
그의 말을 들은 건지 몬스터가 유쾌하게 웃었다.
“정확히는 이 몬스터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빌려 쓰는 거지만 말이야. 난 죽은 이의 능력을 쓸 수 있거든.”
“마법을 쓰는 몬스터라고?”
서준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S급 임시 던전에서 맞닥뜨렸던 보스 몬스터, 하르피아.
이나에게 처참히 패배했던 그 S급 몬스터도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서준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S급 몬스터?”
“정말 S급 몬스터라면 꽤 귀찮아지겠군요.”
전대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는 황금빛 방패를 펼친 그대로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내가 앞장서겠다! 모두 내 뒤를 따르도록!”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능력에 당황하고 있던 헌터들이 전대일의 등장에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비행 마법을 부여받은 전대일이 땅을 박찼다.
그가 펼친 황금빛 방패가 쏟아지는 돌덩이들을 막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옆과 뒤를 부하 헌터들이 따랐다.
마법이 통하지 않게 되자 몬스터가 마법진을 거두고 혀를 쯧 찼다.
“귀찮은 방패네.”
그사이 몬스터의 앞에 다다른 전대일이 스킬을 해제했다. 방패가 사라지자 헌터들은 일제히 몬스터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몬스터가 히죽 웃었다.
“그럼 이건 어때?”
“뭘 하려는진 몰라도 하게 두지 않을 거다!”
검이 몬스터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검날은 몬스터의 몸에 박히지 못했다.
몬스터의 몸 위로 돋아난 돌로 된 막 때문에.
당황한 헌터들이 주춤하는 사이 몬스터가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진에서 돌덩이가 튀어나와 헌터들을 하나둘 추락시켰다.
전대일은 스킬 때문에 추락하진 않았으나 그의 부대가 열세인 것은 분명했다.
“방어는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 망할 놈이……!”
전대일이 이를 까득 갈았다. 어떻게 하면 저 새를 추락시킬 수 있을까, 그는 그것만 생각했다.
그것을 느낀 몬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런데 내가 이래 봬도 꽤 바쁜 몸이거든? 그러니까 슬슬 끝내자고.”
“무슨 헛소리를……!”
“으아악!”
전대일의 말이 끊어졌다. 마침 밑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 탓이었다.
전대일이 고개를 내리자 그의 부하들이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던 전대일은 곧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
부하들이 대항하고 있는 것은 시체, 혹은 해골이었다. 그것도 부대라 칭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수의.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던 언데드 몬스터와는 또 다르게 생겼다.
전대일의 의문을 느낀 것인지 몬스터가 낄낄 웃으며 답을 해 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모은 수집품들이야. 아주 멋지지?”
“수집품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죽은 자들의 시신을 내가 거두어 줬다는 말이지.”
“감히 용서받지 못할 짓을 벌이다니!”
분노한 전대일이 황금빛 방패를 키워 몬스터에게 휘둘렀다. 어이쿠, 소리와 함께 피한 몬스터가 웃으며 말했다.
“선택지를 줄게. 이대로 수용소가 박살 나게 둘 것이냐, 아니면 내 부하 놈만 넘기고 얌전히 넘어갈 것이냐.”
아까까지만 해도 후자는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수적으로도 능력으로도 열세인 지금,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몬스터를 노려보며 고민하던 전대일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밑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전대일과 몬스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서준도 흠칫하며 제 옆에 있는 이를 보았다.
정신계 마법으로 인한 끔찍한 두통에 기절했던 그림자가 어느새 정신을 차렸다. 난리 통 속에서 느슨해진 것인지 입을 막았던 끈도 내려간 상태였다.
몬스터는 힘없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부하를 보며 혀를 찼다.
“쓸모없는 놈. 이게 다 너 때문 아니야.”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뭐?”
자신의 타박에도 제 할 말만 이어 가는 부하의 말에 몬스터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림자에겐 아직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이놈들이…… 저에게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림자의 말에 몬스터가 말을 뚝 멈추었다. 그러자 불길한 감각이 서준과 전대일을 감쌌다.
잠시 후, 몬스터의 부리에서 건조하고도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럼 선택지를 준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네.”
아까와 같은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전대일이 방패를 펼쳤다. 경계 태세를 취하는 그를 보며 몬스터가 말을 이었다.
“마음이 바뀌었어. 너희 그냥 다 죽어라.”
“으아아악!”
때마침 비명 소리가 다시 한번 수용소 내에 퍼졌다. 전대일이 고개를 내려 보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무기를 든 해골들이 수용소 헌터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무기를 그냥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빠르게 움직이며 제각기 쓰는 능력은 분명 스킬이었다.
서준은 건물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죽은 헌터의 시체까지 섞여 있는 건가.”
이 끔찍한 사태를 만들어 낸 이는 죽은 이가 쓰던 스킬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이 수많은 시체들을 하나하나 조종하며 스킬까지 발휘하는 걸 보면 실로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오싹함이 서준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어느새 건물 위로 올라온 해골의 검을 쳐 내고 있었다. 그와 정재원을 보호해 주고 있던 헌터였다.
검에 담긴 힘이 꽤 강력한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제 뒤에 계십시오!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서준은 정재원과 함께 쭈뼛거리며 그의 등 뒤에 섰다. 검을 간신히 막아 내고 있는 모습이 꽤나 힘겨워 보였다.
그는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필이면 호신용 마도구 총을 압수당한 상태여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바위라도 들고 내려쳐야 하나 싶은 그때, 그는 그림자에게 다가가는 해골 하나를 보았다.
서준은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안 돼!”
하지만 늦어 버렸다. 해골이 쥐고 있던 단검으로 그림자를 포박하고 있는 끈을 잘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