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49)

“죽는다고? 내가? 이놈의 공격도 제대로 못 피한 너에게? 크하하하!”

그림자의 탈을 쓴 앤드류가 숨넘어갈 듯 웃어 젖혔다.

이나는 앤드류가 그런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원래 말보단 실력인 법이니까.

이나는 그녀를 무시하는 그림자를 전기로 이루어진 감옥에 가두었다. 손끝으로 감옥을 살짝 만진 그림자가 감탄을 흘렸다.

“땅에 얼음, 거기다 전기 속성까지. 너 꽤 많은 속성을 다룰 줄 아는구나?”

그 외에도 세 속성의 정령이 더 있었지만 이나는 굳이 말해 주지 않았다. 대신 전기 감옥의 공간을 더 좁히며 말했다.

“죽이기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묻고 싶은 거?”

“최근에 일어난 인천 공항 사건과 유골 도난 사건, 네가 벌인 짓이냐?”

고개를 갸웃하던 그림자가 아, 소리를 내며 히죽 웃었다.

“그래. 내가 했다. 밑에를 보면 모르냐?”

이나는 힐끗 건물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해골들과 싸우고 있는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해골들도 그가 훔친 유골들 중 하나일 터.

“정말 악독한 취미구만.”

“칭찬 고맙다.”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전기 감옥의 공간을 더욱더 좁히며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다음 질문. K가 뭐야?”

“쯧. 거기까지 알고 있는 거냐?”

그림자가 혀를 찼다. 조금만 움직여도 전기 감옥이 그를 감전시켰지만 그는 태연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말했다간 놈들이 잔소리를 할 게 뻔하거든.”

“놈들이라. 너 말고도 너 같은 놈들이 또 있나 보지?”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싫어.”

전기 감옥은 이제 그를 꿰뚫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이나는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엔 또 무슨 질문을…….”

“어떻게 던전을 만들어 낸 거지?”

그림자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진짜 많이 알고 있구나. 절대로 살려 두면 안 되겠어.”

“내 질문에나 답을…….”

이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양쪽에서 무기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온 탓이었다.

무기들을 막는 사이 그림자가 전기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이나가 전기 감옥을 폭발시키려고 했으나 한발 늦어 버렸다.

그래도 그 여파로 몸이 마비되었는지 그림자의 움직임이 조금 둔했다. 이건 조종하는 녀석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놈이 둔해진 틈을 타 이나는 얼른 얼음 송곳을 만들어 던졌다. 그러나 놈이 피하는 바람에 얼음 송곳은 파바박, 하고 애꿎은 땅에 박혔을 뿐이었다.

이나가 공격하면 놈이 피하고의 반복이었다. 근접전에 비교적 약한 탓에 이나는 그림자가 가까이 오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를 막아 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나의 눈은 그의 주변을 면밀하게 살폈다.

‘분명 매개체가 있을 거야.’

놈의 보스가 그림자와 다른 해골들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 그것만 찾으면 이 전투를 쉽게 끝낼 수 있을 터였다.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인다.”

그새 마비가 풀린 건지 그림자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흠칫 놀란 이나는 자신의 눈을 향해 날아오는 비수를 얼음으로 쳐 냈다.

그런데 그게 실책이었다. 그 작은 틈을 타 그림자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나는 그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닿으면 새까맣게 타 버릴 정도의 불의 벽을 그의 주위에 세웠다.

하지만 상대는 조종당하는 탓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망설임 없이 불의 벽을 통과한 그림자가 그녀의 목 앞에 검날을 드리웠다.

“이나 씨!”

서준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 비명 같은 외침이 듣기 좋다는 듯 그림자가 까맣게 탄 얼굴로 히죽 웃었다.

“걱정 마. 죽어도 죽은 게 아닐 테니까. 네 몸은 내가 요긴하게 잘 쓸게.”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지 마. 내 몸은 내 거야.”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푹-

“……어?”

그림자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왼쪽 가슴에 단검의 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뒤에서 찌른 모양새였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너는 모르는 방법이 있지.”

이나는 투명화한 채로 그림자를 노려보고 있는 정령들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감히 우리 계약자의 뺨에 상처를 입히다니!]

[절대 용서 못 해!]

피식 웃은 이나가 이번엔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움직임이 뚝 멎은 채로 무력하게 검을 떨구었다.

“제엔장. 하필이면 심장을 노릴 줄이야.”

“역시 거기가 매개체가 맞았나 보네.”

“……알고 있었다고?”

“어.”

그가 다가오는 순간 이나는 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림자가 조종당하기 전, 그의 왼쪽 가슴이 붉게 타올랐던 것을.

혹시나 싶어서 때려 맞혔는데 정답이었다.

킥킥 웃던 그림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슬슬 조종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고 있어 봤자야. 잊진 않았지? 이 녀석은 내 인형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

이나는 힐끔 주변을 살폈다. 아직 앤드류가 조종하고 있는 시체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그림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잊지 마. 내가 널 죽이러 갈 거라는 걸.”

“걱정 마. 그 전에 내가 널 찾아내서 없애 버릴 테니까.”

“뭐?”

이나가 씨익 웃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기다려. 내가 곧 찾아갈게.”

그림자의 눈빛에 순간 오싹함이 스쳤다. 하지만 조종이 끊어진 탓에 그는 곧바로 쓰러졌다.

이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죽었나?”

[아직 희미하게 체온이 남아 있어. 하지만 오래가진 않을 거야.]

파인의 덤덤한 말에 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숨을 앗아 가려 한국에 온 이였다. 굳이 사정을 봐 줄 필요 따위는 없었다.

“이나 씨!”

그림자를 무심하게 보던 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건물 밑에서 해골 군단과 싸우고 있어야 할 시현이 건물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이나를 보자마자 뺨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피가…….”

“별거 아니에요. 그보다 전투는 어떻게 됐어요? 언데드 군단은요?”

“싸우고는 있지만 제압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팔이나 다리, 심지어 머리를 잘라도 계속 움직입니다.”

시현이 반창고를 꺼내 이나의 뺨에 붙여 주며 설명해 주었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지만 이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매개체가 있어요.”

“매개체요?”

“놈이 시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매개체 때문이에요. 그걸 훼손시켜야 해요. 저놈은 심장이었는데…….”

이나가 그림자를 힐끗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시현이 쓰러진 그림자에게 다가가 윗옷을 좌악 찢어 버렸다.

단검이 꽂힌 가슴 위에 지금은 까맣게 변해 버린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것이군요.”

시현이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려가려고 하자 이나가 그를 붙잡았다.

“이시현 헌터는 여기서 저분을 도와줘요.”

“네?”

이나가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체력이 떨어진 전대일이 몬스터에게 밀리고 있었다.

“비행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서 마법을 부여받고 가서 도와주세요.”

시현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은 피하지 못했다.

“이나 씨는…….”

“리카가 지금 자리를 비운 상태라서 전 도와줄 수 없어요. 대신 저는 도하 씨를 도우러 가 볼게요.”

“알겠습니다. ……다치지 마십시오.”

“물론이죠.”

시현의 나지막한 말을 들은 이나가 씩 웃었다. 그리고 흙으로 된 계단을 만들어 곧장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도하 씨!”

도하를 발견한 이나가 그를 불렀다.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고 있던 도하가 귀를 쫑긋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 왔어?”

“아직 체력이 빵빵한 모양이네요.”

“당연하지. 지금까진 준비 운동에 불과하다고.”

도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나는 픽 웃고는 그에게도 시현에게 했던 설명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놈들의 몸에는 낙인 같은 게 있어요. 그걸 찾아서 없애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해요.”

“어쩐지. 끝도 없이 움직이더라니.”

도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 헌터들에게 외쳤다.

“다들 들었지? 놈들의 몸에 낙인이 있다고 한다. 그걸 부숴 버려!”

“네!”

“맡겨 주십쇼, 길드장님!”

청호 길드원들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오랜 전투에 지쳤을 법한데도 사기가 넘쳐 보였다.

이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해골들이 뭉텅이로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거대한 불의 감옥을 만들어 냈다.

그대로 폭파시키기 전, 이나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그 말과 함께 감옥 내부가 폭발했다. 유골들이 타오르며 낙인과 함께 재가 되어 버렸다.

그 광경을 이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을 흘릴 때 그녀는 홀로 애도를 표했다.

“너 같은 마법사는 진짜 처음 봐.”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나는 눈동자만 굴려 옆을 보았다. 앤드류가 누군가의 유골을 통해 말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는 처음이야. 아니, 마법사가 맞긴 한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뭘?”

“너 마력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앤드류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나는 해골 너머의 그를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이 정도 규모를 움직이려면 마력이 보통 닳는 게 아닐 텐데.”

“다 방법이 있지.”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 탓에 해골이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나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난감하게 됐어. 너와 네 일행을 죽여야 하는데, 이렇게 강한 건 예상에 없었다고.”

“어쩌라고.”

“그래서 오늘은 일단 후퇴하기로 했어.”

“뭐? 누구 맘대로?”

이나가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이 자세를 취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 맘대로.”

콰앙!

폭발음과 함께 땅이 진동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수용소 건물 쪽이었다.

건물 밑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것을 본 수용소 헌터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안 돼! 지하엔 범죄자들이……!”

이나는 고개를 돌려 해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해골은 이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헌터들과 싸우던 다른 유골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픽픽 쓰러지더니 끝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헌터들이 그 광경을 보며 당황했다.

대신 건물 밑 구멍에서 범죄자 헌터들이 튀어나와 도망가기 시작했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린 이나는 움직이지 않는 해골을 노려보다 구멍 위를 전기로 된 그물로 막았다.

일단 도망치는 헌터들부터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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