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49)

“제엔장. 하필이면 저런 녀석들이 나타날 게 뭐람.”

헌터 수용소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거리.

앤드류는 스킬을 해제하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조금 무리한 탓에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었다.

“이나……라고 했던가, 이름이.”

앤드류는 다른 이들이 그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억했다. 그만큼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번에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의 의뢰인에게서 암살 의뢰를 받았을 때 들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때 들었을 땐 비각성자였는데……. 설마 그 틈에 각성한 건가?”

그 짧은 기간 동안 각성할 확률은 희박했지만 그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겪었다.

그녀는 각성자였다. 그것도 꽤 강한.

전투에 익숙한 것이 조금 수상했지만 그는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비밀을 아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죽여야 해.”

앤드류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죽여야 했다. 비밀이 더 퍼지기 전에.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죽든, 한국이 멸망하든 말든 그의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스킬 창.”

스킬 창을 열어 무언가를 확인한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인형의 개수가 3분의 1이나 줄어 있었다. 아까 전의 전투로 인해 손상된 것은 모두 그곳에 버리고 온 탓이었다.

그들을 없애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많은 인형이 필요했다. 지금의 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하던 앤드류가 중얼거렸다.

“시골에 가면 유골이 많겠지.”

결심을 한 앤드류가 읏차,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이동 마법이 담긴 아이템을 써서 시골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띠리리리-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상대를 확인한 앤드류가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앤드류는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아예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벨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그의 동료였다. 말이 동료지, 그냥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나 다름없었다.

대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그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거지 같은 타이밍이었다.

지금 그는 중요한 기밀 임무를 부하에게 시킨 것도 모자라 그 부하가 한국에 잡혀 기억을 읽힌 상태였다.

만약 이 사실을 그의 동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 힐난을 받을 터였다.

더 나아가 ‘그분’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앤드류가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발로 차며 씩씩거렸다.

이 일은 그의 손에서 끝내야 했다. 무조건 그래야 했다.

인벤토리에서 이동 아이템을 꺼낸 그가 마법을 발동시켰다. 대충 지도를 보며 좌표도 확인했다.

“좌표.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이동할 좌표를 설정한 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나?”

덕분에 시원하고 좋긴 하지만.

금세 의문을 지운 앤드류의 밑으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누군가가 몰래 그 안에 들어갔다.

번쩍-

마법진에서 빛이 분출되더니 앤드류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불어 그를 지켜보던 바람까지도.

***

앤드류가 모습을 감추었음에도 헌터 수용소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막판에 범죄자들이 탈출했기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모두 스킬을 쓸 수 없게 하는 억제 발찌를 차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잡아들이기가 쉬웠다는 뜻은 아니었다. 기본 신체 능력이 있으니까.

이나도 수용소 헌터들을 도와 도망친 범죄자들을 잡아냈다. 비록 훼손되긴 했으나 앤드류가 훔쳤던 유골들도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전부 거두어들였다.

천조 길드와 청호 길드도 나선 덕에 일은 수월하게 해결됐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하늘엔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사이 수용소에서 치료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용소장, 전대일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조 길드장님, 그리고 청호 길드장님. 두 분 덕에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나의 이름은 쏙 빠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처음 보는 헌터였기에 시현이나 도하의 길드원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도 두 사람의 뒤에 숨어 있기도 했고.

시현이 뒤를 힐끗 보며 이나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도하는 그런 거 없었다.

“인사는 저 말고 얘한테 해요.”

“예?”

“얘가 불러서 온 거거든요. 저희 둘 다.”

전대일이 눈을 크게 뜨며 시현의 뒤에 숨어 있는 이나를 보았다. 이나는 낮게 젠장, 하고 읊조리더니 슬쩍 시현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모자를 푹 눌러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에요. 지나가는 길이었거든요.”

“여길 말입니까?”

“…….”

이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헌터 수용소는 범죄자, 그것도 위험한 헌터들을 잡아 두는 곳인 만큼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연히 지나칠 만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이나가 우물쭈물하자 전대일이 하하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저희 은인 아니겠습니까.”

“은인이라니. 그렇지는…….”

괜히 쑥스러워진 이나가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을 시현과 도하가 흐뭇해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나의 얼굴은 이어진 말에 살짝 굳어 버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 그게…….”

이나는 머뭇거리며 다시 시현의 뒤로 스윽 숨었다. 그러자 시현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이분은 사정이 있어 정체를 숨긴 채 단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다행히 전대일은 그녀의 사정이나 정체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조금 아쉬워하는 얼굴이긴 했지만.

그녀를 구제한 것은 전대일의 부하였다. 때마침 나타나 급히 와 봐야 할 것 같다고 하는 부하의 말에 전대일은 그만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만 남게 되자 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서 직접 나서기 싫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제가 살았잖아요.”

이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직접 나서게 한 원인, 서준이 빙긋 웃으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래도 미안한 감정은 있는지 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오진 못했다.

이나는 서준의 몰골을 주욱 훑어보았다. 건물이 무너진 탓에 그의 비싼 정장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잔소리가 나오려다 사그라들었다.

“다친 곳은 없죠?”

대신 그렇게 묻자 서준이 움찔하더니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네. 이나 씨 덕분에.”

“다행이네요. 정말이지, 전부터 왜 자꾸만 위험한 일에 끼어들고 그래요?”

“그야 전 헌터 협회 본부장이니까요. 위험은 감수해야죠.”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다고요.”

서준은 그저 웃으며 이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긴 손가락이 이나의 다친 뺨을 쓸어내렸다.

“쓰라리진 않습니까?”

“조금 그렇긴 한데 많이 아프진 않아요. 이시현 헌터가 반창고를 주기도 했고.”

이나가 시현을 보며 말하자 서준도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군요.”

“…….”

착각일까. 서로를 보는 서준과 시현의 눈빛에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묘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은 기분에 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도하가 그녀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장해. 수용소가 위험에 빠진 타이밍에 구세주처럼 나타나고 말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서준도 궁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이나는 다치지 않은 쪽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말했다.

“본부장님이 보낸 문자를 보고 바로 왔어요. 티는 안 냈지만 저도 신경 쓰였거든요. 저 암살자 놈이.”

서늘한 시선이 근처에 쓰러져 있는 그림자에게 닿았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와 보니 수용소는 쑥대밭이 되어 있고. 그래서 급하게 이시현 헌터와 도하 씨에게 연락한 거죠.”

“정말 이나 씨가 와 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는 시현과 도하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숙였다.

“두 길드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 정도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도하도 시현도 별일 아니라는 듯 매끄럽게 넘겼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슬쩍 미소 짓고 있던 이나는 서준의 뒤편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그래서 서준에게 물었다.

“근데 본부장님, 저 사람은……?”

뒤를 돌아본 서준이 이나가 가리킨 사람을 발견하곤 탄성을 흘렸다.

“아. 저분은 정재원 헌터입니다. 정신계 마법사고요.”

“정신계 마법사라면 설마…….”

“네. 이나 씨를 습격한 암살자의 기억을 보기 위해 특별히 모신 분입니다.”

이나의 입매가 미묘하게 굳었다. 그것을 느낀 서준이 얼른 정재원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정재원 헌터, 혹시 저자의 기억 속에서 본 것을 이분들에게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

“네? 이분들에게요?”

“네. 믿어도 되는 분들입니다.”

정재원은 서준을 제외한 이들의 눈치를 힐끗 보았다. 그가 헌터 협회 본부장인 서준의 부탁을 받았음에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이나는 괜히 의문이 들었다.

‘뭐 말하지 못할 거라도 있나?’

이나의 의문이 담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정재원이 한숨을 살짝 내쉬며 입을 열었다.

“……중간에 습격을 당한 탓에 제가 본 것은 많지 않습니다.”

“본 것만이라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그자의 머릿속에서 본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모시는 보스에 대한 정보밖에 없습니다.”

“보스에 대한 정보라면 어떤 건가요?”

이나가 끼어들자 정재원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준이 그런 그를 재촉했다.

“대답해 주시죠.”

“아, 네. 보스의 이름은 앤드류. 외양은 아까 본부장님께도 말씀드렸듯 키가 크고 마른,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음침한 분위기의 남자입니다.”

“혹시 그자의 능력도 보았습니까?”

“네. 앤드류라는 자는 인형술사입니다.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은 물건이나 시체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시체의 경우 생전 그자가 지니고 있던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 암살자는 살아 있었잖아요.”

이나가 지금은 싸늘하게 식어 버린 그림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정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 주었다.

“저자는 앤드류와 계약을 한 겁니다.”

“계약이요?”

“살아 있는 자라도 앤드류와 계약을 하면 조종이 가능합니다. 그 또한 앤드류의 스킬이죠.”

“거참. 까다로운 능력이네요. 게다가 그 마력은 대체…….”

이나의 미간이 좁아졌다.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이들도 그 점이 미심쩍은지 무거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서준이 끼어들었다.

“이 정도 규모를 움직여 수용소 헌터들과 대치할 정도면 너무 위험한 자입니다. 얼른 잡아야 합니다.”

“당연히 잡아야지.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잡느냐야. 놈은 이미 멀리 도망갔을 테니까. 찾을 수 있는 흔적도 없고.”

얌전히 듣고 있던 도하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으로선 앤드류라는 놈을 잡을 방법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때 시현이 손을 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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