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도하와 서준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시현은 대답 대신 이나를 힐끗 보았다.
“저에겐 방법이 없지만, 이나 씨라면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이나가 삐질 웃으며 시현을 향해 말했다.
“하여간에 눈치 빠른 인간 같으니.”
“정말 방법이 있다고?”
도하가 묻자 이나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재원에게 말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만 가 보셔도 좋아요.”
“아, 네.”
정재원도 그 방법이 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이나는 그를 보내 버렸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가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세 사람만 주위에 남게 되자 이나가 입을 열었다.
“수용소가 쑥대밭이 된 걸 보고 전 먼저 상황부터 파악했어요. 웬 놈이 시체들을 조종해서 수용소를 공격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령들이 알려 주었군요.”
“네. 그걸 알게 되자마자 리카에게 시체들을 조종하는 녀석을 찾으라고 명령했어요. 시체들을 조종하려면 아무래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진 못할 테니까요.”
서준과 도하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나의 판단력과 행동력에 감탄한 것이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시현도 궁금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놈을 찾은 겁니까? 범위도 너무 넓고, 분명 몸을 숨기고 있었을 텐데요.”
“목소리의 파장으로요. 놈이 조종하는 인형들에게서 나온 목소리로 놈을 찾아낸 거예요. 공기 또한 바람의 영역이니까.”
납득한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는 감탄 어린 눈빛으로 이나를 응시하다 말했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이나 씨가 정령을 다루는 솜씨는 갓 각성한 자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크흠!”
이나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찔린 것이었다.
그래도 때마침 도하가 끼어든 덕에 이나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럼 그 앤드류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놈을 잡을 수 있다는 거지?”
“그렇죠.”
“좋아. 당장 출발하자. 안 그래도 놈을 잡지 못해서 굉장히 찝찝한 상태였다고.”
손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며 음산하게 웃는 도하의 모습은 일반인이 본다면 공포 그 자체일 것이었다.
이나는 직감했다. 그 앤드류라는 놈은 이제 죽었다고.
하지만 그 전에.
“잠시만요. 출발하기 전에 할 일이 있어요.”
“뭔데? 중요한 일이야?”
도하가 묻자 이나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꺼낸 이나가 한 행동은 이한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어, 오빠. 나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 좀 들렀다가 집에 왔어. 그러니까 나 없어졌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세 사람의 황당함 어린 시선이 닿았지만 이나는 모른 체하고 이한과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한과 또 틀어지는 일은 사양이었다. 화내는 이한은 그녀도 조금 무서우니까.
태연하게 핸드폰을 집어넣은 이나가 반창고 위를 살살 문질렀다.
“아무래도 일이 끝나면 천해진 씨한테 가 봐야겠어요. 오빠가 뺨에 난 상처를 보면 또 길길이 날뛸 테니까.”
“유이한 씨라면 확실히.”
저를 노려보던 이한의 시선을 기억하는 서준이 동조했다. 괜히 머쓱해진 이나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나야!]
그때 앤드류에게 붙여 놓은 리카에게서 전언이 왔다.
이나의 표정이 바뀌자 세 사람의 시선도 덩달아 그녀에게 쏠렸다. 이나는 리카의 말에 집중했다.
[그놈이 뭔가를 쓰더니 우리가 던전에 들어갈 때처럼 다른 공간으로 왔어!]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여기가…… 아! 전라남도 장성이랬어!]
‘멀리도 갔다.’
이나는 리카에게 대기하라고 말한 뒤 눈앞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 앤드류라는 놈은 지금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모양이에요.”
“장성? 갑자기 거긴 왜?”
“더 많은 시체들을 얻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함이겠죠. 이번 전투에서 꽤 많이 소모했을 테니.”
이나가 그의 손 밑에서 움직이던 유골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현이 끼어들었다.
“그 말은, 놈이 지금 약화된 상태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그러니 지금 바로 가야 해요. 또 가족을 잃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기도 하고.”
이나의 눈빛이 바뀌었다. 앤드류와 대치할 때처럼 서늘한 눈동자로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잡죠.”
“근데 언제 장성까지 가? 나야 아란이 있다지만, 아무리 아란이라도 장성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된다고.”
도하가 의문을 제기하자 이나도 멈칫했다. 그리고 끄응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던 그때 서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건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
“여긴…… 협회잖아요.”
서준이 데려온 곳을 보며 이나가 말했다.
말투에서 왜 여기로 데려왔느냐는 의문이 느껴졌지만 서준은 대답 대신 그들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가 사람들을 데려간 곳은 협회의 연구소였다.
이나도 한 번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정령의 알을 돌려놓으려고 할 때.
물론 실패했지만.
그래서인지 연구소 직원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이나는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여긴 왜 온 거예요? 어딜 가고 있는 거고요.”
“던전 부서에 가는 중입니다. 그곳에 아주 뛰어난 분이 있거든요.”
장성으로 가는 것과 연구소 내 던전 부서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이나는 그저 눈살을 찡그렸다.
하지만 함께 온 시현은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혹시 양지은 헌터를 만나러 온 겁니까?”
“맞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기에 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연구소 던전 부서 팀장입니다. 공간 마법을 사용하는 A급 헌터로, 아마 우리나라에서 던전에 관해 가장 많은 걸 아는 헌터일 겁니다. 그만큼 유능하고요.”
서준이 뿌듯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 확실히 유능하긴 한 모양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던전 부서 앞에 도착했다.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길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 본부장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로……. 근데 왜 그렇게 흙투성이예요?”
지은이 깜짝 놀라며 묻자 서준은 말없이 미소를 그렸다.
이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그녀를 훑어보았다.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 밑이 조금 퀭해 보였다.
서준도 느꼈는지 그가 지은에게 물었다.
“양 팀장, 오늘도 밤새운 겁니까?”
“어쩌다 보니요. 연구원의 삶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지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서준이 한숨을 내쉬든 말든 그녀는 그의 뒤쪽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나저나 천조 길드장님과 청호 길드장님까지. 대체 무슨 일…….”
그때 연구실 기계가 삐삐 소리를 내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지은이 기계를 몇 번 만져 소리는 잠잠해졌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이게 갑자기 왜…….”
“기계가 갑자기 왜 울린 겁니까?”
“그러게요. 저도 의문이에요. 이건 던전의 마력이 느껴질 때만 반응하는데…….”
의심 어린 눈으로 서준과 시현, 그리고 도하를 훑던 그녀가 마침내 구석에 서 있는 이나를 발견했다.
지은은 이나를 빤히 보며 서준에게 물었다.
“본부장님, 저분은……?”
“제 지인입니다. 사정이 있어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지만요. 그보다 양 팀장에게 부탁이 있는데요.”
서준이 매끄럽게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지은은 이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
“부탁이요?”
“지금 당장 장성으로 가야 합니다. 양 팀장의 그 공간 마법으로 우리를 이동시켜 줄 수 있나요?”
“가능이야 하지만…… 장성은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생겼어요?”
“자세한 내용은 곧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뉴스에 나올 정도면 꽤 심각한가 보네요.”
미간을 살짝 좁힌 지은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가 마법을 쓸 때 사용하는 스태프였다.
바로 마법을 사용해 줄 것처럼 굴던 그녀는 막상 스태프를 꺼내자 곤란해하는 기색이 되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제 마력으로는 그 멀리까지 모두를 이동시키기란 불가능해요.”
“마정석을 사용해도요?”
“혹시라도 여기 있는 마정석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모두 소중한 연구 자원이라고요.”
지은이 으르렁거리자 서준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결국 이나가 짧은 한숨과 함께 끼어들었다.
“그럼 제 마력을 쓰세요.”
“그쪽 마력이요? 헌터였어요? 혹시 마력 스탯이……?”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부족하진 않을 거예요.”
지은이 의심스러워하는 눈으로 이나를 훑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기계가 울린 것도 그렇고, 정체를 숨기는 것도 그렇고. 영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지은의 눈빛에서 의심을 읽은 서준이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양 팀장.”
“하아. 알겠어요. 그럼 그쪽 마력 좀 빌릴게요. 대신 혹시라도 마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부작용은 그쪽이 감당하는 겁니다?”
시현이 멈칫했지만 이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지은이 스태프 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자 그들 주변으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이동 마법이었다.
이나는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은의 마력까지 합쳐진 덕에 그 양은 미미한 정도였다.
그런데 낯선 마력이 그녀의 마력이 사라진 자리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지은의 마력이었다.
이나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지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거대한 마력으로 지은의 마력을 밀어 버렸다.
그러자 이나의 방대한 마력을 느낀 지은의 경악하는 얼굴이 보였다.
“무슨 마력이……!”
이나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마침 마법이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번쩍-
그리고 그들의 신형은 연구실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