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따돌렸나 보네. 게다가 무덤도 많고.”
이나 일행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멀리 온 것이었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앤드류는 눈앞의 무덤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그의 인형이 될 자들의 무덤이었다.
웃음을 흘리던 그는 인형들을 조종해 무덤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직접 움직이기엔 귀찮고 힘든 탓이었다.
뒤에서 얌전히 손가락만 움직이면서 그가 짜증을 내뱉었다.
“젠장. 이게 무슨 고생이야.”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부하 놈 뒤치다꺼리하다가 엉뚱한 녀석들을 맞닥뜨리고, 심지어는 한 녀석한테 쫄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앤드류가 품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인형을 시켜 헌터 협회 전라남도 지부에서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내용을 훑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근처에 S급 던전이 있단 말이지.”
이나 일행을 상대하려면 보다 강하고 많은 수의 인형들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S급 던전에서 인형들을 모으는 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특히나 ‘이 던전’이라면 더더욱.
앤드류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서류를 다시 집어넣고 무덤을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이나야, 언제 오는 거야…….]
바람의 정령 리카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앤드류는 이미 다른 곳에서 몇 구의 유골을 얻은 뒤였다. 몇 번 막아 볼까도 했지만 얌전히 지켜보고 있으라는 이나의 말 탓에 리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리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나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나야, 빨리……!]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돼.”
리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홱 돌렸다. 초조한 탓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기운이 그제야 느껴졌다.
리카의 계약자, 이나의 기운이었다.
[이나야!]
리카가 투명화한 채로 그녀에게 날아갔다. 이나는 제 품에 몸을 비비는 리카의 머리를 토닥여 준 뒤 맞은편을 노려보았다.
앤드류가 무덤을 파헤치는 것도 멈추고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 뭐야. 여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찾아갈 테니 기다리라고.”
이나가 씨익 웃었다. 앤드류는 오싹함이 올라오는 걸 애써 무시하며 인형들을 꺼냈다.
“어떻게 찾아낸 건진 몰라도 잘됐네. 내가 찾아갈 수고는 덜었으니.”
“이야. 허세 넘치는데?”
“너야말로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닌가?”
앤드류가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분명 그녀 일행이 더 유리한 입장인데도 그 미소를 보니 이나는 어쩐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네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시현과 도하가 무기를 꺼내 앤드류의 인형들을 겨누었다.
“이야. 드디어 놈을 잡을 수 있는 건가? 좀 짜릿한데.”
“변태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집중해.”
“변태라니! 너 지금 말 다 했냐?”
시현과 도하가 또다시 투닥거리자 결국 이나가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자꾸 싸울 거예요?”
“그치만 이시현 저놈이 자꾸……!”
“쓰읍!”
“……집중하면 되잖아.”
도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앤드류가 비웃음을 흘렸다.
“한국어로 너희 같은 놈들을 오합지졸이라고 하지 않나? 보아하니 호흡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싸울 수 있겠어?”
“너 같은 놈 상대하기는 충분해.”
이나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앤드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디 한번 보자고!”
드디어 인형들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시현과 도하도 땅을 박찼다.
정말로 여기서 그들을 없앨 참인지 앤드류의 인형들은 꽤 강했다. 수용소에서 겪었던 다른 인형들보다도.
게다가 한 인형을 없앨라치면 앤드류가 다른 인형을 꺼내서 수는 전혀 줄지 않았다.
“젠장. 대체 시신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이거 완전 고인들을 모독하는 행위 아니야?”
“그러게요. 절대 용서받지 못할 놈이네.”
도하의 말에 동조하며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나 일행이 그의 인형을 차례차례 해치워나가자 앤드류가 얼굴을 구겼다.
“꽤 잘 싸우는데?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보시지!”
앤드류의 인형 중 하나가 갑작스레 폭발했다. 그 탓에 가장 가까이 있던 시현이 뒤로 날아가 나무에 몸을 부딪쳤다.
“큭……!”
“이시현 헌터! 괜찮아요?”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 연기를 조심하십시오!”
인형이 폭발하면서 생긴 연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수상하리만치 색이 이상한 연기였다.
연기에 몸이 닿기 전 시현이 재차 외쳤다.
“독입니다! 이나 씨!”
“알고 있어요.”
이나가 리카의 능력을 이용해 독 연기를 하늘로 보내 퍼뜨렸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두 사람 다 괜찮아요?”
“독에 조금 당하긴 했지만 해독 포션을 마셔서 괜찮을 겁니다.”
“나도 이 정돈 문제없어!”
시현과 도하가 차례로 대답했다. 다행히 둘 다 무사한 것 같아 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근데 그놈은……?”
무심코 인형들 너머를 보던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젠장! 설마 도망친 거야?”
아까까지만 해도 앤드류가 있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인형들만 덜렁 남겨 놓고 도망간 듯한 상황에 이나가 욕을 내뱉었다.
“도망치다니. 섭섭하게.”
그때 근처에 있는 한 인형에게서 앤드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나가 노려보자 인형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날 찾고 싶으면 인형을 따라와. 단, 너 혼자.”
“대놓고 함정이라는 걸 알려 주는 거냐?”
“그렇다고 안 올 건 아니잖아?”
이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얼굴을 구겼다.
앤드류의 말이 맞았다. 그를 잡기 위해서라도 인형을 따라가야 했다. 그것이 함정일지라도.
하지만 시현과 도하가 그녀를 붙잡았다.
“혼자 가면 안 됩니다. 여기 있는 인형들을 모두 처치한 후에 다 같이 이동해야 합니다.”
“이시현 말이 맞아. 혼자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두 사람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이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저 혼자 갈게요.”
“이나 씨!”
“두 사람은 여기 있는 인형들을 전부 처리하고 와요. 다 같이 갔다가 인형들이 민간인을 공격하면 큰일 난다고요.”
“옳소!”
앤드류가 맞장구치자 시현이 인형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나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대신 빨리 와야 해요. 알았죠?”
침묵하던 시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도 욕을 내뱉으며 인형들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무언의 동의를 얻은 이나는 곧바로 인형을 따라갔다. 뒤에서 일행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진 않았다.
“일행이 걱정되진 않아?”
앤드류가 물었다. 이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저깟 허접한 인형들에 질 만큼 약한 사람들이 아니거든.”
“허접한 인형이라고?”
도발에 성공했는지 앤드류가 발끈했다.
하지만 잠시 침묵하던 그는 곧 큭큭, 하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 허접한 인형들에게 지면 참 볼만하겠어. 안 그래?”
“무슨 소리야?”
“내가 인형들에게 아주 특별한 기능들을 숨겨 놓았다는 소리지.”
멈칫한 이나가 곧바로 뒤를 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앤드류의 말이 빨랐다.
“다 왔어.”
이나가 인형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비탈길 아래에 있는 게이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앤드류도.
“너……!”
이나가 곧바로 앤드류를 향해 달려들려 하자 앤드류가 히죽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발이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이나가 멈칫했다.
“뭘 하려는 거야?”
“뭘 하긴. 헌터라면 자고로 던전 안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어?”
“너 설마…….”
“들어와. 날 잡아야 할 거 아니야?”
그 말과 함께 앤드류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나는 갈등했다. 이대로 놈을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냐.
“……이즈, 네움.”
[응, 이나야.]
“가서 두 사람을 도와줘.”
[하지만…….]
이나는 고개를 돌려 걱정스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두 정령에게 물었다.
“할 수 있지?”
[……응!]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즈가 네움과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이나는 고개를 돌려 푸르게 빛나는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가자.”
이나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뒤바뀌고 맞이한 것은 온통 돌뿐인 암석 지대였다.
이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앤드류를 찾았다.
“어디 숨어 있는 거야?”
“숨지 않았어.”
이나는 급히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바위 위에 앤드류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이나는 내리쬐는 햇볕 탓에 눈살을 찡그리면서도 앤드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던전 안은 뭐가 다를 것 같아? 오히려 너나 나나 몬스터들을 경계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몬스터가 출몰한다면 그녀나 앤드류나 서로에게 집중하지 못할 터였다. 싸우기에는 오히려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앤드류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로 웃었다.
“내가 굳이 이 던전을 고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일부러 고른 거였어? 그냥 얻어걸린 줄.”
“…….”
앤드류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며 대신 짜증이 자리를 잡았다.
그도 사람 짜증 나게 하는 데 재주가 있었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앤드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바로 이것 때문이다!”
쿠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중심을 못 잡을 정도로 큰 진동이었기에 이나는 리카의 힘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녀가 서 있던 곳이 하나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덮고 있던 흙과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도 전에 본 적 있는 형태의 몬스터였다.
이나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골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