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골렘이 아니야. 거대 골렘이지.”
골렘 위에 올라탄 앤드류가 기분 좋게 덧붙였다.
게다가 한두 개체가 아니었다. 앤드류가 타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골렘 주변으로 다른 작은 골렘들이 즐비했다.
그 골렘에 비해 작은 것이지, 다른 골렘들도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웬만한 빌딩보다 더 높은 골렘을 보며 이나는 몸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알겠네. 네가 이 던전을 고른 이유.”
정재원이 말하기를, 앤드류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은 물건이나 시체를 조종할 수 있다고 했다.
골렘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따지자면 지니고 있는 핵을 통해 움직이는 기계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골렘이 가득한 이 던전에서는 사방이 앤드류의 인형, 즉 이나의 적이라는 소리였다.
아까와 분위기가 달라진 이나를 보며 앤드류가 히죽 웃었다.
“이제 알았어? 네가 있는 이 공간은 내 범위 안이야. 이미 모든 골렘을 내 인형으로 만들었거든.”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작은 골렘들이 이나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이나가 잽싸게 피하긴 했지만 골렘의 팔이 지나간 자리에서 바람이 후웅 불어왔다.
이나가 난감하다는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한 대만 맞아도 뼈도 못 추리겠는데.”
현재 이나의 근력과 체력 스탯은 일반인에 가까웠다. 시현이나 도하라면 모를까, 그녀가 저 주먹에 맞는다면 온몸의 뼈가 바스러질 터였다.
‘일단 높이 올라가야 해.’
제아무리 골렘이어도 하늘을 날진 못했다. 공중전을 선택한다면 분명 그녀에게 유리할 터.
생각을 마친 이나는 골렘의 주먹을 피해 하늘로 올라갔다.
“어딜 가려고?”
그 순간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돌로 이루어진 창이었다.
이나는 급히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석창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낯설지 않은 몬스터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게 있었지.”
이나가 혀를 쯧 찼다.
석창을 날린 것은 수용소에서 보았던 새 몬스터였다. 다만 이번에는 그 수가 더 많았다.
이나가 앤드류 쪽을 노려보자 그가 킥킥 웃으며 물었다.
“네가 과연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뭘?”
“네 마력이 소진되는 게 먼저일까, 내가 쓰러지는 게 먼저일까?”
수용소에서 그 전투를 치른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거대한 골렘들을 조종하는 것도 모자라 S급의 새 몬스터까지.
아닌 척해도 이나의 눈에는 다 보였다.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이.
이나의 시선을 느낀 앤드류는 흠칫 놀랐다. 그는 이를 으득 갈며 몬스터들을 움직였다.
“네 걱정이나 하지 그래!”
새 몬스터들이 그녀를 향해 다시 한번 석창을 날렸다. 이나가 그걸 피해 아래로 내려간 순간 이번엔 골렘의 주먹이 날아왔다.
“볼트!”
콰광!
허공에서 번개가 내려쳐 골렘의 팔을 부숴 버렸다. 그 틈에 다시 날아오른 이나는 부서진 골렘의 팔이 재생하는 것을 보았다.
“골렘은 이래서 귀찮아.”
지난번 얼음 골렘이 나타나는 B급 던전을 여러 번 공략한 결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골렘을 처치하는 두 가지 방법.
하나는 핵을 파괴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조차 하지 못하게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방법이었다.
확실한 건 골렘이 저렇게 크면 두 방법 다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이라니.
‘방어력이 엄청 높겠네.’
이나가 눈살을 찡그렸다.
그때 다른 골렘의 팔을 하나 더 부수던 볼트가 그녀를 불렀다.
[이보게, 계약자.]
“왜?”
[이번에도 테스트할 건가?]
“뭐?”
이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볼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그 거북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가 생각나서 말이네. 마침 다들 단단하겠다, 테스트하기에 딱 좋은 환경 아닌가!]
이나는 미묘한 눈빛으로 눈앞의 원숭이 정령을 응시했다. 볼트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아닌가?]
“……풉. 푸하하하!”
이나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정령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나 님?]
[이나야, 왜 그래?]
[드디어 미친 거야?]
[안 되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계약자는 절대 미치면 안 되네!]
“아, 이것들이 진짜.”
이나가 웃음을 멈추고 정색했다.
정령들이 보이지도,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앤드류는 그런 이나를 미친 사람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보다 더한 놈은 처음 보는데.”
“진짜 뭐라는 거야. 네가 더하거든?”
이나가 발끈해서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속은 꽤 후련했다.
“지금까지 내가 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방법을 알아냈거든.”
“방법?”
“응.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
“그게 뭔데?”
앤드류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어투로 물었다. 답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기에 이나는 속 시원히 대답했다.
“다 부숴 버리면 돼.”
“……뭐?”
“내겐 그럴 힘이 있거든.”
그도 그럴 게 넘칠 것 같은 마력에, 마나 소모량도 40%나 줄어드니 말이다.
그 단단한 라쿠틀라를 한참 상대할 때도 마력이 바닥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 골렘들은 그 단단한 등껍질과 달리 잘 부서지기도 하고.
이나가 자신감 넘치게 말하자 멍하니 있던 앤드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지금까지 누가 밀리고 있었는지 잊었어?”
“응. 이젠 아니야.”
그걸 증명하듯이 이나가 파인의 힘을 이용해 작은 골렘 하나를 폭파시켰다.
몸의 반쪽이 날아갔지만 골렘은 여전히 움직였다. 핵이 남아 있는 탓이었다.
이나는 골렘의 몸이 다시 재생하기 전에 핵을 파괴해 버렸다.
“일단 하나.”
후웅-
거대한 주먹이 날아와 이나가 내려앉아 있던, 기능이 정지한 골렘에게 꽂혔다. 물론 이나는 이미 공중으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이나는 골렘이 등을 보인 틈을 타 이번엔 거대한 얼음의 창을 만들어 날려 버렸다.
콰앙!
폭발음과 같은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 좋게도 핵을 관통했는지 골렘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쐐액-
그 순간 위에서 석창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나가 그것을 올려다보는 순간 석창이 그녀를 향해 내리꽂혔다.
“성공인가?”
앤드류가 초조하게 현장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짙게 드리운 흙먼지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보여 주겠다는 듯 때마침 바람이 일어나 흙먼지를 날려 버렸다.
그 중앙에서는 단단한 얼음의 벽 속에 숨은 이나가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미친! 저게 대체 뭐야!”
앤드류가 경악하든 말든 이나는 얼음의 벽에서 벗어나 다시 골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폭파시키고, 부수고, 베고. 그 거대한 골렘들이 이나 한 사람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나둘 사라지는 인형들을 보며 앤드류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뭐야. 무슨 짓을 했길래 갑자기 강해진 건데!’
사실 이것이 이나의 본실력이었다. 이나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생각을 조금만 변환시켰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을까’에서 ‘할 수 있다’로.
작은 변화일 뿐이었지만 때로는 그 작은 변화가 큰일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지금의 이나처럼.
이 사실을 모르는 앤드류는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잘근거렸다.
‘마력이 부족해.’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는 오랜 전투 과정에서 많은 인형들을 조종한 탓에 안 그래도 마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 거대한 S급 골렘들을 조종하면서 그 가뜩이나 부족한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 탓에 지금 그의 마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걸 써야 하나.’
위급한 순간에 쓰라고 ‘그의 신’에게서 부여받은 힘. 그걸 쓰면 후유증이 엄청날 터였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나가 어느새 그에게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젠장! 그래도 이대로 죽는 것보단 낫겠지!”
앤드류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옷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줄 끝에 달린 검은색 펜던트를 부숴 버렸다.
챙-
그 순간 앤드류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것을 느낀 이나가 달리다 말고 멈칫했다.
“뭐야, 이 마력은?”
[무서워!]
[너무 사악한 마력이 아닌가!]
정령들의 말대로 기분 나쁜 마력이었다. 게다가 이 거리에서까지 느껴질 정도라니.
경계하는 눈초리로 저를 올려다보는 이나에게 앤드류가 히죽 웃어 보였다.
“뭐야. 생각보다 기분 좋잖아, 이거?”
“……변태 같은 놈.”
이나가 중얼거렸지만 앤드류는 신경 쓰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마력에 반응한 몬스터들이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앙!
“윽……!”
골렘의 주먹이 이나가 서 있던 자리를 관통했다. 땅이 깊게 팰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간신히 피한 이나가 그 광경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위력이 달라졌어.”
능력치가 상향된 것은 골렘뿐만이 아니었다.
[이나 님!]
윈티의 외침에 이나가 고개를 젖혔다. 새 몬스터들이 마법을 합쳐 수많은 석창들을 만들고 있었다.
필드를 모두 집어삼킬 정도로 엄청난 수였다. 저것들이 완성되어 그녀 하나만을 노렸다가는 몸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넘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될 터였다.
“저거 막아야 될 것 같은데.”
쾅!
하지만 그녀는 지금 주변 골렘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골렘들이 빨라진 스피드로 그녀가 날아오르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석창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골렘을 막아 줄 지원군이라도 있었다면…….’
이나는 골렘의 공격을 피하며 초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앤드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쐐액-
어느새 땅으로 내려온 새 몬스터 하나가 그녀를 향해 석창을 날렸다.
하필 골렘들 사이에 숨어 있다 튀어나온 바람에 이나는 그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서둘러 방어 막을 펼쳤지만 너무 가까웠다.
“젠장!”
충격에 대비해 이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촤악-
환하게 빛나는 검이 날아오는 석창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두 동강 난 석창은 두 사람을 비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빛과 같은 검기와 뒷모습에서 그가 누군지 알아챈 이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시현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