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49)

“괜찮으십니까?”

시현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냐고 묻는 그의 몰골도 그다지 괜찮아 보이진 않았다.

옷자락 끝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물에 푹 젖어 있었다.

이나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시현이 눈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통에 질문 대신 대답을 먼저 내뱉었다.

“전 괜찮아요. 그러는 이시현 헌터야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도하 씨는요?”

“나 여깄다!”

뒤에서 도하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도하가 골렘들을 말 그대로 쓸어 버리고 있었다.

아란의 푸른 불꽃을 날에 두른 언월도가 골렘의 몸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골렘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가 아란을 타고 빠르게 움직이는 통에 계속 헛손질을 해 댔다.

도하는 시현과 달리 흙투성이였다. 누군 젖어 있고 누군 흙이 묻어 있는 걸 보니 이나는 문득 그들에게 붙여 두었던 두 정령이 떠올랐다.

[이나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이즈가 쪼르르 날아왔다. 이즈의 손에 매달린 네움도 함께였다.

이즈는 이나의 손 위에 네움을 올려놓고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이나야! 내가 한 건 했어!]

“무슨 소리야?”

“이즈의 말대로입니다. 이나 씨가 두 정령을 저희에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큰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시현이 끼어들며 말하자 이나가 놀란 얼굴로 이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즈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이나가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두 사람에게 갔는데, 글쎄 해골들이 막 폭발을 하려고 하지 뭐야? 그래서 나랑 네움이 두 사람을 구해 줬어! 내 물이 얼마나 포용력이 있냐면…….]

이즈가 재잘재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나는 이즈의 자랑을 조금 들어 주다가 고개를 돌려 시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다친 곳은 없는 거죠?”

“네. 저도 청호 길드장도 무사합니다. 다만 폭발 탓에 산에 불이 번져 그걸 해결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시현은 이나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눈으로는 그녀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그것을 느낀 이나가 픽 웃음을 흘렸다.

“괜찮다니까요. 알맞은 타이밍에 잘 와 줬어요.”

“……다행입니다. 늦지 않아서.”

그가 한 말은 진심이었다. 아직도 아까의 위기 상황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나는…….

“고마워요.”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이나가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솔직히 아까 그 공격은 저도 피하기 어려웠거든요.”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시현도 설핏 웃었다. 이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문제는 저거예요.”

시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엄청난 수의 석창이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골렘과 같이 조종하느라 속도가 좀 더딘 모양이지만 곧 쏟아져 내릴 거예요.”

피하기에도 막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공중으로 올라갔다가는 표적이 되어 몸에 구멍이 뚫릴 터였고, 그렇다고 땅에서 방어를 하자니 저 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나도 같은 생각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저걸 어쩐다…….”

“뭘 어째? 지금 상황에선 없애는 것 외에 방법이 있어?”

어느새 골렘들을 헤치고 다가온 도하가 말했다. 그도 슬슬 버거운지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나가 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저걸 다 언제 없애요? 그 전에 우리 몸이 뚫릴 거라고요.”

“석창 말고.”

“그럼요?”

“저놈.”

도하가 손가락으로 골렘 위에 올라탄 앤드류를 가리켰다.

이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채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마법 시전자를 그 전에 없애자는 거죠? 그럼 마법이 파쇄될 테니까.”

“그래. 그거야.”

“도하 씨 이제 보니 마냥 싸움에 미친 개가 아니었네요.”

“무슨 의미냐, 그거?”

도하가 눈을 치켜떴다.

이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앤드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새 몬스터를 불러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생각을 마친 이나는 리카의 힘을 빌려 빠르게 앤드류에게 날아갔다.

중간에 골렘들이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뒤따라오던 시현과 도하가 막아 주었다.

“야, 유이나!”

“여긴 저희에게 맡기고 가십시오!”

이나는 몬스터들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오직 앤드류 하나만을 보며 날았다.

마침 새 몬스터 위에 올라탄 앤드류가 기겁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뭐야? 출발! 출바알!”

앤드류가 서둘러 새 몬스터를 조종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나도 그를 뒤따랐다.

‘빨리, 더 빨리!’

이나의 마음에 동화된 리카가 더욱 속력을 높였다.

이나는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손끝을 스치던 새 몬스터의 뒤꽁무니가 겨우 그녀의 손에 잡혔다.

“당겨!”

“우왁!”

리카가 이나의 몸을 잡아당기자 그녀가 꽉 쥐고 있는 새 몬스터 또한 뒤로 당겨졌다.

앤드류가 조마조마해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놔! 어차피 너희 다 죽일 거거든?”

“그 전에 내가 널 죽일 거다.”

이나가 새 위에 올라타며 살벌하게 읊조렸다.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앤드류가 식은땀을 흘리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뭘 하려고?”

“네 동료들부터 먼저 죽일 거다!”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석창들이 땅에 남아 있는 시현과 도하를 겨누었다.

그것을 발견한 두 사람이 골렘을 저지하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

두 사람의 불안한 눈빛이 하늘에 있는 이나에게 닿았다. 그 순간 석창이 움직였다.

“잘 가라.”

히죽 웃은 앤드류가 손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러자 석창이 빠른 속도로 시현과 도하를 향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우왁! 뭐야!”

“피해라, 백도하!”

두 사람은 혼비백산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그 많은 석창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 사람이 석창들을 막기 위해 무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응?”

“……멈췄다?”

금방이라도 두 사람을 뚫어 버릴 듯 내려오던 석창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춰 버렸다.

당황한 시현과 도하는 이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이나가 앤드류의 팔을 잡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앤드류는 경악하며 이나의 팔을 떼어 내려 애썼다.

“이거 뭔데! 뭐냐고!”

그의 마력이 억눌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나의 거대한 마력에 의해.

그 탓에 앤드류의 스킬이 멈춰 몬스터도 석창도 모두 정지된 것이었다.

붙잡은 앤드류의 팔을 통해 자신의 마력을 흘려보낸 이나가 씨익 웃었다.

“마력 응용법은 확실히 너보단 내가 낫지?”

“너……!”

“자, 이젠 네 차례야.”

이나가 어딘가를 힐끗 보았다. 앤드류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현과 도하가 공중에서 멈춘 석창을 디디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익……!”

앤드류의 얼굴에 공포심이 어렸다. 그는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이나의 손을 겨우 떼어 냈다.

그리고 이나를 발로 차 떨어뜨린 뒤 곧바로 스킬을 다시 쓰려 했다.

“이게 감히 누구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때마침 도하가 그의 몸을 베는 바람에.

“커헉!”

피를 후드득 흘린 앤드류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이었다.

그 탓에 그의 스킬이 강제로 해제되었다. 하늘을 날아오르던 새 몬스터들도, 공중에 떠 있던 석창들도 모두 땅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워어어!”

조종 스킬이 풀린 골렘들도 다시 제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이나가 말했다.

“스킬이 해제되었나 보네요.”

그들은 리카의 힘으로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채였다. 앤드류도 포함해서.

시현이 스킬을 쓰지 못하게 그를 붙잡고 있었다. 이나는 앤드류의 앞에 서서 서늘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봐.”

“뭐, 뭐를…….”

“너희 조직에 대해.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그 힘에 대해.”

앤드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앤드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하면? 겨우 너희가 그분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분?”

“너흰 결국 다 죽을 거야. 그놈들에 의해, 그리고 그분에 의해 죽을 거라고. 크크큭…….”

앤드류가 실성한 듯이 웃었다. 시현과 도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나는 태연했다.

“죽을 때가 되니 미쳐 버렸구만.”

“죽는다고? 누가? 내가?”

“어. 네가. 설마 그런 힘을 사용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앤드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나를 쳐다보았다. 이나는 동정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쓴 그 사악한 힘, 그거 부작용이 꽤 엄청날걸? 인간이 가져선 안 되는 힘이니까.”

“무슨…….”

앤드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서였다.

“컥, 커헉……!”

앤드류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입에선 침이 질질 흘렀고, 눈엔 핏발이 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현과 도하는 놀라서 굳어 버렸다. 이나만이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앤드류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사, 살려 줘……. 모두, 모두 말할 테니까…….”

“말해.”

이나는 앤드류의 몸 위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마나를 몸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것을 심장에 있는 코어로 보내 남아있던 사악한 마력을 서서히 내보내자 앤드류는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앤드류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동안 이나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답했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겠다는 집념이었다.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냈을 때, 도하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일단 이놈을 데리고 나가야죠. 얘들아.”

이나의 부름을 들은 정령들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들을 본 앤드류가 고통도 잊고 눈을 부릅떴다.

이나는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정령들에게 명령했다.

“가서 골렘들 좀 처치하고 와. 이제 나가자.”

[알겠어!]

정령들이 땅으로 내려가 신나게 골렘들을 무너뜨렸다.

앤드류가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저건…….”

“이시현 헌터, 기절시켜요.”

앤드류는 뒷목에 가해지는 힘을 느꼈다. 시야가 뿌예지며 그는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도 그의 시선은 정령들과 이나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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