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49)

골렘들을 처치하자 게이트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일행이 그것을 넘어 밖으로 나가자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리고 웬 사람 무리가 게이트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는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싸움에 끼지 못해 헌터 협회 전남 지부에 도움을 청하러 갔던 서준이었다.

그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이나와 일행들을 보고 서둘러 다가왔다.

“다들 무사한가요?”

“네. 보시다시피.”

“다행이에요.”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한 서준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의 시선이 도하가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앤드류에게 닿았다.

“저자가…….”

“네. 그놈이에요.”

이나가 기절한 앤드류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때 전남 지부의 헌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자는 능력을 쓰지 못하도록 포박해서 저희 쪽에서 구속하고 있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나는 그 헌터가 앤드류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서준이 말을 걸어 고개를 돌렸다.

“다들 몰골이 엉망인 걸 보니 꽤 힘든 싸움이었나 보군요.”

“어쩌다 보니요.”

“근처에 숙소를 잡아 놓았습니다. 일단 가서 휴식을 충분히 취한 뒤에 얘기하죠.”

역시 서준은 일 처리가 뛰어났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

이나는 씻고 나서 다 같이 모이기로 한 점심시간까지 휴식을 취했다.

늦잠을 잘 뻔한 그녀를 깨운 것은 시현의 문자였다.

[식사하러 내려오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나는 잠결에 그것을 본 탓에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침대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그녀를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인지 곧바로 문자가 또 날아왔다.

[그자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맞다.”

이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잠에서 덜 깬 얼굴이었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새벽까지 쉴 새 없이 전투를 치렀더니 피로가 덜 풀린 탓이었다.

이나는 이즈가 가져온 물로 세수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모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1층으로 내려갔다.

“흐아암……. 다들 일찍 일어났네요. 피곤하지도 않아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세 사람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비척비척 걸어간 이나가 물었다. 이미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지 그들 앞에는 반쯤 빈 접시가 놓여 있었다.

빵을 뜯어 먹던 도하가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랑 이시현이야 전투에 익숙하니까. 이상한 건 이 녀석이지.”

도하가 맞은편에 앉은 서준을 가리켰다.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서준이 빙긋 웃었다.

“헌터 협회 본부장으로서 잠을 조금만 자는 건 익숙합니다.”

“하여간에 괴물들.”

이나가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도하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어이없네. 진짜 괴물이 누구한테 괴물이래?”

“뭐래. 이렇게 귀여운 괴물 봤어요?”

이나가 허공의 정령들을 보며 대꾸했다. 그러자 정령들이 꺄르륵 웃으며 외쳤다.

[크아앙! 우린 귀여운 괴물이다!]

[꺄아악! 무서워!]

오늘도 잘 노는 정령들을 보며 이나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저마다 한마디씩을 보탰다.

“확실히 귀엽긴 하죠.”

“그렇다고 괴물이 아닌 건 아니지만.”

“음.”

‘근데 그걸 왜 날 보며 말하는 건데?’

이나가 황당해하는 시선으로 훑자 세 사람은 그제야 이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가져온 빵을 수프에 찍어 먹으며 이나가 물었다.

“그 앤드류라는 놈은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의식을 잃은 채 전남 헌터 수용소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깨어나지 않을 만하죠. 그 정도의 힘을 썼으니.”

정확히는 금지된 힘을 썼으니 말이다.

앤드류가 썼던 그 사악한 힘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힘이었다. 가져서도 안 되고.

그야 타락한 자의 것이니까.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 그런 힘을 사용하곤 했다. 그러니까, 전생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나는 의아했다. 이 세계의 사람이 그런 힘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걸까.

물론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자,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죠.”

이나가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치자 서준이 말을 꺼냈다.

그는 이나를 포함한 세 헌터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제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 거죠?”

하여간에 눈치 빠르기는.

이나가 후, 하고 짧게 숨을 내뱉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앤드류에게서 놈의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서준이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같이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시현과 도하 또한 심각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나는 앤드류에게서 들었던 말을 상기했다.

“K는 우리 조직을 뜻하는 말이야. 우리가 모시는 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 멤버는 나까지 총 여덟 명이고.”

“신이 누구냐고? 우리도 몰라. K라는 이름도 그분이 그렇게 부르라 하셔서 부르는 것뿐이거든.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저 엄청난 힘을 지니셨다는 것뿐이지. 우리 모두 그 힘을 동경해 그분을 따르게 되었고.”

“그분은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못 하셔. 그래서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시면서도 직접 나서지는 못하시지.”

“이 세계……?”

서준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해한다는 듯 시현과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이나만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놈 말에 따르면 그래요.”

“설마 저희가 사는 이곳 말고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겁니까?”

경악한 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이나는 그를 진정시킨 뒤 다시 자리에 앉혔다.

“애초에 던전도 다른 세계나 다름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커지는 스케일에 그도 머릿속이 많이 복잡한 것 같았다.

그때 시선이 느껴져 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앉은 시현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앤드류의 그 힘에 대해 뭔가 아는 것처럼 얘기하던 것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태연한 것도 그렇고. 이나 씨는 뭔가 알고 있는 겁니까?”

서준과 도하도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쓰게 웃은 이나가 되물었다.

“제가 태연한 것처럼 보이나요?”

“……아닙니까?”

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세 사람과 다른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다.

그야 이나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 유일무이한 인간이니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건 나에겐 놀라운 일이 아니야. 문제는 어째서 다른 세계의 존재가 이 세계에 개입했냐는 것이지.’

게다가 그자는 이 세계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다고 했다. 앤드류에게 물었지만 그도 자세한 건 모른다고 답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이나는 생각에 잠기면서도 시현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저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그 힘에 대해 아는 것처럼 얘기했던 건, 그냥 그 힘이 워낙 수상해서 지레짐작한 거고요.”

“……그렇군요.”

시현이 어딘가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큰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 일단 넘어간 것 같았다.

그사이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한 이나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한 가지예요.”

세 사람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시선을 마주하며 못을 박듯이 이야기했다.

“그 K라는 조직을 없애 버리는 것.”

“…….”

“당장 앤드류만 봐도 정상이 아니에요. 저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또다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오게 둘 수는 없어요.”

세 사람 모두 침묵함으로써 긍정했다. 이나는 잠시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놈들이 모시는 신은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못 한다고 했어요. 그럼 그놈을 따르는 그 K라는 조직을 무너뜨리면 자동으로 평화가 찾아오지 않겠어요?”

“옳소! 맞는 말이야.”

도하가 말을 거들었다. 씩 웃는 그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놈들을 잡죠. 어떻게든.”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 둬야 할 게 있습니다.”

시현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나 씨는 이 일에서 빠져 주십시오.”

도하와 서준이 눈을 크게 뜨며 그를 응시했다. 이나도 멍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

서울에 있는 헌터 수용소가 박살이 난 탓에 앤드류는 잠시 전남에 머물러야 했다.

의식이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박 아이템을 풀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포박을 위한 아이템답게 그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젠장! 인벤토리만 쓸 수 있었어도……!”

포박 아이템은 그가 인벤토리를 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탓에 앤드류는 꽤나 초조한 상태였다.

그 안에 넣어 둔 핸드폰 때문이었다.

뺏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쓸 수 있는 곳에 있는데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답답해 미치게 만들었다.

‘당장 연락을 취해야 해.’

동료들에게라도 상관없었다. 어서 자신이 알아낸 이 사실을 그분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뚜벅, 뚜벅-

갑작스러운 발소리에 앤드류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아 앤드류가 눈살을 찡그렸다. 이윽고 상대를 확인한 그가 환하게 웃었다.

“너, 너구나! 날 구하러 왔어!”

“…….”

“왔으면 이것 좀 풀어 줘! 어서 그분께 가야…… 컥!”

앤드류가 갑자기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상대의 능력이 그의 목을 죄었기 때문이었다.

괴로워하는 앤드류를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연락은 여태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 반갑게 맞이하나?”

“그, 그건……!”

“게다가 이 꼴은 뭐지? 이 꼴로 그분께 가겠다고?”

목을 죄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핏발이 선 앤드류의 눈을 보며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넌 이제 쓸모가 없다.”

“자, 잠깐만! 정말로 중요한 일이……!”

촤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앤드류의 고개가 푹 꺾였다. 앤드류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뭐지?”

“길드장님.”

그의 부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자는 이 어두운 공간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앤드류의 부하에게 정신계 마법을 썼던 정재원이었다.

정재원은 전과 달리 얼굴에 표정이랄 게 없었다. 가면을 벗은 그는 꽤 서늘한 인상이었다.

그 얼굴로 자신의 길드장에게 다가간 정재원이 말했다.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

“유이나라는 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정재원은 그에게 자신이 그림자의 머릿속에서 본 정보들을 전했다. 정령의 존재, 그리고 그들을 다루는 이나의 능력에 대해서도.

얌전히 듣고 있던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재밌네.”

짧은 평이었지만 정재원은 그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얌전히 하명을 기다리고 있자 그가 말했다.

“너는 당분간 외국에 가 있어라.”

“알겠습니다.”

“유이나, 유이나라…….”

이나의 이름을 한참이나 중얼거리던 그가 씩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아주 재밌겠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