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팔을 문질렀다.
“왜 저한테 그런 멘트를 하시는지…….”
“그쪽을 향한 제 호기심이 진심이라서요.”
지은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모습이 가히 위협적이라 이나는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그런데 지은이 뒷걸음질 치는 이나의 양손을 덥석 붙잡더니 말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우리 공기 좋은 곳에서 잠시 얘기 좀 할까요?”
***
지은은 이나를 끌고 가다시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다.
물론 이나가 저항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사와 일을 하러 왔다고,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도 했지만 지은은 막무가내였다.
“일이 끝났으니까 거기서 얼쩡거리고 있었겠죠. 그리고 상사와 함께 돌아갈 필요 없어요. 저 공간 이동 마법 사용할 줄 아는 거 잊었어요?”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이나는 함께 온 대리에게 사정을 설명해 조금 일찍 퇴근했다. 물론 포스터를 붙인 곳을 체크한 서류도 잊지 않고 넘겨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은이 그녀를 왜 불렀는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지은은 연구원이었다. 게다가 이나에게 호기심이 있다고도 했고.
‘설마 나를 파헤치기라도 할 생각인가?’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적고 얌전히 당해 줄 생각도 없지만 괜히 찝찝했다.
혼자 있으니까 이런저런 망상을 펼치게 되었다. 그사이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온 지은이 하나를 이나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고맙습니다.”
이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지은을 힐끗 보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쳐다보는 모습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어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네요.”
지은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요?”
“그때 마력 빌려 쓸 때요. 제가 그쪽 몸에 마력을 흘려보냈잖아요. 쫓아내기도 했으면서.”
“당연히 쫓아내죠. 남의 몸에 멋대로 침투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자신만만하게 마력이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연구원으로서 어떻게 그냥 넘어가요?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니 당연히 확인해 보죠. 불안하기도 했고.”
지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놀랐어요. 설마 그 작은 몸에 그런 엄청난 마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게다가 이렇게 어린 사람이었다니.”
자꾸 어리다, 어리다 그러니까 이나는 조금 민망했다. 몸이야 20대 초반의 몸이지만 전생까지 산 세월을 따지면 절대 어린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이나는 딴소리를 내뱉었다.
“미성년자라도 하루아침에 S급으로 각성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이상할 건 없죠.”
“그건 그렇죠.”
지은이 납득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할 얘기란 게 설마 이것뿐인가 싶어 이나가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역시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정체가 뭐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경기장에 있던 그 장치요. 연구실에 있던 장치와 같은 거예요. 던전의 마력이 느껴질 때만 반응하는 거. 그런데 신기하게 그쪽이 나타날 때마다 기계가 울리네?”
“근처에 던전이라도 나타나서 울리는 거 아니고요?”
“그랬다면 벌써 이 근처 헌터들이 출동했겠죠.”
지은의 말에 이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이나도 몰랐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그럼 저도 모르죠. 근데 저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요?”
“‘던전의 마력’이란 게 무슨 말이에요?”
마력의 근원은 마나였다. 그리고 마나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저쪽 세계는 물론, 이쪽 세계에도.
그런데 굳이 ‘던전의 마력’이라고 특정 짓는 게 조금 이상했다.
이나가 의문을 표하자 지은은 말이 없어졌다. 말해도 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나는 일부러 고개를 홱 돌리며 새침하게 말했다.
“말 안 해 주면 나도 묻는 말에 대답 안 할 거예요.”
“……본부장님이 믿는 사람인 것 같으니 말해도 상관없겠죠.”
지은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이어진 말은 꽤 중요한 것이었다.
“그쪽도 헌터니 마력의 근원이 마나라는 것은 잘 알겠죠. 다루는 걸 보니 꽤 능숙한 것 같고.”
“그렇죠.”
“이 마나라는 건 지구에도 존재하고, 던전에도 존재해요. 그런데 그 성질이 달라요.”
이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냥 다 같은 마나인 줄만 알았는데.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지은이 이어서 말해 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던전 내에 존재하는 마나는 지구의 마나와 그 성질부터가 달라요. 물론 힘을 쓰는 데 지장은 없지만요. 펜으로 예를 든다면 연필과 볼펜은 다르지만 무언가를 써내는 용도는 같은 것과 비슷하달까요.”
“그래서 ‘던전의 마력’인 거군요.”
“네. 경기장 안에 있는 저 장치도 던전의 마나를 수집해서 만든 거고요.”
이나는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확신이 생겼다.
그녀가 다가갈 때마다 장치가 울리는 이유. 그건 아마도 그녀가 원래 다른 세계의 사람이어서 그런 듯했다.
몸은 새로 얻었지만 가지고 있는 마나는 저쪽 세계의 것이 아닐까.
‘이상할 것도 없지. 정령의 힘도 그대로 옮겨 왔으니까.’
의문은 대충 풀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던전의 마나와 내 마나의 성질이 일치한다는 건데.’
그렇지 않았다면 장치가 울릴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던전은 내 전생의 세계와 연관되어 있다.’
이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나의 머릿속에 던전이 처음 나타난 날짜가 떠올랐다.
던전이 처음 나타난 것은 23년 전.
이나가 태어난 해였다.
“저기요.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던 이나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은을 멍하니 보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괜찮아요.”
“아닌 것 같은데.”
이나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지은은 그런 이나를 의심 반 걱정 반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요. 이만 서울로 데려다줄게요.”
“……고맙습니다.”
이나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령들이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마법을 펼치던 지은이 아, 하고 탄성을 흘리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 그쪽 이름도 모르네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유이나.”
무심코 전생의 이름을 떠올리던 이나가 작게 대답했다.
“유이나예요.”
오늘따라 자신의 이름이 제 것이 아닌 양 어색하게 느껴졌다.
***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랭킹전이 개최를 앞두고 있어 협회는 여러모로 바빴고, 그 안에 속한 이나도 마찬가지였다.
협회만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안전한 랭킹전 개최를 위해 상급 던전을 공략하느라 길드들도 바쁜 듯했다.
상급 던전일수록 리셋되고 게이트가 붉은색으로 변해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미리 공략해 놓는 것이었다.
이나에게는 그 분주함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일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으니까.
물론 반대의 상황,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바로 지금처럼.
“대진표 나왔나 봐요! 다들 구경 오세요!”
“벌써?”
직원들이 우르르 한자리로 몰려간 탓에 이나도 머뭇거리다 그들에게 다가갔다.
홍보 팀 직원들은 대진표를 보며 흥분한 얼굴로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헉! 김다은 헌터와 성수진 헌터가 붙었어?”
“배우석 헌터와 안용길 헌터도 있어요!”
“와. 죽음의 대진표인데?”
다들 신나서 떠들 때 이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것을 본 대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나 씨, 표정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요?”
“아. 아뇨.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이나가 설핏 웃으며 대답하자 대리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더 묻지 않았다.
반면 늘 이나의 옆에 붙어 있는 정령들은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이나가 멍 때리는 틈을 타 정령들이 속닥거렸다.
[이나 이상해. 쉬는 날에도 늦잠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서 가만히 앉아 있잖아.]
[그렇다고 잠을 잘 자는 것도 아니고 말이네. 계속 뒤척이는 걸 보았네만.]
[밥 먹을 때도 어쩐지 넋이 나간 것 같고 말이죠…….]
정령들이 이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과 달리 이나는 언제든 다치고 아플 수 있는 ‘인간’이었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한편 이나는 정령들이 걱정하는 것도 모른 채 홀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은과 했던 대화 이후로 계속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만약 던전이 나와 연관되어 있다면.’
이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로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완전히 관계없는 일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더 파헤쳐 볼 것이냐, 아니면 영원히 모른 채 지낼 것이냐.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했다.
마침 직원들이 구경을 끝내고 다시 일하러 가자 이나도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 좀 마저 하고 갈게. 다들 조심히 들어가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나는 홍보 팀 직원들 사이에 조용히 껴서 퇴근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직원들이 재잘재잘 떠들었지만 이나는 홀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홀을 가로질러 갈 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이나 씨.”
이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상대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시현이 그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