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49)

두 사람은 관객석 맨 뒤, 서서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시현과 도하는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그래도 대형 스크린에 두 사람이 비치고 있어 경기를 보는 덴 어려움이 없었다.

스크린 속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시현은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도하는 잔뜩 흥분한 게 스크린을 뚫고 느껴졌다.

“누가 이겼으면 좋겠나요?”

서준이 경기를 앞두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이나에게 물었다.

이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언젠가 시현에게도 한 적 있는 대답을 그대로 내뱉었다.

“딱히 누가 이겼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요. 그냥 지고 있는 쪽을 응원할 거예요. 안타까우니까.”

“그럼 저는 반대로 이기고 있는 쪽을 응원해야겠군요. 이나 씨의 응원을 못 받으니 안타까워서라도 말이죠.”

서준이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이나는 픽 웃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냥 둘 다 무사히 경기를 끝마쳤으면 좋겠어요. 다치는 사람 없이.”

“누가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건 그저 대련일 뿐이니까요.”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을 응시했다.

그때 시현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객석을 훑는 것을 보니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령들이 떠들었다.

[우릴 찾나 봐!]

[여기 있다는 거 알려 줄까?]

파드득 날갯짓을 한 리카가 바람에 목소리를 담아 시현에게 보냈다.

[우리 여깄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봐!]

스크린 속 시현이 깜짝 놀라는 듯하더니 리카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오른쪽 관객석을 잠시 훑던 시현의 눈길이 이내 이나 일행에게 닿았다.

이나는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고 손을 조금 흔들어 주었다. 그 멀리서 그게 보이는지 시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어? 이시현 헌터가 여길 보고 있어!”

“저렇게 웃을 줄도 알았구나. 웃으니까 더 잘생겼다…….”

이나의 앞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이나의 귀에 들어왔다. 시현의 팬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꺅꺅거리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나는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잘생기긴 했지. 착하고, 정의롭고.’

게다가 S급 헌터라 강하기까지 하니 덕질 하기 딱 좋은 상대였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

‘왠지 착잡하네.’

이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손만 흔들었다. 때마침 도하도 그들을 발견하고 양팔을 흔들었다.

어린아이처럼 신나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이나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경기를 시작하려나 보군요.”

서준의 말대로 시현과 도하가 각자 무기를 꺼내고 다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얼굴에서 여유가 흘러넘쳤다.

아무래도 긴장되는 건 이나와 관객들뿐인 것 같았다.

그 긴장 어린 침묵 속에서.

삐이-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라고 해야 할지 먼저 달려든 것은 도하였다. 그는 높이 점프해 위에서 아래로 시현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시현은 검을 옆으로 세워 도하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의 검보다 도하의 언월도가 더 큰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잠깐의 힘겨루기 끝에 시현이 도하의 언월도를 쳐 내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물론 도하는 시현이 물러나게 두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언월도의 끝을 시현을 향해 찔러 왔다.

도하가 시현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시현이 막아 낸 탓에 그가 언월도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었다.

다만.

퍽-

“윽……!”

그쪽을 방어하느라 검을 옆으로 향한 탓에 반대쪽 옆구리가 비어 버렸다.

도하가 그곳으로 발차기를 날리자 시현은 짧은 신음과 함께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밀려났다.

“와아아!”

“백도하 헌터 이겨라!”

도하를 응원하러 온 관객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점수제였다면 지금 공격은 확실히 도하의 득점이었다.

“도하 씨 날아다니는데요?”

이나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서준도 미소로 동조하며 말을 덧붙였다.

“이날만을 기다려 왔을 테니까요.”

“하긴. 그동안 도하 씨가 시현 씨와 싸우겠다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나가 한숨을 내쉬자 서준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때 관객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검에서 빛이……!”

“오러다!”

그 말대로 시현이 스킬을 시전했다.

무엇이든지 벨 수 있다고 알려진 검기, 오러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기에 도하도 씨익 웃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이번엔 시현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그는 도하에게 달려오며 오러를 씌운 검을 반원 모양으로 휘둘렀다.

물론 도하는 이를 막으려 했다. 그 순간 이나 근처에 앉아 있는 관객이 중얼거렸다.

“막으면 부러지지 않나……?”

시현의 오러는 비슷한 성질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닌 이상 무엇이든 벨 수 있었다. 설령 거대한 바위라 할지라도.

원래대로라면 도하의 언월도도 그의 오러에 부딪친 순간 부러져야 했다.

챙-

하지만 검이 부딪친 순간, 관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안 부러졌다!”

그의 말대로 도하의 무기는 멀쩡했다. 금조차 가지 않았다.

시현이 오러를 조절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도 할 땐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니까.

도하의 언월도가 부러지지 않은 것은 도하의 스킬 덕분이었다.

“이름값 하네.”

이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나는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도하의 스킬에 관한 내용을 상기했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꺾이지 않는 투지, 였던가요, 스킬 이름이. 확실히 엄청나네요. 저 오러를 막아 내다니.”

꺾이지 않는 투지. 도하의 스킬 중 하나였다.

이 스킬은 등급에 상관없이 도하가 손에 쥔 무기는 절대 부러지지 않게 했다. 싸우고자 하는 도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그에게 딱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그래서 간혹 그런 말도 나돌았다. 도하가 만약 언월도가 아닌 방패를 손에 쥐었다면 최고의 탱커가 되었을 거라고.

방패를 든 도하라. 안 어울리긴 했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래도 역시 도하 씨는 저 무기가 어울려.’

이나는 픽 웃으며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도하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물론 시현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경기장의 모든 관객들이 숨죽이며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나도 어느새 몰입하고 있는데, 그 순간 옆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아. 제 겁니다. 여보세요?”

서준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의 말을 듣던 서준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 갔다.

“……잠시만요. 이나 씨,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이나에게 양해를 구한 서준이 서둘러 관객석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리카, 혹시 들었어?”

[응? 뭘?]

리카가 경기장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되물었다. 아무래도 시현과 도하의 경기에 심취한 모양이었다.

“음. 아니야.”

이나는 곧 관심을 껐다. 이나가 알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면 서준이 그녀에게 말을 해 주었을 터.

이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기에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양지은 헌터는 언제 볼 수 있는 건지.”

이나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 급하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초조했다.

지금은 경기를 보며 애써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본부장님이 돌아오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이나는 지금은 일단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하가 분명 자기가 싸우는 걸 봤냐며 캐물을 테니까.

이나가 경기장을 보며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눈에 담고 있을 때였다.

“뭐야. 왜 저렇게 심심하게 놀아?”

이나는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 덩치 큰 남자가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말을 들은 관객들이 미간을 좁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한창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뒤에서 산통을 깨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심기가 상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든 말든 남자는 따분하다는 듯 경기장 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경기에 집중하는 척하지만 힘을 조절하고, 상처도 안 내게 조심하고.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야, 저 사람은?”

“제발 나가 줬음 좋겠네.”

관객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힐끔거렸다.

한 덩치 하는 탓에 무서워서 직접 말은 못 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반면 이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투덜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대체 언제 온 거지?’

이런 거대한 사람이 근처에 왔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령들도 놀란 눈치였다.

[깜짝이야! 언제 왔지?]

[소리 좀 내고 다니게, 인간!]

이나는 긴장 어린 눈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헌터?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남자가 기대고 있던 펜스에서 몸을 떼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몸이 나서 줘야겠군.”

“무슨…….”

이나가 불안한 마음에 그를 막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그가 점프했다. 평범한 인간은 절대 뛸 수 없는 높이까지 점프한 그는 이내 경기장 중앙에 안착했다.

시현과 도하가 경기를 치르고 있는 그곳에.

“뭐야?”

시현과의 경기를 방해당한 도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시현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싶었다.

혼란이 담긴 수군거림이 관객석에 퍼졌다. 그 원인인 남자가 시현과 도하를 보며 말했다.

“싸움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뭐라는 거야?”

“싸움은 말이지.”

남자가 허공에서 거대한 대검을 꺼냈다. 그것을 두 사람에게 겨누며 남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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