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49)

그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가까이 있던 시현과 도하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헌터는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남자를 경계했다.

그때 남자에게서 벨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는 자신에게 향한 무기들은 본체만체하며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어, 바타르. 무슨 일이야?”

[마르코스, 어디야?]

“나? 지금 랭킹전 하고 있는 경기장에 있는데.”

잠시간의 침묵 후, 핸드폰 너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결국 끼어든 거냐.]

“그렇지만 너무 재미없게 노는 걸 어떡해? 좀이 쑤셔서 살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마르코스라 불린 남자가 시현과 도하를 답답해하는 눈으로 흘겨보았다.

도하가 욱해서 무기를 치켜들었지만 시현이 막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마르코스와 바타르라는 자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뭐, 오히려 잘됐나. 랭킹전이라면 카메라도 있고, 모두의 시선을 끌기 좋을 테니.]

“그럼, 그럼. 살아 있다면 분명 ‘그것’도 보고 있을 거야. 아니면 혹시 알아?”

마르코스가 관객석을 주욱 훑어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중에 있을지.”

그 시선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져 시현도 도하도 무기를 꾹 쥐었다. 마르코스가 두 사람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바타르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자 시현이 얼른 질문을 던졌다.

“무슨 짓을……!”

하지만 그는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전화를 끄고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마르코스가 그를 향해 달려든 탓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시현은 얼른 침착함을 되찾고 검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베려는 대검을 막아 냈다.

챙-

“윽……!”

그런데 마르코스의 힘이 세도 너무 셌다. 대검을 막으려던 시현이 뒤로 치익 밀려날 정도로.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난 시현은 한쪽 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어찌나 강한 힘인지 손에 경련이 일고 있었다.

“이시현! 집중해!”

시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를 향해 달려오던 마르코스를 도하가 막아 내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저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 힘에서 밀려도 너무 밀렸다. 적어도 두 명분의 힘이 필요했다.

마침 옆에는 도하가 있었다. 한국에서 힘이 좋다고 소문난 그와 힘을 합치면 분명 이길 수 있을 터였다.

생각을 마친 시현은 검을 세우고 달렸다. 마르코스를 상대하는 두 사람을 보며 관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뭐지? 서프라이즈 이벤트인가?”

“그런 것치곤 너무 본격적으로 싸우지 않아?”

관객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이나도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과 던전에 여러 번 같이 들어갔던 사람으로서 이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서프라이즈 이벤트 따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상대를 적으로 인식했고, 상대방 또한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시현과 도하는 상대방에게 힘으로 밀리고 있는 듯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내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여기서 능력을 쓰게 된다면 분명 존재가 노출될 터.

잠시 고민하던 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자신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체가 노출되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결정을 내린 이나가 정령들을 경기장으로 보내려고 할 때였다.

“어? 저게 뭐지?”

이나 근처에 앉아 있던 관객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나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가 경기장 위 하늘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심상치 않았다.

“리카, 가서 저게 뭔지…….”

이나는 리카에게 명령해 그것을 조사해 보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그 점 같은 것이 폭발했다.

“꺄아악!”

“뭐, 뭐야? 터졌어?”

사람들은 불안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경기장의 세 사람도 싸우던 것을 멈추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시작됐군.”

마르코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시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르코스는 말없이 하늘을 향해 턱짓을 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시현은 눈을 부릅떴다.

“게이트?”

폭발로 생긴 거뭇한 연기 사이로 푸르게 빛나는 게이트가 보였다.

하늘의 색과 겹쳐 잘 보이지 않던 그것은 서서히 붉은색으로 바뀌어 모두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게이트가 완전한 붉은빛으로 바뀌었을 때.

파앗-

게이트가 불길하게 빛나며 무언가가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쿵- 쿠웅-

그것들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경기장에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붉은색 피부에 머리에 뿔이 달려 마치 도깨비처럼 생긴 그것들은 다름 아닌 몬스터였다.

“우워어어!”

“꺄아아악!”

“도망쳐!”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몬스터의 울음소리에 의해 깨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혼비백산하여 출구를 찾아 도망쳤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헌터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팀을 나눠 한쪽은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한쪽은 그사이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외진 곳이긴 해도 관객석에 서 있던 이나 역시 그 대상이었다.

“거기, 얼른 이쪽으로 오십시오!”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헌터가 이나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나는 주먹을 꾹 쥐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K…….”

“저기요! 이럴 시간 없습니다! 얼른……!”

“전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대피시켜요.”

“뭐라고요?”

그가 황당해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나는 대답 없이 반대쪽으로 달렸다.

어느새 관객석으로 올라온 한 몬스터가 이나의 맞은편에 있었다. 그걸 본 헌터가 그녀를 구해 내려 했지만 이나가 몬스터를 바람으로 단번에 베어 버리는 게 더 빨랐다.

그걸 보고 헌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헌터……?”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이나는 간간이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경기장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 명이 아니야. 누군가가 더 있어.’

이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 시현과 도하가 마르코스와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다. 폭발물이 다른 곳에서 날아온 것을 보고 추측할 뿐이었다.

이나는 폭발물이 날아왔던 방향을 기억해 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중간중간 경기장 쪽을 살피기도 했다.

“……괜찮을까.”

여전히 마르코스와 대치 중인 시현과 도하가 보였다. 거기다 몬스터들도 그들을 공격해 방심했다간 다치기 십상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둘이 힘을 합쳐 잘 대응하고 있었다. 이나는 일단 저쪽은 믿기로 하고 K의 다른 멤버를 찾기 위해 서둘렀다.

[이나야, 저기!]

리카가 천장 한쪽을 가리켰다. 이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젖혔다.

검은 인영과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보던 이나가 다급히 명령했다.

“리카, 가서 막아!”

하지만 리카가 당도하기도 전에 경기장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그 순간 시현의 오른팔 쪽 옷이 핏, 하고 찢겨져 나갔다. 그 틈으로 피가 그의 옷을 적시며 흘러나왔다.

“큭……!”

시현은 순간 주춤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당장 그를 공격하는 몬스터에 대응해야 했으니까.

분명한 위기 상황이었다.

이나는 그 상황에도 검을 놓치지 않는 시현을 보았다가 총을 쏜 놈에게로 살벌한 시선을 보냈다.

“저 자식이……!”

그녀는 리카의 바람을 타고 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가 또다시 누군가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나는 그 전에 선빵을 치기로 했다.

“볼트!”

[알았네!]

볼트가 총잡이에게 벼락을 내리꽂았다.

놈은 용케 눈치채고 다급히 피했다. 그가 옆으로 구르며 몸에 걸치고 있는 갈색 모포 같은 것이 휘날렸다.

맞히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다치는 일은 막아 냈다. 이나는 조금 안도하며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벼락을 피하느라 조금 구른 그가 자리에 똑바로 서서 이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용케 혼자 왔군.”

“내가 사정이 있어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이랑은 같이 싸우지 않아.”

어깨를 으쓱한 이나가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너, 감히 내 사람을 공격했겠다.”

“아아. 방금 내가 맞힌 놈 말인가?”

경기장 쪽을 힐끗 본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일부러 빗맞혀 줬는데.”

“뭐?”

“머리를 노렸다간 마르코스가 화낼 것 같았거든. 자기 사냥감을 해치웠다고.”

그러면서 그가 경기장 쪽을 눈짓했다. 이나가 고개를 돌리자 불편해하는 눈으로 이쪽을 지그시 보고 있는 우락부락한 남자가 보였다.

이 상황에서도 절대 긴장하지 않는 두 적을 보며 이나는 입매를 굳혔다. 그들이 자신들의 실력에 얼마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챈 것이었다.

“그나저나 넌 뭐지? 마법사인가?”

눈앞의 총잡이, 마르코스의 동료 바타르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나를 응시했다.

이나는 굳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고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해 두지, 뭐.”

“마법으로는 날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글쎄. 내 생각은 다른데.”

이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앤드류도 제압한 능력인데, 너희를 상대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을까?”

바타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빛이 바뀐 그가 이나를 노려보았다.

“너였구나. 앤드류를 죽인 놈이.”

“말은 바로 하자고. 앤드류를 제압한 건 맞지만 죽이진 않았어.”

“그렇다고 해 두지.”

이나가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는 바타르는 이나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이나를 경계하며 저격 총을 집어넣고 권총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당장이라도 총을 들어 이나를 쏴 버릴 듯한 모습에 이나도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해 보자 이거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