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49)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현과 도하가 마르코스와 대치하고 있었으니까.

얼른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 도와주러 가야 했다.

이나는 아까처럼 볼트의 능력으로 바타르에게 벼락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타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점프하며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탕, 탕!

두 발의 총알이 이나에게 날아왔다. 대비하고 있던 이나는 리카의 바람으로 빠르게 하늘로 올라갔다.

총알이 박힌 자리를 돌아본 이나가 미간을 좁혔다.

“마력으로 감싼 탄알인가. 맞으면 꽤 치명타겠는데.”

“맞는 순간 그 부위가 터져 나가겠지.”

여유롭게 답해 주며 바타르가 허공의 이나를 향해 한 발을 더 쏘았다. 똑같이 마력이 담긴 탄알이었다.

아까처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나는 윈티의 능력으로 두꺼운 얼음을 여러 겹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탄알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탄알은 일곱 번째 얼음에 막혀 더 이상 날아오지 못했다. 정령들의 능력 또한 그녀의 마력을 삼켜 펼치는 것이라 생각보다 방어력이 좋았다.

“얼음 따위로 내 탄알을 막다니.”

바타르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윈티가 발끈해서 외쳤다.

[어, 얼음도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고요……!]

이나가 픽 웃었다. 투명화한 탓에 윈티를 보지 못하는 바타르에게는 이나의 그 미소가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보였다.

눈썹을 꿈틀 움직인 바타르가 다시 그녀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탕!

총성이 울리자 이나는 곧바로 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게?”

탄알이 여러 개로 갈라졌다. 뿐만 아니라 겉에 있던 마력이 불로 변모하여 꼭 불꽃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피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이나는 다시 얼음의 벽을 세웠다.

탄알의 속도 탓에 벽을 일곱 개밖에 세우지 못했다. 그래도 그것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얼음과 상성이 안 좋은 불이 탄알을 감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탄알은 아까와 달리 일곱 번째 벽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워……!”

총알은 닿지 않았지만 불이 스친 탓에 옷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 탓에 조금 덴 모양이었다.

[이나야, 괜찮아?]

[여기 얼음이요!]

정령들이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윈티가 얼음 조각을 이나의 피부에 가져다 댔다.

시원한 기운이 피부를 감싸자 조금 나았다. 그사이 이나는 피부처럼 차가워진 머릿속을 냉철하게 굴렸다.

“귀찮은 자식.”

그냥 볼트의 벼락에 맞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자꾸 피해 대니 답답했다. 그런 식이라면 발목을 붙잡기 위해 다른 능력을 써도 들킬 터였다.

‘이래서 원거리 딜러끼리 만나면 귀찮다니까.’

물론 근거리 딜러를 만나도 귀찮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이나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바타르가 다시 총을 들어 올렸다.

그때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나 씨! 괜찮아요?”

“양지은 헌터?”

이나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지 지은은 이나를 향해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근데 앞에는 누구…….”

“양지은 헌터! 안쪽으로 들어가요!”

“네?”

“피하라고요!”

바타르가 지은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총을 뻗었다. 탄알은 망설임 없이 지은을 향해 날아갔다.

이나는 서둘러 지은의 앞에 흙으로 된 두꺼운 벽을 펼쳤다. 하지만 마력을 머금은 탄알은 그것을 간단히 뚫어 냈다.

“이런……!”

낭패 어린 표정을 지은 이나는 곧바로 지은에게 가 보려 했다.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바타르가 곧바로 공격해 오는 통에 이나는 지은에게 가 보긴커녕 그 공격을 피하기도 바빴다.

‘무사하려나.’

이나는 흙벽이 세워진 곳을 힐끗 살폈다. 당한 건지 어쩐 건지 지은은 조용했다.

“젠장.”

“네 걱정이나 하시지.”

이나가 잠시 한눈판 사이 바타르가 조금 전의 그 여러 갈래로 날아오는 탄알을 쏘았다.

이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막으려 했다.

“응?”

그런데 어째 탄알이 날아오는 방향이 이상했다.

이나가 혹시 몰라 능력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자 여러 갈래로 나뉜 탄알이 그녀를 비껴갔다.

스친 것도 아닌, 그야말로 헛발이었다.

이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타르를 쳐다보았다. 맞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가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한 건지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황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왜, 왜 맞지 않았지?”

바타르도 잔뜩 당황한 얼굴로 이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뭘 했다고?”

이나는 어이가 가출하는 기분을 느꼈다.

바타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뜻밖의 곳에서 들려왔다.

“아, 그거 제가 한 거예요.”

“양지은 헌터?”

이나는 어느새 천장 위로 올라온 지은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서둘러 그녀의 몸을 살피자 지은이 괜찮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요. 다행히 무사해요.”

“어떻게…….”

“스킬 좀 썼죠.”

이나는 지은의 능력에 대해 상기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방금 탄알이 빗나간 이유도…….”

“맞아요. 제가 했어요. 이 근방의 공간을 이렇게.”

지은이 스태프로 땅을 살짝 두드리자 눈앞의 공간이 일렁였다.

그것을 보고 지은이 싱긋 웃었다.

“사알짝 왜곡시켰죠.”

“A급 공간 마법사는 대단하네요.”

이나는 혀를 내둘렀다. 진심 어린 감탄이었다.

그사이 잊힌 바타르가 얼굴을 붉히며 권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아무리 공간 마법사라도 비처럼 쏟아지는 탄알을 막을 수는 없겠지.”

그 말에 이나도 지은도 얼굴을 굳혔다.

이나는 지은에게 슬쩍 물었다.

“아까처럼 공간 왜곡으로는 막을 수 없겠죠?”

“아무래도…….”

“그럼 다른 공간으로 보내는 방법은요?”

“네?”

이나는 경기장 쪽을 힐끗 보았다.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헌터들과, 마르코스와 대치 중인 시현과 도하가 보였다.

그들을 잊지 않은 이나가 지은에게 말했다.

“저쪽의 몬스터들에게 쏟아 버리죠.”

지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사이 인벤토리에서 개틀링 건을 꺼낸 바타르가 외쳤다.

“죽어라!”

두두두두-

바타르의 말처럼 탄알이 비처럼 그들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나와 지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세상에. 이게 되네?”

지은이 놀란 눈으로 경기장 쪽을 쳐다보았다.

탄알은 지은의 스킬에 먹혀 경기장의 몬스터들에게로 날아갔다. 탄알에 맞은 몬스터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해 집중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지은이 눈을 빛냈다.

한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된 바타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젠장……!”

“전세 역전이네?”

이나가 씨익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공격해도 어차피 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바타르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때 바타르가 무언가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큭큭 웃기 시작했다.

“역시…… 신은 날 버리지 않았어.”

“갑자기 뭐라는 거야?”

“전세 역전 따위 없다는 소리다.”

“뭐?”

“이나 씨! 저기요!”

뒤에서 지은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이나가 뒤로 돌아 그녀를 쳐다보자 지은은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게이트가……!”

이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하늘의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몬스터를 쏟아 내고 있던 게이트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었던 색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그 크기가 점점 커졌다. 여태 이런 적은 없었기에 이나는 표정을 굳혔다.

“저거 왜 저래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지은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던전 연구가인 그녀가 모를 정도면 처음 발현된 현상이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이 심각하든 말든 바타르는 계속해서 웃음을 흘렸다. 이나가 노려보자 그제야 그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처음 보겠지. 저 빛은 우리의 신께서 지니신 고유의 빛이니까.”

“너희의 신?”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앤드류에게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K가 모시는 신이 있다는 그 말.

하지만 그 신이 등장한다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너희 K가 모시는 신은 이 세계에 개입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구나. 앤드류가 너무 많은 걸 말해 버렸어.”

바타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이나가 노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앞선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맞는 말이야. 우리의 신께선 이 세계에 개입하지 못하시지.”

“그런데 어떻게…….”

“하지만 던전이 열렸잖아?”

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말하는 바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로 저쪽 세계와 연결되어 몬스터가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그 신이란 놈의 제약도 사라진 것이었다.

“젠장!”

이나는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지은이 있으니 바타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

지금은 저 게이트에서 나올 그 신이란 놈이 문제였다.

‘놈이 나오기 전에 던전 공략 조건을 만족시켜야 돼.’

오직 그 생각만 하며 이나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게이트에서 바람이 쏟아져 나와 이나는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 순간, 바람에 스며든 목소리가 이나의 귀에 들어왔다.

“……나…….”

“뭐?”

이나는 멈칫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대하고 불길한 목소리가 경기장 일대에 울려 퍼졌다.

“셀리나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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