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49)

이나의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반면 같은 외침을 들은 경기장의 다른 이들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셀리나?”

시현과 도하도 그쪽을 힐끗 보며 마르코스에게 물었다.

“야, 근육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우리의 신께서 이곳을 직접 보고 싶다 하셨지.”

마르코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신의 강림이다.”

“미친것들.”

도하가 질린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이시현, 저거 막아야 되지 않아?”

“…….”

“이시현! 내 말 안 들려?”

도하가 재차 외쳤지만 시현은 대답 없이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굳어 있는 이나가 있었다.

‘이나 씨……?’

멀리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마르코스가 그의 생각을 눈치채고 달려든 탓이었다.

도하가 그를 막으며 시현에게 외쳤다.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해!”

시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검을 들어 올렸다. 대충 지혈을 해 놓은 팔이 욱신거렸으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나를 한 번 더 본 그는 도하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제발 무사하길.’

그의 기도가 전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굳어 있던 이나가 정신을 차렸다. 정령들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흔든 덕분이기도 했다.

[이나야, 정신 차려!]

[여기서 멍하니 있으면 안 돼요……!]

“……알고 있어.”

이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다가 한층 또렷해진 눈빛으로 게이트를 응시했다.

대체 어떻게? 왜?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잠식했지만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쪽이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 그놈을 해치워야 게이트가 닫혔다.

하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기는 꺼려졌다. 아까 그 목소리 탓도 있지만, K의 신이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이나라도 피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게이트가 꿀렁꿀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손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내 놈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밑에 있는 몬스터들처럼 도깨비 형상의 몬스터였다.

다만 더 거대하고, 피부가 검은색이었다.

척 봐도 이놈이 보스 몬스터였다.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모두 대비해!”

경기장에 있는 헌터들도 보스 몬스터를 발견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힐끗 내려다본 이나는 저를 보고 있는 검은 도깨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대비 안 해도 되는데.”

이놈은 내가 해치울 거니까.

이나는 눈앞의 도깨비를 노려보았다. 그때 놈의 입이 열리며 아까 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셀……리나…….”

이나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것을 티 내기 싫은 듯 이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체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진 몰라도.”

이나의 주변을 불꽃이 감쌌다. 파인이 그녀의 마음에 동화되어 능력을 쓴 것이었다.

불이 반사되어 붉게 빛나는 이나의 눈이 정확히 도깨비를 응시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이 세계에 간섭하지 마!”

그와 동시에 파인의 불꽃이 화살이 되어 도깨비를 향해 날아갔다. 피할 거라 예상했건만 의외로 도깨비는 그러지 않았다.

파바박-

화살은 도깨비의 몸을 정확히 관통했다.

파인의 능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꽃의 화살에 관통당한 도깨비의 몸은 안에서부터 서서히 타들어 갔다.

이내 도깨비는 활활 타올랐다. 마치 불로 된 몸을 얻은 것처럼.

고통스러울 법한데도 도깨비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그저 이나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 시선이 어쩐지 소름 끼쳐 이나는 불의 강도를 더 세게 했다. 그러자 도깨비의 몸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상반신만 남게 되었을 때, 도깨비가 웃었다.

“찾았다…….”

이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순간 도깨비의 몸에서 검은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그것은 여전히 열려 있는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마치 무언가에 씌었다 해방된 것처럼 도깨비는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그리고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S급 임시 던전 ‘도ㄲㅐ?? ■■’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도깨비방망이(B)’를 획득하셨습니다.⌟

⌜3SP를 획득하셨습니다.⌟

“해치웠나?”

도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랜 전투 탓에 그의 얼굴은 조금 지쳐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서 마찬가지로 하늘을 보고 있던 마르코스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저 여자가 바로…….”

“뭐?”

이나를 뜻하는 말에 도하가 눈을 치켜뜨며 그를 쳐다보았다. 마르코스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나저나 난 이만 가 봐야겠군.”

“뭐? 누구 맘대로!”

도하가 언월도 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으르렁거렸다.

순간 마르코스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지만 어느새 근처에 다가온 바타르의 말에 그는 애써 투지를 눌렀다.

“그만해라, 마르코스. 물러나라는 명이시다.”

“쳇. 알고 있다고. 그럼 두 사람, 나중에 또 보면 좋겠군.”

바타르가 아이템을 쓰자 두 사람의 밑에 마법진이 생겼다.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

도하가 그들을 쫓아가려 했지만 팔을 붙잡는 힘에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사이 마르코스와 바타르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보던 도하가 사나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이시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지금은 여기가 더 급해.”

시현이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남은 몬스터들이 경기장에서 날뛰고 있었다.

도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손을 쳐 냈다. 하지만 곧바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을 보고 시현은 픽 웃음을 흘렸다.

“둘 다 무사해요?”

어느새 땅으로 내려온 이나가 시현에게 물었다. 그는 깜짝 놀랐지만 부러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무사합니다. 이나 씨는 어떻습니까?”

“저도 뭐…….”

이나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였다.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수상했지만 시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나는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서 있다가 몬스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저도 정리하러 가 봐야겠네요. 시현 씨는 팔도 다쳤으니까 쉬세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쉬라면 좀 쉬어요. 여긴 우리끼리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니까.”

시현이 반박하려 했지만 이나는 이미 저만치 가 버린 뒤였다.

마치 화풀이하듯 몬스터를 말 그대로 쓸어 버리는 이나를 시현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

랭킹전 습격 사건이 있고 나서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이 일은 뉴스를 통해 한국 전체는 물론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랭킹전 결승에 난입한 헌터와 우연인 듯 갑자기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까지. 그만큼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나라가 이 일로 떠들썩할 때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시현은 휴식을 취했다. 마르코스와 벌였던 전투와 바타르에게 당한 오른팔 탓에 체력이 바닥난 탓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붕대를 풀고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병원 로비로 나온 시현은 마침 TV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랭킹전을 습격한 괴한 헌터와 갑작스레 나타난 던전 브레이크. 과연 이것이 모두 우연일까요?]

시현은 프로그램 진행자가 하는 말을 듣고 맞닿은 이에 힘을 주었다. 표정이 굳으려는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TV 앞에 모여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얼굴로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게 진짜 우연이라고?”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기가 막히지 않나?”

“그 괴한이 던전을 만들어 낸 거 아냐?”

“에이. 그게 어떻게 가능해? 신도 아니고.”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이 맞았다. 랭킹전을 습격한 괴한들, K가 던전을 만들어 냈다.

이 사실이 퍼지지 않고 그저 의심으로만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서준과 헌터 협회의 노력 덕분이었다.

인간이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간 세상에 혼란을 불러올 테니까.

시현이 TV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그를 발견한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시현 헌터다.”

“이시현 헌터도 분명 저 자리에 있었지?”

“한번 물어볼까?”

어떤 사람이 머뭇거리다 다가오려 하자 시현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햇빛이 쨍쨍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러고 있자니 랭킹전 때 이나를 지켜보았던 일이 생각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나가 능력을 쓰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몬스터의 습격 탓에 카메라가 거의 망가진 탓이었다.

그나마 작동하던 것은 서준이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곳에 있던 헌터들에게 입막음을 시켰다.

이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어두워졌다.

‘이나 씨는 괜찮을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표정은 영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말해 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시현은 망설이다 헌터 협회를 향해 걸음을 뗐다. 이나를 찾아가 보기 위함이었다.

퇴근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시현은 신경 쓰지 않고 협회 로비에서 이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어? 이시현 헌터다!”

“무슨 일이지?”

협회 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힐끔거렸지만 시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움직인 것은 직원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얼굴을 발견했을 때였다.

“저기.”

“네? 어? 이시현 헌터님……?”

그녀는 일전에 이나와 함께 퇴근하던 이나의 직장 동료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이나가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주변을 살피다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이나 씨는 같이 퇴근 안 했습니까?”

“어? 혹시 못 들으셨어요?”

“네?”

시현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다른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이나 씨 일 그만뒀어요. 저희도 오늘 전달받아서 당황하던 참이에요.”

시현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겨우 입을 열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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