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49)

기자 회견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헌터 협회에서 중요한 소식이 있을 거라고 공표한 탓이었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안면이 있는 기자들은 저들끼리 숙덕거렸다.

“대체 어떤 엄청난 소식이길래 사람이 이렇게 많아?”

“새로운 S급 헌터라도 나왔나?”

“에이. 가장 최근에 S급으로 각성한 김예진 헌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럼 무슨 일이지?”

점차 의문이 퍼지는 사이 시작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헌터 협회 본부장인 서준이 칼같이 나타났다.

저를 향해 쏟아지는 셔터 소리와 플래시 불빛에도 서준은 긴장하지 않았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것치고 상당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를 보며 기자들은 역시 헌터 협회 본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준은 기자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헌터 협회 최서준 본부장입니다. 이렇게 기자 회견을 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한국에서 각성한 헌터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뭐야. 겨우 그 정도로 이렇게 큰 규모의 기자 회견을 연 거야?”

한쪽에서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서준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서준은 싱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헌터의 능력은 세계의 미스터리라고 알려진 정체불명의 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 축 처져 있던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준이 다음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다들 설마설마하던 그 순간, 서준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말을 꺼냈다.

“이 헌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체불명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습니다.”

“헉……!”

다음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여기저기서 숨을 훅 들이마셨다.

동시에 서준에게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정체불명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니. 그 헌터는 대체 누구입니까!”

“알에서 태어난 것은 무엇이고요! 역시 몬스터입니까?”

그 광경을 보니 이나는 벌써부터 질려 버리고 말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까부터 계속 망설임이 올라왔다.

내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면 내가 나로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슬슬 나서야 할 타이밍임에도 그녀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자 함께 온 시현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솔직히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나가야죠.”

이나가 여전히 기자 회견장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도하가 나섰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어떻게 그래요?”

“뭐 어때? 네가 하고 싶지 않다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뒷일은 최서준 저 녀석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도하가 턱짓으로 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나가 나서지 않아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서준은 유능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이나가 나서지 않는다면 K의 이목을 그녀에게 집중시키겠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니까.

그때 서준이 힐끔 이나가 있는 쪽을 보았다. 이제 정말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다.

이나는 천천히 심호흡하고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기껏 다잡은 마음이 무색하게도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나가 의아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시현이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나 씨,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네?”

“실은 지난번 대화 이후로 이나 씨가 말했던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나가 입을 꾹 닫았다. 그녀가 정곡을 찔린 얼굴로 올려다보자 시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나 씨가 각성자이든 정령사이든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유이나라는 존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

“그러니 다녀오십시오. 저는 여기 서서 이나 씨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머뭇거리던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뒤로 돌았다. 시현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순간 볼트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에겐 그대가 말한 특별한 정령사도, 유이나도 모두 그대이니 말일세.]

이나는 지금까지 두 존재가 공존하지 못할 줄 알았다. 평범한 유이나라는 존재가 특별한 정령사에게 먹혀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두 존재 모두 그녀였다. 그리고 유이나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존재가 주변에 가득했다.

그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이나는 속이 후련해졌다. 기자 회견장으로 나가는 발걸음에 힘이 담겼다.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였다.

***

“일이 귀찮게 되었어요.”

K의 멤버 소피아가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홀로그램의 모습으로 회담에 참여했지만 마르코스와 바타르의 눈앞에는 그녀의 찌푸린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두 사람이 아무 말 안 하고 있자 소피아가 그들을 질책했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예요? 조용히 데려오진 못할망정 그자가 세상에 존재를 알리게 두다니.”

“내가 뭐 알았나.”

마르코스가 투덜거렸다. 그 상황에서도 바타르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나가 K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 딴에는 그 사실이 불러일으킬 파급력을 생각해 그런 것이었지만, K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나가 입을 다문 게 다행이었다.

물론 그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일 처리가 귀찮아지기에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귀찮은 것을 질색하는 소피아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떡하긴. 예정대로 그 유이나라는 녀석을 우리의 신께 데려가야겠지.”

“그러니까 어떻게 데려올 건데요?”

“……잘?”

소피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전 이제 몰라요. 둘이 알아서 하세요.”

그 말과 함께 소피아의 신형이 사라졌다.

턱을 괴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무엘도 기지개를 켜며 태연하게 말했다.

“뭐, 소피아의 말대로 둘이 알아서 하겠지. 그럼 나도 연구할 게 남아 있어서 이만.”

“우리도 갈게!”

“고생해!”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지는 사무엘과 쌍둥이를 보며 마르코스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이놈의 조직은 긴장감이 없어, 긴장감이.”

“네가 할 말은 아니군.”

“뭐야?”

마르코스가 째려보았지만 바타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문제는 앞으로야. 그분께서 찾고 계시는 게 유이나라는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냥 돌아갈 순 없어.”

“그거야 당연하지. 어떻게든 데려가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어떻게? 괜히 소란을 피웠다간 우리의 존재가 노출된다고.”

“그럼 녀석이 스스로 우리한테 오도록 만들면 되잖아?”

바타르가 멈칫하더니 의외라는 눈빛으로 마르코스를 쳐다보았다.

“너도 맞는 말을 할 때가 다 있군.”

“네 녀석 아까부터……!”

“스스로 오게 만든다라. 좋아. 그 방법으로 가지.”

옆에서 씩씩거리는 마르코스는 무시한 채 바타르가 계획을 짜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네가 스스로 올 수밖에 없을 거다, 유이나.”

***

“워. 이것 봐.”

도하가 옆에 앉아 있던 이나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도하가 핸드폰을 코앞까지 내민 탓에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사 제목들을 읽던 이나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즐거운지 도하가 킬킬 웃더니 이번엔 소리 내어 그것들을 읽어 주었다.

“정체불명의 알, 알고 보니 정령의 알? 세계의 미스터리를 해결한 유일한 정령사!”

“그만해요.”

“이거 다 유이나 너를 뜻하는 말 맞지? 아주 그냥 인기 스타네. 해외에서도 난리라던데.”

이나가 양손에 얼굴을 묻은 상태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남의 일에 왜 이렇게들 관심이 많은지…….”

“이나 씨가 평범한 S급 헌터였다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나 씨는 특별한 S급 헌터니까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서준을 이나가 흘겨보았다.

서준의 말대로 이나는 기자 회견장에서 L급이 아닌 S급 헌터로 공표되었다.

K가 자신을 노릴 것을 생각해 이나가 취한 조치였다. 괜히 L급으로 알려졌다간 K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올 테니까.

눈앞의 세 사람도 그녀가 L급이라는 것을 몰랐다. 등급 측정기를 사용하면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이나가 거부한 탓이었다.

물론 이나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세 사람 모두 잘 알았기에 그녀가 S급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의아하긴 했다.

“이나 씨, 근데 등급 측정은 왜 거부한 건가요?”

서준을 필두로 시현과 도하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나는 뚱한 얼굴로 고민했다.

세 사람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건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다닌 이나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모두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이나는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실은 저 L급이에요.”

“네?”

“푸웁!”

저마다 놀란 얼굴로 이나를 바라보았다. 도하는 마시던 음료를 내뿜기까지 했다.

이나가 티슈를 뽑아 도하에게 내미는데 그는 티슈보다는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L급? L급이 뭔데?”

“저도 잘 몰라요. 아, 근데 S급보다 위인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것치고 스탯이 낮거든요. 제가 생각해 본 건데, 어쩌면 지구에서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서 L급이 붙은 건 아닌지…….”

이나가 손가락으로 턱을 잡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S급보다 위가 아니라기엔 이나는 무척이나 강했다. 어쩌면 시현이나 도하보다 더.

도하마저도 입을 다물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이나는 손뼉을 짝 치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보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만난 게 아니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이나가 심각한 얼굴로 오늘 만난 목적을 꺼냈다.

“랭킹전에 나타났던 K의 두 멤버, 어떻게 잡을 거예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