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분에 대해 의논하기 전에 먼저 보여 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서준이 준비해 온 서류 두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나란히 펼쳤다. 서류 속 사진을 본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하도 눈을 치켜뜬 채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어? 이놈들 그놈들 아냐? K!”
“맞습니다. 실은 랭킹전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저 나름대로 두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 봤습니다.”
서준은 마르코스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 위에 손가락 끝을 올렸다.
“먼저 마르코스. 이자는 한때 브라질에서 헌터로 활동하다 현재는 현상 수배가 걸린 범죄자입니다. 브라질에서도 찾고 있더군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호승심이 강해 던전 공략을 위해 함께 던전으로 들어갔던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도하가 중얼거렸다.
“미친놈 아냐? 싸움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
“그러게요. 도하 씨도 이 정도는 아닌데.”
“당연하지! 난 그래도 선은 지키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도하가 이나를 바라보았다. 이나는 픽 웃으며 그가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네. 멋지네요.”
“그렇지?”
도하가 헤벌쭉 웃었다. 천하의 청호 길드장이 저런 얼굴도 할 줄 아는구나 싶어 서준이 그를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
투둑-
그때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시현이 볼펜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인데 이상하게 서준은 그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이나와 도하는 서로 떠들기 바빴다. 그럴수록 시현의 심기는 더 불편해졌다.
서준은 분위기가 요상해지는 것을 느끼고 헛기침을 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크흠! 이제 마르코스의 능력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중요한 내용에 이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눈길이 서준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내심 안도했지만 티 내지 않고 마르코스의 프로필을 들여다보았다.
“브라질 헌터 협회에서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마르코스의 스킬은 총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정 시간 동안 근력을 높여 주는 스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지정한 물건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어쩐지. 그래서 힘이 그렇게 셌구만.”
도하가 마르코스와 맞붙었을 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힘에 자신 있는 그가 상대하기에도 벅찬 상대였다.
도하의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보던 서준이 이번엔 바타르의 신상 정보를 가리켰다.
“다음은 바타르입니다. 이자는 몽골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자신의 가족을 총으로 쏜 뒤 도주했다고 합니다.”
“미친놈.”
이나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그것을 들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두 사람 다 미친놈들입니다.”
서준이 욕을 하는 것은 처음 들었기에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은 그런 이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그래서 오히려 잘됐습니다. 봐줄 이유가 절대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네요.”
이나가 씨익 웃었다.
서준이 이번엔 바타르의 능력에 대해 설명을 해 주려 하는데 이나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바타르의 능력에 대해선 제가 겪어 봐서 알아요. 그리고 안 그래도 그거 관련해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서준이 말해 보라는 듯 쳐다보자 이나가 망설임 없이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조금 놀란 듯하던 서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협조해야죠.”
“감사해요.”
“별말씀을.”
두 사람이 훈훈하게 말을 주고받자 그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며 바라보던 도하가 끼어들었다.
“근데 그놈들 능력을 알아낸 건 좋은데, 잡는 건 어떻게 잡을 거야?”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죠, 그건.”
이나의 말과 함께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지난번 두 사람과 싸울 때 고전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시현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과 관련해서 저도 한마디 얹고 싶습니다.”
시현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로 설명했다. 얌전히 듣고 있던 이나는 그가 말을 끝내자 걱정을 표출했다.
“시현 씨의 작전은 좋지만, 그렇게 되면 도하 씨가…….”
“왜? 난 좋은데.”
도하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
활활 타오르는 도하의 눈을 보며 이나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찬성이요.”
“결정됐군요.”
대화를 마무리 지은 서준이 서류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두 사람의 행방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헌터들에게 부탁했으니 곧 꼬리가 밟힐 겁니다. 그때까지 모두 휴식을 취하고 계세요.”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최근 여러 사건을 접했더니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목적은 뚜렷했다.
‘칼릭스 놈도 어서 잡아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이나는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맞은편 건물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이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것을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 엎드려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시현과 도하는 곧바로 몸을 숙였다. 하지만 서준은 반응이 느렸다.
이나는 그에게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몸이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쨍그랑-
거의 동시에 통유리가 깨지며 서준이 있던 자리에 탄알이 박혔다. 서준은 눈을 부릅뜬 채 탄알이 박힌 자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바타르예요.”
이나의 경계심 어린 말에 서준이 몸을 흠칫 떨었다.
이나는 자신의 밑에 깔려 있는 서준을 일으켜 때마침 소란을 듣고 달려온 헌터들에게 맡겼다.
“습격입니다. 본부장님을 잘 지켜 주세요.”
“여러분들은…….”
“저희는 놈을 쫓을 거예요.”
이나가 뒤를 돌아보자 시현과 도하는 이미 아란의 등 위에 올라탄 채였다.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은 그대로 뻥 뚫린 창을 박차고 반대편 건물로 올라갔다.
습격에 실패한 바타르는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인간의 신체로 바람의 정령 리카와 아란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바타르를 뒤쫓고 있는데, 그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가 순식간에 저 멀리 달려가 버리자 도하가 짜증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뭐야, 저 녀석! 아이템이라도 쓴 건가? 거기 안 서!”
“잠깐만요, 도하 씨!”
이나가 제지하려 했지만 도하는 속도를 내 바타르를 쫓아갔다. 그를 뒤쫓으면서도 이나는 무언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을 느낀 이즈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나야, 왜 그래?]
“마르코스가 안 보여.”
[그 우락부락한 사람?]
“어. ……게다가 뭔가 우리를 유인하는 느낌인데.”
계속되는 찝찝함에 이나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사이 도하와 시현은 바타르의 앞에 당도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바타르를 보며 두 사람은 아란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만 항복해.”
“항복? 웃기는군.”
바타르는 씩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시현과 도하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건…….”
“아이템이다. 그것도 던전을 만들어 내는.”
“이 미친놈이! 그걸 여기서 사용하겠다고?”
“못 할 건 뭐가 있지?”
바타르가 아이템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본 시현과 도하가 후퇴하려 했으나 뒤에서 나타난 마르코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어딜 가려고?”
“젠장……!”
챙-
아이템이 바닥에 부딪쳐 깨지자 그 자리에 게이트가 나타났다. 게이트는 점점 커지며 바타르는 물론 시현과 도하, 마르코스까지 삼켜 버렸다.
눈을 뜨자 늘 그렇듯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그들이 이동한 곳은 모래가 푹푹 밟히는 사막이었다.
시현은 내심 안도했다. 이런 탁 트인 장소라면 바타르가 몸을 숨길 수 없을 테니까. 그러면 대응하기가 좀 더 쉬워졌다.
그의 생각을 눈치챈 듯 바타르가 픽 웃었다.
“미안하지만 난 꼭 원거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야.”
“뭐?”
시현이 의문을 표하는 사이 모래가 들썩이더니 지네 모습의 벌레형 몬스터가 나타났다.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주변을 에워쌌다.
시현이 검을 꺼내고 경계하는데, 몬스터 한 마리가 바타르에게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마르코스는 그 상황에서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시현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눈을 치켜뜬 채 바라보자 바타르가 뒤로 점프해 공격을 피하며 지네를 향해 쌍권총을 난사했다.
탕, 탕!
“키에엑!”
몬스터는 녹색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그 후에도 바타르는 혼자서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오직 권총 두 개만으로.
짧은 시간에 주변에 몬스터 시체가 쌓이자 시현과 도하는 더욱 경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르코스와 바타르가 나란히 선 채 웃었다.
“긴장했나?”
“그런가 본데?”
“웃기시네! 누가 긴장을 했다고!”
도하가 바락바락 외치며 마르코스에게 달려들었다. 언월도와 대검이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두 사람이 서로를 상대하는 사이 바타르가 시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내 상대는 너인가?”
“…….”
시현은 말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저 탄알을 피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바타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