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49)

바타르가 시현을 향해 총을 쐈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전투가 시작되었다.

날아오는 탄알을 시현은 검기를 두른 검으로 막아 냈다. 쉽지는 않았지만 바타르가 조준하는 곳을 계속 눈으로 좇아 대비한 덕에 가능했다.

바타르가 다리 쪽을 조준했지만 시현은 공중으로 점프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공중에선 피할 수 없어 그대로 총에 맞고 말 테니까.

“현명하네.”

바타르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시현이 휘둘러 오는 검을 권총 두 개를 교차시켜 막아 냈다.

저격수가 설마 검을 막아 낼 거라곤 생각 못 했기에 시현이 눈을 치켜떴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듯 바타르가 씨익 웃었다.

“나도 싸움 잘하거든?”

검을 밑으로 흘려보내는 척하며 바타르가 시현의 다리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시현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며 주춤하자 바타르는 곧바로 총을 조준했다.

탕!

탄알은 정확히 시현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시현은 검날을 옆으로 돌려 검기를 두른 뒤 검 배 방향으로 탄알을 막아 냈다.

일반 검이었으면 탄알을 맞자마자 부서졌을 터였다. 하지만 검기를 두른 덕에 시현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탄알에 가해진 힘을 완전히 막을 수 없어 시현은 뒤로 조금 밀려났다.

‘엄청난 조준력이군.’

그 짧은 틈에 설마 심장을 정확히 노릴 줄은 몰랐다. 시현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바타르에게 달려들었다.

“컥……!”

그때 그의 옆으로 도하가 날아왔다.

모래가 쿠션 역할을 해 주어 큰 피해는 없었으나 이미 꽤 타격을 받은 듯 도하의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백도하! 괜찮은 건가?”

“이쪽은 신경 쓰지 마!”

도하가 얼른 일어나 마르코스를 노려보았다.

그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나 시현으로서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둘이서도 상대하기 버거웠던 마르코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도하 혼자서 상대하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바타르가 있었다. 날아온 탄알에 뺨을 내주게 되자 시현은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이럴 때 지원군이 있었다면…….’

설상가상으로 지원군 대신 땅 밑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피해 하늘로 점프한 시현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이런……!”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바타르가 하늘에 있는 그를 정확히 노렸다.

게다가 몬스터까지 그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과녁이 되느냐, 몬스터의 밥이 되느냐.

그 찰나의 순간에 시현은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정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 주었다.

“몬스터부터 해치워요!”

눈을 크게 뜨던 시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 말을 따랐다. 검기를 두른 검이 몬스터를 두 동강 냈다.

총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시현의 몸을 꿰뚫는 일은 없었다. 그의 앞 공간이 일렁거리며 총알을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그사이 무사히 땅에 안착한 시현은 제게 달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늦었습니다.”

“뭐래. 양지은 헌터를 데려온 것치고 엄청 빨리 온 거거든요?”

이나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옆에 있는 지은도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과 도하가 바타르를 쫓아갈 때 이나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시 헌터 협회로 돌아갔다.

그리고 서준에게 부탁한 대로 지은을 빌려 갔다.

자신이 뭐 물건이라도 되는 줄 아냐고 툴툴거리던 것치고 지은은 얌전히 이나를 따라왔다. 바타르를 상대하려면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조금 늦긴 했지만 이나의 선택은 옳았다. 덕분에 시현이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

지은을 발견한 바타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은 상대가 왔군.”

“누가 할 소릴.”

지은도 지지 않고 말했다. 어깨를 으쓱하던 바타르가 이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전처럼 두 사람이 나를 상대할 건가? 천조 길드장은 마르코스에게 보내고?”

“아니.”

대답은 시현에게서 들려왔다. 그는 바타르를 향해 검 끝을 겨누며 말했다.

“지금까지처럼 너는 내가 상대한다.”

의외라는 듯 바타르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그사이 이나는 도하의 옆으로 다가갔다.

“도하 씨, 도와줄게요.”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럼 저는 저대로 싸울 테니까 알아서 싸워요.”

그의 성격을 아는 이나가 그렇게 말하자 도하가 씨익 웃었다.

“그러든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르코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의외군. 지난번 싸움의 연장전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그렇게 했다간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이나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까 시현이 했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와 청호 길드장이 마르코스를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저희 둘이 힘을 합쳐도 힘으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변칙이 필요합니다. 마르코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만한. 이나 씨가 그 역할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르코스의 힘을 받아 낼 사람이 도하밖에 없어지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힐끗 옆을 바라본 이나는 제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하의 눈은 투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쩐지 시현을 상대할 때보다 더 흥분한 듯해서 이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때마침 도하가 중얼거렸다.

“감히 이시현과의 대련을 방해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그것 때문이었구만.’

이나는 삐질 웃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도하 입장에서는 화날 만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시현과의 대련 기회를 빼앗겨 버렸으니.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는 마르코스는 귀를 후비적거리다 대검을 들어 올렸다.

“뭐, 상관없지. 이렇게 된 이상 너를 죽이고 저 여자를 우리의 신께 데려가면 되겠군.”

“데려가긴 누굴 데려간다고 그래!”

마르코스의 말에 더욱 흥분한 도하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하의 언월도가 아란의 푸른 불꽃에 감싸여 장관을 이루어 냈다.

그 위력 또한 강력할 터. 그것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마르코스는 피하지 않고 맞부딪치기 위해 대검을 들었다.

힘이라면 자신이 있었으니까.

“음?”

그런데 무언가가 검을 든 그의 손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사막의 모래가 채찍처럼 뭉쳐 그의 손목을 붙들고 있었다.

순간 마르코스의 시선이 도하 너머에 있는 이나에게 닿았다. 그녀가 마르코스를 보며 웃고 있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날 상대할 작정이었군.”

그 와중에 도하가 그를 향해 대각선으로 언월도를 그었다. 아슬아슬하게 모래 채찍을 끊어 피해 낸 마르코스가 그대로 대검을 도하에게 내리찍었다.

도하는 언월도를 가로로 눕혀 공격을 막아 냈다. 도하의 스킬, <꺾이지 않는 투지> 덕에 무기는 부서지지 않았지만 대검에 가해진 힘에 그의 발이 모래 밑으로 푹 꺼졌다.

그때 허공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멈칫한 마르코스가 서둘러 대검을 거두고 그 자리를 피했다.

콰광!

마르코스가 있던 자리를 벼락이 강타했다. 도하는 귀가 좀 아프긴 했지만 무사했다.

다른 곳에 착지한 마르코스가 혀를 쯧 찼다.

“진짜 방해되네. 모처럼 싸울 상대를 만났는데 말이야.”

“누가 할 소린데?”

도하가 그에게 방해받았던 랭킹전 결승 때를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다시 마르코스에게 달려들었다.

때마침 이나도 반대편에서 모래를 뭉친 창을 만들어 그에게 던졌다. 양쪽에서 공격이 날아오자 마르코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그는 한쪽 발을 뒤로 밀어 그쪽으로 무게 중심을 실었다. 그리고 흡, 하며 힘을 주는 소리와 함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이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이나의 모래 창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컥……!”

그리고 도하는 대검에 깃든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가 모래 위에 처박히고 말았다.

“도하 씨!”

이나가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그녀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스가 곧바로 그녀를 노린 탓이었다.

이나는 급히 공중에 떠올랐다. 하지만 마르코스 역시 그 엄청난 힘으로 땅을 박차 높이 점프했다.

순식간에 그녀가 있는 곳까지 올라온 마르코스가 대검을 휘둘렀다. 이나는 바람으로 그를 밀어냈지만 대검이 워낙 긴 탓에 아슬아슬하게 팔을 베였다.

“윽……!”

“이 자식이 진짜!”

그사이 도하가 아란을 타고 그들이 있는 공중까지 찾아왔다.

아란의 등을 박차고 날아오른 도하가 언월도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마르코스를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그것을 가뿐히 막아 내고 도하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땅을 향해 도하를 내던졌다.

두 번이나 모래에 처박히게 되자 도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화를 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마르코스가 땅에 처박힌 그를 향해 대검을 세우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피하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막을 수밖에 없었다.

도하는 땅에 등을 댄 채로 무기를 들었다. 마르코스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몸이 긴장되었다.

그런데 마르코스가 갑자기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도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마르코스를 주먹으로 쳐 버린 존재를 보자 도하의 눈이 커졌다.

“……골렘?”

그것은 모래가 뭉쳐서 이루어진 거대한 골렘이었다. 지난번 앤드류가 조종했던 바위 골렘과 똑 닮은 모습에 도하가 몸을 긴장시켰다.

그런데 그 위에 올라탄 이가 도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도하 씨, 괜찮아요?”

그녀를 보며 도하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유이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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